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첫 번째 시스템 : 소환 (1)
어두운 감방에서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이 철창문 근처에 자리 잡고 식사할 무렵.
죄수 2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발 소년과 갈색 머리 청년.
그 둘은 식사 중인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겔은 그들의 접근에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봐…….”
상대가 완전히 자신들을 무시하고 식사에 열중하자, 보다 못한 갈색 머리 청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도 그 음식을 좀 나눠 줄 수 없나?”
아겔이 답했다.
“미안하구먼. 그건 안 되겠네. 양이 많지 않아서 말이야.”
“조금이어도 돼. 난 먹지 않아. 이 아이만 먹으면 된다.”
청년이 소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거뭇한 때가 묻은 금발 소년은 참기 힘든지 자꾸만 침을 꼴딱꼴딱 삼키고 있었다.
코뿔소 수인이 코웃음 쳤다.
“흥, 지들끼리만 몰려다니면서 이젠 우리 도움을 원하는 거야? 그러게 채석장 있을 때부터 잘하지 그랬냐.”
“크흠…….”
소년과 청년은 어제까지만 해도 수인들과 채석장을 다녔었다.
청년은 그렇다고 해도 소년까지 채석장을 지원할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겔이 의아한 얼굴로 코뿔소 수인을 바라보았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가?”
“저놈들은 어제 내가 굴러떨어진 돌에 깔렸을 때도 모른 척했다. 감방 동기고 뭐고 지들 할당량이나 빨리 채워서 음식이나 받으려던 놈들이야.”
채석장의 돌산은 무너지기가 쉽다.
산사태처럼 일어나서 사람 수십 쓸어버리는 일도 우습게 일어난다.
멘록이 그 피해자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괘씸하게 날 버려두고 옆에서 곡괭이질을 했지? 호루크랑 고쿠가 아니었으면 난 아직도 깔려 있었을 거다.”
호루크도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예의 바른 참수리 수인도 그들을 향해선 딱히 호의적인 시선이 아니었다.
갈색 머리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건…… 미안하다. 식사를 받으려면 제시간에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거 알잖아. 급해서 그랬다.”
“뒤늦은 사과는 맛없는 법이지. 버스는 지나갔다.”
“끄응…….”
이미 식사를 마쳤던 아겔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갈색 머리 청년이 인간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몸에서 들리는 소리가 평범한 인간과 확연히 다른 것을 느꼈으니까.
‘웨어비스트구먼.’
폐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심장 박동은 커다랗다.
발걸음 소리는 인간의 것과 다른 박자처럼 느껴졌다.
아마 수인화했을 때가 더 익숙하기 때문이겠지.
근데 소년은 잘 모르겠다.
인간인지 수인인지, 혹은 다른 종족의 사람인지.
소리로 판별하면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의문점이 떠오른다.
겉으로 보기엔 8~9세의 어린아이가 어떻게 채석장에서 일할 수 있는가.
[모든 죄수가 동등한 고통의 기회를]이란 정신 나간 슬로건을 가진 교도소다.
누군가 채석장의 할당량을 대신 채워 줄 수 없다는 뜻.
스스로가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데, 평범한 인간 어린아이가 그걸 채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애초에 평범한 인간 소년이 고독에 오는 건 말이 안 된다.
행성에 대서특필 될 정도의 범죄 정도는 저질러야 고사형 판결을 받는다.
평범한 인간 아이가 중범죄를 저지를 순 없으리라.
결정적으로.
‘냄새가 난다.’
청각보단 못하지만, 아겔은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다.
이젠 나이가 들어 미각처럼 점점 흐려지는 감각 중 하나였지만.
아직 냄새는 어느 정도 맡을 수 있다.
아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을 향해 다가갔다.
소년은 그가 다가오자 움츠러든 기색이었다.
갈색 머리 청년이 그를 막았다.
“뭐, 뭐야. 왜 가까이 오는 거야.”
청년이 막든 말든 아겔은 허리를 숙여 아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를 맡았다.
“킁킁, 킁.”
“……!”
냄새를 맡자 청년이 본능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아겔은 가볍게 피해 뒤로 물러섰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호루크와 멘록이 벌떡 일어섰다.
“너 이 새끼. 결국, 안 되겠으니 무력행사냐?”
“영감님께 경솔한 행동하지 마시죠.”
두 사람이 걸어오려 할 때, 아겔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노인의 얼굴은 놀라움이 깃들어 있었다.
“호오, 정말 귀하군 귀해. 넌 참 귀한 아이구나, 꼬마야.”
““?””
뒤에서 걸어오던 두 사람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멘록이 말했다.
“뭐가 귀하단 거야. 저 꼬맹이도 보나 마나 수인이겠지. 냄새로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리고 평범한 수인은 아니지.”
노인의 붕대 감은 얼굴이 청년의 얼굴로 향했다.
“아주 귀한 ‘피’겠지?”
“……!!”
깜짝 놀란 청년이 소년을 뒤로 숨겼다.
“너……! 어떻게?”
“이 나이를 먹어 보니 느는 건 눈썰미밖에 없더군.”
크르르르…….
갈색 머리 청년이 포식자의 울음소리를 냈다.
울음소리에 호루크와 멘록은 본능적으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낮게 울리는 그 소리는 절대로 초식동물의 것이 아니었다.
뚜두둑.
“이 새끼가…… 진짜 해볼 테냐?”
멘록의 위협적인 말에도 청년은 노인만을 직시했다.
“말하면 죽인다, 노인네.”
“끌끌, 그래서 내가 얻는 게 뭐 있겠나. 난 그냥 오랜만에 귀한 친구를 만나 재밌을 따름이네. 하지만 날 귀찮게 만든다면 충분히 그럴 용의도 있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
청년은 코를 찡그리며 소년을 데리고 물러섰다.
금발 소년은 아쉽다는 듯이 아겔의 뒤에 있는 고기를 흘깃거리다가 청년을 따라갔다.
…….
노인은 곧바로 철창문 곁으로 돌아와 앉았다.
뻘쭘해진 호루크와 멘록도 그 뒤를 따라와 앉았다.
궁금함을 못 견딘 코뿔소 수인이 입을 열었다.
“노인네, 쟤가 뭔데 아까부터 귀하다는 거야? 저 꼬맹이 정체를 알고 있는 거야?”
웨어비스트는 스스로 모습을 변화하기 전까지 그 정체를 알아낼 방법이 한정적이다.
대마법사나 현자는 한눈에 꿰뚫어 본다고도 하지만.
현실적으론 붙잡아다가 짐승 형태로 변할 때까지 가둬 놓거나, 피를 뽑아 그 성분을 분석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냥 짐작한 것뿐이네. 청년이 꼬마의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냥 물러가게 만든 것이네.”
사실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다.
아겔은 소년의 정체가 뭔지 안다.
다만, 그게 까발려지면 고독이 시끄러워질 수도 있기에 그냥 입 다물었을 뿐.
힘 있는 자들은 귀한 것을 가만 내버려 두질 않으니.
아겔은 여생을 평안히 보내고 싶을 따름이었다.
멘록이 콧바람을 불었다.
“쳇, 싱겁게. 뭐 아는 거 있으면 나한테도 말해. 난 왕따 당하는 게 싫다.”
“끌끌, 고독에선 왕따가 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하네.”
“젠장, 호루크도 있고. 이젠…… 노인네도 있는데 내가 왜 왕따가 되어야 하는데.”
“이곳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드니 말일세. 곧 내 말의 의미를 잘 알게 될 걸세.”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면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렇게 말해도 안 멋있어.”
“허허, 맞는 말이지. 짐승이 말도 잘하는구먼.”
“……? 그 말 취소해라.”
“먹기나 하세.”
* * *
한 사람이 먹기엔 과분한 양이었지만, 세 사람이 먹으니 깔끔하게 먹을 수 있었다.
수인인 두 사람은 식사량이 꽤 많은 데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포식이었다.
코뿔소 수인인 멘록이 거의 다 먹어 치웠다.
“여기 와서 배가 부른 느낌은 처음이군. 고맙다, 노인네. 은혜는 갚지.”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닐세. 여기선 은원 관계도 신중히 쌓아야 하는 법이라네.”
“쳇, 자꾸 가르치려 들지 마. 그 정돈 나도 알고 있다고.”
멘록은 투덜거리며 벽 근처에 앉았다.
아겔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근처에 걸어가 천장으로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렸다.
똑. 똑.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밥을 먹었으면 당연히 물을 마셔야 한다.
그리고 고독에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이 바로 생수였다.
멘록이 눈살을 찌푸렸다.
“노인네, 음식도 구해 왔으니 물 구하는 법도 알지 않아?”
노인은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든 채로 말했다.
“이게 그 방법이네만. 감방에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네. 자네도 이걸로 갈증을 해결해 오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멘록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았다.
일단 불결하게 느껴졌고, 떨어지는 양도 적어 들고 있는 고개가 뻐근해졌으니까.
“걱정하지 말게. 이 물은 생각보다 깨끗하니 마셔도 탈은 없을 거라네.”
“쳇, 난 이따 마실게.”
“그럼 전 지금 마셔 둬야겠군요.”
호루크가 물방울 떨어지는 곳에 서서 고개를 들고 부리를 벌렸다.
“좋은 생각이네.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좋은 법이지.”
두 사람은 적당히 떨어지는 물방울을 마셨다.
아겔이 먼저 고개를 내리고 벽 근처에 앉았다.
갈증과 허기는 되는대로 해결해 주는 게 좋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게 고독이니까.
기실 상인 제이콥이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겔도 오늘 ‘소환’이 있을 거란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문득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살고 싶은가?”
“?”
“?”
갑작스러운 물음에 멘록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을 마시던 호루크도 고개를 내렸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살고 싶냐고 물었네.”
“…….”
낮아진 노인의 목소리.
멘록은 침묵했고, 호루크가 말했다.
“당연히…… 살고 싶습니다. 그게 본능 아니겠습니까.”
“그 본능이 죽여 달라고 외치면 그땐 죽을 건가? 다시 묻겠네. 살고 싶나?”
장난으로 묻는 말이 아니란 것에 두 사람은 심각해졌다.
이번엔 멘록이 먼저 말했다.
“살고 싶다. 난 죽고 싶지 않아. 이 X같은 곳에 억울하게 끌려와서 죽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호루크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아직 밖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으니…….”
고독의 죄수 중 사연 없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차라리 죽고 싶다란 마음을 이겨 낼 수 있겠나?”
“씨발…… 죽고 싶었던 적은 많아. 그러니까 그만 물어봐.”
“동감입니다.”
두 사람의 눈빛은 결연했다.
눈이 없는 아겔은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기운만큼은 삶에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노인이 미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준비하게. 오늘 ‘소환’이 있을 것이니.”
“소환? 그게 뭐지?”
멘록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어 왔다.
아겔은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들은 소환조차 모른다.
팟.
노인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시작되는군.”
심상치 않음을 느낀 멘록과 호루크도 허겁지겁 일어섰다.
“뭐, 뭐야.”
“설마…… 지금입니까?”
늙은 죄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겔은 천천히 감방 중앙으로 다가갔다.
수인 두 명도 홀린 듯 그 뒤를 따랐다.
감방 중앙으로 가니 마법진이 밝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식사인 줄 아는 죄수 몇 명과 신입 죄수 중 호기심이 동한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겔은 혀를 찼지만, 굳이 물러서란 말을 하진 않았다.
어차피 오늘 들어온 죄수 대부분 소환 때문에 반드시 죽을 거니까.
그는 어떤 마물인지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만 유지하고 다가가길 멈췄다.
슈우우욱…….
곧 빛이 사그라들었다.
사그라드는 빛과 함께 어둠 속에 인형(人形)이 하나 남았다.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팔다리가 호리호리하고 초록색 피부는 매끈했다.
손발에는 갈퀴가 달렸고, 허리에는 레이피어 한 자루를 차고 있는 모습.
소환된 존재는 늠름함이란 단어를 대변하듯이 찰박찰박 걸음을 내디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겔은 발소리를 듣고 혀를 찼다.
“하필이면…… 제일 까다로운 놈이 나왔구먼.”
“노인네. 저거 뭐야. 기분 나빠.”
호루크가 떨리는 부리로 말했다.
“저게 뭐죠……?”
“프로그맨(Frogman)이라네. 마물이지.”
"마물……?”
개구리의 얼굴을 하고 있는 마물.
인간 형태의 몸은 수인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느껴지는 기세가 전혀 달랐다.
끈적하고 불쾌한 악(惡)의 기운이 그대로 감방 안에 투사되고 있었다.
그 기운을 느끼고 반응한 건 멘록과 호루크 정도였다.
나머지는 그 기운을 느끼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프로그맨은 한 죄수를 보고 히죽 웃더니 찰박찰박 다가갔다.
죄수들은 저게 뭔지 몰라 조금 물러서며 수군거렸다.
-이게 뭐야…….
-몬스터인가?
-평범한 수인은 아닌 것 같은데?
프로그맨은 한 남자 앞에 서더니 정중히 고개와 허리를 숙였다.
인사를 받은 남자는 갸우뚱한 얼굴이었다.
개구리 마물은 허리를 펴자마자, 허리에서 레이피어를 꺼내 남자의 목을 찔렀다.
푹!
“컥……!”
남자가 목을 찔려 죽는 모습에 죄수들이 크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씨발, 뭐야! 왜 갑자기 공격해!
-같은 죄수 아니었어?
-젠장, 몬스터인가 봐!
프로그맨은 곧장 죽은 남자의 머리를 뜯어내더니, 입을 쩍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입 안으로 죽은 죄수의 머리가 들어갔다.
으득. 으드득. 콰드득.
질펀하게 부서지는 소리.
끔찍한 소리에 죄수들은 벌벌 떨었다.
목에 칼을 찌르고 뜯어낸 다음 씹어 먹는 몬스터라니.
듣도 보도 못한 행위와 모습이었다.
프로그맨은 시체를 마저 뜯어 먹으며 다른 죄수들을 바라보았다.
흠칫.
죄수들의 떨림을 느끼고, 마물은 씨익 웃어 보였다.
아겔이 말했다.
“구석으로 가세.”
노인은 구석을 향해 걸었다.
멘록과 호루크는 마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그를 따라 움직였다.
“저거…… 당장 처리 안 해도 괜찮은 거야?”
“느껴지는 기운이 악독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쓰러뜨리지 않으면…….”
늙은 죄수가 고개를 저었다.
“성급하면 오히려 독이 되는 법이지.”
죄수들이 한 명씩 레이피어에 살해당하는 와중에도 아겔은 태연했다.
“놈을 무찌르려면 준비가 필요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