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9)화 (10/186)

9화 복도 (1)

세 사람은 감방 밖 복도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철창문 옆쪽으로 퍼져 복도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치이이익.

“헉헉…….”

멘록은 위험했다.

등에서 열기가 날 정도로 그을렸는데, 조금만 늦었더라면 척추가 익었을 것이다.

“씨발, 뭐 저런 게 다 있어. 대갈통만 한 거북이가 불을 내뿜어? 화염방사기 저리 가라잖아…….”

“위험할 뻔했습니다. 원래 소환이란 게 연속으로 두 번 있을 수도 있습니까?”

“세 번까지 경험해 봤네.”

그 말에 호루크와 멘록은 텁텁한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으로도 목숨이 간당간당한데, 두 번씩이나 고비를 넘겨야 한다니.

아겔이 말했다.

“그래도 ‘작은불거북’은 쉬운 편이지. 처음에만 저렇게 불을 내뿜고 점점 사그라들 거라네.”

“저게 쉬운 거면 다른 건 얼마나 X 같은 거야? 차라리 개구리 새끼가 더 쉬웠어.”

‘과연 그럴까요.’

멘록의 말에 호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공략법을 몰랐다고 생각했을 때, 프로그맨이 훨씬 상대하기 어려운 마물이다.

아겔이 나서지 않았다면 감방에 있던 자들은 모두 몰살당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호루크는 어둠이 가득한 복도를 바라보았다.

복도 중앙에 팻말이 걸려 있었다.

[하급 복도 6883]

팻말 밑으론 뭔가 할퀸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복도도 상중하로 구분해 놓은 것 같았다.

팻말이 붙어 있는 벽과 감방 사이의 거리는 5미터 정도였고, 양옆으로 길게 죽 늘어서 있었다.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문은 어떻게 여신 겁니까?”

“애초에 문은 잠겨 있지 않네.”

아겔이 쇠창살 문을 잡고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 모습에 멘록과 호루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잠금장치가 없잖아?”

“이러면 쇠창살 문을 뭐하러…….”

아겔이 대답했다.

“그야 감방 안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니까.”

“안전…… 하다고요……?”

사아아아아…….

흠칫.

순간 소름이 돋는 기운을 느낀 호루크가 복도 저편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팻말 위에 마법 횃불이 있는 복도지만, 감방보다 어두웠다.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멘록이 투덜거렸다.

“시벌, 불 뿜는 괴물 새끼가 있는데 감방이 뭐가 안전하다는 거야. 차라리 복도를 돌아다니는 게 낫지.”

코뿔소 수인은 비아냥거렸지만, 호루크는 생각이 달랐다.

취침 시간에 일어서 돌아다니는 데도 전기 충격에 당하지 않았고.

프로그맨을 정확하게 공략하며.

감방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아겔이다.

게다가 방금 느껴진 소름 돋는 기운까지.

감방 안이 복도보다 안전하다는 말은 반드시 사실이리라.

‘이젠 영감님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렸군요.’

사실 멘록도 겉으로만 투덜거린 것이지, 급할 때 아겔의 말을 따라 나온 것을 보면 그를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멘록이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노인네.”

“아까 말했지 않은가. 놈은 처음에만 화력이 극에 달하네. 기다려야지.”

“끄응…… 언제쯤 편히 쉴 수 있는 거야…….”

…….

적막한 시간이 이어졌다.

멘록은 아무 생각이 없는지,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아겔은 복도의 팻말 밑을 손으로 한 번 쓸더니, 벽에 붙어 감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유의해서 듣는 모습이었다.

호루크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숨쉬기가 힘든 겁니까…….’

복도의 어둠은 감방 안보다 진득했다.

열 발자국만 걸어도 어둠 속으로 묻혀 버릴 것만 같은 절망적인 시야였다.

호루크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부리를 열었다.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이겨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영감님. 왜 복도가 감방보다 위험한 것입니까?”

“흠, 좋은 질문일세. 아는 대로 설명해 주겠네.”

그 말에 멘록도 귀를 쫑긋 세웠다.

아겔이 손가락 하나를 폈다.

“첫째, 복도는 감방보다 어둡네.”

“뭐야, 그건 눈이 안 좋은 나도 알겠어. 겨우 어둡다는 게 위험하다는 의미야?”

아겔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독의 어둠을 무시하지 말게. 오히려 어두운 정도로 위험도를 판단하는 게 신뢰도가 있을 때도 있네.”

“흠, 믿기 어려운걸. 그냥 겁쟁이들, 아니면 애들이나 어둠을 무서워하는 거 아니야?”

“고독은 모든 죄수를 겁쟁이로 만들지.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네.”

노인이 두 번째 손가락을 폈다.

“둘째, 우리도 나왔는데 다른 죄수는 복도로 못 나올 것 같나?”

“그건 맞네…….”

고독엔 수십만, 아니 어쩌면 수백만의 죄수가 있다.

그리고 죄수들은 급수대로 감방이 나뉘어 있다.

멘록과 호루크가 있는 감방은 [1-257] 감방.

죄수 중에도 가장 낮은 급수인 1급 감방 죄수라는 뜻이다.

“복도에서 상위 죄수를 마주칠 수도 있지.”

“잠깐, 그럼 그놈들이 우리 감방에 들어오면?”

“죄수는 각자 정해진 감방에만 들어갈 수 있네. 다른 곳에 들어가면 찌릿한 경험을 할 테지.”

다른 감방에 들어가면 전기 충격을 받는다는 소리였다.

멘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건 다행이네.”

아겔이 세 번째 손가락을 폈다.

“셋째, 고독의 모든 구조는 정기적으로 완전히 뒤바뀐다네.”

거대한 교도소의 구조는 모조리 뒤바뀐다.

지금은 [하급 복도 6883]과 [1-257 감방]이 붙어 있지만, 다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 또한 죄수들을 괴롭히기 위한 하나의 ‘시스템’.

변환(變換).

길을 잃어서 자신의 감방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대로 죽음이다.

“매달 길이 바뀌지. 이런 어두운 곳에서 길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지.”

“젠장, 완전 미로잖아.”

“그런 셈이지.”

아겔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넷째, 복도에는 아주 끔찍한 것들이 살고 있지. 복도를 돌아다니는 죄수들을 괴롭히기 위한 존재들이 있네.”

“풋, 뭐 귀신이라도 있다는 거야? 이거 원, 어린애 겁 주려는 것도 아니고.”

멘록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듯했지만, 아겔은 진지하기만 했다.

…….

코뿔소 수인의 표정이 굳었다.

“진짜야……?”

“그렇네. 복도엔 귀신, 아니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미지의 끔찍한 것들이 살지. 유쾌한 종류는 아니라네.”

“…….”

거짓일 가능성도 없지 않았지만, 여태껏 그가 보여 준 행보로 보아 왠지 사실인 것 같았다.

코뿔소 수인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망나서 헛소리하는 건 아니겠지…… ㅆㅂ, 귀신이라니…… 진짠가…….

아겔이 호루크를 바라보았다.

“궁금증이 조금 해소되었는가?”

“유익한 정보였습니다. 복도는 절대로 돌아다녀선 안 되겠군요.”

“그럴 수 있다면.”

“……?”

뭔가 있는 듯한 말투였지만, 노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쇠창살 안쪽을 보고 있었다.

사아아아아…….

‘……! 또 소름 돋는 기운이…….’

호루크는 양쪽으로 난 복도를 불안한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그의 좋은 눈이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어둠 속이었지만.

짐승적인 감각은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복도에 뭔가 있다.

분명하다.

심장이 두방망이질한다.

쿵쿵. 쿵쿵.

두렵다.

감정이 그의 머리를 지배했다.

‘감방 안으로 들어가야 해.’

그때, 감방 안에서 불을 뿜는 소리가 사라졌다.

호루크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영감님, 이제 안으로 들어가도 될…….”

고개를 돌려 영감을 바라보려 했다.

그러나.

“……!”

옆에 있던 아겔과 멘록이 사라졌다.

“여, 영감님? 멘록……!”

부리를 벌린 호루크는 바로 앞에 있는 팻말을 바라보았다.

[중급 복도 7316]

* * *

“젠장, 참새! 어딨냐!”

멘록이 복도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겔은 그가 소리를 지르는 걸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옮기미에게 당했군.’

복도 근처에 뭐가 있다는 건 진작 알았다.

다가오지 않기에 별로 위협적인 건 아니라 판단했더니, 놈의 정체는 옮기미였다.

복도에 사는 귀신, 옮기미.

직접 위해를 가하진 않으나, 장난처럼 죄수들의 위치를 순식간에 바꿔 버리곤 한다.

지금 눈앞에서 사라진 호루크처럼.

멘록이 머리를 박박 긁었다.

“젠장, 근데 진짜 찾을 수 있는 거 맞아?”

“찾는 건 걱정하지 말게.”

“옘병, 이렇게 넓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아깐 못 찾는다며?”

찾을 수는 있다.

문제는 발견했을 때 시체가 되어 있느냐 마느냐다.

오랜만에 재밌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냥 무시하긴 아쉬웠다.

게다가.

‘소장, 날 괜히 이 감방에 넣은 게 아니었구먼.’

감방 밖으로 나와 팻말 아래에 쓰인 글귀를 읽을 수 있었다.

오직 아겔만이 읽을 수 있는 ‘음각 문자’가 갱신되어 있었다.

[상품. 보관.]

두 단어만으로도 의중을 읽은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귀한 것을 하찮은 곳에 넣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소장이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 남긴 메시지.

어찌 보면 일방적인 명령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거래였다.

아겔과 거래하려는 자는 고독에 넘쳤다.

고블린 상인 제이콥만 해도 아겔과 거래했고, 수없이 많은 죄수가 아겔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늙은 죄수와 누구나 거래할 수는 없다.

그럴 가치가 있는 자만이 아겔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절대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는다.

부르르…….

살짝 떨려 오는 아겔의 손.

소장을 만날 때가 되긴 했다.

그는 노쇠한 육신을 억지로 이끌었다.

“끌끌, 보상은 확실히 받아 낼 거라네.”

“뭐? 보상이라니, 무슨 소리야.”

“혼잣말일세. 어서 가세.”

아겔은 복도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참새 친구에겐 좋은 경험이 되겠군.’

.

.

.

그 시각, 호루크는 점점 갑갑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벽을 따라 걷고 있었다.

“여긴 어딥니까…….”

복도는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고독은 세기의 대마법사들과 천재적인 전문 건축가들이 만든 미지의 장소라고 했다.

내부 관계자조차 다 알 수 없는 미궁.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그런 곳에 호루크는 혼자 남았다.

“큭…… 돌아가야 합니다…….”

복도의 어둠을 보고 걷자니, 자꾸만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반은 짐승인 그의 감각이 경고하고 있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라고.

안 그럼 죽는다고.

“…….”

[중급 복도 1968]

[4-998 감방]

[중급 복도 5693]

[5-124 감방]

아까부터 중급 복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중급 감방은 최소 ‘4’부터 시작이었다.

1, 2, 3이 하급, 그리고 4, 5, 6이 중급 감방.

가끔 마주치는 중급 죄수들의 감방은 고요할 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죄수들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4급 죄수는 1급 죄수보다 최대 1천 배는 강하다.

급수가 나눠진 기준은 10의 배수이니까.

손가락을 까닥하는 것만으로도 호루크는 갈기갈기 찢어질지도 모른다.

그는 감각을 최대한 발휘해 주변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있어 봤자,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일단은 나아 가야만 했다.

쿵……!

사아아아…….

때로는 복도의 어둠 저편에서 진동과 소름 돋는 기운이 몇 번씩이나 느껴졌다.

뭔가 싸우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가슴이 자꾸만 답답해져서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헉헉…….”

시야가 흐려졌다.

이미 사방이 어둠이라 아무것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나마 보였던 마법 횃불의 불빛마저 번지듯 보였다.

잠시 벽에 기대 심호흡하며 숨을 고르는 호루크.

그는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후, 진정하세요. 여긴 전장이 아닙니다. 그냥 감옥입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닙니다.’

고독에 수감되기 전, 호루크는 군인이었다.

하늘로 비상할 수 있어 정찰 임무를 맡은 비행 정찰 소대장이었다.

참혹한 전쟁의 양상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그는 가끔 꿈으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오면 이렇게 숨이 가빠지기도 했다.

마음을 다스린 호루크는 간신히 호흡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

눈앞에 커다란 하얀색이 있었다.

꿈틀거리는 근육도.

오우거.

고개를 올리자, 거대한 몽둥이를 든 오우거가 자신을 향해 무기를 내려치고 있었다.

“헉……!”

쾅!

호루크는 급히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오우거는 한 번에 맞추지 못했다는 걸 아쉬워하며, 몽둥이를 쓰다듬었다.

“크우우우…….”

“오우거도 있는 거였습니까…….”

5미터에 달하는 키와 무지막지한 근육, 강철보다 튼튼한 가죽.

3급 몬스터에 해당하는 오우거가 복도에 나타난 것이다.

‘이길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도망쳐야…….’

쿵.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반대쪽을 바라보자, 오우거가 한 마리 더 있었다.

진퇴양난.

덩치 큰 오우거는 얼핏 보면 느리다고 착각할 수 있으나, 빽빽한 근육 때문에 엄청난 속도를 지니고 있다.

“우워어어어어어!”

먹이를 발견한 포식자들이 달려들었다.

호루크는 날개를 파닥여 속도를 내, 들이닥치는 오우거들의 틈 사이로 빠져나가려 했다.

“큭……!”

그러나 다친 날개로 내는 속도는 한계가 있었다.

통증이 오른 날개를 타고 오른다.

결국, 오우거의 손에 몸통이 붙잡혔다.

“끄아아아아아악……!”

“우워-!”

호루크를 붙잡은 놈은 먹이를 잡아 기쁘다는 듯 포효했다.

반대쪽에 있던 오우거가 그 팔을 붙잡았다.

“우워?”

“우워……!”

“우워!!”

둘은 곧 누가 먼저 먹느냐를 가지고 싸우는 듯, 서로 몸을 밀치고 다투었다.

커다란 손에 붙잡혀 있는 호루크는 죽을 맛이었다.

‘끄으으으, 뼈가 부러질 것 같아…….’

어마어마한 악력이 붙잡고 있어서 탈출은 글렀다.

죽고 싶지 않다.

그러나 상황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오우거의 손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인가.

군인으로서의 냉철한 판단은 그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입니까…….’

마음이 절망으로 차오르기 시작한 그때.

쉬이이이이익……!

빠각!

“크우워……!!”

큰 타격음이 들렸고, 오우거의 하체가 흔들렸다.

오우거가 땅에 손을 짚으며 엎어졌고, 호루크는 바닥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헉헉…….”

겨우 살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사태의 원흉을 바라보았다.

얄궂은 목소리가 들렸다.

“휘유~ 베키 선수! 기선 제압에 성공합니다! 1루타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거 상대팀이 아주 긴장한 것 같은데요?”

앙증맞은 키의 아기 돼지 수인이 있었다.

키는 감방에서 보던 소년과 비슷했는데,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청년과 같은 느낌이었다.

얼굴은 귀여운 돼지였는데, 죄수복을 입은 몸은 호리호리하고 탄탄해 보였다.

아기 돼지 수인은 들고 있던 방망이를 붙잡고 뛰었다.

“베키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

다리가 부러진 오우거가 분노한 눈길로 베키를 향해 포효했다.

“쿠워어어어!”

돼지 수인은 오우거가 휘두른 거대한 몽둥이를 크게 도약해 피한 다음.

낙하하면서 엎드린 오우거의 허리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빠각!

“크웟……!”

“아, 3루타입니다! 송구 실책이에요!”

척추가 박살 난 오우거는 그대로 절명했다.

나머지 한 놈이 달려들었다.

“크워어어어억……!”

돼지 수인은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커다란 몽둥이를 허리 숙여 피한 다음, 오우거의 무릎을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다.

콰직!

오우거의 무릎이 반대로 접히며 쓰러졌다.

“2루타!”

호루크는 부리를 쩍 벌렸다.

‘맙소사!’

튼튼한 오우거의 몸을 저리 쉽게 박살 내는 것이 호루크에겐 신기(神技)처럼 보였다.

돼지 수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작심하고 오우거의 머리를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다.

쩌억!

오우거의 머리가 박살이 나며 그 잔해가 복도 위로 한가득 튀었다.

잔해의 비는 호루크에게도 떨어졌다.

“호옴~런!! 베키 선수 투런을 때려 버립니다! 아, 이 선수 훌륭해요. 역시 돔구장이 아니면 공이 쭉쭉 뻗어 나갑니다.”

그는 희희낙락 자신의 성과를 기뻐하더니, 이내 쓰러진 오우거에게 다가갔다.

쿠직.

그대로 오우거의 몸을 뜯어먹기 시작하는 죄수.

강철보다 튼튼하다는 오우거 가죽이 돼지 이빨에 갈려 나가고 있었다.

“우물우물…… 역시 시합 끝내고 먹는 회식이 진리입니다. 베키 선수 먹는 것도 야무지네요.”

호루크는 천천히 기어 가 한쪽 벽에 몸을 기대고 그를 바라보았다.

목에 찍혀 있는 낙인.

4-1895662452652

4급 죄수다.

호루크로선 감히 눈도 마주칠 수 없는 강자의 등장이었다.

그의 부리가 절로 열렸다.

“살려 주십시오…….”

“음?”

비는 수밖에 없다.

살려면.

그의 목숨은 오직 저 죄수의 손에 달려 있었다.

오우거를 씹어 먹던 4급 죄수가 방망이를 들고 왔다.

“어? 넌 뭐냐? 경기 끝났는데, 왜 안 돌아간 거야.”

“살려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전 이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누가 들으면 내가 살인자인 줄 알겠네.”

베키는 호루크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음……? 어……!”

표정이 미묘해진 그는 급히 호루크의 몸에 얼굴을 대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

킁킁!

이내 웃는 상이었던 얼굴이 싹 굳어 버린 그가 말했다.

“야, 너 뭐야.”

“예……?”

“왜 너한테서 그 노인네 냄새가 나는 거야.”

노인네라니.

호루크가 여기서 아는 노인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베키가 호루크의 멱살을 잡았다.

“너 그 노인네랑 무슨 관계야. 바른대로 말 안 하면 곱게 안 죽인다.”

“여, 영감님을 아십니까?”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진짜 끔찍하게 뒤지고 싶지 않으면.”

돼지 수인의 기세는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호루크는 뭔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손을 왜 떨지요……?’

위협하는 쪽이 오히려 손을 조금 떨고 있었다.

감정적이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니, 눈빛도 흔들리고 있었다.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은 불안감, 혹은.

‘공포?’

그때, 복도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 베키! 뭐 잡았냐? 좀 먼저 튀어 가지 말라니까!

-오우거 잡았나 봅니다. 오늘은 신께서 은총을 내려 주셨군요.

-무, 무서운 오우거……! 베키는 정말 대단해…… 그 위험한 오우거를 잡다니…….

호루크가 어둠 가득한 복도 쪽을 바라보았다.

4급 죄수 3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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