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4)화 (5/186)

4화 늙은 죄수 (4)

좀비 사태가 정점에 이르기 5분 전.

아겔은 한숨을 쉬고 일어났다.

“끄응…….”

-흐헤에에…….

좀비들이 아겔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잠 다 깼구먼.”

독방에서 나와 오랜만에 포식해서 식곤증이 왔었다.

피곤해서 저녁에 잠깐 눈을 붙였더니, 새벽에 정신이 깨어 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좀비들.

감방을 한가득 메운 놈들 때문에 다시 잠들기란 요원했다.

“쯧, 독방에 있는 사이에 벌레방이 열렸었나.”

간밤에 죄수들이 좀비로 변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낮에 아겔을 상대했던 죄수들은 전부 피를 흘렸다.

그 냄새를 맡고 교도소의 어떤 곳에 사는 ‘피갈이벼룩’이 감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당연한 일.

이 자들은 전부 벼룩에게 물려 좀비가 된 것이다.

오직 피와 살을 갈망하는 죽은 자들 말이다.

이런 사소한 해프닝 따윈 고독에 있노라면 숨 쉬듯 마주할 수 있다.

이젠 너무 익숙해져 버린 감각.

잠들기 전 모기를 쫓아내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콰득.

아겔은 눈앞에 있는 좀비의 목을 잡아 돌려 버렸다.

좀비를 죽이는 방법은 까다롭다.

머리와 몸을 분리해야만 일단 몸을 멈출 수 있다.

그렇게 해도 좀비의 떨어진 머리는 이를 딱딱 부딪치며 갈증을 드러낸다.

뇌를 부수지 않으면 좀비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두 번 죽는 기분은 어떤가, 친구들.”

콰득. 우두둑. 빠드득.

아겔은 착실하게 좀비들의 목을 꺾으며 전진했다.

좀비의 목을 꺾어 놓으면 놈들을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도 아겔은 쓰러진 채로 이빨을 딱딱거리는 좀비들을 피해 신중하게 움직였다.

흑마법사가 일으킨 좀비들과는 달라 행동이 느릿했지만, 완력은 평범한 인간보다 강해서 붙잡히면 빠져나가기 힘들어진다.

물론 아겔을 붙잡을 수 있는 좀비는 없었다.

-으아아악……!

-뭐, 뭐야! 이것들은!

-조, 좀비다! 도망쳐!

-어떻게 도망치란 말이야, 씨발! 일어설 수가 없는데!

넓고 어두운 감방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좀비에게 물리면 감염된다.

이미 수십 명이 넘게 좀비로 변했을 것이다.

아비규환이 된 감방에서 아겔은 아까 마주친 자들을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수인들.

채석장에서 일할 수 있을 만큼 강한 그들은 인간과 달리 육체적 능력이 뛰어나다.

혹시 그들이 물려서 감염되었다면,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강한 좀비가 될 것이다.

“더 귀찮아지기 전에 얼른 움직여야겠군.”

수인이 좀비가 되어 버리면 아겔의 입장에서도 까다로웠다.

특히 덩치 큰 수인이 좀비가 되면 귀찮아지리라.

그들은 ‘불립’의 규칙조차 이겨 내지 못했을 테니, 좀비에게 이미 당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늙은 죄수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탓.

눈이 보이지 않지만, 어디론가 향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된 지 40여 년이 지났다.

오직 소리만으로.

때론 냄새로.

방향을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특히 소리에 집중하면 눈을 떴을 땐 알지 못했던 세상이 보인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감방 내부의 모든 정보가 아겔에게로 모여들고 있었다.

‘감방 입구 쪽엔 산 사람의 기척이 없다. 이미 다 감염되어서 다른 쪽으로 가고 있군.’

이미 죄수 대부분이 당했다.

애초에 ‘불립’ 때문에 누워서 움직일 수가 없는데, 그 상태로 안 물리고 버티면 그게 용한 거다.

남아 있는 건 감방 가장 안쪽에 있는 죄수들.

감방 안쪽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니, 힘이 센 수인들은 아마 안쪽 깊숙한 곳에 있을 것이다.

안쪽으로 향하던 아겔의 귀에 거친 목소리가 들려온다.

-씨발! 어떻게든 버텨……!

호오, 아직 안 당했구먼.

인간의 목소리와는 그 파장이 다르다.

다행히 수인들이 당하진 않은 것 같았다.

이 사태를 금방 해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노인의 발걸음에 또 힘이 붙었다.

콰직. 우드득.

좀비들은 아겔의 기척을 듣고 몸을 돌렸지만.

“흐헤에에……?”

콰직.

이미 아겔을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자신들의 목이 돌아간 후였다.

빠른 속도로 좀비 사이를 돌파한 아겔이 감방 안쪽까지 다다랐다.

“으아아아악! 사, 살려 줘!”

“씨발, 발로 걷어차 봐!”

안쪽에 도착하니 죄수 중 몇 명은 등을 바닥에 댄 채로 발로 좀비들을 밀어내려 시도했다.

“다 같이 밀어!”

단체로 움직이는 만큼 어느 정도 좀비들을 밀어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

합도 제대로 맞지 않는 대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이내 발을 붙잡은 좀비들이 입을 쩍 벌려 욕망을 박아 넣었다.

아드득.

“끄아아아악……! 무, 물렸어! 무, 물렸…… 케켁…… 케에에…… 흐어어어…….”

순식간에 새로이 좀비가 된 죄수가 일어섰다.

“흐헤에에에…….”

혼돈이 지배하는 감방 안쪽.

아겔의 귀는 어지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서도 집중력 있게 소리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어디냐.

끄아아아아악……!

씨바아아아알---!!

놔……! 놓으라고, 개새끼야……!!

패닉에 빠진 비명과 좀비들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상황에서 누구나 정신이 흐트러질 만도 했지만.

노인의 심장만은 고요히 뛰고, 귀를 지나치는 혈류는 정상적으로 박동했다.

그리고 끝내.

야야, 참새! 감염되면 안 돼! 그 잘난 팔 좀 움직이라고……!

이, 이제 힘이 없습니다…….

소리가 들렸다.

탓.

그 순간, 늙은 발이 쇄도했다.

다른 좀비들을 툭툭 밀치며 넘어뜨리고 우선적으로 수인들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 좀비들을 해치우는 것보다 수인이 좀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크윽……!”

날개 달린 팔을 붙잡힌 참수리 수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옆에 덩치 큰 수인의 거친 목소리도.

상황을 보니 목을 꺾기엔 늦을 것 같았다.

노인은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끄응…….’

늙은 육신이 앞서 나가는 정신을 끝없이 잡고 끌어내린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육체를 초월한 지 오래.

어마어마한 정신력으로 육신의 노쇠함을 짓누르고 아겔은 품에서 벌레 외껍질을 꺼냈다.

* * *

촤악!

툭툭.

바닥에 떨어진 좀비의 목이 딱딱 이 부딪치는 소리를 낸다.

“쯧, 시끄럽긴. 고약한 놈들.”

목을 자른 것에 멈추지 않고 관자놀이를 쑤셔 뇌를 망가뜨린다.

“죽은 놈들은 편히 잘 생각이나 하지, 웬 오밤중에 이리 난리인 게야.”

“당신은……!”

코뿔소 수인과 참수리 수인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멘록의 흔들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네?”

두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아겔의 모습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아겔은 다가오는 좀비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거기 코뿔소 친구는 소리 좀 질러 주게. 좀비들을 이쪽으로 다 모아야겠으니.”

멘록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좀비들을 모으겠다고……? 무슨 개소리야! 지금 몰린 것들만 해도 벅찬…….”

턱.

호루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습니다. 그의 말대로 해 주세요.”

“좀비가 떼거지로 몰리면 네가 물려서 좀비가 될 수도 있다고!”

“한 번 믿어 보죠.”

멘록은 침을 삼켰다.

생면부지 남을 믿어 보자니.

그것도 낮에 죄수들을 피범벅으로 만든 노인을 말이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호루크의 눈빛에 멘록은 입술을 씰룩였다.

“제기랄…….”

그리고 어마어마한 소리가 감방을 뒤엎었다.

“이 씨이이이이이벌 모기 새애애애애애끼들아아아아아아아-!!! 이리로 모여라아아아아아---!”

“큭…….”

호루크는 급히 두 팔로 귀를 막았다.

넓은 감방이지만, 대각선 끝에서도 귀가 울릴 만한 목소리.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아겔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소리를 들은 좀비들이 몰려왔다.

-흐헤에에에…….

-흐허어어…….

아겔은 담담하게 그 좀비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이지를 상실하고 오직 피와 살만을 갈구하는 좀비는 인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특히 상대를 무력화하는 데 이골이 난 노인 앞에서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푹.

푹. 푹푹.

좀비들의 관자놀이에 정확하게 구멍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쩍.

찌걱.

콰득.

콱.

쿠직.

뻑.

푸욱.

쿵.

쿠득.

다양한 피륙음은 오직 하나의 행위로부터 도출된 결과였다.

이상한 형태의 단검을 관자놀이에 무정하게 박아 넣는 것.

꿀꺽.

호루크는 침을 삼키고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런 식으로 낮에 죄수들을 찔렀던 건가…….’

분명 좀비들 전부가 모였다.

이전보다 뒤쪽에 보이는 좀비들의 숫자가 곱절은 많아졌다.

그런데.

단 한 마리도 노인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치 절대로 뚫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만난 것처럼.

좀비들은 노인의 발 앞에 하나씩 쓰러지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아직도 좀비들이 인간을 유린하는 긴박한 상황임에도 호루크는 이해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 안심이 된다는 말은 모순적이었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이 노인이 있다면 절대로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호루크도 모르게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음?”

좀비들의 머리에 구멍을 만들어 주고 있던 아겔은 문득 날카로운 기척을 느끼고 뒤로 물러섰다.

부웅!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팔이 아겔이 서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크르르르…….”

눈이 새빨갛게 변한 장정 하나가 아겔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거치적거리는 좀비들의 사지를 찢어 버렸다.

촤악!

“크라하악!”

호루크는 그를 보고 부리를 부딪쳤다.

“이런 고쿠마저……!”

“고쿠? 그 녀석도 감염되었어?! 이런 씨발……!”

코뿔소 수인의 걸걸한 욕지거리가 들려온다.

채석장에서 같이 일하던 말 없는 중년 남자.

그 또한 수인이었다.

아겔은 한눈에 그가 평범한 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웨어비스트는 오랜만이구먼.”

웨어비스트(Werebeast).

주기적으로 짐승의 형상으로 변하며 이성을 잃는 비운의 종족.

짐승과 인간의 모습이 뒤섞인 평범한 수인과 달리 이들은 평소 인간의 모습을 취한다.

그래서 단순히 겉모습만으로는 판별이 어렵기도 했다.

악의적인 유전자 실험으로 탄생했다고도 전해지는 이 종족은 나름 우주의 변방에서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곤 했다.

“크르하악……!”

고쿠라 불린 남자가 목구멍에서 파열된 소리를 냈다.

아겔이 말했다.

“저 친구 종족이 뭐지?”

“개입니다…….”

“웨어독(Weredog)이었군.”

우득…… 우드드득…….

“크륵……! 크르르르륵!”

고쿠란 남자의 피부가 갈라지며, 신체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피부 위로 검은 털이 솟아나고, 근육이 비대해졌으며 골격이 변형되었다.

순식간에 키가 2미터 넘게 자라난 개과 수인.

호루크가 부리를 벌렸다.

“도베르만……?”

수인의 털이 검은색이라 어두컴컴한 감방 속에서 제대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길쭉해진 입에서 걸쭉한 핏물이 뚝뚝 흘러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겔은 달려드는 좀비에 대응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슥.

“크르르르……?”

좀비 웨어독은 쉽사리 덤비지 못하고 자세를 잡은 아겔을 노려보기만 했다.

마치 노인에게서 무언가를 느끼기라도 한 듯이.

호루크가 침을 삼키며 말했다.

“여, 영감님. 도망치세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좀비가 된 웨어독을 이기는 건 불가능…….”

“내가 가면 자네들은 좀비가 되겠지.”

“그건 그렇지만…….”

“그럼 좀비가 된 자네들은 내 잠을 방해하겠지.”

“……? 그게 무슨…….”

“난 잠 못 자게 구는 게 싫다네.”

호루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좀비가 감방을 뒤덮은 상태인데 잠이 무슨 대수인가.

당장 도망쳐 살길을 도모해도 모자란 판에 태평하게 누가 잠들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감방에 도망칠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

맞는 말이다.

감방에 갇혔는데, 어디로 도망칠 수 있을까.

술래잡기도 끝은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굳이 도망칠 필요도 없어 보이는구먼.”

오히려 아겔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여, 영감님?”

호루크의 부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에 웨어독은 더욱 경계하는 모습으로 전신의 털을 바짝 세웠다.

노인이 메마른 입을 열었다.

“개새끼라 그런지 겁이 많구나.”

“……!”

“멍멍아.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단다.”

아겔의 도발에 반응한 건지, 웨어독이 달려들었다.

“컹컹……!”

휘릭! 부웅!

아겔은 거칠게 짓쳐들어오는 웨어독의 공격에도 태연하게 몸을 움직여 피해 냈다.

멘록은 눈이 좋지 않아 보지 못했지만, 호루크는 그 장면을 하나도 빠짐없이 볼 수 있었다.

‘눈’에 들어온 장면을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자신이었다면, 단 1격도 피하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겼을 날카로운 공격을.

노인은 그저 간단하게 발의 위치를 바꾸면서 피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이런 어둠 속에서 어떻게 전부 피하는……?!’

늙은 인간이 보이는 움직임이라곤 생각하기 힘들 은밀하고 정확한 발걸음.

단 하나의 공격도 노인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했다.

“크르르르……! 컹컹!”

아겔이 공격에 맞지 않자, 아예 몸을 던져 돌진하는 웨어독.

그러나 아겔은 태클에 당해 줄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촤악!

오히려 웨어독은 노인의 무기에 목을 조금 베였다.

그러나 충분하게 깊지 않아서 웨어독을 무너뜨리긴 역부족이었다.

“쯧, 달밤의 체조치곤 숨이 차는구먼.”

아겔이 말했다.

“거기 코뿔소 친구.”

“어?”

“그쪽으로 갈 테니 놈을 붙들어 주게.”

“뭣? 그게 무슨 소리야?”

탓!

아겔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웨어독도 그를 따라 평행하게 움직였다.

“컹컹컹!”

정확한 타이밍에 아겔을 향해 달려드는 검은 개.

그러나 전신을 땅에 붙일 만큼 몸을 숙인 노인은 죄수복을 조금 긁혔을 뿐, 발톱이 살에 닿지 않았다.

허공에 잠시 체공한 웨어독은 그대로 땅을 굴렀다.

멘록은 자신의 옆까지 굴러온 웨어독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우람한 팔을 들어 놈이 일어서기 전에 허리를 붙잡았다.

턱!

“노인네! 일단 잡았……!”

“컹컹!!”

“크아아악! 이, 이 개새끼가……!”

웨어독은 수인화해서 키가 멘록과 비슷해진 데다가 힘도 무척 강했다.

치악력이 얼마나 강한지 멘록은 물린 어깨에서 통증을 느꼈다.

다행히 가죽이 뚫리진 않았다.

“빨리 죽여, 씨발!”

“그러지.”

언제 다가왔는지, 노인은 이미 겹쳐진 두 덩치 곁에 서 있었다.

푹.

멘록의 어깨를 물고 고개를 발광하던 도베르만의 눈에 아겔의 무기가 쑥 들어갔다.

뇌까지 찔러 곤죽으로 만든 벌레 단검.

좀비가 된 도베르만 수인은 부르르르 떨더니 몸을 축 늘어뜨렸다.

멘록은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이 황급히 시체를 밀어 버렸다.

“젠장……!”

눈에서 단검을 빼낸 아겔이 곧장 몸을 돌렸다.

남아 있는 좀비들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이대로 두면 남아 있는 죄수들마저 감염되고 치우기가 귀찮아진다.

“조금 기다리게.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걸음을 옮기려 할 때, 뒤에서 참수리 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영감님.”

“음?”

“그…….”

잠시 머뭇거리던 호루크가 부리를 열었다.

“감사합니다…… 살려 주셔서.”

자칫하면 좀비가 될 뻔했다.

어찌 되었든 노인이 자신을 구한 것은 자명한 사실.

감사의 표현이라도 하고 싶은 호루크였다.

그 말에 아겔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참새 친구. 내게 감사할 필요 없네.”

“아…….”

호루크는 속으로 감탄했다.

감사를 받지 않을 정도로 겸손한 걸까.

역시 무덤덤했던 첫인상은 아마 착각인 듯싶었다.

그러나 노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오늘 죽지 못한 걸 자네는 후회할 걸세. 내 장담하지.”

참수리 수인의 얼굴이 어벙하게 바뀌었다.

뒤늦게 부리에서 몰이해한 음성이 튀어나온다.

“예……?”

아겔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말했다.

“‘고독’에서 살아 있다는 건 그다지 감사할 만한 일이 아니라네. 이곳은 살아 있는 걸 반드시 후회하게 만드는 곳이니까.”

“…….”

“그때가 오면 이 노인네를 탓해도 좋네.”

이내 노인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졌다.

곧 죽지 못한 자들의 비명이 감방의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겨우 살아남은 죄수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떨었고.

죽음의 축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 옮겨졌던 끈적한 발걸음은 점점 멎어 갔다.

축복은 늙은이의 손에 의해 절단되었다.

단지 잠을 방해했다는 이유만으로.

…….

어느 순간 죽은 자들의 비명이 멎었고.

한참 동안 침묵하던 멘록이 입술을 씰룩였다.

“저 늙은이…… 도대체 뭐야?”

“모르겠습니다…….”

아침이 될 때까지도 두 사람은 일어설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