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0)화 (11/186)

10화 복도 (2)

호루크를 찾고 있는 멘록과 아겔.

복도의 어둠을 걷고 있었다.

멘록은 지친 발걸음을 옮기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제, 젠장…… 발이 안 움직여…….”

“…….”

두 사람은 호루크를 찾기 위해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숱한 일을 겪었다.

멘록은 처음 복도에 사는 괴물을 마주하고, 아겔의 경고를 인정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여기는…….”

“그러게 내가 뭐랬는가. 복도는 위험하다네.”

잠시 복도를 지난 것만으로도 멘록은 그 위험성을 몸소 체험했다.

그들이 만난 몬스터와 괴물들만 해도 대여섯 종류가 넘어갔다.

붉은 독침 고블린 무리.

사람의 얼굴을 한 거대한 인면주(人面蛛).

보라왕지네.

적도깨비.

괴질 원숭이 등.

하나같이 끔찍한 녀석들이었다.

절대로 프로그맨에 뒤처지지 않는 놈들이 복도엔 득실득실했다.

단신으로 인간 수십 명은 살해할 수 있을 만한 놈들이.

하지만.

멘록은 슬쩍 노인을 바라보았다.

‘저 노인네가 다 죽였어…….’

전부 아겔의 앞에서 죽었다.

노인은 놈들을 상대할 방법을 전부 알고 있었고, 아무리 해괴한 성질을 가진 놈들이라도 아겔이 나서면 손쓸 틈도 없이 당했다.

원래 그게 맞는 일이라는 듯.

그리고 정점은 마지막이었다.

복도엔 정말로 귀신이 있었다.

“이봐, 영감…… 그건 도대체 뭐였어……?”

싹둑싹둑.

기괴한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아겔과 멘록의 뒤를 쫓았었다.

적절하게 방향을 가늠한 아겔이 그걸 따돌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멘록은 그 섬뜩한 소리에 잘려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복도에 사는 귀신들은 전부 이름이 있지. 그 친구는 기수라고 부른다네.”

“기수……?”

“머리를 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

“…….”

멘록은 그 실체를 보진 못했다.

그러나 감각으로 느낀 그 귀신은 분명 키가 5~6미터는 되는 것 같았고, 거대한 가위를 들고 있었다.

아겔과 멘록의 자취를 따라오던 녀석은 이내 다른 사냥감을 발견하고 떠나는 것 같았다.

“놈이 우릴 발견하지 못해서 다행이지, 들켰다면 죽을 뻔했다네.”

실제로 이제껏 괴물들을 격파하며 오던 아겔이 놈을 상대하지 않고 도망을 택할 정도.

그런 귀신이 한가득 고독의 복도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멘록은 한숨을 내쉬었다.

복도 따위가 이렇게 무서운 곳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젠장, 다신 복도로 나오지 않을 거다.”

“복도가 무서운가?”

“그래, 이젠 무서워.”

“그래서 포기할 건가?”

멘록은 이 어둠 속에 혼자 떨어져 있을 참수리 수인을 떠올렸다.

그는 얼마나 고독할까.

영감 곁에 꼭 붙어 있는 그조차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곳인데.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냐는 말일세.”

“아니…….”

즉답이었지만, 멘록은 한순간 망설였다.

그래 봤자, 고독에서 처음 만난 인연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목숨을 걸고, 이 위험한 복도를 걸어야 하는 것일까.

멘록은 고개를 저었다.

‘뭐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멘록. 정신 똑바로 차려라.’

라이노족의 긍지가 그의 흔들리는 정신을 정자세로 일으킨다.

코뿔소 수인은 친구 하나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게 긍지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씨발, 그래도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친구 찾으러 나왔는데, 그냥 돌아가는 건 안 되지. 겁쟁이가 되고 싶진 않아.”

라이노족은 친구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멘록은 노인을 슬쩍 쳐다보았다.

‘무엇보다 당신도 있으니까.’

생각보다 노인은 의지가 되었다.

아니, 노인이 없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것만으로도 아겔의 곁에서 절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멘록이 보지 못하는 사이 미세한 웃음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충분하네. 그럼 다시 찾으러 가세.”

“끄응, 그래. 가 보자고. 근데 길은 진짜 잘 찾고 있는 거지?”

“곧 만날 수 있을 거네.”

노인이 뒷짐을 지고 먼저 길을 나섰다.

코뿔소 수인은 무릎을 툭툭 치며 그 뒤를 따랐다.

* * *

“당장 말하라고. 너 그 노인이랑 무슨 관계냐고.”

돼지 수인이 호루크의 멱살을 잡고 차갑게 타오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호루크는 떨리는 손으로 돼지 수인의 팔을 붙잡았다.

“큭…… 가, 같은 감방을 쓰는…….”

“그 사람이랑 같은 감방을 쓴다고? 거짓말하지 마.”

“저, 정말입니…… 커흑…….”

멱살이 강하게 잡혀 점점 숨이 조여 왔다.

“무슨 일이야, 베키. 이 1급짜리는 뭐고.”

두 명은 평범한 인간.

그리고 하나는 사람의 형상이긴 했지만, 머리에 촉수가 가득 달려 얼굴은 볼 수 없는 자였다.

그들 모두 목에 ‘4’라고 낙인이 찍혀 있었다.

인간 죄수 한 명이 말했다.

“오, 이거 새잖아. 오랜만에 치킨이냐?”

촉수 인간이 말했다.

“같은 죄수를 먹는 건 안 됩니다. 식인은 죄입니다.”

“뭔 상관이야. 맛만 있으면 괜찮잖아. 네 종교를 나한테 강요할 생각하지 마.”

-보먼, 무서워…….

호루크는 자신을 먹잇감 취급하며 대화하는 그들을 보고 벌벌 떨었다.

베키는 잠시 호루크를 노려보다가 이내 그의 멱살을 확 놔주었다.

“헉헉…….”

베키가 손을 털면서 말했다.

“이 새끼한테서 ‘그 노인네’ 냄새가 났어.”

베키는 노인네라는 말을 강조하듯 뱉어 냈다.

“뭐?”

“…….”

-……!

그 말을 듣는 순간, 죄수 3명의 표정이 싹 굳었다.

“히이이이익!”

4급 죄수 중 마른 몸 인간이 벌벌 떨며 벽에 붙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벽에 붙자마자, 작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수십 번 되풀이하는 죄수.

길쭉한 장신의 인간 죄수는 한숨을 쉬었다.

“우록. 영감이 나타난 것도 아니잖아. 그만 겁먹어, 이 겁쟁이 자식아.”

-주, 죽을지도 몰라. 그자는 인간이 아니야…… 도망쳐야 돼, 보먼…… 살려 줘, 살려 줘, 살려 줘…….

“하아…… 이 새끼 또 이러네.”

호루크는 침착하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영감님을 두려워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겁먹지 말라고 한 인간 죄수도 다리를 떨고 있었다.

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 오로지 촉수 인간밖에 없었다.

호루크는 침을 삼키고 말했다.

“다, 당신들은 아겔 영감님을 알고 계십니까?”

“새끼, 이름도 알고 있네. 알다마다. 모르는 새끼는 그냥 뒤지는 게 낫지.”

베키가 다시 오우거를 뜯어먹으며 말했다.

“씨발, 4급 중에서 노인네를 모르는 새끼들은 다 신삥들뿐이야. 그나저나 너희 안 먹어? 시간 없다. 어서 돌아가야 해.”

“벌써 돌아갈 시간이야?”

다리가 길쭉한 인간 죄수, 보먼은 베키 쪽으로 걸어가며 촉수 인간을 돌아보았다.

“안 먹냐, 키드?”

“저는 이분과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보먼.”

키드라 불린 촉수 인간은 호루크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적당히 가지고 놀아. 제기랄, 오랜만에 새고기 먹나 했는데, 노인네랑 엮인 놈이었다니.”

“가지고 놀다뇨.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리고 불쌍한 중생을 너무 겁주지 마십시오.”

촉수 인간 키드가 호루크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호루크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 끔찍한 외형 때문에 움찔했다.

“제 얼굴이 못나긴 하죠. 이해합니다.”

“아, 죄송…….”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익숙해져서요.”

그는 4급 죄수인데도 불구하고 호루크에게 꼬박꼬박 존댓말로 대답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죠. 아겔 영감님과 무슨 사이라고 했죠?”

“저는…….”

사실 특별한 사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같은 감방을 쓰고, 아겔 덕분에 목숨을 2번, 아니 3번이나 부지했다는 것뿐.

“같은 감방을 쓰는 동기입니다.”

“그리고요?”

“…….”

촉수 인간은 조심스럽게, 그리고 끈질기고 깊게 호루크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호루크는 천천히 아겔과 감방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왜 자신이 이렇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지 몰랐다.

그저 촉수 인간이 잘 들어 주었기 때문일까.

말을 할수록 답답했던 가슴이 트이고 편안해졌다.

…….

이야기를 마치고 고개를 들자, 어느새 다가와서 듣고 있던 돼지 수인과 긴 다리 죄수가 보였다.

“엇…….”

호루크는 움찔했지만, 그들은 해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닌 척했지만, 그들은 아겔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보먼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 그 노인네가 널 살려 줬다고? 사실 뒀다 먹으려고 했던 거 아니야? 나중에 신선하게 먹으려고 비상식량 만든 것 같은데.”

베키의 반응도 비슷했다.

“젠장, 늙더니 새 키우는 취미라도 생겼나 보지.”

벽 쪽에서 겁쟁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그럴 리 없어…… 그 노인네가 다 죽일 거야. 다 죽여 버릴 거라고…….

촉수 인간, 키드가 말했다.

“힘들 텐데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말할 때마다 촉수가 흔들렸다.

“원래 제가 알기로 아겔 영감님은 홀로 지내십니다. 운이 좋군요. 당신은 그의 눈에 띈 게 분명합니다.”

“예……?”

눈에 띄다니 무슨 소리일까.

호루크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키드가 말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아겔 영감님은 선인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감방 죄수를 몰살시키시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겨우 감방 죄수 죽이는 게 대수야? 그 노인네는 빌어먹을 학살자야. 잊은 건 아니겠지? ‘그 날’을.”

“…….”

보먼은 몸서리를 치며 아겔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호루크는 생각했다.

이들은 영감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

그도 알고 싶었다.

“영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십니까? 그분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키드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적어도 고독에서 수십 년 넘게 지내 온 죄수라는 것뿐…….”

촉수 인간은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주진 않았다.

그는 대신 경고했다.

“고독엔 아겔 영감님을 노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와 함께 다닌다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그런 ‘존재’들과 엮이게 되겠지요. 목숨이 수십 개라도 모자랄 겁니다.”

“무슨 존재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키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감히 눈조차 마주칠 수 없는 괴물들 말입니다. 부디 조심하기 바랍니다.”

자신보다 급수가 3개나 높은 죄수가 말한다.

그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존재들이 고독에 가득하다고.

키드는 품에서 두꺼운 책을 하나 꺼냈다.

표지엔 [소망의 서]라고 적혀 있었다.

“아겔 영감님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한 대가로…….”

그가 책을 펴더니, 호루크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책에서 연녹색 빛이 흘러나왔다.

파아아아아…….

“사누스 피에리…… 리레사타 아니모…….”

이내, 호루크는 프로그맨에게 입었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아…….”

답답했던 가슴도 점차 나아져 이젠 완전히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 기분마저 들었다.

“외상은 치유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마음이 편해지는 기도문을 읊었으니,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텁.

책을 품속에 집어넣은 키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죄수 3명은 커다란 오우거의 시체를 끌고 가고 있었다.

키드가 성호를 그었다.

“부디 소망의 성좌께서 당신께 은총을 베푸시길…….”

4급 죄수 4명이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호루크는 그들이 사라지자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몸은 다 나았다.

답답했던 가슴도 좀 괜찮아졌다.

움직이기 괜찮은 상태.

길을 찾아볼까 생각하던 그는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설마 또……?’

복도에 사는 괴물이 다가오는 것일까.

혹은 또 다른 죄수?

상관없다.

호루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죽어도 군인답게 싸우다 죽으리라.

몸도 나았겠다, 최대한의 저항은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을 굳게 먹은 그는 전투태세를 취하고 복도에서 걸어오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저벅.

이내 호루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여, 영감님……?”

“여기 있었구먼, 참새 친구. 찾느라 산보를 좀 길게 했구먼.”

“젠장. 빌어먹을 산책 한 번만 더 하면 곱게 못 뒤지겠네. 야, 참새! 괜찮냐!”

호루크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여긴 어떻게……?”

“그야 당연히 널 찾으러 왔지! 복도란 게 생각보다 엿 같은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군.”

참수리 수인의 눈이 흔들렸다.

“몸은 괜찮은가?”

천천히 걸어오는 봉두난발 노인.

눈이 없는 그는 정확히 호루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경험을 했구먼.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왜…… 절 찾으러 오셨습니까? 복도는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고 말씀하셨으면서.”

그라면 굳이 찾으러 오지 않아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신을 찾아 나섰단 말인가.

그저께까지만 해도 생면부지였던 그를.

노인은 흰 수염을 슥슥 쓰다듬었다.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내가 자네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 그게 중요한 것 아닌가.”

“…….”

“뭐 듣고 싶다면야.”

호루크의 눈이 아겔을 바라보았다.

초로를 훌쩍 넘긴 늙은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새 정이 들었다느니 같은 헛소리는 안 하겠네.”

“자네는 이 뚱뚱한 친구와 마찬가지로 쓸모 있어 보였기 때문일세.”

그 말에 호루크의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내 이리 늙었지만, 감 하나는 녹슬지 않았지. 자넨 쓸모 있네. 앞으로 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면. 난 투자를 아주 좋아하지. 그래서 자넬 구해 준 것뿐이네. 빚을 지우기 위해.”

순간, 호루크는 지난날 자신에게 쏟아졌던 상관의 폭언을 떠올렸다.

-쓸모없는 새끼! 임무를 완수하긴커녕 다 망쳐 놔?!

-임무에 실패한 넌 쓸모없는 버러지나 다름없다.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냐?

-병신 같은 새대가리. 그냥 짬통이나 날라라.

군인이었던 그의 가슴을 후벼 파는 언어의 칼날.

그때의 그는 표정조차 미동치 아니하고 칼날에 전신을 난자당해야만 했다.

“크흑…….”

호루크는 문득 울컥했다.

억울한 감정이 아니라, 쉽게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먹먹한 느낌 때문에.

실제로 그가 노인 곁에서 무언가를 해낸 건 아니었지만.

늙은 죄수는 그의 ‘가능성’을 보아 주었다.

그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호루크는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감사…… 합니다, 영감님…….”

“끌끌, 감사할 필요 없다네. 빚은 제대로 받아 낼 생각이니.”

호루크는 마음먹었다.

부릅뜬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말한 빚.

목숨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절대로 실망케 하지 않으리라.’

호루크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전직 군인은 지휘관께 마음속으로 경례를 올리고 쓰러졌다.

더 이상 정신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멘록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팔짱을 꼈다.

“얼씨구? X 빠지게 찾은 건 우린데, 왜 네가 기절하냐.”

“이 친구도 꽤 힘들었을 걸세. 고독에서 ‘혼자’라는 건 그런 거니까.”

멘록은 한숨을 쉬며 호루크를 업었고, 아겔은 복도 저편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

감방으로 돌아가는 도중.

아겔은 멘록이 업은 호루크를 바라보았다.

“흐음…….”

프로그맨에게 당한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깨끗하게.

마치 아무 상처도 없었다는 듯.

‘신성 치료의 흔적.’

누군가 호루크를 치유해 주었다.

마법이나 포션, 혹은 다른 약초로 치유해 준 것이 아닌 신성 치유가 분명하다.

신성 치유 능력은 오직 성좌에게로부터 나온다.

성좌를 믿는 믿음으로 사용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뿌드드득.

‘성좌라…….’

감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굳게 말린 아겔의 하얀 주먹엔 피가 돌지 않았다.

.

.

.

“끄으으으으…….”

복도를 배회하던 4급 죄수 무리.

촉수 인간 키드는 전신이 난자당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베키…… 보먼…….’

돼지 수인은 팔다리가 잘려 있었고, 장신의 인간은 목이 떨어져 있었다.

자신도 성좌의 힘으로 저항해 보았지만, 상대에겐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너무 ‘격’이 높은 귀신이었다.

까드드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가위가 저항할 틈도 없이 키드의 목 사이로 들어왔다.

싹둑!

데굴…….

촉수 인간의 머리가 잘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헤…… 헤헤…….”

겁쟁이 우록은 정신 나간 얼굴로 눈과 입에서 물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귀신’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킁킁, 냄새가 나…… 너희들에게서 분명 냄새가 났어…… 아까도 냄새가 났는데 못 찾았어…… 어디야? 어디에 있어……?]

귀신의 중얼거림을 들은 우록이 반사적으로 복도 어둠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히, 히히히…… 저, 저쪽에 있습니다. 저기에 아겔 영감과 관련이 있는 놈이 있어요…….”

[아겔? 아아, 아겔……?]

이름을 듣자, 귀신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아, 아겔……! 맞아!]

곧 격분한 표정으로 가위를 든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겔라스토스! 그 자식이야! 날 속인 놈! 당장 잘라서 죽여 버리겠어!! 끼아아아아아악-!]

공간이 진동하는 소음에 우록은 히히 웃으며 쪼그려 앉아 귀를 막았다.

귀신은 펄쩍펄쩍 걸으며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귀신이 사라진 자리는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히히히, 히히히힉…… 사, 살았다. 살았어…… 헤헤헤, 헤헤헤헤헤…….”

혼자 살아남은 죄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정신 나간 것처럼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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