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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화 〉 축제(5) (166/167)

〈 166화 〉 축제(5)

* * *

“….”

대련 링 위. 유시아를 마주하던 황장수의 표정이 변했다. 방금까지 자신감과 비웃음이 흘러넘치던 표정은, 이내 밀려온 한 가지 감정에 휩쓸려 사라졌다.

“…하, 하. 이게 무슨.”

황당한 가득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린 황장수가 유시아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건방진 년인 줄만 알았는데, 아무래도 정신이 제대로 맛이 간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따위 만용을 부릴 리 없으니.

그래. 예선전에서 아직 탈락하지 않고 그를 마주했으니 어느 정도 실력은 있긴 할 것이다.

근접전에 불리한 활이라는 무기를 들고 보인 선전이기에, 그리고 1학년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얻어낸 결과이기에, 실력에 대한 자신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런 멍청한 짓까지 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한 일이었다. 아무리 초인간의 싸움에서 활이 근접전에 취약한 무기라고 해도, 저따위로 쓰는 것보단 백 배 나을 테니.

아니, 활을 쏠 생각이 없었다면 굳이 활을 들고나올 필요도 없었다. 저럴 필요 없이 다른 무기로 바꿔 들면 되는 일이니까.

애초에 활은 들고 사람을 후려치라고 만든 무기가 아니다.

물론 재질이 재질인 이상 쉽게 부러지지는 않겠지만, 거기서 끝이라는 이야기다. 휘어져 있는 탓에 공기저항을 더 심하게 받는 데다, 힘이 제대로 실리지도 않으니까.

아예 몽둥이가 쓰고 싶었다면, 굴러다니는 대련용 창이나 무술봉을 쓰는 게 훨씬 낫다는 이야기다.

즉, 무기도 바꾸지 않고 저따위 짓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불이익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멍청하거나, 아니면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를 도발하고자 하거나.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뻔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 후회하지 마라.”

이를 뿌득뿌득 간 황장수가 유시아를 노려보았다. 자신감인지 만용인지 모를 일이지만,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런 짓을 하건 안 하건, 결과가 달라질 건 없을 테니까.

가벼워 보이는 인상이나 행동과 다르게 그는 꽤 치밀한 편이었다. 자신이 노릴 수 있는 대상과 노려선 안 되는 대상을 철저하게 구분할 정도로.

자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큰 뒷배를 가진 이들이라면 까딱하면 박살 날 수 있기에, 그런 이들에 대해서는 입학식부터 이미 알아본 후였다.

그리고 눈앞의 상대는 그 정보에 속하지 않았다. 즉, 별다른 뒷배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지닌 실력 또한 한계가 있을 거라는 뜻이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환경의 영향도 벗어날 수는 없으므로.

손에 쥐고 태어난 것에서 오는 차이,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의 차이. 절대 좁힐 수 없는 격차가 둘 사이에 존재한다.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해할 때까지 가르쳐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교육은, 그리 다정하진 않을 것이다.

“흐읍!”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창을 치켜든 황장수가 유시아를 향해 빛살처럼 돌진했다. 둘 사이에 벌어진 간격이 순식간에 좁혀지고, 이내 눈앞까지 다가온 유시아를 향해 황장수가 창을 쏘아냈다.

­쉬이이이익!

‘시작은 팔부터.’

한 방에 끝낼 생각은 없었다. 단순히 승부를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가지고 노는 게 목적이었으니 급소를 노려서는 안 된다. 무기를 든 팔을 노려 무력화시킨 뒤 요리한다.

‘멍청한 년!’

그의 움직임을 보지도 못한 듯, 가만히 서 있는 유시아. 그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진 창이 뱀처럼 날아들었다.

그리고.

“아니, 이 새끼가.”

인상을 찌푸린 유시아가 가볍게 발을 놀렸다. 팔을 향해 날아들던 창이 목표를 잃고 허공을 꿰뚫었다. 그리고 무방비하게 전신이 노출된 황장수를 향해 유시아의 활대가 날아들었다.

­빠아아아악!

“크윽!”

활대에 강타당한 어깨에서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기에 고통이 더욱더 강하게 느껴졌다. 당황도 잠시, 이를 악문 황장수가 창대를 크게 휘둘렀다.

“하아압!”

­부우웅!

회전하는 창대가 가공한 힘을 싣고 유시아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원심력이 가득 실린 일격. 그에 맞서는 유시아의 행동은 간단했다.

‘머저리 같으니…!’

손에 든 활을 들어 창대를 향해 휘두른다. 마치 정면으로 공격을 맞받아치려는 듯한 동작을 본 황장수가 눈을 부릅떴다.

양손으로 휘둘러지는 창과 한 손으로 휘두르는 활. 심지어 끝에 창날까지 달린 창과 달리 통짜로 된 활은 무게 중심조차 제대로 맞지 않는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짓거리. 하지만 그 둘이 충돌한 순간, 누가 우세한지는 쉽게 드러났다.

­까아아아앙!

“끄으윽!”

전력으로 휘두른 창이 속절없이 튕겨 나간 황장수의 몸이 순식간에 뒤쪽으로 날아갔다. 바닥을 나뒹군 황장수의 입에서 경악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말…도 안 되는….”

겨우 바닥을 짚은 황장수가 겨우 몸을 일으켜 유시아를 바라보았다.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가기까지 한 자신과 다르게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모습. 그 모습을 본 황장수가 이를 악물었다.

‘…이…. 빌어먹을…!’

욱신거리는 팔의 통증을 무시하고 창을 잡은 황장수가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대련 링의 보호 마법이 있으니 부상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시 자세를 잡은 황장수가 유시아를 노려보았다.

“이…개 같은 년이! 방심한 틈을 타서!”

방심한 탓에 신체 강화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억지로 지금 처한 상황을 합리화한 황장수가 포효하듯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본 유시아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방심? 새끼야. 실전에서 방심한 네가 잘못이지.”

“닥쳐! 내가 제대로 하면 너 따위는…!”

“아, 그래도 이 새끼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는 황장수의 말을 끊은 유시아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뭐, 제대로 한다고? 그럼 해 보던가. 꼬라지 보면 딱히 다를 것 같진 않은데?”

“이 년이…!”

현격히 자신을 무시하는 어조에 눈이 돌아간 황장수가 창을 들었다. 순식간에 차오른 마나가 전신을 가득 채웠다.

“후우…. 그래. 제대로 조져 주마!”

내부에서 솟아오른 막대한 힘에 겨우 평정을 되찾은 황장수가 선언한 순간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유시아가 땅을 박찼다.

­쐐애애애액!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거리. 조금 전 상황에서 공수만 전환한 듯한 상황이었다. 차갑게 머리를 식힌 황장수가 창을 들었다.

‘막는 건 멍청한 짓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상대는 그 자신보다 힘이 몇 배는 강하다. 즉, 정면 승부는 자살행위라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상대는 힘과 속도가 빠를 뿐, 딱히 기교가 뛰어나지는 않다는 점. 정직하기 짝이 없는 궤도는,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상대하기 어렵지 않다.

계산을 마친 황장수가 근육을 긴장시켰다. 회피한 뒤, 마주 찌른다. 조금 전 상대가 자신의 돌진에 대응했던 방식을 떠올린 황장수가 유시아를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어?’

잠깐. 너무 빠른….

­빠아아아악!

“커헉!”

순식간에 다가온 유시아의 활이 황장수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회피할 틈조차 나지 않는 어마어마한 속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인 속도에 황장수의 눈이 부릅떠졌다.

“네가 나냐? 이 새끼야? 어디서 표절이야?”

­빠악!

옆구리를 강타한 활이 방향을 돌려 허벅지를 후려쳤다. 중심을 노린 일격에 다리가 풀린 황장수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어딜 가, 새끼야!”

­빠악!

“큭!”

순식간에 따라붙은 유시아가 다시 한번 활을 휘둘렀다. 창을 쥐고 있는 손가락을 정확히 노린 일격에 황장수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도저히 창을 휘두를 만큼의 거리가 벌려지지 않았다.

­빡! 뻑! 빠악!

계속해서 몸을 후려치는 활. 그 무기의 한계 탓에 공격 하나하나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문제였다.

대련 링의 판정 기준은 두 가지. 전투 지속이 불가능한 충격을 받았다고 판단하거나, 본인이 항복 의사를 표하는 것.

그리고 지금 그에게 가해지는 공격은 고통은 어마어마했지만 실제로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탄성이 가득 실린 활대가, 마치 회초리처럼 살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아까 말했던 대로 자신을 그저 후드려 패는 데 특화된 무기. 그 사실을 깨달은 황장수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조금 전까지 남아있던 평정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표정이었다.

“으아아아아!”

발악하듯 소리친 황장수가 발을 휘둘렀다. 창을 휘두를 수 없으니 맨몸으로라도 싸운다. 투지는 가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유시아에겐 그리 와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새끼가 어디서 발질이야!”

­빠각!

“끄아아악!”

순식간에 날아든 활이 황장수의 무릎을 강타했다. 무참하게 밀려오는 어마어마한 격통에 황장수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흐으으…. 흐으….”

정신없이 깨금발로 뒤로 물러난 황장수가 겨우 땅을 디뎠다. 그사이에도 연이어 쏟아진 공격에 피격 부위가 작살난 것처럼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 덕에, 창을 찌를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손에 넣었다. 눈을 부릅뜬 황장수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뒈져어어어어!”

자신을 후려친 활을 회수하는 찰나 간 유시아가 보인 빈틈. 그 빈틈을 향해 황장수가 창을 내질렀다.

오늘 그가 내지른 일격 중 가장 완벽한 일격. 마나가 듬뿍 깃들어 덜덜 떨리는 창이 유시아의 몸을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탁

“…하…하하….”

자신의 회심의 일격을 잡아챈 유시아의 손을 본 황장수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창을 잡은 손에 깃든 선명한 기운. 그리고 반대쪽 손에 쥔 활대에서 화염처럼 일렁이는 경기.

자신은 닿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 경지를 증명하는 힘. 그에 본능적으로 유시아의 얼굴을 바라본 황장수의 눈이 순간 멍하니 흐려졌다.

“…아.”

어째서인지 환하게 웃고 있는 유시아. 순간 지금 처한 상황조차 잊을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였다. 잠시 그 미소에 눈을 빼앗겼던 황장수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하, 항….”

“응, 안 받아.”

순간 유시아의 미소에 시선을 빼앗긴 탓에 한 박자 느려진 항복 선언.그 틈을 기다려주지 않고 날아든 활대가 황장수의 턱주가리를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억!

여태까지 터져 나왔던 소리 중 가장 거대한 타격음.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황장수의 의식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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