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첫 번째 시스템 : 소환 (2)
소환(召喚).
고독의 죄수들을 괴롭히는 ‘시스템’ 중 하나.
카라이스만의 고독은 죄수들이 죽을 때까지 고통받으면서 살아가도록 설계된 만큼 그 시스템도 악랄하다.
‘소환’은 죄수들이 머무르는 감방에 ‘마물(魔物)’을 소환하는 시스템이다.
오직 생명체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질투하고, 적대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인 마물.
성좌의 반대편에 선 자들이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이 마물은 대화도 교류도 불가능하다.
마주치면 누군가는 죽어야만 한다.
고독의 죄수들은 소환된 마물을 사냥하는 것을 ‘레이드’라고 불렀다.
아겔은 레이드를 수백, 수천 번을 경험한 베테랑이었다.
고독의 ‘사육장’에서 기르는 마물의 종류가 뭔지 전부 꿰뚫고 있었고, 각각 수차례나 직접 사냥해 본 경험이 있다.
그는 레이드에 실패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실패는 곧 죽음이니까.
그런 그가 앞에 나타난 마물을 보고 혀를 찼다.
‘쯧, 타이밍이 안 좋았구먼. 하필 청소부가 다녀간 때에…….’
아겔의 뒤에서 따라오던 멘록이 말했다.
“영감. 저건 무슨 마물이지? 보기만 해도 역겨운 기분이 든다.”
프로그맨은 까다로운 몬스터다.
개구리 수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엄연히 다르다.
살아 있는 건 뭐든지 씹어 먹고 번식을 위해 생명체의 뱃속에다 알을 낳는다.
애초에 평범한 생명이 아니기에 짝짓기라는 개념이 필요 없는 정신 나간 생물이다.
잠시 후면, 죽은 죄수들의 뱃속에서 태어난 프로그맨 새끼들이 감방을 뒤덮을 것이다.
“쉽지 않은 상대지. 하필이면 알이 꽉 찬 프로그맨이 소환되었구먼.”
“설마 알을 낳는 거야?”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낳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화한다네. 성장 속도까지 빨라서 금방 성체 프로그맨으로 자라지.”
호루크가 부리를 딱 부딪치며 말했다.
“새끼들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야겠군요.”
멘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새끼를 낳는다면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구석으로 가는 거야?”
“새끼는 그럭저럭 처리하기가 어렵지 않네. 하나 성체는 아니지. 놈을 잡기 위해선 꼭 준비해야 할 것이 있네.”
“아무것도 없는 감방에서 무슨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야. 마음의 준비면 충분한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나. 상상력을 동원해 보게.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멘록과 호루크는 구석에 도착할 때까지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
어느새 그들은 구석까지 왔다.
아겔이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자, 이제 준비를 시작해야 하네.”
코뿔소 수인은 의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해보자고.”
잠시 침묵하던 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쉽지 않을 수도 있네만…… 정말 잘 해낼 수 있나?”
노인의 경고에 호루크는 긴장했다.
“무엇이든 따를 생각입니다.”
“정말 무엇이든지?”
멘록이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면 뭘 못하겠어. 그 준비란 걸 못하면 결국 죽는 거잖아? 이미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노인이 그들의 의지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자세로군.”
아겔이 말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작업을 할 걸세. 집중하게나.”
꿀꺽.
참수리 수인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내 메마른 입술이 열렸고, 두 수인은 늙은 죄수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똥 좀 싸주게.
……?
두 수인은 잠시 벙찐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을 뚫고, 코뿔소 수인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어, 그러니까……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코뿔소는 청력이 좋지 않은가?”
…….
곧 멘록은 화난 표정이 되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호루크가 그를 말렸다.
“진정하세요, 멘록. 생각이 있으시겠죠.”
“생각은 무슨 생각!”
그는 씩씩거리며 아겔을 노려보았다.
“제대로 설명해. 그렇지 않으면 난 당장 저 개구리 자식 면상을 찢어 버리러 갈 테니까. 안 그래도 새끼까지 낳는다는데 늦어질수록 느낌이 안 좋아질 것 같다고.”
호루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영감님? 뭘 하시려는 건지 알아야 저희도 수긍하지 않겠습니까.”
“흠, 시간이 없지만…… 좋아, 설명은 필요하겠지.”
노인은 메마른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두 수인의 눈이 곧 휘둥그레졌다.
* * *
감방의 중앙.
프로그맨이 소환된 그곳에선 유례없는 느긋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물이란 건.
생명의 스러져 감을 기쁨과 향락으로 여기는 듯 보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입가가 찢어지고 짜릿한 쾌락을 맛보고 있다는 듯이 그 움직임은 더욱 경쾌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푹!
“커헉……!”
벽 쪽으로 도망치다가 또 한 사람이 심장을 꿰뚫린다.
마물이 들고 있는 날카로운 레이피어는 강철마저 뚫을 수 있을 만큼 예리해 보였다.
프로그맨은 죽은 사람의 머리를 뜯어 먹고, 배를 갈라 커다란 입을 쩍 벌려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그건 알처럼 보였다.
꿀렁꿀렁.
시체의 뱃속에 알을 넣어 놓고 제자리에 두는 마물.
시간이 조금 흐른 시체들의 배는 뭔가 자라나려는 듯 움찔거리는 게 보이기도 했다.
갈색 머리 청년은 한쪽 벽에 붙어서 그 잔혹하고 역겨운 현장을 목도하고 있었다.
“젠장, 어디서 저딴 괴물이 튀어나와서…….”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생명체였다.
아니, 저런 걸 생명체라고 부르는 것조차 배덕감을 느끼게 만든다.
숨 쉬는 자들을 말살하기 위해 그릇 창조된 누군가의 악의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혀, 형…….”
청년 뒤에 숨은 금발 소년이 두려운 듯 몸을 떤다.
“보지 마. 내 뒤에 꼭 숨어 있어.”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억울하게 끌려온 이곳에서 죽을 생각 따위 없다.
반드시 잘못된 걸 바로잡고 이 끔찍한 교도소를 빠져나가고 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저 미친 괴물에게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길 수 있으려나.’
그는 오른손을 수인화했다.
웨어비스트가 행할 수 있는 수인화.
갈색 털이 숭숭 자라 오르며 강철도 가를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손톱이 솟아오른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살짝 흔들렸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우리 쪽으로 오면…….’
싸워야 할 것이다.
동생이 위험하다면 전신 수인화까지 고려해야 한다.
정신을 잃겠지만, 동생을 잃는 것보단 나으리라.
하지만 막상 프로그맨의 공격력을 보니, 전신 수인화를 해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전신 수인화를 하면 3급 정도는 될 텐데. 그 정도로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다니…….’
수많은 싸움을 치러 온 갈색 머리 청년은 상대를 보면 대충 얼마나 강한지 느낄 수 있었다.
그건 그가 포식자 종으로서 갖춘 식별 능력이기도 했고, 오랜 기간 싸워 오면서 얻은 ‘감각’ 같은 것이었다.
그런 그의 감각이 저 마물은 매우 위험하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라…….’
학살당하는 죄수들에겐 미안했지만, 막상 죽고 있는 저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제발 자기 쪽으로 오지 말라고.
저쪽으로 꺼져 버리라고.
이곳에 프로그맨을 쫓아낼 만큼 강한 자는 없었다.
청년은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 노인…….’
늙은 죄수가 좀비들을 모조리 몰살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게다가 감방 철창문에서 제대로 된 식사까지.
그는 이 교도소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자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마물이 나타나자마자 그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 마물을 처리할 사람이 있다면 그 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제일 강한 수인들과 함께 꽁지 빠지게 구석으로 내뺀 것이다.
‘역시 믿을 사람 하나 없군. 오로지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애초부터 남들과 교류할 생각은 없었다.
아까 풍기던 음식 냄새도 혹시나 해서 가 본 것일 뿐.
역시 이 흉악범이 득실거리는 더러운 곳에선 한낱 자비심 따윈 쓰레기 취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혀, 형……?”
문득 고개를 든 청년은 섬찟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
히죽 웃고 있는 괴물의 눈빛.
마치 좋은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기뻐하는 기색.
프로그맨이 자신과 동생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젠장…….”
마물은 천천히 자신과 동생에게 다가왔다.
이번 제물은 너희들이라는 듯.
손에 든 죄수의 머리를 뜯어 먹고 몸은 바닥에 팽개쳤다.
길쭉한 혀를 내밀어 피 묻은 레이피어를 핥고서는 우아한 자태로 허리 숙여 인사한다.
그다음은 예상한 대로 짓쳐들어오는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피해, 세로!”
“형……!”
두 발과 양손을 수인화 한 채로 청년이 달려들었다.
손발이 길쭉해지고 털이 솟아나며, 날카로운 손발톱이 자라났다.
이빨까지 날카로워진 청년은 최대한 정신을 붙들고 프로그맨을 상대했다.
촤자자자작!
순식간에 10합의 공방이 지나갔다.
빠른 속도로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피하고, 손톱을 휘둘렀다.
그러나 상대도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피해 냈다.
속도로 상대를 압도하긴 힘들었다.
‘그럼 힘으로.’
청년의 근육이 한순간 부풀었다.
정신이 흔들렸지만, 근성으로 버텨 내며 찔러 들어오는 레이피어에 집중했다.
캉!
오른 손톱으로 레이피어를 쳐 냈다.
가벼운 찌르기와 다르게 육중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청년은 곧바로 왼손을 휘둘렀다.
프로그맨을 갈기갈기 찢는 걸 상상했지만, 이미 마물은 자신의 공격이 파훼당할 것을 알고 한 바퀴 돌며 아슬아슬하게 손톱의 범위를 벗어났다.
회피 동작과 연계해 레이피어가 청년의 왼팔 하박을 슥 훑고 지나갔다.
촤악!
“큭……!”
적지 않은 깊이로 왼팔이 베였다.
다행히 잘리진 않았지만, 조금 더 깊었다면 잘릴 정도로 위험했다.
청년은 자신의 회복력에 의지하며 오른손을 주무기로 다시 프로그맨과 맞붙었다.
.
.
“헉헉…….”
거친 숨결이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청년은 몸의 반을 덮을 정도로 수인화를 했지만, 엉망진창으로 밀리고 있었다.
전신이 피범벅에 자상이 한가득.
그에 반면, 프로그맨은 아직 여유 넘치는 모습이었고 상처 하나 없었다.
“젠장,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냐…….”
개구리 수인처럼 생긴 주제에 체력이 대단했다.
자신도 웨어비스트로서 어디 가서 전투력이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저놈은 뭔가 달랐다.
뭍인데도 빠른 속도를 내는 것은 물론 다른 비장의 무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점프 속도가…….’
갈퀴 달린 발로 천장에 솟아오르거나 벽을 이용해 청년이 커버할 수 없는 사각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마치 한정된 공간에 강하게 던진 탱탱볼처럼 마물은 사방을 뛰어다녔다.
‘어, 어쩌지…….’
이미 몸이 회복되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고, 왼팔은 당장은 못 쓸 정도로 칼에 베였다.
남은 건 전신 수인화뿐이었다.
전신 수인화를 쓰면 의식을 잃겠지만,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도, 동생은…….’
청년은 결심을 굳히고 동생이 있는 곳을 슬쩍 바라보았다.
무슨 의미인지 바로 깨달은 동생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아, 안 돼, 형! 그러면……! 그러지 마아!”
소년을 보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더 굳혀진다.
청년은 씩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넌 무사할 거야…….”
콰득.
청년의 육체가 크게 한 번 흔들렸다.
마치 골격이 강제로 성장하려는 듯이.
몸 내부에서 터질 듯한 팽창감이 솟아나 고통스러웠고,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눈이 사라지고 야수의 노랗고 날카로운 세로 눈이 나타났다.
“크르르르르…….”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몸 전체가 짐승으로 변하고 있었다.
전신 수인화의 과정.
그렇게 청년의 의식이 완전히 소멸하기 전.
뭔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철퍽.
“……!”
마물의 눈가로 던져진 질퍽한 무언가.
여태껏 동요가 없던 프로그맨이 깜짝 놀라 레이피어를 쳐들며 한 손으로 눈을 박박 비볐다.
그사이 다음 공격이 날아왔다.
쯔걱.
어둠 속에서 나타난 늙은 죄수가 프로그맨의 목에 손을 찔러 넣는다.
한참이라도 부풀 수 있는 마물의 목은 벌레 단검에 찢어졌다.
“케륵……!”
부상을 입은 프로그맨이 레이피어를 찔렀다.
촤악!
아겔은 공격을 피해 냄과 동시에 프로그맨의 허벅다리를 단검으로 벤 다음 물러섰다.
“키에에엑!”
프로그맨이 찢어진 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했다.
물갈퀴 달린 손으로 눈가를 닦아 낸 놈은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
늙은 죄수가 바로 옆에 서 있는데도, 마물은 고개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잘 보게.”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소리의 출처인 노인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개구리는 이렇게 잡는 거라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똥을 또 한 번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