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첫 번째 시스템 : 소환 (3)
“키에에에에에엑-!!”
마물이 분노한 목소리가 감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다시 한번 똥덩어리를 던진 아겔은 다른 쪽 허벅다리를 또 깊게 베어 내고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외쳤다.
“지금일세!”
한쪽에서 똥이 마구 날아오기 시작했다.
멘록과 호루크는 거리를 유지한 채로 어디선가 가져온 똥을 마구 던지고 있었다.
프로그맨은 다리를 놀려 재빨리 투척되는 오물을 피했다.
그러나 허벅지를 다쳐서 전부 피하긴 어려웠는지 몇 대는 몸에 맞아야만 했다.
퍽퍽퍽!
“키르르르……!”
몸의 4분의 1이 똥으로 덮인 마물.
처음의 잔혹했던 모습과 영 딴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기세는 이전보다 흉포해졌다.
“케에에엑!”
한쪽에서 똥을 던지는 수인들에게 달려드는 프로그맨.
“멈추게!”
우뚝.
던지던 자세 그대로 멘록과 호루크가 몸을 멈추었다.
“케륵?!”
그러자 프로그맨이 두 수인 바로 앞에서 당황한 듯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겔은 타이밍 좋게 몸을 움직였고, 움직이는 노인을 감지한 마물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다시!”
프로그맨이 멀어지면 수인들이 다시 똥을 던졌다.
마물은 두 표적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이럴 수가…….’
호루크는 계획이 먹히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놈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마물이라 해도 그 원본이 되는 짐승과 어느 정도 닮은 부분이 있다는 걸 늙은 죄수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호루크는 아겔의 말을 떠올렸다.
-우선 프로그맨의 시야를 차단해야 한다네.
오직 움직이는 대상만을 파악하는 시야를 가진 프로그맨.
설령 바로 앞에 있을지라도.
움직이지만 않으면 놈은 볼 수가 없다.
놈은 지금 적이 코앞에서 사라지는 듯한 착각을 받고 있을 것이다.
상대의 시야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부터 이미 승리의 단초는 열린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놈은 피부 호흡을 하지. 폐 호흡만으로 전투를 치르기란 무리일세. 똥을 선택한 이유라네.
눈을 가리는 것과 동시에 전신에 똥을 묻히면서 피부 호흡을 제한하는 것이다.
시야를 빼앗고 접근해 허벅다리를 베어 기동력을 제한한 다음, 숨을 막아 버리는 작전.
전부 늙은 죄수에게서 나온 생각이다.
그리고 아겔은 너무도 능숙했다.
시야를 빼앗는 즉시 가장 중요한 기동력 제한을 단숨에 해냈다.
행동 일체에 망설임이나 실수가 전혀 없었다.
‘도대체 이 짓거리를 얼마나 반복했으면…….’
멈춰 있는 호루크에게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제대로 발랐군. 아까 말했듯이 이제부터 시작일세!”
프로그맨의 몸 대부분이 똥에 질척였다.
놈이 똥을 훑어 내려 했지만, 아겔이 그걸 가만두지 않았다.
“장기전이라는 걸 명심하게!”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되었다.
“제기랄! 이제 내 똥 안 던져도 되지?”
멘록은 똥을 바닥에 버려 놓고 아겔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갔다.
호루크는 똥을 들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던질 기회만 엿보았다.
최전선에 선 아겔은 날카로운 레이피어를 피하며 천천히 놈을 몰았다.
멘록도 어색하게나마 아겔과 보조를 맞추며 거대한 덩치로 위협했다.
“개자식아……!”
멘록이 주먹을 휘두르자, 위협을 느낀 프로그맨이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무기가 가죽을 스치고 지나가자 생채기가 생겼다.
코뿔소 수인은 당황한 듯 한걸음 물러났다.
“씨벌, 내 가죽에 생채기를 내?”
“강철도 뚫는 무기라네. 조심하게.”
촤악!
프로그맨이 휘청거린 사이에 아겔이 또 한 번 유효타를 만들었다.
마물은 분한 듯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철퍽!
또 인지하지 못한 사각에서 똥덩어리가 날아왔다.
앞에서 덩치로 위협하는 멘록과 빠르게 압박하는 아겔 때문에 오물을 맞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키르르르……!”
프로그맨은 최대한 거칠게 움직이면서 몸에 묻은 똥이 흘러내리게 했지만, 생각보다 코뿔소 똥은 몸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거칠게 움직일수록 숨이 가빠 오는 모양이었다.
“키륵…… 키륵…….”
“젠장, 체력이 얼마나 좋은 거야. 왜 아직도 안 뒤져?”
“천천히 하세. 다 잡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아겔은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처럼 은밀히 걸음을 옮겼다.
프로그맨의 체력은 갈수록 떨어질 것이고, 이젠 도망갈 수도 없이 구석에 몰렸다.
그렇게 다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놈이 레이피어를 역수로 들었다.
“키륵……!”
전력을 다해 레이피어를 던지는 프로그맨.
멀리서 똥을 던지려 팔을 들었던 호루크의 날개를 스치고 지나갔다.
촤악!
“크흑……!”
“참새! 괜찮냐!”
“전…… 괜찮…….”
마물이 레이피어를 던지는 순간부터 이미 아겔은 발을 박찬 뒤였다.
프로그맨에게 달라붙어 빠른 속도로 연격을 쏟아붓는 노인.
벌레 단검이 전신을 난자했다.
촤자자자작!
“케엑!”
프로그맨은 반격한답시고 날카로운 물갈퀴로 아겔을 할퀴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건 무지막지한 코뿔소의 돌진이었다.
그는 동료의 부상을 보고 벅차오른 분노의 소리를 냈다.
“우오오오오……!!”
단단한 뿔이 프로그맨의 배를 들이받아 벽에 처박았다.
쿵! 콰득!
“키에에에에에에에엑-!”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마물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놈이 최후의 발악을 하듯 목을 부풀렸다.
“캬굴-!! 캬굴-!!”
-굴! --굴! ---굴! ----굴!
머리가 깨질 듯한 울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강력한 음파 공격.
뿔로 놈을 고정하고 있던 멘록이 귀를 잡았다.
“크흑……! 귀, 귀가…….”
아겔이 먼저 목을 찢어 놔서 망정이지, 제대로 된 울음소리에 당했다면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멘록은 몸에 힘이 점점 빠지는 걸 느꼈다.
“끄어어어어…….”
정면으로 울음소리를 들으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쿵.
멘록이 힘을 잃고 무릎을 꿇자, 마물은 잠시 벌어진 틈 사이로 빠져나가 근처에 있던 시체를 물어뜯었다.
아그작……!
시체를 먹으면서 몸을 회복하려 하는 것이었다.
“어딜.”
프로그맨이 정신없이 시체를 탐닉하려는 찰나.
언제 다가왔는지 아겔이 프로그맨의 뒤에서 벌레 단검으로 눈을 뚫었다.
푹.
“키에에에엑……!”
“죽을 때가 다 되니 판단력이 흐려졌구나. 나를 잊지 말았어야지.”
그는 도망치지 못하도록 머리를 잡았다.
순식간에 눈 속을 헤집은 다음 단검을 빼냈다.
주르륵…….
“키릭…….”
뇌가 곤죽이 된 프로그맨이 쓰러졌다.
털썩.
.
.
.
잠시 후, 정신을 되찾은 멘록이 고개를 홱홱 흔들며 일어섰다.
두통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점차 정상으로 돌아오는 걸 느꼈다.
근처에 프로그맨의 시체가 있었다.
“끄응…… 자, 잡은 건가?”
“좋지 않은 말버릇을 가지고 있구먼. 그래도 잡긴 잡았네.”
아겔은 죽은 프로그맨을 살펴보고 있었다.
“뭐 찾는 거라도 있어?”
“아닐세. 그냥 상태를 보고 있었네.”
“어떤데?”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척추가 완전히 으스러졌더군.”
“훗, 역시.”
멘록이 코를 문지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짐짓 으스대는 어투로 말했다.
“내 ‘들이받기’에 속수무책이군. 내 돌진 어땠냐, 노인네.”
“대단하긴 하더군. 똥도.”
멘록이 싼 코뿔소 똥이 아니었다면, 이리 쉽게 프로그맨을 사냥하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인간 똥도 괜찮았겠지만 말이다.
“쳇, 날 똥 싸는 기계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아까는 먹고 바로 싼 게 아니라 그냥 그때 마려웠던 것뿐이니까.”
“타이밍이 잘 맞았구먼.”
아겔은 무감각하게 대답하며, 호루크 쪽으로 걸어갔다.
호루크는 죄수복을 찢어 레이피어에 당한 어깨를 지혈하고 있었다.
“팔은 어떤가.”
“조금 찢어졌습니다. 아마 금방 나을 겁니다.”
프로그맨이 발악하듯이 던진 레이피어에 맞았다.
강한 힘이 실려 있었을 테니, 얕지 않은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아겔은 떨어진 레이피어를 들었다.
프로그맨이 자신의 체액을 단단히 굳혀 만드는 날카로운 찌르기용 무기.
주인을 잃은 무기는 천천히 녹아 사라졌다.
“레이피어에 독은 없었군. 가끔 독을 바른 놈들이 나오기도 해서.”
“아,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이군요.”
호루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훔쳤다.
그는 아겔을 슬쩍 바라보았다.
호루크는 부상을 입긴 했지만, 비교적 멀리서 임무를 수행했기에 전체적인 상황을 보기 쉬웠다.
마물을 잡아 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영감님이 없었으면 절대로 잡지 못했을 겁니다…….’
적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효율성 높은 작전 수립.
가장 위험한 역할인 선제공격을 맡았고, 목을 찢어발기면서 가장 위험한 울음소리의 공격력을 반감시켰다.
게다가 양 허벅다리를 베면서 기동력을 제한하는 정확한 암수까지.
시작하자마자, 프로그맨의 장점인 도약과 음파 공격을 잘라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멘록이 굳이 흥분해서 들이박지 않았어도 프로그맨은 철저하게 사살당했을 것이다.
이 노인에게.
혼자서도 충분했을 것이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역시 영감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 음?’
호루크는 문득 흐느끼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저쪽에서 금발 소년이 쓰러진 청년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흑흑, 혀엉…… 죽지 마아…….”
호루크는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좋게 지낸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저 같은 감방을 쓰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진 않았다.
“안 죽었으니 신경 쓰지 말게.”
“예?”
호루크는 아겔을 돌아보았다.
감방 중앙을 보던 아겔이 말했다.
“그보다 다 쉬었으면 움직이지.”
“움직이다뇨?”
“아직 끝난 게 아니라네. 들리는가?”
호루크는 소리에 집중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
-도망쳐……!
여전히 감방 저편 어둠에서 들려오는 비명.
성체 사냥에 얼마나 집중했으면 저게 안 들렸을까.
“프로그맨의 새끼들이 벌써……?”
늙은 죄수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알에서 태어난 놈들이 많긴 하겠지만, 크기는 작고 연약하니 쉽게 죽일 수 있네. 더 성장하면 안 되니 어서 정리함세.”
“예…….”
호루크가 무거운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멘록도 그를 따라갔다.
* * *
“흐음…….”
아겔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익숙하고도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수십 명의 죄수가 머리 없이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었고.
다른 몇 명은 전신이 온전하지 않은 채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흘러나온 내장과 핏물이 첫날의 좀비 사태를 떠오르게 했다.
피 냄새가 진득하게 공기와 겨루고 있다.
이젠 너무 익숙한 느낌이라, 부정적인 감정조차 들지 않는다.
“다 잡았는가.”
멀리서 돌아오는 호루크와 멘록.
프로그맨 새끼들을 처리하고 다시 모였다.
멘록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아…… 하나씩 찾아서 죽여 버리느라 힘들어 뒈질 뻔했다.”
“최대한 잡아 죽였습니다만…… 전부 죽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주먹만 한 프로그맨 새끼들은 빨빨대며 감방 곳곳을 돌아다닌다.
가끔 천장에 붙어 있는 놈도 있기에 확실히 해야 했다.
아겔은 눈을 감고 고요히 소리에 집중했다.
감방의 모든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다 잡았군.’
마물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의 귀가 보증했다.
“확실히 다 잡았군. 잘했네.”
“후아, 이제 진짜 끝난 거 맞지? 진짜 X 같은 시스템이구만.”
“동의합니다. 이런 끔찍한 걸 불시로 겪어야 한다니…… 설마 취침 시간에도 그런 건 아니겠죠?”
“소환은 일과 시간에만 일어나니 그건 염려하지 말게.”
이런 부분에선 헛웃음이 나온다.
고독은 작은 부분에서 일말의 희망을 주는 듯하나, 결국 모든 것이 한 가지 의도로 귀결된다.
고통(苦痛).
희망은 절망을 위해, 휴식은 더 씁쓸하고 매캐한 고통을 위해 주어진다.
바로 삶이란 고통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 죽은 자들은 축복받은 이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멘록이 코를 슥 훑었다.
“그래도 한 건 했구만. 앞으로 이런 식이라면 해 볼 만하겠는걸?”
“다시 겪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면…… 그래도 이겨 내야죠.”
두 사람은 한숨 놓았다는 듯이 긴장을 풀었다.
그러나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란 걸 기억하게.”
파아아앗.
아겔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감방 중앙에서 다시 한번 빛이 솟아올랐다.
“뭐, 뭐야…… 왜 또 빛이.”
빛이 점점 솟아오르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프로그맨이 소환되었던 아까와 비슷하게 무언가의 모습이 마법진 위에 있었다.
“끌끌, 오늘 작정했구먼. 두 번째 소환일세.”
“뭐, 뭐?! 씨발 이걸 한 번 더 한다고?”
치이이익…….
조그마한 거북이처럼 생긴 무언가가 불그스름하게 빛났다.
그 순간.
화륵……! 쿠와아아아아아아--!
입에서 뜨거운 화염이 터져 나왔고, 열기가 사방을 잠식했다.
“씨발, 이번엔 불이냐!”
“도망쳐야 합니다!”
화염은 10미터가 넘게 직선으로 뿜어져 나갔다.
“저런 화염이라면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녹을 거예요!”
무작정 뛰기 시작한 두 사람에게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오게나!”
아겔이 철창문을 향해 뛰고 있었다.
두 수인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쪽을 향해 냅다 달렸다.
쿠화아아아아아아악-!
사람 머리만 한 거북이는 주변에 있는 시체와 죄수들을 전부 화염으로 태워 버렸고.
문을 향해 뛰는 두 수인을 향해서도 불을 뿜었다.
화염이 닿진 않았지만, 뜨거운 열기가 그들의 등을 위협했다.
“씨발, 뜨거워!”
뒤처지는 멘록을 호루크가 격려했다.
“더, 더 빨리 뛰어야 합니다……! 열기에 노출되면 통구이가 되고 말 겁니다!”
“나도 알아! 내 등이 그렇다는데?!”
이미 철창문 앞에 도착해 있는 노인.
수인들이 헉헉대며 근처까지 다가오자 그는 철창문을 잡고.
철컹!
열어 버렸다.
“이리로 나오게!”
노인이 철창문 바깥에서 손짓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