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1)화 (12/186)

11화 복도 (3)

복도의 어둠을 뚫고 감방으로 되돌아가는 길.

익숙한 바닥의 촉감을 느끼며 아겔은 생각했다.

누가 호루크를 치유해 주었을까.

신성 치유를 사용할 줄 아는 죄수는 많지 않았다.

‘성좌를 믿는 죄수들은 많지만.’

죄수들이 모인 고독에도 성좌를 믿는 신도들은 많다.

그들은 대개 광신도들이며, 자신들을 구원할 성좌들의 손길만을 기다린다.

고독에서의 구원을, 현세에서 안 되면 내세에서라도.

대부분 사후세계를 보장받는다고 굳게 믿기에, 목숨까지 내던지는 위험한 놈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상대하기 더 까다로운 존재들이었다.

아겔은 깃털을 정리하는 호루크에게 다가갔다.

“참새 친구. 팔은 누가 치료해 줬지?”

그 말에 멘록은 그제야 눈치챘는지 눈이 살짝 커졌다.

“어? 그러고 보니까, 참새. 너 팔 벌써 나았네?”

“아, 이건 지나가던 죄수가 치료해 줬습니다. 소망의 성좌를 믿는 사람 같았는데, 얼굴에 촉수가 달렸더군요.”

아겔이 물었다.

“몇 급 죄수던가.”

“4급이었습니다. 저를 먹이로 생각하는 자도 있어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그 치료해 준 죄수가 절 보호해 줬습니다.”

“그렇구먼.”

아겔은 턱수염을 쓸었다.

4급 죄수라면 그리 걱정이 되진 않았다.

오히려 2급, 3급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죄수가 이 수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선 안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귀찮은 피라미가 달라붙는 건 질색이다.

아겔은 두 수인을 바라보았다.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살아남고자 하는 의욕도 그럭저럭 봐 줄 만하고.

정신 상태가 평범한 놈들은 첫날 좀비 떼가 나왔을 때부터, 삶에의 의욕을 잃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 둘은 나은 편이었다.

‘그러면 할 일은 정해졌구먼.’

참수리, 코뿔소 수인을 이제부터 그가 직접 기른다.

몇 번이고 해 오던 작업이라 그리 어려울 것은 없겠지만, 역시 하나가 걸린다.

그는 미세하게 떨리는 자신의 손을 느꼈다.

‘소장을 만나야 하는데.’

아직 이놈들은 연약하기 짝이 없다.

가만 내버려 두었다가, 첫날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그대로 죽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옆에 붙어 있어 줘야 한다.

‘그때까지는 버텨야겠구먼.’

크륵. 크르륵.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앞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조그마한 개의 얼굴을 가진 몬스터, 코볼트.

놈들은 나무 작대기나 버려진 철 같은 것을 들고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숫자는 많았다.

약하기에 무리를 이루어 사는 몬스터였다.

약한 놈들의 숙명이라고 할까.

물론 저런 녀석들도 하나씩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긴 하지만.

멘록과 호루크가 나섰다.

“이 정도는 우리도 할 수 있지.”

“맡겨 주십시오, 영감님.”

아겔은 뒷짐을 진 채로 코볼트를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 싸움은 두 수인에게 유리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몸이 튼튼한 멘록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호루크를 겨우 코볼트 무리 따위가 감당할 수는 없다.

“그나마 이 자식들은 X밥이네. 야야, 그쪽으로 간다!”

“문제없습니다.”

의욕이 넘쳐 보이는 호루크는 코볼트 무리를 거칠게 유린했다.

코볼트의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고, 나머지 놈들은 수인들의 공격성에 놀라 도망치기 바빴다.

“후, 끝났나.”

“어렵지 않았군요.”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자폭 코볼트라네. 곧 터질 테니 시체와 떨어지게나.”

“뭣?”

그의 말대로 코볼트의 시체들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어?”

“피, 피하십쇼!”

쾅쾅쾅!

멘록과 호루크는 혼비백산하여 이쪽으로 도망쳐 왔다.

간신히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난 그들은 숨을 골랐다.

“씨벌, 무슨 저딴 코볼트가 다 있어!”

“헉헉, 영감님 말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쯧.

복도에선 소란스럽게 굴면 좋지 않다.

소리를 듣고 뭐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

될 수 있으면 조용히 이동하는 게 상책이다.

‘가르칠 게 많겠어.’

쿵.

늙은 죄수의 생각대로 복도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트롤.

3미터는 되는 덩치의 트롤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크우우우……!”

“젠장, 트롤이야……!”

“트롤은 2급 몬스터입니다! 위험해요!”

“나도 알아, 인마!”

아겔은 허둥지둥 전투태세를 취하는 둘을 보고 혀를 찼다.

겨우 트롤 가지고 저 난리라니,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사람이 편의로 나눠 놓은 급수 따위는 잊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절대로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지 않는다.

당장 1급 죄수로 판명이 된 아겔도 트롤 정도는 혼자서 죽일 수 있다.

‘쓰면 뱉는 버릇부터 고쳐야 하거늘.’

방금 코볼트 무리는 수가 많더라도 만만해 보였기에 호루크와 멘록이 거리낌 없이 나섰다.

그러나 트롤이 나타났을 땐 주저한다.

코볼트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한 몬스터이니까.

그렇다면 트롤을 만나면 죽어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무너뜨릴 수 없는 건 아니다.

‘한 수 보여 주도록 할까.’

아겔이 나섰다.

“비키게.”

적의 강점에 덥석 겁을 먹는 건 별로 좋지 않다.

적이 강해도 나의 강점으로 싸우면 그만.

그게 싸움에서 이기는 법이다.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은 건가. 그런 마음가짐으론 고독에서 살아남을 수 없지. 이번엔 나 혼자 해보겠네.”

“불가능해! 혼자서 잡는 건 무리야!”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영감님!”

걱정이 어린 말에도 아겔은 굴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걱정은 짐일 뿐이다.

“진짜 위험한 건 위험하다는 걸 몰랐을 때이지, 알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 말에 호루크와 멘록은 더 적극적으로 아겔을 말리진 못했다.

달려갈 준비를 마친 아겔이 말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겠네.”

탓.

아겔이 발을 박찼다.

그는 트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와 날렵한 몸놀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단단한 벌레 단검까지.

트롤의 나무 몽둥이만큼 크진 않지만, 벌레 단검도 충분히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다.

사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말이다.

“명심하게, 트롤은…….”

아겔이 거칠게 휘둘러지는 나무 몽둥이를 피했다.

부웅!

그리고 달리던 속력 그대로 벽을 박차고 올라가 순식간에 트롤의 어깨로 도약했다.

“아주 느리다네.”

푹.

아겔의 벌레 단검이 트롤의 눈을 찔렀다.

시작부터 눈을 공격당할 줄은 몰랐는지, 트롤은 공격을 받고 격하게 반응했다.

“쿠워어어어억-!”

노인은 더 욕심부리지 않고 반격을 피하기 위해 곧바로 몸을 빼냈다.

“쿠우우우…….”

치이익.

몬스터의 눈이 회복되는 소리.

트롤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아겔을 따라가 죽이려 했지만, 이미 목적을 달성한 아겔은 뒤로 빠지고 있었다.

쫓아오는 속도는 살벌했지만, 아겔은 아슬아슬하게 간격을 유지했다.

나무 몽둥이는 아겔의 코앞을 지나갈 뿐이었다.

“적이 거칠게 나와도 마음이 흔들려선 안 되네.”

아겔은 다시 트롤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우우우……!”

트롤은 눈 한쪽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한 손은 눈을 가리고 있었다.

녀석은 무거운 나무 몽둥이를 한 손으로 휘둘러 아겔을 쫓아내려 했다.

하나 정확성이 엉망이었기에, 가까이 붙으려는 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멘록과 호루크는 넋을 놓고 아겔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상황은 정말로 아겔이 말하는 대로 흘러갔다.

치이이익.

“눈까지 재생된다고는 하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다 재생되기까지 시간도 걸리지.”

부웅!

“이리 정확도가 떨어지는 공격을 하면 오히려 틈을 볼 수 있네.”

휘청.

“한쪽 눈만 남았으니, 사각(死角)을 이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세.”

트롤은 처절하게 자신의 남은 눈을 보호하려 했지만, 아겔은 서두르지 않고 놈을 공략해 나갔다.

사각을 이용해 놈이 빙빙 돌게 했고, 공격이 빗나갈 때마다 차근차근 틈을 찔렀다.

복숭아뼈 아래를 찌르며.

오금을 찌르고.

겨드랑이와 맞닿는 팔 안쪽을 찌르고.

목을 찌른다.

트롤의 장점인 재생력이 퇴색될 정도로 빠른 공격이 들어와 몬스터의 자세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몸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힘을 가하는 부위가 모조리 찔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러난 커다란 틈을 아겔은 놓치지 않았다.

“어떤 상대든 작은 부분부터 무너뜨려야 한다네. 마치 도미노처럼 말일세.”

푸욱.

남은 한쪽 눈에 벌레 단검이 이전보다 깊게 들어갔다.

찌르자마자, 단검을 휘저은 아겔이 눈알과 함께 단검을 빼내었다.

“크워어어어…….”

단 5분 만에 2급 몬스터가 쓰러진다.

쿵.

“마지막으로…… 아무리 트롤이라도 뇌는 재생할 수 없지. 트롤을 잡을 때, 목을 자르거나 머리를 터뜨리는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야.”

확인 사살을 하듯, 아겔은 몇 번이나 죽은 트롤의 눈구멍을 통해 뇌를 헤집었다.

쯔걱쯔걱…….

아겔은 벌레 단검을 슥슥 트롤의 몸에 닦았다.

그리고 수인들을 돌아보았다.

한 번 보여 줬다.

상대를 공략하는 방법을.

이걸 보고 바로 따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범은 있어야 한다.

“좀 이해가 되었는가?”

그들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몇 초간 적막한 생각 속에 빠졌다.

침묵하던 멘록이 말했다.

“……영감. 혹시 몇 급 죄수야?”

“난 1급 죄수라네.”

“구라 치지 말고 진짜로.”

“거짓말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네.”

격분한 듯 멘록이 코를 푸륵거리며 말했다.

“젠장, 1급 죄수가 트롤을 어떻게 이겨? 호루크!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라. 영감은 목에 급수도 안 쓰여 있잖아!”

“그건 내가 고독에 들어온 것이 급수를 나누기 전이라 그런 게지.”

“뭔가 이상해. 영감 정도면 한 4~5급은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진짜 4~5급 죄수들은 나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하다네.”

멘록은 아겔이 1급 죄수란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가 1급이란 건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겔은 단 한 번도 ‘급수 변경’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런 멘록과 달리 호루크는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비슷하게 따라 할 순 있겠지만…… 제겐 효율적이지 않겠군요.”

아겔의 고개가 호루크 쪽으로 돌아갔다.

‘호오.’

효율적이지 않다라.

맥은 얼추 잡았다.

“그래. 이건 ‘내’가 트롤을 상대하는 방법이지, 자네들이 상대하는 방법은 아니라네.”

그러니까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스스로 장점을 살리고, 적의 강점을 깎아 버리는 것.

아주 작은 부분부터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싸움법.

그게 아겔이 고독에서 터득한 투술(鬪術)이었다.

“고독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걸세. 적의 강함이 내가 목숨을 포기할 이유가 되진 못한다는 것을. 인위로 나뉜 급수에 휘둘리지 말게.”

“쳇, 알겠다고…….”

“훌륭한 말씀입니다. 마음에 새겨 넣도록 하겠습니다.”

멘록은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었지만, 호루크는 감명 깊은 얼굴로 아겔을 보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반응은 상반되었지만, 사실 멘록도 아겔이 트롤과 싸우던 장면을 복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가 말한 부분을 자신에게도 적용하기 위함이었다.

얼마간 생각하던 코뿔소 수인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끙, 생각만 하는 건 대갈통 아파. 몇 번 하다 보면 되겠지.”

“옮은 말일세. 실전 경험도 중요한 법이지.”

퍽.

멘록이 두 주먹을 부딪쳤다.

“그래, 직접 싸우는 게 나아. 다음은 내가 혼자서 상대해 본다. 참새 너는 그다음에 해라.”

“응원하겠습니다.”

“후우, 어떤 새끼가 나와도 이겨 주마.”

아겔의 고개가 복도의 한쪽으로 돌아갔다.

“마침 좋은 상대가 온 것 같은데. 기대해 보겠네.”

“뭐? 벌써 또 뭐가 나타난 거야?”

노인의 말을 증명하듯이 저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작았던 발소리는 점차 묵직한 것으로 변해 갔다.

발소리가 커질수록 의욕 넘치던 멘록의 표정이 풀어졌다.

“어……?”

얼빠진 표정을 하는 멘록.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건 흰색 피부를 가진 오우거였다.

“크르르르…….”

아겔은 멘록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지금 자네에게 딱 어울리는 상대 같구먼.”

“……영감.”

“음? 왜 그러는가.”

“참새가 먼저 하겠대.”

호루크는 즉시 부정했다.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코뿔소 수인이 점점 다가오는 오우거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아니, 잠깐. 오우거는 무리야. 영감이 해. 오우거 이길 수 있지?”

“사내대장부가 자신이 한 말을 어길 셈인가?”

“장난치지 마, 영감. 아니, 영감님. 도와줘. 도와주세요.”

“파이팅일세.”

“제기랄!”

더는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오우거가 달려들었다.

“쿠워어어어억!”

멘록은 하는 수 없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오우거를 향해 마주 돌진했다.

“씨바아아아아아-!”

* * *

“허억허억…….”

멘록이 기진맥진한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 옆엔 흰 피부 오우거가 죽어 있었다.

두개골이 박살 났는지, 머리가 움푹 들어가 있었는데, 확실히 멘록의 뿔이 들이받은 모양새였다.

“씨, 씨발…… 해냈다…….”

코뿔소 수인은 오우거를 이겨 내는 데 성공했다.

말이 되지 않는 성과였다.

겨우 1급 죄수에 불과한 그가 급수 상으론 100배나 더 강한 오우거를 이기다니.

게다가 힘 대 힘의 대결이라면, 힘의 총량이나 체급이 더 높은 쪽이 이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멘록은 그걸 해냈다.

“개 같은 민둥머리 자식아! 내가 이겼다고!”

“축하하네. 다음엔 스스로 해 보게.”

물론 아겔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아직 두 급수나 뛰어넘기는 힘들 것이라 판단한 아겔은 가만히 있진 않았다.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늙은 죄수는 오우거의 방어를 뚫고 놈의 두 눈을 찔러 버렸다.

도움은 거기까지.

눈을 제거한 후에는 오로지 멘록의 몫이었다.

시각을 제했는데도 오우거는 미친 듯한 육체 능력을 보이며 멘록과 육탄전을 벌였다.

눈을 잃어서 그런지 더욱 흉폭했는데, 멘록은 열이 끝까지 받은 놈과 싸우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결국 골통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제길, 그래도 아직 혼자선 무리겠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호루크가 격려하듯 말했다.

그는 오우거와 싸워 이긴 멘록을 보고 의욕이 생겼는지 앞서 나갔다.

“다음에 나오는 게 있으면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얼마 안 가면 다시 감방이 나올 것이다.

참새도 한 번 단련시켜 주고 돌아가는 게 나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감방에 소환된 작은불거북도 힘을 소진했을 테니,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다.

‘돌아가면 좀 쉬어야겠…… 음……?’

아겔은 뒤에서 느껴지는 섬찟한 기운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싹둑.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서 들리는 가장 공포스러운 소리가.

‘이런…….’

싹둑.

싹둑.

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마치 쫓아오듯이.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아는 듯이.

그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온다.

녀석이 오고 있다.

“달리게.”

호루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

“지금 당장 뛰게나!”

탓.

아겔이 먼저 뛰었다.

멘록과 호루크는 영문을 모르고 그의 뒤를 쫓았다.

“제길, 영감! 갑자기 왜 뛰라는 거야! 나 힘들어 죽겠다고!”

“잔말 말고 뛰게. 안 그럼…….”

싹둑.

싹둑.

싹둑.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이제는 수인들도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소리의 근원은 무서울 정도로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싹둑.

두 수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헉……!”

“이, 이런 씨발……! 저게 뭐야!”

오우거 몸통도 순식간에 잘라 버릴 만큼 거대한 가위를 든 귀신이 따라오고 있었다.

입고 있는 소복 위로 드러난 인간의 것이라 보기 어려운 비정상적으로 여위고 길쭉한 사지.

늘어뜨린 긴 흑발 안에서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겔라스토스-----!! 여기에 있었구나!!]

그러지 못해 한이 된 것처럼 귀신은 두 손으로 마구 가위를 놀렸다.

[죽여 버리겠어---!!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복도를 한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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