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1학년 토너먼트(1)
* * *
이후의 경기에서는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특이사항이라면 그놈이 아예 기절해버린 탓에 의료실로 보내졌다는 것 정도?
뭐,대련 링의 보호 마법은 부상을 막아줄 뿐이지,충격은 그대로 전달되므로 딱히 큰일은 아니었다.아마 지금쯤 깨어났겠지.
아무튼 그렇게 된 이후,다음 시합은 그리 많지 않았다.가볍게 본선 진출권을 얻어낸 뒤 대기실로 향했다.
시합이 끝나자 붐비던 대기실은 꽤 한적하기 그지없었다.몇 남아있는 사람을 뒤로한 채 짐을 챙기던 도중이었다.아까 대화를 나눴던 여선배가 내게 다가왔다.
“아직 안 가셨어요?”
“응.”
고개를 끄덕인 선배가 이내 입을 오물거렸다.아무래도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까 경기는 봤어.실력 대단하더라.”
“아,네.”
단순히 칭찬하려고 꺼낸 말은 아닌 듯했다.오히려 걱정에 가까운 어조였으니까.뭐,왜 그러는지는 굳이 고민해볼 필요도 없었다.
‘그 새끼 때문이겠지.’
그런 그림으로 그런 것 같은 양아치가 고작 몇 대 처맞았다고 갱생할 리가 없으니까.물론 그런 걸 기대하고 팬 건 아니지만.그냥 개 같아서 팬 거지.
그래도 그나마 배경이 없는 놈이었다면 깝치면 처맞을 수 있다는 명제가 대가리에 박히기라도 했겠지만,유감스럽게도 이 선배 말에 따르면 그럭저럭 잘난 집안 자제라는 것 같으니 말이다.
딱 봐도 쓸데없이 안하무인인 놈이2학년 아래 후배한테 공개적으로 개 패듯 두들겨 맞았으니,아마 지금쯤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거다.
“그래도 공개적으로 그러는 건 너무 경솔했어.물론 네 실력이 대단하다는 건 봐서 알지만,그 선배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거든.정확히는 그 선배가 아니라 그 선배 부모님이.”
“음….”
뭐,호부 아래 견자는 없다고.그놈 꼬라지를 보면 평소 그 부모가 어떤 방침으로 자식을 키웠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아니,애초에 길드의 힘을 써서 그놈의 개짓거리를 도왔다는 시점에서 말 다 한 거겠지만.
“아니면 혹시 그래도 괜찮은 거야?”
“예?”
“혹시 쥬피터 길드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집안이라거나….”
아무래도 이 선배는 내가 꽤 대단한 집안 자식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현실로 따지면 아무것도 없는 놈이 대기업 직계 양아치를 대놓고 후려 깐 셈이니 그럴 의심을 할 만도 했다.심지어 이 세계의 길드는 현실의 대기업보다 가진 힘이 훨씬 더 강하니까.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뇨,저 고아인데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딱히 내게 그런 대단한 배경 같은 건 없다.
아니,유진이를 고려하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그건 친구 배경이지 내 배경은 아니니까.친구 부모님 위세로 호가호위하는 건 좀 그렇기도 하고.
‘애초에 그놈 정도야 굳이 대마법사 빽이 필요한 수준도 아니니까.’
뭐,사정을 알면 유진이야 당연히 도와주려고 하겠지만,그런 것까지 일일이 도와 달라고 하는 건 좀 그랬다.솔직히 좀 쪽팔린다는 거다.
“…아,그…그래?”
“네.”
거기서 고아라는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선배는 당황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사과를 하고 싶어도,오히려 그 사과가 더 신경 쓰일까 봐 입을 못 여는 모양이었다.
“뭐,별 신경 안 쓰니까 안 그러셔도 괜찮아요.”
“으,응.고마워.”
속마음을 들킨 게 부끄러운 듯 선배가 희미하게 얼굴을 붉혔다.조금 미묘하게 퍼져버린 분위기도 잠시,이내 다시 걱정 어린 눈을 한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말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볼을 긁적였다.내가 실력만 믿고 치기 어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뭐.딱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아마 이 선배가 생각하는 거랑은 좀 다를 거다.주로 실력 면에서.
“음….뭘 말씀하시려는지는 알겠는데,걱정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응?”
“별 문제없을 거니까.괜찮아요.”
“그치만….”
“뭐,저도 이미 생각해보고 한 일이니까요.”
“…그래.”
내 말을 들은 선배가 입을 다물었다.굳이 말할 필요 없다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솔직히 보면서 조금 통쾌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많이 걱정됐거든.”
“….”
어째 묘한 느낌에 잠시 입을 닫았다.걱정을 받는다는 것 자체는 그리 묘한 기분이 들 만한 건 아니었지만,오늘 처음 본 사람인 걸 고려하면 좀 과한 느낌이었으니까.
‘아니…. 사정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아마 제 친구를 겹쳐보고 있는 게 아닐까. 뭐,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다만 약간 당황스러울 뿐.
“내가 괜히 참견했을지도 모르겠네. 미안해.”
그런 감정을 눈치챘는지 선배가 내게 사과를 건넸다. 진심으로 미안해 보이는 표정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뇨. 뭐,걱정해주신 건 고마워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말 한 마디 내뱉기 힘들 정도로 묘하게 변해버린 분위기. 어째 어색한 기분에 괜히 목덜미를 주물럭거렸다.
역시 이런 타입의 사람은 대하기 좀 힘들었다.
“…이만 가볼게요. 볼 일이 있어서.”
“응. 나도 이만 돌아가야겠네. 잘 가렴.”
본인도 조금 어색했는지 작별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그에 짐을 마저 챙긴 순간이었다. 선배가 내게 작게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예.”
더욱 무거워진 분위기. 숨이 턱 막힐 수준으로 답답해진 공기를 뒤로하고 빠르게 대기실을 벗어났다.밖으로 나오자 그제야 조금 불편한 느낌이 가시는 듯했다.
‘사람 자체는 참 좋은 사람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저런 느낌의 대화는 좀 불편했다.
뭐,딱히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그냥 좀 어색할 뿐이지.
묘한 기분에 괜히 머리를 긁적이기도 잠시,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그 새끼도 처리는 해야지.’
아까 이미 꽤 두들겨 패긴 했지만,그런 놈이 그 정도로 기가 죽을 리 없었다.이야기를 들어 보면 양아치의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였으니까.
‘단순히 껄떡대기만 하는 놈이면 나도 그렇게까지 패진 않았겠지.’
아마 적당히 쓰러뜨리고 설교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음….아마 그랬을 것이다.아마….
‘아니,그딴 건 아무래도 됐고.’
어쨌든 그런 양아치 기질이 있는 놈이면 오히려 대처하는 건 편하다.강약약강의 표본인 놈이니,쉽게 건드릴 수 없을 거라는 걸 알려주면 그만이니까.
만약 그놈의 배경이S랭크 영웅이 속한 대형 길드 정도였다면 좀 빡셀 수도 있지만,쥬피터인지 하는 길드는 그 수준은 아닌 것 같으니 별 문제는 없다.
“말 나온 김에 지금 처리해두는 게 좋겠지.”
생각해보니 아까 조금 덜 팬 것 같기도 하고.
아니,뭐.그렇다고 더 패러 가는 건 아니지만. 아마.
***
의료실.
“…으윽.”
침대에서 눈을 뜬 황장수가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의료실인가.”
몸을 일으킨 황장수가 턱을 만져보았다.대련 링의 보호 마법 덕에 상처를 입었을 리 없음에도 여전히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개 같은 년이….’
기억을 되새긴 황장수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런 머저리 같은 꼴을 보인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수치스러운 건,그 순간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이다.이를 악문 황장수가 몸을 일으켰다.
별다른 부상이 없었기에 굳이 번거롭게 의료실 담당자와 말을 섞을 필요는 없었다.의료실을 나선 황장수가 이내 인적이 드문 건물 뒤편으로 향했다.
“….”
잠시 주위를 살핀 황장수가 이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휴대폰을 꺼냈다.부끄럽지만 자신이 그년을 이길 가능성은 없다.그리고 그 실력을 고려하면 패거리를 몰고 가도 역으로 당할 게 뻔하다.
하지만 그건 대상을 그 자신으로 한정했을 때의 이야기일 뿐,길드의 힘을 빌린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물론 기(?)를 다루는 실력자는 꽤 뛰어난 수준의 초인이다.거기다 그 나이까지 고려하면, 어쩌면 대형 길드 마스터 급까지 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건 장래의 이야기일 뿐,아직은 그저 초인 하나에 불과하다.그가 건드린 이들의 부모 중에도 그 정도 초인은 종종 존재했으니.
길드의 힘을 빌린다면 그 정도 초인 하나를 요리하는 건 쉬운 일이다.그의 아버지는 무려 강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실력자였으니까.굳이 직접 나서실 것도 없이,그년 정도는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그의 아버지라고 해도 사관학교 내부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그 계집이 사관학교를 아예 벗어나진 않을 것 아닌가.그때 틈을 노려 습격하는 것 정도는 어려울 것도 없다.의혹은 남을 수 있지만 증거가 없는 이상 그에게 피해가 올 리도 없다.
“…그래도 외모 하나는 반반하던데.”
단순히 습격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실력은 대단하지만 기껏해야 어린 계집.더러운 수작에 대한 경험이 많을 리 없다.
“얼굴이 상하지 않게 조심하라고 해야겠군.”
눈동자에 희미하게 음심을 품은 황장수가 비릿하게 웃었다.조금 전 자신의 수치를 곱절로,제곱으로 돌려주겠다. 욕망으로 눈을 빛낸 황장수가 휴대폰을 조작하려던 순간이었다.
“쯧, 어째 이런 새끼들은 예상을 벗어나질 않냐.”
익숙한 목소리에 황장수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얼마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 떡하니 박힌 말투.청아하기 짝이 없는 음색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박한 말투였다.이런 부조화를 가진 이가 둘이나 있을 리 없었다.
“…너.”
“뭘 봐,새끼야.”
짜증이 얼굴에 가득 찬 듯 한껏 찌푸린 표정을 지은 유시아가 그를 꼬나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