〈 158화 〉 불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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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그 반응이 무색하게 김유진에게서 또다시 그런 불안감을 확인하는 일은 없었다. 이후의 김유진은 정말로 별일이 아니었다는 듯 다시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왔으니까.
여전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 아예 대놓고 눈에 밟히게 했다면 모르겠지만, 최대한 숨기려는 기색이 역력한데 괜히 질문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기본적으로 사람에게는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는 법이다. 흔히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비밀.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지킬 건 지켜줘야 하는 법이었다.
‘…뭐, 그래도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지만.’
물론 프라이버시라고 해도, 아예 신경을 꺼버릴 수는 없었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제멋대로 걱정하는 건 내 자유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흘러, 1학기의 남은 스케줄이 모조리 끝이 났다.
물론 저번에 말했던 대로 방학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애초에 휴교 기간이 원래 예정된 여름 방학보다 살짝 길어 남은 스케줄마저 조금 압축한 판에 휴일이 주어질 리도 없었다.
“…그래도 좀 아쉽다. 그치?”
“…아, 뭐. 그래. 조금 아쉽긴 하네.”
태연하게 내게 말을 거는 김유진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 대답과는 달리 딱히 휴일이 아쉽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휴일이건 평일이건 딱히 내 일정이 크게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원작 전개에서 벗어나기로 한 이후부터, 이전처럼 쉬엄쉬엄 놀 수는 없다는 거다. 한계가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아니, 오히려 한계가 정해져 있기에 더 빨리 강해질 필요가 있었으니까.
대충 설명하자면 감가상각의 문제였다. 파워 밸런스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기 전에,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가면 전력이 되기도 힘든 수준이지만, 지금은 아직 충분히 뛰어난 실력이니까.
그런 관계로 요즘 내 스케줄은 거의 수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수련할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게 확연히 체감되었다는 것이다.
시스템이라는 편법 덕분이기는 하지만, 나는 재능충 중 재능충인 주인공 일행조차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를 손에 넣었으니까. 그리고 자기가 잘하는 일을 싫어하게 되는 건 쉽지 않은 법이었다.
‘뭐, 요즘은 좀 답보 상태긴 하지만.’
얼마 전, B+랭크까지 경지를 올린 이후로는 지지부진 하는 느낌이 있지만, 그건 계속 수련을 이어가면 나아질 거다. 그리고 B+랭크 정도로도 1학년 시점에서는 충분하다 못해 과한 수준이었으니 투덜거리는 건 양심이 없는 거고.
어쨌거나 그렇게 되어 2학기 일정을 시작하는 날. 1학년 전체 학생들은 현재 훈련장에 집합해 있었다. 입학 직후 치렀던 신체 능력 검사를 다시 한번 치르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때와는 꽤 기록이 차이 날 것이다. 다른 이들도 마냥 그동안 놀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건 며칠 전 이도영과 싸운 엑스트라 양아치의 실력만 봐도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리고 얘도 엄청 늘었지.’
참고로 김유진은 이미 측정 검사를 마치고 나온 상태였다. 지금은 이도영과 이설화가 훈련실 안에 들어가서 시험을 치르고 있고. 그리고 김유진의 기록은.
‘15단계인가….’
입학 당시 11단계까지 클리어했던 걸 고려하면, 4단계나 진보한 성적. 실제로 웬만한 현역 영웅급은 되는 수준이었다. 물론 본인은 조금 불만족스러운 듯해 보였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한두 단계 성장도 겨우 해낸 걸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지.’
게다가 이 시험은 단계가 높아질수록 난도가 급격히 상승하기 때문에, 초반부보다 후반부에서 기록을 경신하는 게 당연히 훨씬 더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수준까진 아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재능이 넘치는 녀석이기도 하고, 요즘 들어 수련에도 엄청 열중이었으니까.
‘원작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물론 원작보다 이도영의 성장세가 빠르기도 하고, 나라는 추가 요소도 있으니까. 이 정도 변화도 없을 수는 없었다. 생각도 잠시, 이내 전광판에 새로운 기록이 표시되었다.
“도영이, 끝났나 봐.”
“그러게. 갱신이 멈췄네.”
파죽지세로 올라가던 기록이 멈추고, 이내 결정된 성적을 표시했다. 12단계. 입학 당시의 김유진보다 한 단계 높은 기록이었다. 고작 몇 달 만에 얻어낸 진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는 수준이기도 하고.
“…대단하네, 도영이도. 엄청 빨리 성장하는구나.”
“….”
전광판을 바라보던 김유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내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한 모양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청력은 조금 과하게 좋았다. 김유진의 목소리에 깃들었던 감정을 읽고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했더니.’
열등감. 물론 나쁜 의미에서의 열등감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도영이나 내 성장에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맞겠지. 다만 우스운 점은, 그러는 본인도 어마어마한 진보를 이뤘다는 점이었다.
옛말에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자기 성장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이해할 만한 여지는 있었다. 안 그래도 엄청나던 이도영의 성장이 여럿 추가 보정을 받아 더욱 빨라졌으니.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게 더 이상하겠지. 일단 꽤 승부욕이 강한 성격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나까지 있었으니까.’
비교할 상대가 이도영뿐이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시스템이라는 편법을 쓰는 나까지 있었으니. 본인의 성장이 가장 처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이 감정을 오늘 이렇게 다시 드러내게 만든 건, 아마도 나와 이도영이 아닐 것이다. 전광판에 표시된 기록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괴물 같으니.’
김유진의 성장은 대단한 일이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수준이었다. 대마법사의 딸이라는 배경과 이 한 달간 봐온 노력을 고려하면 납득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설화의 성장은, 그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16단계가 말이 되냐고. 이도영과 다르게 쟤는 한 달 동안 뭘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입학 당시 기록보다 3단계나 진보한 성적. 물론 김유진이 거둔 성적 상승보다 숫자 자체는 작았다. 하지만 고층으로 갈수록 급격히 높아지는 난이도를 고려하면, 사실상 김유진보다 큰 성장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와 이설화는 앞에서 더 빠르게 달려나가고, 이도영은 뒤에서 무서운 속도로 쫓아온다. 물론 내 성장은 사실상 눈속임에 가깝다고 하나, 김유진은 그 사실을 알 리 없으니까. 애초에 그걸 뭐라고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복잡해진 탓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답답한 기분에 폭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둘과 친구가 된 지 반년은 되었지만, 여전히 이런 위로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고민하기도 잠시, 이내 훈련실에서 나온 이도영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김유진에게는 다행히도, 옆에 이설화를 끼고 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 그나저나 이설화도 어떻게 하긴 해야 하는데.’
원작에서는 이도영이 알아서 처리했지만, 지금도 이설화 플래그를 이도영이 그렇게 처리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이도영에게 언질해주기는 좀 그렇고. 굳이 꼬시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친구가 연애하는 꼴만 봐도 눈꼴이 시리고 배알이 꼴릴 것 같은데, 하물며 그걸 내가 직접, 손수 힘을 써서 이어준다?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 차라리 플래그를 내가 처리하고 말지.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이쪽으로 다가온 이도영을 흘깃 바라보았다. 뿌듯한 듯 밝아진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표정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아?”
“아하하…. 들켰네.”
부끄러운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모습. 그러면서도 여전히 기분은 좋은 모양인지 얼굴의 웃음기는 떠나지 않고 있었다. 뭐, 입학 당시를 생각하면 감개무량하기도 하겠지만.
“뭐, 잘했어. 엄청 늘었네.”
“아직 멀었지.”
내 칭찬을 듣고 애써 아니라는 듯 겸양을 떠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솔직하다는 듯, 표정이 환해져 있었다. 그를 보며 속으로 짧게 감상을 흘렸다.
‘뭔가…개 같네.’
욕이 아니라, 뭔가 딱 이미지가 그랬다. 좋다는 듯 꼬리를 흔드는 대형견이 연상되는 태도였으니까. 칭찬을 들은 게 그렇게 좋은지, 아주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키도 한참은 커진 놈이.’
뭐, 그래도 인물이 되다 보니 징그럽지는 않았다. 오히려조금 귀여워 보일 정도기도 하고. 물론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김유진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런데 도영이 너, 어떻게 그렇게 빨리 실력이 는 거야? 한 달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으음…. 김시우 님께서 많이 도와주신 덕이지.”
“앗! 헤헤, 아버지가?”
“응, 당장 마법이랑 검을 동시에 쓰는 것도 김시우 님 덕에 익힌 걸.”
대마법사를 칭찬하는 말에 푼수처럼 헤실헤실 웃는 모습. 방금 확인했던 감정은 티끌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살짝 표정을 굳혔다.
뭐, 딱히 악감정은 아니었던 데다. 본인도 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모양이었지만, 역시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친구가 고민하는 걸 그냥 보기만 하기도 뭐한 일이었으니까.
“다음 차례 대기자들은 집합하도록!”
“앗! 시아 네 차례다!”
“응, 알아.”
교관의 재촉을 한 귀로 흘리며 김유진을 잠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천진난만한 척을 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대충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유진이 너. 이따 얘기 좀 하자.”
“…으, 응? 얘기? 왜?”
살짝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김유진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별 건 아니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으으음…. 뭐, 알았어!”
“그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일별한 뒤 훈련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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