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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화 (2/186)

1화 늙은 죄수 (1)

눈 없는 죄수는 어두운 복도를 똑바로 걷고 있었다.

복도에 200보 간격으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마법 횃불.

밝진 않았다.

간수가 들고 있는 등불이 아니라면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독방 문을 열었을 때부터 앞서 걷는 늙은 죄수에게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너무나도 평온한 발걸음.

30일 동안 벽에 기대앉는 게 전부인 좁은 독방에 있었다면, 오랜만에 나와 걷는 게 어색한 게 당연하다.

하다못해 관절을 오랜만에 쓰니, 그런 부분에서의 삐걱거림이라도 보여야 한다.

노인에게선 그런 어색함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침묵을 못 견딘 간수가 입을 열었다.

“……넌 아무렇지도 않군.”

“독방을 말하는 겐가?”

“그래.”

간수가 죄수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벌.

독방 30일.

식사는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단 3일만 갇혀 있어도 일반 죄수들은 미친 듯이 문을 긁거나, 곡소리를 낸다.

사회에서 가지고 있었던 강한 힘이나 정신력의 고하는 독방형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죄수들이 두려워하는 가장 극악한 형벌.

간수는 독방에 갇힌 죄수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똑같이 빈다.

배고프다고.

무섭다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제발 여기서 꺼내 달라고!! 씨바아아아아아아알-------!!!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꺼내 줘…… 헤헤헤헤…… 살려 줘……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주, 죽여 줘!! 크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우힛……! 우히히힛! 히히히히힛…… 킥킥킥킥킥킥!! 케게게게게게게게게게게……! 어, 엄마! 죽여 주세요-!! 킥킥킥킥킥킥!

그러나 바람만 불어도 부러질 것만 같은 노인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메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저 심심한 걸 잘 견딜 수 있을 뿐이네.”

간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어이가 없다.

어디 독방이 심심한 걸 견디는 정도던가.

그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점차 멀어지는 노인을 보고 묵묵히 따라붙었다.

…….

앞서가던 노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길이 바뀌었구먼. 어디로 가야 하는 겐가.”

“……1-257이다.”

목적지를 듣자마자, 노인은 맹인이면서도 길을 안다는 듯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감방으로 죄수를 인도해야 할 간수가 그 뒤를 쫓아갔다.

‘이게 무슨 꼴인지.’

역할이 뒤바뀐 상황이었지만, 간수 림몰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선배들이 이 노인을 대할 때면 그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냥 받아들이라고.

“멀지 않구먼.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갈 텐가?”

“물론이다.”

독방형이 끝난 죄수, 아겔라스토스를 확실하게 하급 감방으로 이감할 것.

간수가 받은 ‘명령’이다.

“마음 가는 대로 하게.”

이 드넓은 교도소에서 길을 찾으려면 ‘무전기’가 필요했다.

길이 수시로 바뀌니 CCTV실 근무자에게 길 안내를 부탁해야 하니까.

그러나 챙겨 온 것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1-257]

얼마 걷지도 않아 1-257번 감방이 나타났으니.

이 교도소엔 진짜 귀신도 있는 만큼, 간수는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눈도 안 보이는 노인은 도대체 어떻게 이름만 듣고 길을 찾아낸 걸까.

매달 무작위로 모든 구조가 바뀌는 이 고독에서.

두 사람은 감방 앞에 섰다.

늙은 죄수가 림몰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간수는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노인은 배웅하듯이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들어가게. 아무래도 여기서 간수 대기실은 조금 멀리 있는 듯하네.”

“……먼저 들어가기나 해라, 51번.”

늙은 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철창문을 잡았다.

철컹.

철창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애초에 문을 잠글 만한 장치 같은 게 없었다.

늙은 죄수는 그대로 터벅터벅 감방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간수는 꾹 입을 닫은 채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라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을 곱씹는다.

기이하다. 불쾌하다.

평범해 보이지만, 느껴지는 위화감이 다르다.

그는 생각을 떨쳐 내고 바지 주머니에 있는 무전기를 잡았다.

“51번 이감 완료.”

-수고했다, 림몰.

“간수 대기실로 길 안내를 부탁한다.”

-현 위치는?

“하급 복도 6883.”

-지시대로 이동하도록.

간수조차 CCTV실 근무자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아야 하는 고독 내부.

돌아가는 림몰의 머릿속에선 눈에 붕대를 감은 죄수의 얼굴만 떠올랐다.

.

.

CCTV실 근무자의 도움으로 간수대기실로 귀환한 림몰.

넓은 방에 테이블이 열 개 정도 있었고, 철제 의자가 있었다.

근무 투입 전 대기하는 간수들 몇 명이 있었다.

그럭저럭 말을 튼 선배 한 명이 그를 맞아 주었다.

“여, 림몰. 51번 이감하고 왔다며? 바지엔 안 지렸어?”

“……어두운 게 무섭진 않습니다. 제가 애도 아니고요.”

“큭큭, 그래? 원래 다 컸다고 생각했던 놈들이 이불에 지도 만들던데.”

교도소의 내부, 특히 ‘복도’는 200미터 간격으로 있는 마법 횃불이 있더라도 굉장히 어두운 편이었다.

“오줌싸개는 선배죠.”

선배 간수 호게스는 킥킥 웃더니, 병 하나를 따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쓰라린 기억이야. 근데 이 별명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아?”

의자에 앉던 림몰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술이 과했는지 붉어진 얼굴의 선배는 수치스럽지도 않은 것 같았다.

물론 근무 중 음주는 환영이었다.

근무 지침서에도 음주는 권장 사항이었으니.

림몰은 선배가 건네는 병을 받았다.

“실수로 독방에 갇히셔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래. 문을 열려고 했는데 꼼짝도 안 했다.”

독방은 정해진 일수가 지나지 않으면 그 문이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잠시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동기가 문을 닫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였다.

그 기억이 미화라도 되었는지 아련한 얼굴을 한 호게스였다.

“딱 3일이었다, 3일. 사흘 동안 어둠 속에 갇히니까 아랫도리가 축축해지는 게 느껴지더라.”

“…….”

“시간이 되어서 나오긴 했는데 며칠 동안이 기억나지도 않아. 지금도 가끔 자는 게 무섭기도 해, 큭큭.”

희희덕 말하던 호게스의 미소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게 어둠이야. 네가 걸은 복도 따윈 환한 대낮이나 다름없어. 어때. 이래도 어둠이 안 무서워?”

“독방에 갇혀 본 적은 없으니 모르겠군요.”

“물어보지 그랬어, 51번에게. 어떤 기분이었냐고. 물론 평범한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림몰은 노인의 대답을 떠올렸다.

그저 심심한 걸 잘 견딜 수 있을 뿐이라던 51번 죄수.

확실히 평범한 대답은 아니었다.

호게스는 정색했던 표정을 지우고 씩 웃었다.

“51번 하니까 하는 말인데, 그거 알아? 옛날엔 독방형 최대 일수가 90일이었어. 한 30년 전?”

“정말입니까?”

이들은 노인이 장기수라는 걸 알고 있었다.

최소한 30년은 넘게 고독에 있었다는 사실을.

“구라 아니야. 그리고 이것도 선배들에게 들은 소리인데.”

그는 림몰에게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51번은 그때도 감방 죄수 전원을 살해한 적이 있어.”

“……그럼.”

림몰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호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때도 놈은 최대 일수를 채우고 나왔다는 말이지. 무려 90일 동안 독방에 있었데.”

* * *

아겔이 들어온 감방은 꽤 넓었다.

적어도 500평은 될 법한 넓이.

벽마다 마법 횃불이 걸려 있었지만, 서로 목에 새겨진 죄수 번호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

이미 있던 죄수들은 새로 합류한 아겔을 보고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

아겔도 굳이 그들에게 다가가거나 하진 않았다.

늙은 죄수는 한쪽 벽에 기대 감방 내부를 훑어보았다.

그 호흡하는 소리와 몸에서 내는 기척이 아겔에게는 전부 들려왔다.

이곳에 있는 죄수 대부분이 1급 죄수이다.

고독에서 가장 최하위권에 있는 피지배층.

허나 사회에서였다면 모두 최소 3급 각성자는 되는 자들.

고독의 봉인술사에게 힘을 봉인당한 이들은 자신의 능력의 1%밖에 내지 못하며 살아간다.

물론 1급 죄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번호가 1로 시작하는 감방은 하급 죄수들로 이루어져 3급 죄수까지 같은 감방에 던져지니까.

아겔이 느끼기에 여기서 3급 죄수라고 부를 만한 이들은 없었다.

째깍.

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감방 내부 그 어디에도 시계는 없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파아앗…….

감방 중앙에서 빛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원형 마법진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감방 내부에 울렸다.

-식사 시간이다.

식사가 배달되었다.

고독의 식사는 각자 감방에 이렇게 음식이 소환되는 것으로 해결된다.

-제기랄, 또 그 빌어먹을 죽이야.

누군가 짓씹듯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말처럼 식사는 형편없었다.

아무 황무지에서나 긁어 온 것 같은 식물과 곡물을 대충 찐 다음, 거기에 구더기들을 뿌린 식사.

냄새마저 끔찍한 음식이 바로 죄수들이 먹을 식사였다.

그런 게 감방 중앙에 커다랗게 쌓여 있었다.

저벅.

그런데도 죄수들은 먹기 위해 움직였다.

우선 힘 있는 자들부터.

하이에나들이 음식을 향해 움직였다.

약삭빠른 죄수들로 이루어진 무리.

저들의 서클에 속하지 않은 다른 죄수들의 접근을 배제하며, 식사를 독점했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죄수들은 이 무리에 끼지 못했는지,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죄수 무리는 다른 자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식사를 빙 둘러쌌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비정기적인 식사.

무리를 이룬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엔 긴장감이 넘쳤다.

아겔도 슬슬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얼마 만에 제대로 된 음식인가.’

독방에서 벌레를 잡아먹는 것도 나름 별미지만.

‘취사장’에서 만들어지는 이 구더기죽도 훌륭한 음식이다.

하루에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기에 더욱 귀중했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중앙으로 다가가자, 죄수 몇 명이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멈춰, 노인네. 당신이 먹을 건 없어.”

그들은 입이 늘어나는 걸 원치 않았다.

‘하이에나’ 같은 그들은 약자였지만, 더한 약자들은 아직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한 채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막 고독의 들어온 신입들. 아겔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 무리는 아겔의 접근을 배제하려 했다.

아겔을 가로막은 청년은 늙은 죄수의 위아래를 훑었다.

“여기 규칙 몰라? 서클에 들지 못하면 먼저 식사할 수 없다고. 내 말 알아들어, 노인네?”

청년의 말에도 노인은 묵묵부답이었다.

대답이 없자, 청년은 아겔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이봐, 늙은이. 내 말 안 들려? 늙어서 귀가 멀어 버린 거야? 하긴 이만큼 늙었으면 귀도 안 들릴 만하지.”

툭툭 미는 거친 손에 노인은 힘없이 밀려났다.

청년은 노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붕대는 왜 감고 있는 거야? 맹인이야? 어떻게 밥 냄새는 맡았나 보네. 눈도 없는 봉사도 배는 고픈…….”

청년의 손이 붕대로 향했다.

그 순간, 가만히 있던 노인의 팔이 움직였다.

춉. 푸슉……!

“어?”

청년은 무의식적으로 동맥에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만 한 구멍을 통해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막아 보려 했으나, 이미 전신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털썩…….

“어……? 아…… 아아…… 아…… 으으…… 아…… 아아…….”

의미 없는 소리를 내며 쓰러진 채로 피를 흩뿌리는 청년.

이내 몇 번 꿈틀거리다가.

생을 향한 갈망 어린 몸짓이 멎었다.

노인은 들고 있던 무언가에서 피를 털어 냈다.

그건 단검처럼 생긴 어떤 벌레의 단단한 허물이었다.

“내 눈은 건드리지 말게.”

늙은 죄수는 주름진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 붕대를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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