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2)화 (3/186)

2화 늙은 죄수 (2)

구더기죽에 모여 있던 죄수들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뭐, 뭐야……!”

“죽였…… 어?”

설마 죽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들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죄수들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얼굴에 흉터가 난 죄수가 나왔다.

그는 흉흉한 기세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뭐 하는 짓이냐, 노인네.”

수십 명이 적의를 드러내는 상황에도 노인은 무덤덤했다.

“우리 애를 건드리다니, 뒷감당할 자신 있나?”

“애초에 날 먼저 건드린 건 이 청년이었네.”

아겔은 그저 식사하고 싶었을 뿐이다.

누구는 먼저 식사하고, 누구는 뒤늦게 남은 찌꺼기를 먹고.

그런 집단편향적인 룰을 따를 이유는 없었다.

“내가 왜 자네들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가.”

노인의 말에 흉터 죄수의 이마에 혈관이 솟았다.

“그래.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그 결과로 넌 찢겨 죽게 될 거야. 애들아! 잡아!”

“예!”

죄수 수십 명이 와락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죄수들을 향한 노인의 감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두려움 따윈 없다.

불을 향해 몰려드는 불나방을 무서워할 필요가 있을까?

어두워서 서로 얼굴을 식별하는 정도가 전부인 감방.

노인은 죄수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휘릭! 춉!

아겔의 팔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달려들던 죄수의 신체 중 어딘가에 구멍이 났다.

“끄악……!”

“저 새끼 뭐야! 뭘 들고 있어!”

“칼인가? 송곳 같은 거야!”

“아파……!”

“제대로 보고 잡아!”

“이쪽이다!”

먼저 달려든 놈의 팔을 붙잡고 하박에 한 번 꽂아 주고.

그대로 몸을 돌려 뒤에서 달려드는 놈의 복부에 찔러 넣었다.

푸욱!

“커헉……!”

거침없이 움직이면서도 노인은 발걸음 소리에 유의했다.

‘왼쪽 하나. 오른쪽 셋. 대충 빠져나갈 구멍은 되는구먼.’

시각을 잃은 대신 극도로 발달한 청각이 그의 시야를 대신하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로 누가 어떤 속도로 달려들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한다.

적에게 둘러싸인 난전 속에서도 세밀하게 움직일 자리가 계산된다.

고독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노인에겐 너무나도 간단하고, 익숙한 일이었다.

푹!

“크핫……! 씨발, 아프잖아!”

신체에 구멍이 뚫린 고통에 움츠러드는 상대.

아겔은 혀를 찼다.

“이만한 것도 못 참는가. 자네들 고독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군.”

몸에 구멍이 나는 고통?

레드 슬라임에게 잡혀 염산에 지져지는 느낌을 받는 것보다 낫다.

종기 벌레에게 물려 죽을 때까지 온몸에서 고름을 내뿜는 것보다 낫다.

독방에 갇히는 것보다 낫다.

고독에서 고통은 동반자이다.

여기서 1년 정도 보낸 죄수라면 대개 고통에 무뎌진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아겔이 피해를 무릅쓰고 싸우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 감방엔 아겔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을 만한 적은 없었다.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무정히 살을 뚫는 피륙음과 고통에 찬 울부짖음만이 들려왔다.

어디에서도 노인이 발걸음을 내딛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이런 미친…….”

흉터 죄수는 벌어진 결과를 두고 아연실색한 얼굴이 되었다.

수십 명의 수하가 제대로 손도 못 써보고 당하고 있다.

돌바닥엔 피가 흥건했고, 신음을 내는 죄수들이 뒹굴고 있었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하, 한 명도 안 죽였어?’

처음 목을 찔린 녀석을 제외하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저 신체 어딘가에 구멍이 몇 개 났을 뿐.

즉사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머릿수가 힘이라고 생각하는가?”

“……!”

쓰러진 죄수들 사이에서 한 손은 뒷짐을 진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눈 없는 죄수는 정확히 그가 있는 곳에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손은 피범벅이었고, 들고 있는 것도 빨갛기만 할 뿐.

원래 뭘 들고 있었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것도 통하는 상대가 있는 법이지. 이처럼 개개인의 무력이 너무 형편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네.”

양손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다가오는 노인.

마치 암살자가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머, 멈춰……! 당신! 날 죽이고도 무사할 것 같아?! 가, 간수가 알면……! 이건 정당방위도 아니야!”

“충분히 정당방위일세. 내 식사를 방해했지 않은가. 식사는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 난 살고 싶다네.”

“겨, 겨우 밥 좀 늦게 먹게 했다고 그런 거냐?”

“내가 느낀 배고픔은 치사량이었네. 더 기다렸다간 굶어 죽겠더군.”

흉터 죄수는 말이 통하지 않음을 느꼈다.

그에게선 날이 선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노인은 그저 말장난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장난감 혹은 다른 것을 보는 것처럼.

“제기랄……! 간수! 간수 없어?! 이 미친 노인네가 사,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아니, 이미 죽였어!!”

“사람이라…….”

그 말에 아겔은 피식 웃었다.

“자네는 스스로가 사람 같은가?”

“뭐……?”

“끔찍한 죄를 저질렀으니, 고독에 왔겠지. 사람이라고는 전혀 인정할 수 없을 만한 죄를 지었으니, 고사형 판결을 받았을 테고. 밖에선 이곳에 갇힌 우리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

“벌레. 죽을 때까지 고문당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짓이겨지며 죽을 벌레.”

아니 혹은 벌레보다 못한 존재.

존재 자체가 죄악인 자들.

사라지는 게 나은 자들.

사회의 쓰레기.

인류의 수치 등.

고독의 죄수를 지칭하는 말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게 우리일세.”

“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벌레가 아무리 외쳐도 자넬 구원해 줄 간수는 오지 않을 테고.”

슥.

노인이 한 걸음 내디뎠다.

“난 벌레 하나 죽였다고 회개할 만한 신자는 아니란 말일세.”

탓.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흉터 죄수는 자세를 낮추고 침을 삼켰다.

곧장 자신을 향해 달려오리라 예상했으나, 아겔의 신형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제길, 어디야…….’

간수가 오지 않으니 일단은 싸워야 한다.

가슴 안쪽에서 두방망이질하는 심장이 지금 당장 살아남으라고 소리친다.

살고 싶다곤 생각했으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푸욱.

몸 어딘가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컥…….”

“자넨 눈이 안 좋은 편이군.”

목에 구멍이 뚫린 흉터 죄수는 비틀비틀거렸다.

그러나 단번에 죽진 않았기에 마지막 발악이라도 했다.

“으아아아아……!”

그는 양손으로 쓰러져 있는 죄수를 하나씩 들어서 아겔에게 던졌다.

아겔은 기민하게 움직여 날아오는 죄수들을 피했다.

콰직. 쿠지직.

땅에 부딪힌 죄수들은 그대로 즉사.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1급 각성자만 되어도 일반인의 10배에 달하는 힘을 쓸 수 있다.

흉터 죄수는 0급인 수하들과 달리 1급 죄수였다.

고독에 들어와 힘을 봉인 당했을 테니, 사회에서는 3급 각성자였을 것이다.

3급이면 어딜 가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한 급수.

힘이 봉인되지 않았을 때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도 될 만한 위치다.

한 도시를 다스릴 만한 지위에 오르거나.

교단에서도 사제급 위치에 설 수 있을 만하다.

하지만 노인 앞에선 똑같은 인간이었다.

늙은 죄수는 이미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가는 데 도가 튼 지 오래였다.

슥.

또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흉터 죄수는 잡으려 허리를 비틀었지만, 소리는 페이크였다.

이미 노인은 그의 목에 구멍 하나를 더 내고 반대로 도망치고 있었다.

푹!

“꺽…… 꺽…….”

원래 있던 상처 옆에 새로 생긴 구멍.

2배로 넓어진 구멍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온다.

생명의 근원이 흘러나오는 걸 막지 못하고, 흉터 죄수의 몸이 허물어진다.

그가 무릎을 꿇자, 노인이 그 앞에 섰다.

주름진 손이 흉터 죄수의 머리에 올려졌다.

“부디 다음 생에는 끝까지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게.”

흉터 죄수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

아겔은 피를 털어 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릿한 피와 철분의 냄새가 감방에 가득했다.

온몸에 구멍이 한군데씩 뚫려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서클의 죄수들.

그들을 향해 메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들은 아마 한 달, 길어도 두 달 이내에 죽을 거라네.”

무정한 선고가 감방 내부를 감돌았다.

“더 짧게 살고 싶다면 날 찾아오면 되네.”

그 말에 하이에나 무리는 기겁하며 바닥을 기어 도망쳤다.

팔과 다리, 목으로 기어 갔다.

그러자 감방 가장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던 ‘약자’들이 움직였다.

-이 개만도 못한 새끼들……!

-밥을 독차지해?!

-죽어라, 죽어!

배고픔에 가려진 양심 때문에 약자들은 하이에나 무리를 향해 끝없는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이미 몸이 너무 말라, 제대로 때릴 수 있는 사람도 없을 지경이었다.

아겔은 그들을 뒤로하고 구더기죽에 손을 가져갔다.

‘이게 얼마 만인지.’

제대로 된 식사.

독방에선 밥이 나오지 않기에 지금 구더기죽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맛있어 보였다.

노인은 피 묻은 손으로 죽을 떠서 입에 가져갔다.

와구…….

톡톡.

맛있다.

구더기가 터지는 씁쓰름한 풀맛.

미각이 살아 있음을 느끼며 노인은 마구 구더기죽을 탐닉했다.

정신없이 식사 중인 노인의 뒤로 죄수들이 다가왔다.

아겔은 앉은 채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약자들.

하이에나 서클에게 밀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들.

서클이 먼저 먹고 남은 찌꺼기들로 연명해 왔지만, 방해꾼들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극에 달한 허기를 달래기 원했다.

비쩍 마른 청년 한 명이 그의 뒤에 섰다.

“영감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드디어 저희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네요…….”

“무얼. 감사할 일도 아니지.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네.”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겁니다. 그럼.”

청년과 약한 죄수들이 구더기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노인이 팔을 들었다.

“잠깐.”

“……?”

“물러가게. 내가 다 먹으면 식사하지.”

“그게 무슨…….”

“자네들은 나와 겸상할 수 없단 말일세.”

청년 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영감님도 저 서클 녀석들처럼…….”

“그럴 생각은 없네. 자네들의 식사는 당연히 남겨 줄 거네. 늙은이가 먹어 봤자 이 많은 양을 혼자 다 먹겠는가? 걱정하지 말게.”

죽을 푸던 노인이 손을 멈추었다.

“한데, 역시 겸상은 안 되겠네. 잠깐 물러나 있게. 식사는 금방 끝낼 테니…….”

늙은 죄수는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죄수들의 눈이 격한 감정으로 흔들렸다.

조금만 더 가면 고지가 있는데, 가로막는 방해물이 하나가 더 있었다.

먹고 싶은데, 늙은이가 먹지 못하게 한다.

제일 앞에 선 빼빼 마른 청년이 말했다.

“고집부리지 마세요, 영감님. 우린 지금 배가 고파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라고요. 겨우 겸상이 안 된다는 이유로 우릴 막으려는 겁니까?”

-배고파…….

-머, 먹고 싶어.

-그냥 무시하고 먹으면 안 돼?

수십 명의 죄수가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아겔이 좋아하는 장면은 아니었다.

노인은 언제 일어섰는지 다가오는 청년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푹……!

“커억……! 이게 무슨 짓이야……!”

하이에나 무리를 찔렀던 똑같은 피륙음.

어깨를 감싸며 청년이 물러섰다.

“두 번 말하지 않네. 물러가게. 내가 식사를 마치면 그때 하게나.”

“으으…….”

피를 보고 나서야 약자들은 정신을 차렸다.

하이에나 무리 전원이 달려들어도 손쉽게 상대한 노인이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물리치는 건 역부족.

이곳에선 힘이 논리이며 법이었다.

어깨를 감싼 청년이 부축을 받으며 물러났다.

“치잇…… 빌어먹을 노인네…….”

약자들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늙은 죄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혼자 밥을 먹는 건, 습관 같은 것이었다.

밥 먹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이 고독에서.

그 자신조차도 결국 제어할 수 없게 된 버릇이었다…….

노인은 꾸역꾸역 식사를 마쳤다.

* * *

어두운 감방.

아겔은 체내 시계로 취침 시간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배부르구먼.’

오랜만에 포식했다.

구더기죽을 양껏 먹었고, 남은 건 약자들이 해치웠다.

아겔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죄수들의 호흡 소리.

신음.

그가 들어온 것만으로 감방 내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주도권을 잡고 있던 하이에나 무리는 이제 약자들이 되었고.

식사하며 다시 힘을 되찾을 약자들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하나 노인은 이런 하급 감방의 주도권 따위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생존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자들로만 한가득하였으니.

‘이제 들어온 지 한두 달 되었겠구먼…….’

이 감방 죄수들은 완전한 신입이었다.

아겔과 반대되는.

신입의 90%는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그리고 나머지 9%는 3년을 넘기지 못한다.

운명의 선택을 받은 1%만이 그나마 조금 긴 시간을 누리고 이곳에서 아득바득 생존한다.

고독에 익숙해지고.

수감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해 준비된 온갖 시스템들에 적응하는 것.

그렇다고 이곳에서 살아 있는 시간이 유쾌하다곤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파아아앗.

감방 내부가 조금 밝아졌다.

돌바닥에 그려지는 화려한 마법진.

그 신비한 마법 위로 5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씨발, 힘들어 뒤지겠네.”

욕지거리를 내뿜는 거대한 코뿔소 수인.

탓.

“힘든 건 동의합니다.”

참수리의 얼굴을 가진 수인.

“…….”

조용한 개과 수인과 청년 그리고 그 곁에 꼭 붙어 있는 금발 소년.

킁킁.

코뿔소 수인이 코를 벌름거렸다.

“이런 쓰벌, 힘들게 돌 캐고 왔더니 뭔 놈의 피 냄새가 이따위로 나는 거야?”

“……이런. 저희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무슨 일인지 둘러보려던 코뿔소 수인이 웅덩이를 밟았다.

철퍽!

“야이씨! 무슨 핏물이 이리 한가득 고여 있어! 어떤 새끼가 그랬냐! 나와!”

채석장에 가 있던 이들이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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