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불안(4)
* * *
시험 종료 이후 훈련실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이쪽을 향해 쏠린 시선에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쯧.”
시선이 몰릴 만한 기록이라는 건 이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쾌한 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나를 향한 시선에 섞인 감정에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람, 선망, 경외. 그리 낯선 감정은 아니었다. 지금이 조금 특별히 많을 뿐이지, 이전에도 종종 받았던 시선이니까. 하지만 특별한 게 있다면, 평소 따라오듯 붙었던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질투, 호승심, 열등감 등. 흔히 따라오던 감정이 지금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전혀 비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감히 그런 감정을 품을 상대가 아니라는 것처럼.
그리고 그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선명한 거리감이었다. 나를 자신과 같은 1학년이라고 도저히 취급할 수 없다는 듯한,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멀디먼 시선.
하기야 내 눈이 너무 높을 뿐, 그리고 주인공 일행이라는 비교군이 너무 찬란할 뿐, 사실 B+랭크 정도의 실력만 해도 흔한 경지는 아니었다.
중견 길드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중소 길드 정도는 충분히 세울 만한 수준. 웬만한 영웅들은 그 수준에 닿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게 대다수였으니까.
자신들이 평생 나아가도 닿지 못할 경지에, 같은 1학년이 발을 디뎠다는 게 충격적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게다가 순서의 문제도 있었으니.
차라리 나와 이설화의 순서가 반대였다면 반응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 번 흔들렸던 멘탈에 추가타가 들어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설화라는 대상을 통해 한 번 격차를 체감한 상황에서, 그조차 한참 뛰어넘는 기록까지 보았으니,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예견된 거나 다름없었다.
‘…쟤도 만만찮게 괴물이니까.’
시스템의 힘을 빌린 내 성장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이설화의 성장은 가까스로 이해하는 건 가능한 수준이기에 더욱더 충격적일 것이다. 하필이면 그 순서가 순차적이었기에 더더욱.
한 달간 수련해서 붙었던 자신감이, 자신보다 더한 성장을 거둔 천재를 보며 산산이 부서진다.노력하는 천재가 자신의 경쟁상대라는 건,섬뜩하기 짝이 없는 일이니까.
온 힘을 다해 달려도 목표에 닿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 그리고 그 감정을 겨우 버텨낸 후, 남은 의욕을 간신히 그러모은 순간.
‘내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는 거지.’
등산로에서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순간, 이전까지 넘을 수 없던 산처럼 보였던 것이 고작 동산처럼 보일 정도로 높고 험한 산이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전의 것이 어떻게 넘을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벽이라면, 지금 나타난 것은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높은 절벽.
그리고 그 막대한 거리감을 체감한 이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득한 거리를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과 달리기를 포기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찾는 것. 그리고 지금 내게 닿는 시선은, 후자를 택한 이들의 시선이었다.
‘뭐, 그게 나쁜 건 아니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이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고통받느니, 차라리 마음 편하게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다.
애초에 시스템의 힘을 빌린 성장 가지고 뻗댈 생각도 없고, 나도 그런 부류에 가까우니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앞서 나가는 건 전자 쪽이지. 나랑은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이설화의 시선을 잠시 마주했다. 언뜻 무감정해 보이는 시선 속, 호기심과 의욕이 들불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를 깨닫자 살짝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나는 시스템이라는 편법으로 성장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더 성장이 빨라질 다른 이들과는 반대로, 내 성장에는 한도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것도 핑계이긴 하지만.’
시스템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체적인 수련을 통한 성장까지 막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게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역시회의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답안지를 보면서 문제를 푼 이는, 결국 본연의 실력으로 승부해야 할 때 처참하게 망가질 테니까. 물론 완전히 같은 비유는 아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글쎄.
‘애초에 벌써 성장이 막히기 시작했으니.’
B+랭크와 A랭크. 한 단계 차이라면 한 단계 차이지만, 그를 넘어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궁술에 숙련된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 본질적으로 부족하다는 느낌. 그에 고민에 빠지기도 잠시.
‘…뭐, 됐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우울감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 생각해봐야 답이 나올 리도 없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시아야!”
걸음을 옮겨 원래 자리로 향하자, 이내 김유진과 이도영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20단계라니, 시아는 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야? 진짜 대단하다!”
“응, 나도 꽤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부족하네.”
환하게 웃으며 내 얼굴에 금칠을 시작하는 김유진과 기쁜 기색과 함께 의욕을 불태우는 이도영. 그 대화에 적당히 어울려주며 김유진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역시.’
요 며칠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찾기 힘들 정도로 옅었지만, 여전히 김유진의 얼굴에는 약간의 그늘이 비치고 있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감정이었다.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어떠한 열등감. 그러기도 잠시, 이내 그늘을 숨긴 김유진이 평소처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는 듯, 일부러 더 과장되게 행동하는 모습. 그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중이었다. 이내 집합하라는 교관의 지시가 훈련장 내에 떨어졌다.
“이만 집합하도록!”
“집합하래. 가자.”
“응!”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오는 둘과 걸음을 옮기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과 조금 떨어진 틈을 타서 입을 열었다.
“유진아.”
“…응?”
왜 부르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김유진을 보며 조금 전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아까 말했던 대로, 이따 얘기 좀 하자.”
*
방과 후.
나는 김유진을 데리고 사관학교 내부의 카페로 향했다. 원래는 대충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쉽게 고민을 터놓기는 힘들어 보여서.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뒤, 간단하게 디저트를 주문했다. 적당히 달달한 스무디와 초콜릿 티라미수 케이크. 설탕이 아주 듬뿍 들어간 메뉴들이었다.
흔히 단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그걸 노린 거다. 슈가 하이라고 하던가?
뭐, 이름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고민을 털어놓는 허들을 낮추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물론 이런 류의 일은 설탕보다는 술이 더 확실하긴 하겠지만, 그걸 선택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사관학교 내부에 술을 파는 곳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뜬금없이 술을 마시러 단둘이 밖으로 나가는 건 좀 그렇기도 하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얼마 전 일 탓에 알코올은 좀 꺼려지는 탓도 있었다.
‘…그때 그딴 짓거리를 해놓고.’
또 마시긴 좀 그렇지.
슬슬 새어 나오려는 흑역사를 꾹꾹 누른 뒤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도착한 디저트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고, 고개를 갸웃하는 김유진에게 슬쩍 케이크 접시를 밀어주었다.
“자, 먹어.”
“…아, 고마워.”
멍한 표정으로 케이크를 받은 김유진이 내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평소라면 나는 안 먹느냐는 질문을 던질 법도 한데, 확실히 고민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스무디를 한 모금 들이켜며 김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 그래도 효과가 있긴 하네.’
케이크 한 조각이 입에 들어가자 눈에 띄게 풀리는 표정. 가만히 그를 응시하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케이크를 한 조각 더 입에 넣었다.
“맛있어?”
“응.”
단 게 들어가자 시동이라도 걸린 것처럼 오물오물 케이크를 먹는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단 게 들어가자 좀 나아졌다는 듯, 어느 정도 밝아진 표정.
그리고 잠시 후, 어느 새 비어 버린 접시 너머, 여전히 제 모습 그대로인 내 케이크를 본 김유진이 내게 질문을 건넸다.
“…시아 너는 안 먹어?”
“조금 이따 먹으려고. 단 건 그리 안 땡겨서.”
“….”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침묵에 빠졌다. 디저트를 다 끝장내고 나자 이내 내가 자기를 데려온 이유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생각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시아야, 그래서 물어볼 거라는 게 뭐야?”
그 질문에 여전히 멀쩡한 케이크를 한쪽으로 치워버린 뒤 김유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슬슬 설탕의 효과가 돈 듯, 얼굴에 어느 정도 혈색이 돌고 있었다.
“별 건 아니고. 너, 요즘 무슨 고민 있어?”
“…으, 응? 고민…? 없는데? …왜?”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어색하게 시치미를 뗐다.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연기한 모양이지만, 당연히 티가 안 날 리가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요즘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혹시라도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말해.”
이래도 절대 말하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은 몇 번 더 찔러 보는 게 좋겠지.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굳이 더 찔러 볼 필요는 없었다.
“…티 많이 났어?”
아무래도 설탕이 꽤 효과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던 김유진이 이내 내게 질문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