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0)화 (1/186)

프롤로그

늙은 몸이다.

기력도 예전만 못하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괜찮다.

삶을 잃는 것보단 눈이 없는 게 나으니까.

그리고 나를 삼킨 지옥에선.

눈이 없는 게 축복이었다.

* * *

째깍.

86,300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 간다.

우주 최악의 교도소, ‘카라이스만의 고독’.

그곳 독방에 한 죄수가 있다.

시야가 완벽하게 암전된 차가운 돌로 이루어진 공간.

누군가 밖에서 열어 주기 전까진 빛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어둠이 지배하는 독방엔 벌레들이 조심스럽게 기어 다녔다.

찌직.

빠르게 더듬이를 움직여 위협을 감지하는 작은 미물들.

벌레들은 이 방을 점령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어두운 방의 진짜 주인에 의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휙! 아드득…….

잽싼 손길이 움직여 벌레 한 마리를 움켜쥐었다.

벌레는 곧장 입으로 들어갔고, 턱이 안으로 들어온 것을 씹는다.

으적으적…….

휙.

카드드득.

바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돌아다니던 벌레들은 입을 향해 직행했다.

단단한 치아에 온몸이 으스러지며 기묘한 화학작용이 일어나 잠시 빛을 발하는 벌레의 사체.

빛이 생겨나는 작용으로 씹는 입 안에서 따스한 기운이 조금 돌았다.

그 잠깐의 빛으로 방 한구석에 앉아 있는 노인의 얼굴과 몸이 살짝 드러났다.

“음…….”

벌레의 맛을 음미하듯 소리를 낸다.

희게 센 긴 흰머리에 두 눈을 붕대로 감은 늙은 죄수.

주름진 얼굴과 작아 보이는 키.

목 왼쪽에는 51번이라는 죄수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낡다 못해 이제 바람만 불어도 찢어질 지경인 죄수복이 그가 얼마나 이곳에서 복역했는지 증명했다.

꿀꺽.

이내 벌레의 빛은 사그라들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쓰군.”

식사를 마친 그는 입가를 정리하지 않고 그 감각을 마저 느꼈다.

이곳에선 벌레도 진수성찬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독방에선 쓴맛조차 반갑다.

살아 있는 기분이 온몸을 돌며 찌릿한 기분을 선사한다.

“쓰읍…… 하아…….”

입으로 들어오는 텁텁한 공기가 벌레의 체액과 맞닿아 퀴퀴한 냄새로 바뀐다.

벌레를 먹는 행위에 거리낌 따위 한 톨도 없다.

적응한 것이다.

몸이. 마음이.

이 지독한 고독 속에서 말이다.

“벌써 한 달이 다 끝났구먼.”

째깍.

2,591,950.

카라이스만의 고독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의지 따위가 아니다.

‘고독’에 적응해야만 한다.

‘시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도 결국 해냈다.

끝까지 목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혼돈이 지배하는 고독에서 64년간 살아남았다.

째깍.

1,990,655,999.

덜컹!

열쇠가 돌아가고 문 열리는 소리.

어둠 속으로 등불 빛이 쏟아졌다.

일반적인 죄수였다면 갑작스럽게 비친 빛을 피해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겠지만.

노인은 눈이 없었기에 아무런 반응 없이 차분하게 기다렸다.

“51번.”

담담한 간수의 목소리.

“일어나라. 이감하겠다.”

원래 죄수들은 수십, 수백이 하나의 감방에 수감된다.

철창 감방이 아닌 독방에 수감되는 것은 교도소에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만 해당했다.

이 악인들의 사회인 고독에서 저지를 수 있는 또 다른 죄.

눈도 없는 노인이 30일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던 이유.

그것은.

“앞으로는 감방 죄수 전부를 죽이진 마라. 혼자 감방을 쓰는 건 금지 사항이다.”

늙은 죄수는 그가 있던 감방의 죄수들을 죽여 버렸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가 같은 재소자들을 몰살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살아야 하니까.

간수가 동의의 뜻을 구하듯이 노인 앞으로 등불을 비추었다.

노인, 아겔라스토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간수 앞으로 걸어왔다.

그가 입을 열자, 벌레의 내장과 피가 묻은 누런 이가 드러났다.

“노력해 보겠네.”

늙은 죄수의 독방형이 종료되었다.

째깍.

62,207,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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