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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화 〉 축제(4) (165/167)

〈 165화 〉 축제(4)

* * *

내 급발진에 대기실 내부에 급격히 침묵이 내려앉았다. 당황한 듯 숨을 삼키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물론 가장 당황한 건 역시 욕설을 들은 당사자였다.

“…지금 나한테 한 말인가?”

설마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는 듯 멍하니 내게 치인 손을 내려본 놈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기야 무려 2학년이나 차이나는 놈에게 대놓고 욕을 박을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진 않을 거다. 졸업한 이후야 2살 차이 따위 별것도 아니겠지만, 지금 무렵 학생들에겐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테니.

물론 내게는 딱히 해당 사항 없는 말이었다.

“…음. 그래. 내가 좀 귀찮게 했나? 이거 좀 미안하네.”

그렇게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이내 놈이 피식 웃었다. 기분이 나빠지기는커녕 귀엽다는 듯 이쪽을 바라본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선배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안 그래? 아니, 뭐. 내가 트집 잡으려는 건 아닌데, 내가 그렇게 꽉 막힌 놈은 아니니까. 응? 그냥 친하게 지내자고 한 거잖아?”

그렇게 말한 놈이 다시 손을 이쪽으로 향했다. 은근슬쩍 다시 거리를 좁히려는 움직임. 그에 이어서 이쪽을 다시 훑는 눈빛. 그에 다가오는 팔을 손목을 잡아 막은 뒤 입을 열었다.

­탁

“손대지 마. 새끼야.”

“…하.”

연이은 내 욕설에 슬슬 인내심의 한계에 달한 듯, 실실 쪼개던 놈이 얼굴을 굳혔다. 잡힌 손목을 거세게 털어 내 팔을 뿌리친 놈이 입을 열었다.

“이거 참, 좋게 대해주니까 예의가 너무 없네. 좀 친근하게 해줬더니 선이라는 걸 모르나?”

예의라. 글쎄. 이놈이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예의는 새끼야, 네가 찾으면 안 되지. 꺼지라고 해도 계속 껄떡대던 놈이. 발정 난 개새끼도 아니고.”

“…이.”

“사람이 좋게 가라고 했으면 그때 알아서 꺼졌어야지. 몇 번을 말해도 못 알아처먹던 새끼가 예의? 예의는 사람 말을 알아먹는 놈들한테나 지키는 거고. 너 같은 새끼가 아니라.”

제대로 빡이 돈 듯 눈을 부라리기 시작한 놈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하, 얼굴 좀 반반해서 잘 대해줬더니….”

“잘 대해준 건 너 같은 새끼한테 존댓말까지 써준 내가 잘 대해준 거고. 너는 그게 잘 대해준 거냐? 눈알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해서 기분 더럽게 만드는 게? 웃기는 새끼네 이거.”

“…이 개 같은 년이.”

정곡을 찔리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 방금 전까지 보이던 평정은 터럭조차 남지 않은 얼굴이었다. 피부가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꽉 쥔 놈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토너먼트 예선전 대기실이라는 장소. 폭력 사태를 일으킬 경우 간단히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상황이 놈의 한 조각 남은 이성을 겨우 붙들고 있었다.

마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진 대기실 안. 가시방석이나 다를 바 없는 분위기에 이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그 시선 속에서 놈과 대치하던 도중이었다.

“…저, 저. 선배!”

“뭐?”

2학년으로 보이는 여선배 한 명이 놈에게 말을 걸었다.

“…그, 시, 시합 시간이…다 되셔서…요.”

“…후우.”

분을 쏟아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냥 물러가지도 못하는 딜레마 속, 거기서 벗어날 핑계를 얻은 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렇게 말한 놈이 이내 몸을 돌려 대기실을 나섰다.

놈이 나선 이후, 여전히 대기실은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그나마 시간이 좀 지나자 하나둘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했다.

“….”

시선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반쯤 내 업보나 다름없으니 그러려니 하며 가만히 앉아 있던 도중이었다. 갑작스레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저, 저기. 잠시 괜찮을까?”

“…아, 네.”

조금 전 그놈을 쫓아낸 2학년 선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여기 앉아도 될까?”

“…네. 그러세요.”

내 대답을 듣고 옆자리에 앉은 선배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묘한 떨떠름함에 시선을 피하기도 잠시, 가볍게 상대의 인상을 살폈다.

동그랗게 큰 눈망울. 약간 내려간 눈꼬리. 전체적으로 꽤 순한 인상이었다. 그렇게 시선이 오가던 도중, 이내 선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첫마디는, 꽤나 예상외의 것이었다. 좀 우스운 말이기도 했고.

애초에 방금 전, 나랑 그놈이 싸울 때, 결국 싸움에 끼어든 사람은 이 선배 하나뿐이었으니까.

“아니, 뭐. 괜찮아요.”

“….”

가볍게 고개를 저어 대답하자, 그 대답을 받은 선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째 이상한 반응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잠시, 우울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든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그 선배. 되게 질이 나쁜 사람이거든.”

“…음.”

뭐, 그렇게 보이긴 했다. 인상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주변의 반응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내게 이 선배가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까 그놈의 이름은 황장수. 내게만 그런 게 아니라 예전부터 그런 쪽으로는 소문이 자자한 놈이라고 했다.

“3학년 중에는 꽤 유명해. 일단 배경도 꽤 대단하기도 하고. 실력도 뛰어난 편이니까….”

“배경이요?”

“응, 쥬피터라고…. 길드장의 외동아들이야.”

“…아아.”

쥬피터. 이름은 대충 들어본 적 있는 길드였다. 오대 길드 급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큰 길드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아무리 규모가 커도, S랭크의 초인이 없다는 한계는 벗어날 수 없으니 감히 오대 길드에 비빌 수는 없겠지만, 사실 그 정도 길드도 그리 흔한 편은 아니었다.

뭐, 뻔한 이야기였다. 부모의 위세를 등에 업은 양아치가 양아치 짓을 하는 건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꼬라지를 보면 어떻게 자랐는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고.

실제로 선배의 이어진 설명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다만 하나 예상치 못한 게 있다면, 그놈이 벌인 짓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러웠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껄떡대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껄떡대고 다니는 건 맞는데, 거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협박이나 강요는 예사에, 만약 자기가 집적대는 여자에게 접근하는 이가 있으면 린치를 가하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게다가 견디지 못한 여자가 강하게 거절 의사를 표하면, 길드의 위세를 이용해서 가족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가끔 있었다고.

“그러는데도 사관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어요?”

“…응. 증거가 없었거든.”

선배의 말에 따르면, 놈은 대상도 치밀하게 뒤탈이 없을 만한 수준으로만 노렸을뿐더러, 따로 증거가 남는 방식으로 괴롭힌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직접적으로 폭행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대놓고 폭행을 사주하면 당연히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직접적인 말 하나 없이, 뉘앙스로만 이야기하면 잡아넣는 건 쉽지 않다.

나는 단순히 섭섭함을 토로했을 뿐인데, 주변인이 멋대로 움직였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한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변명하는 건 당연히 의혹이 남는다. 하지만 실증도 아니고 의혹 따위야 부모의 위세로 눌러버릴 수 있다.

대상이 비슷하게 강한 이, 혹은 자신보다 더욱 대단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별다른 배경 없는 이들은 대항하기도 힘들 테니까.

‘이거 참.’

그냥 양아치인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의 개새끼였다. 묘한 기분이 들기도 잠시, 이내 든 생각에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이유가….”

“…그냥. 좀 걱정됐거든. 내 친구도 그렇게 당했으니까.”

“그 친구분은….”

“자퇴했어. 도저히 더 견딜 자신이 없다고 하더라고.”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분위기에 입을 꾹 닫았다. 이해한다는 듯 희미하게 웃은 선배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그 선배, 되게 나쁜 사람이니까.”

“…예. 뭐,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선배가 이내 대기실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

예선전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관중도 없고, 단판 승부였으니 딱히 오래 걸릴 이유도 없긴 했다.

딱히 어려운 상대는 없었다. 굳이 시스템을 사용할 것도 없이, 이미 몸에 익힌 실력으로도 승부를 가르는 건 충분하다 못해 과했으니까. 굳이 기(?)를 사용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놈도 마찬가지였다. 인성은 쓰레기였지만, 그래도 실력은 꽤 뛰어난 편이었으니까. 물론 엄청 대단한 건 아니고. 딱 학년 내에서 조금 친다 정도.

뭐, 그렇게 된 결과. 지금 내 경기 상대는 놈이었다. 예선전 또한 토너먼트 형식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

대련 링 위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놈을 바라본다. 내 표정과 반대로 놈은 비열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여기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는데. 의외로 꽤 실력이 있었나 보네?”

굳이 답할 가치가 없어 가만히 바라보자 내가 주눅이라도 든 줄 알았는지 신이 난 놈이 말을 이었다.

“뭐, 내게는 다행이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후배한테 예의를 가르쳐 줄 수 있으니 말이야.”

“…하아.”

슬슬 다시 밀려오는 짜증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개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고역이었다.

“활잡이인가? 뭐, 걱정하진 마. 활이 아니라 다른 무기여도 별다른 차이는 없을 테니까.”

내 손에 쥐인 활을 보며 가볍게 나를 비웃은 놈이 내 쪽으로 창을 내밀었다. 뭐, 초인간의 싸움에서 활은 꽤 근접전에 취약한 편이었으니 저런 반응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활은 개뿔.”

놈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궁사인 건 맞지만, 저 새끼한테는 활을 쏠 생각이 없었으니까. 활을 쓰려는 건 맞지만, 활을 쏘려는 건 아니었다.

“…음?”

­스륵

내 움직임을 본 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의문에 가득 찬 시선이 내 손에 들린 활을 향했다. 활대에 걸린 활시위를 풀어 바닥에 던졌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놈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야, 말을 들어보니까. 너, 내 생각보다 훨씬 개새끼더라?”

활시위 없이 휑한 활대 끝부분을 가볍게 쥐었다. 착 느껴지는 그립감도 잠시, 이내 내 말에 부득 이를 가는 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자고로 개새끼는 매가 약이라고 하거든. 너 같은 새끼 말이야.”

역사적으로도 이게 약이었다.

“예의는 내가 너한테 주입해주는 거고. 새끼야.”

딱 대라. 이 새끼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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