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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화 〉 불안(5) (161/167)

〈 161화 〉 불안(5)

* * *

“티 많이 났냐고?”

스무디를 한 모금 들이켜며 입을 열었다. 당분이 들어가자 머리가 좀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 평소랑 좀 다르긴 했지. 어째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평소에 비해 말수도 줄었고.”

“…언제부터 눈치챘어?”

“한 일주일 정도? 그때부터 좀 이상했으니까.”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 무거워진 분위기. 내 말에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거리던 김유진이 다시 침묵했다.

“….”

물꼬가 트이다가 다시 막혀버린 상황. 답답한 분위기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찔러보기까지는 성공했지만, 정작 막힌 게 다 뚫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재촉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애초에 고민 상담을 하려고 한 거지 자백을 받아내려던 것도 아니니까. 이게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고 무작정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손에 든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작은 탁 소리에 김유진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마치 사자 앞에 선 토끼처럼 뻣뻣이 굳은 모습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말하기 싫으면 굳이 말 안 해도 돼.”

그 말을 들은 김유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약간 멍하게 변한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걱정돼서 물어본 거지. 막 윽박지르면서까지 듣고 싶은 건 아니니까.”

친구 사이에도. 아니, 친구 사이니까 더더욱 지켜줘야 할 거리감이 있는 법이었다. 이런 류의 고민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물론 궁금해할 수는 있겠지만, 말하고 싶지 않다면 따져 물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왜 그러는지 알려줬으면 해. 네가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그걸 무시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 친구니까.”

묘한 기분에 조금 말을 더듬었다. 이런 류의 말을 입에 담은 적이 거의 없다 보니 어째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낯부끄러운 기분도 잠시, 이내 김유진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살짝 떨리는 눈빛이 내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김유진의 입이 열렸다.

“…그.”

“응.”

아직 머뭇거림이 남은 듯 작게 주저하는 표정. 그에 굳이 재촉의 말을 건네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김유진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딱히 말하기 싫은 건 아니었어. 그렇게 큰 고민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별다른 대답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응에 조금 안심한 듯 떨리던 김유진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차근차근한, 하지만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김유진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냥 요즘, 성적을 보다 보니까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

“불안한 기분?”

예상한 대로 성장세와 관련된 문제였다. 내 반문을 들은 김유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만 너무 뒤처지는 것 같았거든. 시아 너도 그렇고 도영이도 그렇고, 둘 다 실력이 엄청 늘었으니까.”

“….”

너도 충분히 실력이 늘지 않았느냐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이런 상황에서 먹힐 만한 말은 아니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결론은 역시 열등감이었다. 다만 문제는, 이건 내가 해결할 수가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었다. 애초에 내가 열등감의 주범인 이상, 내가 뭐라고 해도 생각을 바꾸기는 힘들 테니까.

성장 한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태로 보면 그것도 딱히 먹힐 것 같진 않았다.

철썩 믿기에는 조금 터무니없는 이야기기도 하고, 오히려 자기를 달래려는 거짓말로 들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막막한 기분에 멍하니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김유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질투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 불안해서 그랬어.”

“…불안하다고?”

미묘하게 드는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김유진의 말에 작게 숨을 삼켰다.

“응. 혹시라도 너무 격차가 심해지면, 사이가 조금 멀어질지도 모르니까. 그게 조금 불안했던 것 같아.”

“….”

부끄럽다는 듯 김유진이 테이블로 시선을 향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약간 멍해진 표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

‘…불안이라….’

내가 생각했던 단순한 열등감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더 익숙한 감정이었다. 내가 얼마 전에,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품고 있는 것과 비슷한 불안감이었으니까.

혹시라도 지금의 관계에서 멀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 감정을 김유진도 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입을 꾹 다문 채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다른 이들의 수다 소리만이 흘러가기도 잠시, 이내 대충 가닥을 잡았다.

뭐, 사실 설득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열등감이라면 모를까, 이런 불안감은 해소하기 어려운 건 아니었으니까.

“….”

생각을 마치고 가만히 손을 들어 김유진의 이마로 가져갔다. 갑작스러운 내 움직임에 김유진의 눈에 의문이 깃들기도 잠시.

­딱!

“아얏!”

정적을 깨는 딱밤 소리와 함께 김유진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왜 때린 거야?”

토끼 눈을 뜬 김유진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딱밤이 꽤 아팠던 모양인지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여 있었다.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어서.”

“…쓸데없다구?”

난데없이 딱밤을 얻어맞은 데다가 자기 딴에는 심각한 고민을 쓸데없다고 일축당하자, 아무리 김유진이라고 해도 조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어느새 섭섭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김유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응.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니까. 당연히 쓸데없지.”

“….”

결국 살짝 삐친 듯, 입을 꾹 다문 김유진을 보며 결국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느 정도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만 물어볼게. 처음 만났을 때, 나랑 친해지려고 한 이유가 뭐였어?”

“응?”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김유진. 그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되물었다.

“그때 나한테 친구 하자고 한 이유 말이야. 실력 때문이야?”

“…아니.”

“그럼 문제없잖아.”

“…그치만.”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 입술을 깨무는 김유진.

“애초에 실력 때문에 멀어질 사이면, 그런 건 친구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말을 이어가던 도중, 잠시 숨을 삼켰다. 작게 흘러나온 헛웃음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김유진을 설득하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우습게도, 그게 꽤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친구니까.”

“….”

묵묵히 이야기를 듣는 김유진을 보며 말을 끝마쳤다. 잠시간 침묵이 흐르고, 이내 복잡한 표정을 한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진짜 그럴까?”

“반대로 내가 너보다 약해지면. 이제 나랑 같이 안 놀 거야?”

역지사지로 질문을 던지는 척 본심이 섞인 질문. 그에 속으로 작게 웃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똑같아.”

“….”

다시 생각에 잠긴 김유진을 보며 남은 스무디를 들이켰다. 어느새 비어 버린 잔을 내려놓자 이내 김유진의 얼굴이 변했다.

내 말이 효과가 있었던 듯 평소대로 돌아온 표정을 보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김유진의 불안을 안심시키려던 말이었는데, 어째 내 불안도 조금 줄어든 모양이었다. 묘하게 속이 편해진 기분에 김유진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내 눈을 마주한 김유진이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평소처럼 방실방실 웃는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까지 얼굴에 비치던 수심이 자취를 감춘 상태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뭐, 그럼 고민은 해결된 거지?”

“응.”

“그렇다면 다행이네.”

묘하게 어색해진 분위기에 볼을 긁적이기도 잠시, 이내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도 끝났으니 굳이 카페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만 가자.”

그리고 같이 카페를 나선 지 얼마 뒤, 이내 정문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김유진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뒤로 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저, 시아야.”

“응?”

갑작스러운 부름에 고개를 갸웃하자, 이내 김유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고마웠어.”

“…그래.”

그 말을 건넨 김유진이 이내 뒤로 돌았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고생한 보람은 있네.’

조금 뿌듯한 기분도 잠시, 어째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살그머니 목덜미를 주물렀다. 오늘 한 말을 다시 곱씹어 보자 좀 오글거리는 느낌이었다.

뭐,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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