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점호, 거래
감방 안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
감방 밖 마법 횃불로 인한 희미한 빛은 어둠을 전부 밝히진 못했다.
그 빛과 전기 충격에 의해 지난 밤의 사단을 겪은 죄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욱한 피 냄새와 아직도 이명처럼 들려오는 좀비들의 발걸음 소리와 비명.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은 아직도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아겔은 묵묵히 벽에 기댄 채로 앉아 있었다.
불쾌한 피로감이 은은하게 전신을 감돌고 있었다.
어제 조금 무리했는지, 제대로 잠이 들지 못해 삭신이 쑤셨다.
그래도 조금 짜증이 날 뿐이지, 몸 상태에 큰 이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피갈이벼룩은 죄다 죽었군.’
벼룩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한 번 물고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대신 죽는다.
아겔조차도 물리면 무사할 수 없지만, 다 죽었으니 이젠 괜찮다.
꼬르륵.
어제 구더기죽으로 포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를 너무 썼는지, 다시 배가 고파 왔다.
아겔은 자리에서 일어나, 감방에 고인 핏물로 걸어갔다.
그곳에 모인 벌레 중 몇 마리를 잡았다.
아드득.
벌레는 맛이 좋진 않다.
하지만 이 더럽고 씁쓰름한 것이라도 먹어야 허기를 달랠 수 있다.
뭐라도 먹어야 한다. 이 지독한 허기를 몰아내려면.
무엇보다 아겔은 미각에서 기쁨을 누리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함부로 아무것이나 먹는 것은 고독에서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지만.
아겔은 어떤 벌레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꿰뚫고 있었다.
수십 년간 고독에서 살아오면서 쌓아 온 지식이다.
그리고 벌레를 구분할 수 있을 만한 청각과 촉각까지 있다.
먹어서 위험한 벌레는 절대로 먹지 않는다.
저벅.
인간의 것과 다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내딛는 발걸음은 왠지 지친 느낌이었다.
걸음의 주인은 참수리 수인이었다.
그가 다가와 아겔 근처에 있는 고쿠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재치 있는 입담은 없었지만,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던 도베르만 수인.
수인화하기 전에는 그가 도베르만 종족이란 것도 알지 못했다.
“…….”
호루크는 잠시간 시체를 바라보다가, 아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느껴지기에 아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인을 바라보았다.
같이 다니는 코뿔소 수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게 볼일이 있는가?”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호루크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고쿠를 막아 주어서 고맙습니다. 이 친구는…… 여기 수감되었을 때부터 죽고 싶은 눈치였거든요.”
도베르만 수인은 고독에 갇히고 삶의 의욕을 잃었다.
일도 묵묵히 잘하고 몇 마디 건네면 들어주던 동기가 죽었다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아겔은 그 마음을 이해했기에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꼬르륵.
참수리 수인은 자신의 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도 배는 고프네요.”
그 말에 노인은 손에 든 벌레들을 내밀었다.
“이거라도 먹겠나? 맛은 좀 그렇지만, 먹을 만은 하네.”
“……벌레입니까?”
“단백질이 많진 않네만, 안 먹는 것보단 나을 게야. 새들은 벌레를 좋아하지 않나?”
“저는 맹금류라 고기를 선호합니다만…….”
호루크는 꺼림칙한 얼굴로 벌레를 받았다.
입에 넣고 씹으니, 쓴맛의 진물이 흘러나왔다.
“끄응…….”
억지로 삼키긴 했는데, 역시 간에 기별도 오지 않았다.
“역시 오늘도 채석장에 가야겠군요.”
호루크는 힘이 센 수인들은 매일 채석장에 다녔다.
고독은 죄수에게 노역을 부과하진 않지만, 채석장에서 일하면 적어도 먹을 만한 식사를 주긴 했다.
구더기죽보단 나은 것으로 말이다.
아겔이 말했다.
“채석장은 조심하게. 위험한 장소라네.”
“저도 압니다. 채석장에서 굴러떨어져 죽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영감님도 채석장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채석장 지원자는 인간이 거의 없다.
대체로 인간은 채석장의 고된 노역을 견뎌 내지 못하니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육체가 발달했거나, 개조한 자들, 혹은 ‘마나’를 깨우친 자들도 종종 있긴 했다.
하급 죄수를 벗어나는 이는 없었다.
늙은 죄수의 대답은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고독에서 내가 가 보지 않은 장소는 없네.”
호루크는 꿀꺽 침을 삼키고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이 거대한 교도소 내부에서 가 보지 않은 장소가 없다는 말.
일견 오만해 보였으나, 왠지 노인이라면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감방을 어떻게 나가고 어딜 갈 수 있느냐란 의문이 떠올랐다.
호루크는 또 새롭게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영감님은 이곳에서 얼마나 복역했습니까?”
“글쎄…… 시간은 상대적인 법이지.”
"예?"
뭔가 더 말하려던 호루크는 이내 입을 다물어야 했다.
감방 천장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점호를 시작하겠다.
간수의 목소리.
죄수들이 중앙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어제와 다르게 확연히 줄어든 숫자.
살아남은 자들은 간신히 열 몇 명을 넘길 정도였다.
죄수들의 눈에 불안한 빛이 감돌았다.
재소자들이 죽었으니, 뭔가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우려.
그리고 아겔을 향한 날 선 경계심.
정작 시선을 받는 늙은 죄수는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있었다.
노인을 보는 시선 중에는 채석장에 다녀온 금발 소년과 갈색 머리 청년도 있었다.
-인원 파악을 실시하겠다.
-총원 94명. 사망 80, 현재원 14.
간수의 목소리에 죄수들의 몸이 떨렸다.
최근에 들어온 이 감방 죄수들은 이러한 집단 사망이 처음이었다.
간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기에 그들의 마음 가운데엔 불안감이 서렸다.
그들의 걱정과 달리 간수의 목소리는 기계적일 뿐이었다.
-사망자를 처리하겠다.
파아앗.
중앙에서 마법진이 떠올랐다.
마법진 위로 조그맣고 둥그런 무언가가 자라났는데, 인간의 피부색과 비슷했다.
“저게 뭐야…….”
살덩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점점 부풀기 시작했다.
죄수들은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금방 커다랗게 부푼 살덩이 위로 눈과 입이 생겼다.
끔뻑끔뻑.
호루크는 처음 보는 살덩이를 경계했다.
“걱정하지 말게. 청소부일세.”
아겔의 말에 죄수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감방에서 사망자가 나왔을 때, 청소해 주는 좋은 친구지. 공격하면 화를 내니 건드리진 말게.”
청소부는 아겔의 말대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어젯밤 죽은 죄수들의 시체를 커다란 입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둥그런 살덩이가 감방 이곳저곳을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부는 시체뿐만 아니라, 바닥에 흥건하던 피 웅덩이도 혓바닥을 내밀어 모조리 핥아먹었다.
“핥핥.”
“옳지. 잘 먹는구나. 넌 분명 크게 될 청소부다.”
“핥핥.”
그것이 핏물을 핥고 있을 때, 노인은 청소부를 쓰다듬기도 했다.
살덩이는 그 손길을 피하지 않고 그저 핏물을 핥는 데 열중이었다.
죄수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장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
호루크는 죽은 고쿠의 시신이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감방 동기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굴굴…….”
청소부는 시체들과 핏물을 전부 삼키고도 부족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다가 구석에 있는 오물이 청소부의 눈에 띄었다.
“굴굴!”
화장실이 없어서 구석에 변을 봐야 하기에 오물이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었다.
청소부는 그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어느새 다가온 멘록이 눈을 찡그렸다.
“똥도 먹는 건가.”
“다 먹어 치우면 냄새도 안 나고 좋지. 아, 수인들은 변으로 영역을 표시하던가?”
“쳇. 누굴 짐승 새끼로 보나.”
“아닌가?”
“……아니야, 씨발.”
멘록은 다시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청소부를 흘깃거렸다.
그는 이제까지 청소부를 본 적이 없다.
‘사망자가 생겨야만 구석에 쌓인 변을 치울 수 있다는 말인가.’
수십 명의 죄수가 한 달 동안 싸질러 댄 오물은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멘록은 얼굴을 구겼다.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 교도소야.”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로 답했다.
“적응하기 나름이지.”
감방을 깔끔하게 정리한 청소부는 다시 마법진 위에서 손바닥만큼 작아졌다.
청소부가 마법진과 함께 사라졌다.
슈우우우…….
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결손 인원을 보충하겠다.
파아아앗……!
감방 중앙의 마법진에서 한차례 빛이 났다.
어두웠던 감방에 아까보다 훨씬 밝은 빛이 떠올라 죄수들은 두 팔로 눈을 가리며 물러섰다.
-윽…….
-밝아……!
빛이 사라질 때쯤, 중앙에선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여긴……?
-여기가 감방?
아겔은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고독의 신입들.
저들은 이 교도소에 오늘 수감된 자들이다.
고독엔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죄수들이 수감된다.
하급 죄수의 경우, 숫자가 너무 많으니 한 감방이라도 놀리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감방에 수십, 수백 명의 죄수를 집어넣는 것이다.
-그럼 점호를 마친다.
묵직한 멘록의 다급한 음성이 그를 붙잡았다.
“교도관! 오늘은 채석장이 없나?”
-없다. 점호 끝.
“…….”
멘록은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매일 있던 채석장 지원이 오늘은 없다.
언제 구더기죽이 나올지 모르는 이 감방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허무한 점호가 끝났다.
* * *
점호를 마치고, 한쪽 벽에 기대 있던 아겔.
그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감방 안쪽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들린 소리였다.
독특한 발걸음 소리.
그 주인은 가벼우나, 든 짐은 무거운 것처럼 휘청거린다.
아겔은 감방 철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감방의 철창문은 말 그대로 철로 된 창살이었다.
두꺼운 철문이 아닌 철창살은 어디 경찰서의 유치장과 비슷한 형태였다.
뻥 뚫려 복도를 훤히 볼 수 있는 이 철창문은 심지어 잠겨 있지도 않다.
누구든 복도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한 달을 조금 넘긴 여기 죄수들은 당연히 잠겨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누구나 마음을 먹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물론 당연히 죽을 각오는 해야 한다.
복도엔 무시무시한 것들이 사니까.
지금 아겔이 마주한 건 그리 무서운 상대는 아니었다.
감방 밖 철창문 앞에는 키 작은 누군가 서 있었다.
“겔겔, 영감님, 오랜만입니다. 역시 소리를 듣고 오실 줄 알았습니다.”
“제이콥. 오랜만일세.”
피부가 검은 고블린 하나가 서 있었다.
키는 인간의 반 정도 되었고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배낭에는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는 듯 보였는데 보부상 같은 모양새였다.
물론 고블린도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간수에게 들었나?”
“겔겔, 물론이죠. 호게스 놈이 이번엔 금화를 5개나 달라고 하지 뭡니까. 아니꼬왔지만, 그냥 줬습니다. 영감님 만나려면 5개가 대수겠습니까?”
“금칠하지 말게.”
“겔겔, 겸손도 돈이 되긴 하죠. 그보다 오늘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이런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구먼.”
“독방에 한 달이나 계셨으니 시간 감각이 조금 흐트러지셨을 수도 있겠군요.”
‘고독’에서 시간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교도소의 360일, 12달은 다른 교도소와 달리 특별하게 돌아간다.
죄수들을 괴롭히기 위한 ‘시스템’들이 주기적으로 가동된다.
그러니 흘러가는 시간을 의식해야 그러한 시스템에 대비할 수 있다.
물론 아겔은 고독에 갇힌 순간부터 시간을 놓친 적은 없었다.
“이미 아시겠지만, 그저께 ‘변환’이 있었습니다.”
검은 고블린, 제이콥은 배낭에서 커다란 가죽 하나와 펜을 꺼냈다.
“겔겔, 여기에 그려 주시면 됩니다.”
아겔은 익숙하게 가죽과 펜을 받아 들고 무언가를 슥슥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고블린은 황홀한 눈빛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아아…… 정말 대단합니다. 볼 때마다 경이롭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군요.”
눈 없는 노인의 손에서 탄생하는 ‘지도’.
그가 그린 지도는 고독에서 유일한 가치를 지닌다.
“이제부터 집중할 테니 조용히 해 주게.”
“예.”
이 교도소의 모든 구조는 주기적으로 완전히 뒤섞인다.
그 때문에 길을 외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아겔만은 예외였다.
‘지도 그리기’는 고독에서 오직 아겔만 할 수 있는 기예였다.
보지 않고도 이 거대한 교도소의 모든 구조를 파악하는 놀라운 능력.
본인은 그저 ‘느낀다’라고만 말하니, 타인의 입장에선 그가 어찌 이런 신비한 능력을 갖추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고독의 이름 높은 죄수들은 이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기도 했으나, 누구도 늙은 죄수의 비밀을 알아내진 못했다.
슥슥.
지도 그리기가 금방 마무리되었다.
아겔은 가죽에 그린 지도를 제이콥에게 건넸다.
검은 고블린은 마치 성물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지도를 대했다.
가죽을 깔끔하게 접어 깨끗한 가방 속에 넣고, 가방을 큰 배낭 깊숙이 집어넣었다.
고독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소중히 대하는 게 마땅했다.
간수들조차 어디론가 이동할 땐. CCTV실 근무자와 연락해야 했으니.
“매번 감사합니다, 영감님.”
고블린은 이내 종족성이 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겔겔,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해 주시죠.”
“먹을 것이 있나?”
제이콥은 즉시 배낭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겔겔, 고기? 빵? 뭘 원하십니까.”
“일단 꺼내 보게.”
제이콥의 배낭에서 식량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다.
그는 아겔에게 식량을 건넸다.
“먹을 거라면 넘쳐흐릅니다. 이딴 것으로 지도값을 내다니 상인으로서 수치스럽군요.”
하급 죄수들은 그 흔한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해 죽어 나간다.
고독에서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구더기죽이 끝.
힘이 없으면 먹을 것도 제대로 구하지 못한다.
“어쨌든 거래한 대상이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겔겔, 만족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만, 뭔가 필요하시다면 반드시 말씀해 주십쇼. 무엇이든지 무상으로 내어 드리겠습니다.”
제이콥은 빵을 먹는 아겔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 노인의 환심을 더 사고 싶었다.
겨우 식량 따위로는 그의 환심을 살 수 없다.
기실 그가 지도를 그려 주는 것만 해도 제이콥에겐 천운과 다름없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 늙은 죄수는 고독에서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자이니까.
노인과 ‘거래’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법했지만, 상인의 욕심은 언제나 스멀스멀 자라나곤 했다.
“무기, 아티팩트, 정보. 다 있습니다.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그 모든 게 이 먹을 것 하나보다 귀하지 않네. 결국, 굶어 죽으면 말짱 꽝 아니겠는가.”
“겔겔, 그렇긴 하죠. 아, 그러고 보니 딱 드릴 만한 정보가 있습니다.”
검은 고블린이 철창 가까이 붙어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말했다.
“오늘 모든 하급 감방에 ‘소환’이 있을 거랍니다.”
“흠, 그렇구먼. 고맙네. 소환은 정기적이지 않으니 알 방법이 없었는데.”
“겔겔, 이 정도쯤이야.”
노인이 반응할 정도의 정보를 들려 주었다 생각했는지, 고블린은 희희낙락한 얼굴이었다.
“무기가 필요하시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네.”
“그러시다면야…….”
고블린은 배낭을 들고 일어섰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부디 무탈하시길.”
보부상인 그는 시간을 금으로 여기는 상인이었다.
아겔은 시선도 돌리지 않고 빵을 입에 집어넣었다.
“조심히 가게.”
고블린이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저벅.
아겔의 뒤로 몇몇 죄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먹을 거 아니야?
-고, 고기! 고기 냄새야!
죄수들은 침을 흘리며 먹을 것을 바라보았다.
-저게 어디서 난 거야?
-몰라. 가서 빼앗자.
굶주린 죄수들이 움직이려 할 때, 위협적인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퍼드득!
“영감님은 건드리지 마시죠.”
호루크의 등장에 죄수들이 물러섰다.
상대가 수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인간 죄수들은 겁을 집어먹는다.
수인의 전투력은 인간보다 월등하니까.
하물며 맹금류인 호루크의 발톱과 강인한 날개는 인간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무기였다.
허나 신입 죄수 중엔 용감한 놈도 있었다.
“네가 뭔데 우릴 막아?”
호루크는 앞으로 당당히 나오는 놈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달려 나오는 죄수에게 날개를 휘둘렀다.
빡!
“끄아아아악! 내 팔……!”
단단한 날개에 맞아 기형적으로 뒤틀린 팔을 잡고 신입 죄수가 허물어진다.
쓰러진 인간 죄수의 목에 날카로운 발톱이 들이밀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인간의 살갗 따위는 진흙처럼 뭉개 버릴 수 있었다.
“저랑 해보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더 나와 보시죠.”
“…….”
신입 죄수들은 쓰러진 녀석을 붙잡고 순순히 물러갔다.
수인을 보는 눈빛에는 악독함이 서려 있었다.
하나 그런 것에 마음이 흔들릴 호루크가 아니었다.
“아, 참새 친구 왔는가.”
“참수리입니다…… 그보다 그건 먹을 것 아닙니까.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일단 먹을 게 있다는 게 중요하지.”
철창문 바로 앞에 아겔이 앉아 있었기에 누가 주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물론 누가 준 게 맞긴 했다.
“코쟁이 친구도 불러오게. 같이 먹지.”
쿵.
말하기 무섭게 인상을 찌푸린 멘록이 호루크의 뒤에서 나타났다.
“냄새가 진동하는 데 안 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코쟁이라고 부르지 마라.”
아겔은 둘에게 고기와 빵을 건넸다.
“먹게. 다른 이들에겐 주지 말고.”
“그럴 만한 양이 아니란 건 알고 있어. 일단 고맙다.”
“감사합니다…….”
멘록과 호루크는 고기와 빵을 받아 들고 씹었다.
우걱우걱.
“젠장, 몇 달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이야?”
“저희 여기 온 지 한 달밖에 안 됐습니다만…….”
“한 서너 달은 있었던 것 같은데…….”
이미 식사를 마친 아겔은 걸신들린 듯 음식을 해치우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먹게. 탈 나지 않도록.”
먹고 힘을 보충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일을 대비할 수 있으니까.
먹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고기를 씹던 멘록이 눈가를 비볐다.
“시발, 존나 맛있네…….”
고독에서 지내는 힘겨움이 떠올라 조금 울컥한 모양이었다.
식사는 제멋대로 나오며, 심지어 제대로 된 것도 아니고.
화장실이 없어서 구석에서 변을 보고 그 지독한 냄새를 견디고.
짧은 시간이지만 광물 캐는 힘겨운 일을 같이한 동기를 잃는 등.
심지가 굳은 라이노족의 전사조차 마음이 흔들리는 곳.
그곳이 바로 이 고독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고독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
알게 되면 먹던 것도 토하고 싶을 끔찍한 모습을 말이다.
“힘내게. 앞으로 힘든 일이 좀 있겠지만, 그래도 적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곧 ‘소환’이 시작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