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축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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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축제는 명목상으로는 일주일 동안 진행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따지면, 진짜 축제 기간은 마지막 이틀, 주말에 불과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일에는 토너먼트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물론 토너먼트가 있다고 해도 다른 축제 이벤트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자원이라는 건 한정된바, 주말에 비해 지원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학생들 입장에서는 일부밖에 참가하지 않는 토너먼트가 메인 이벤트라는 건 조금 아리송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관학교 축제는 그 목적부터가 학생들을 위해 열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생들을 위한다는 이유는 부가적인 목적에 불과할 뿐. 실질적으로 사관학교 축제의 목적은 자기 과시다. 국민에게 차기 영웅들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거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비록 얼마 전 연이어 테러가 벌어졌지만. 아니, 오히려 얼마 전 테러가 있었기에 축제는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테러 때문에 극도로 불안해진 여론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사관학교는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해야 할 테니까.
뭐, 아무튼 결론만 말하자면, 실질적으로 축제를 즐기려면 주말이나 되어야 가능하다는 거다. 1학년 토너먼트야 축제 첫날, 월요일에 끝나지만 내가 출전하는 전 학년 토너먼트는 금요일에나 열리니까.
그리고 지금, 나는 토너먼트 예선을 치르러 홀로 훈련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굳이 혼자 가는 이유는 별 건 아니었다. 1학년 토너먼트 참가자들과 전 학년 토너먼트 참가자들은 통지된 시간에 한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커다란 경기장에서 성대하게 치러지는 본선 시합과 달리, 예선전의 경우 훈련장에서 간소하게 휙휙 치러지므로 굳이 오라고 하기 민망하기도 하고.
뭐, 예선전도 성대하게 치렀다간 토너먼트가 끝나질 않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토너먼트의 본 목적을 생각해보면, 굳이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까지 비춰줄 필요가 있을 리 없으니.
예선전을 위해서인지, 훈련장의 대련 링 근처에는 꽤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있었다. 예선전을 심사하는 심사위원과 근처에서 시합을 구경하려는 대기자들. 아직 비어 있는 대련 링을 힐끗 바라본 뒤 간이 접수처로 보이는 곳에 다가갔다.
“1학년, 유시아입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예선전 대기자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학생증을 넘겨주자 이내 컴퓨터를 조작한 직원이 내게 학생증을 돌려주었다.
“학생은 D조로 배정되었네요. 곧 예선전이 치러질 테니, 근처에 있는 D조 대기실에서 기다려주세요. 대련 링 뒤쪽에 있는 방이에요.”
“예. 감사합니다.”
직원이 건넨 학생증을 받은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넨 뒤 대기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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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먼트 본선은 16강이다. 즉, 예선전에 참가한 이들 중 단 16명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건 학년별 토너먼트에만 적용되는 규칙이고, 전 학년 토너먼트에서는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이의 숫자가 더 적었다.
본선의 경기 수가 더 적은 건 아니고, 예선을 치르지 않고 참전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학년별 토너먼트의 각 우승자. 각기 1학년, 2학년, 3학년의 최고 실력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우승과 동시에 전 학년 토너먼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기회일 뿐이니 굳이 참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참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승자가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승자가 나오려면 당연히 토너먼트 이후여야 할 터.
즉, 그 전에 치러지는 예선전에서는 우승자의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세 자리를 비워 둬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규칙 때문에, 전 학년 토너먼트는 사실상 3학년 토너먼트 우승자를 더 띄우기 위한 행사라는 말도 있다.
3학년 중 우승할 자신이 있는 이들은 웬만하면 학년별 토너먼트에 참가할 거고, 1학년이나 2학년은 시간에 의한 격차를 극복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
뭐, 그렇다고 해도 저학년 학생이 우승하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시간의 차이를 극복할 정도의 천재가 아예 없을 리는 없으니까.
물론 3학년 토너먼트 우승자의 경우, 아무리 못해도 천재 격은 되는 이일 테니 그 격차를 극복하는 게 그리 쉽진 않겠지만. 대상이 이번 3학년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운 2학년과는 달리, 3학년에는 독보적인 천재가 하나 있으니까.
‘뭐, 그렇다고 쫄 필요는 없지만.’
시스템을 쓸 필요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과하게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던 도중이었다. 한산하던 대기실에 하나둘 사람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교복 디자인을 보아 대부분 3학년인 모양이었지만, 2학년도 몇 섞여 있었다.
유감스럽다면 유감스럽게도, 1학년은 나 혼자였다.
‘당연하긴 하지.’
1학년이 전 학년 토너먼트에서 두각을 보이긴 힘들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1년도 아니고 2년의 격차를 이겨내는 건 한참 어려운 일이니까. 범재도 아니고 나름 천재 격에 드는 이들이 대상이라면 더더욱.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1학년이 없다는 건 조금 신기한 일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 대기실이 터가 안 좋은 듯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내게 쏠리는 시선에 살짝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유일한 1학년이기 때문인지 꽤 이목이 쏠리는 모양이었다. 뭐, 학년 덕분인지 몰라도 경계 어린 시선은 없었지만.
“1학년이야?’
그러던 도중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시선을 흘깃 돌려 그쪽을 향하자, 당연하게도 모르는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아, 예.
“하하, 경험상 나왔나 보네?”
“…뭐, 그런 셈이죠.”
능글맞게 웃은 남자가 이내 이쪽으로 조금 더 다가왔다. 실력에는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인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남자가 나를 한 번 훑어보았다.
‘…이 새끼.’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시선. 마치 전신을 훑는 듯한 시선에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쪽으로 조금 더 다가온 남자가 말을 이었다.
“1학년이 나오긴 쉽지 않은데, 대단하네.”
“….”
그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내 몸을 훑어보는 시선에 표정을 굳혔다. 갑자기 뭐 하는 놈인가 했더니, 아무래도 개수작을 부리려는 모양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팰 수는 없었다. 단순히 시선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사람을 후려 깔 정도로 내가 미치진 않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때와 장소가 문제였다. 곧 토너먼트 예선전인데, 대기실에서 폭력 사태를 일으킬 수는 없으니까.
살짝 밀려오는 짜증을 꾹꾹 눌러 담은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 조금만 떨어져 주실 수 있을까요?”
“응? 불편해?”
“예, 조금 가까운 것 같아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안도하기도 잠시, 이내 대답을 내뱉은 남성이 몸을 움직였다. 거리를 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좁히는 방향으로.
“…저기요?”
“불편할 필요 없어. 그냥 동생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
살짝 짜증 섞인 내 말을 들은 남자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 태연한 태도에 빡이 치기도 잠시, 흘긋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새끼가 꽤 치는 놈이기라도 하다는 듯 슬슬 시선을 피하는 3학년 학생들. 그나마 2학년들은 망설이는 표정이기라도 하지만, 3학년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인지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영웅 희망이라는 새끼들이 참….’
아무래도 도와줄 듯한 놈은 없는 듯했다. 뭐, 딱히 바라지도 않긴 했지만. 그래도 밀려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었다.
“…괜찮으니까 조금 떨어져 주시라고요.”
“거참 섭섭하네. 동생 같아서 챙겨주고 싶다는데. 자꾸 그렇게 반응하면 나도 좀 서운해.”
“아니, 필요 없으니까….”
주위를 둘러보고 내가 포기했다고 생각한 듯, 점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놈.
슬슬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조금 돌려서 꺼지라고 하려던 순간이었다. 억지로 나를 끌어당기려는 듯 손을 뻗은 놈이 내 팔을 잡았다.
“그냥 좀 친하게 지내자니까. 어?”
“…야.”
욕망이 훤히 드러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을 받자 이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팔을 잡은 손을 팍 쳐낸 뒤 입을 열었다.
“좀 꺼지라고, 이 새끼야.”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장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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