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2)화 (13/186)

12화 복도 (4)

복도를 줄기차게 달리는 세 사람.

단 한 순간이라도 멈춰 설 수가 없었다.

멈추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저 가위에 온몸이 토막 나고 말 테니까.

싹둑싹둑싹둑싹둑.

공포스러운 가위 소리가 끊이지 않고 뒤에서 들려왔다.

[거기 서라------!!]

쨍한 귀신의 목소리 때문에 멘록과 호루크는 귀를 붙잡고 뛰었다.

“저, 저거 어떻게 해야 돼!”

속도가 너무 빠르다.

비정상적으로 긴 다리는 세 사람이 전력으로 질주하는 거리를 몇 발자국만으로 따라잡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가위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이대로라면 잡힐 겁니다!”

“어떻게 방법 없어, 영감?!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 말이야!”

“하급 죄수가 귀신을 물리칠 방법은 없다네.”

“제기랄!”

하급 죄수가 귀신을 홀로 상대하는 건 무리다.

옮기미처럼 해를 끼치지 않는 귀신이라면 좋겠지만, 저건 명백한 살인 기계다.

그들은 살아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갈기갈기 찢는 존재.

복도에 사는 귀신들은 5급 이상의 괴물들이다.

일단 잡히면 살기 힘들다고 보는 게 옳다.

“복도에서 귀신을 마주치면 반드시 도망쳐야 한다네. 다른 방법은 없지.”

이것이 복도에 돌아다니는 게 위험한 이유다.

하급 죄수라도 몬스터는 그럭저럭 물리칠 수 있다.

하나 귀신은 손쉽게 물리칠 수가 없다.

성좌에게 선택받아 신성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몰라도.

늙은 죄수는 뒤에서 뛰는 두 수인의 발걸음 소리를 가늠했다.

이들은 체력이 좋지 않아서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특히 멘록이 뒤처지고 있다.

오우거와 사투를 벌이느라 체력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키우기로 했는데, 여기서 죽어 버리면 투자한 시간이 아까웠다.

‘따로 가야겠구먼.’

마침 복도 어둠 저편에서 갈림길이 느껴졌다.

두 갈래 길.

갈래 길 앞쪽은 어둠만 가득했지만, 아겔은 그 뒤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왼쪽으로 가면 감방으로 돌아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된다.

“참새 친구.”

“예!”

“이번 갈림길부터 왼쪽 왼쪽 오른쪽으로 가게.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지.”

“다른 방향으로 가시겠다고요? 혼자서 말입니까?”

탓.

아겔은 되묻는 호루크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늙은 죄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갔다.

그러자 귀신도 아겔을 따라 오른쪽 갈림길로 쑥 들어가 버렸다.

[내가 못 잡을 줄 알아-?! 얌전히 잡히면 목은 안 자를게---! 발만 자른다니까아---!!]

쿵!쿵!쿵!

거구의 귀신이 뛰는 소리가 점차 옅어지고, 곧 복도는 다시 적막함으로 차올랐다.

…….

“헉헉…….”

두 수인은 잠시 멈추어 흠뻑 땀을 흘린 채로 숨을 골랐다.

뭐라도 해 보기 전에 상황이 급격하게 들이닥쳤다.

아니, 뭘 해 보자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뒤에서 쫓아오던 귀신은 그만큼 공포스러웠으니까.

“씨발, 저게 귀신이라고……? 복도엔 저런 게 한가득 있다는 거지?”

“후우, 영감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젠장…….”

멘록이 코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찾으러 가야 하나? 벌써 멀어진 것 같은데…….”

호루크는 고개를 들어 오른쪽 갈림길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어 그 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요. 찾으러 가면 안 됩니다.”

그 말에 멘록이 눈살을 찌푸렸다.

“영감을 버리잔 거야?”

“그게 아닙니다.”

호루크는 냉혈한처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은 아겔을 찾으러 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영감님은 고독에서 감히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래 사셨습니다. 귀신도 여러 번 마주쳤겠죠.”

“아, 확실히…… ”

귀신이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데도 그의 태도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이전에도 수십 번이나 경험해 봤다는 듯이.

“분명 시간을 끌기 위해 단독으로 움직이신 걸 겁니다. 우리 체력이 떨어졌으니 붙잡혀 죽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신 것이겠죠.”

멘록이 몸을 떨었다.

“젠장, 확실히 가위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오긴 했어. 조금만 늦었다면 붙잡혔겠지. 아직도 소름이 돋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빨리 감방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감님도 그걸 바라고 계실 겁니다. 우린 그에게 명백히 ‘짐’이니까요.”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강한 두 사람이었지만, 이곳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았다.

노인이 보여 준 모습과 자신들의 모습.

대놓고 비교하지 않아도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감방으로 돌아갑시다, 멘록. 여기서 오래 머물면 위험해요.”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호루크는 오른쪽 갈림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길…….’

두 사람은 충분히 숨을 고르고 왼쪽 갈림길을 향해 달려갔다.

* * *

간수 림몰은 맥주를 2병 들고 CCTV실로 향했다.

근무 교대 때 들고 오라는 선배 간수의 말 때문이었다.

귀찮다고 생각했으나, 선배니까 이해하려 했다.

그는 적어도 그보다 고독에 3년은 더 오래 있었던 선배니까.

이제 막 몇 개월 지나지 않은 림몰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도 그가 고독에서 근무해 온 시간 때문이었다.

림몰은 CCTV실 앞에 도착하고 무전기를 꺼냈다.

“후우, 도착했습니다.”

달칵.

그가 말하자마자, 문이 열리는 CCTV실.

“어, 왔냐.”

오직 안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의 CCTV실은 24시간 돌아갔다.

림몰은 CCTV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안에는 수십 대의 컴퓨터 화면이 존재하고 있었다.

비춰 주는 카메라는 움직이기도 하는지, 화면이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림몰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카메라엔 이상이 없군요.”

고독의 CCTV실은 교소도의 모든 부분을 보여 준다.

하급으로부터 시작되어 상급 죄수들의 감방, 특수 감방, 독방, 투기장 그리고 폐쇄 구역과 나락까지.

이곳에 앉아 있으면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볼 수 있다.

퐁.

선배 간수, 호게스는 교대할 생각은 안 하고 림몰의 손에 있는 맥주병을 빼앗아 뚜껑을 땄다.

꿀꺽꿀꺽꿀꺽.

그는 단번에 탄산 가득한 맥주를 쭉 들이켜면서도 시선은 CCTV에서 떼지 않는다.

직업 정신이 투철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교대 안 하십니까, 선배?”

“잠깐만.”

그의 시선은 CCTV 카메라 하나에 고정되어 있었다.

자연히 림몰의 시선도 거기로 향했다.

“잘 봐. 진귀한 장면이니까.”

림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카메라 속 인물을 바라보았다.

늙은 죄수 하나가 귀신에게 쫓기고 있었다.

“이건…… 51번 아닙니까?”

“그래, 아겔 영감이야. 영감이 귀신에게 쫓기는 건 진짜 오랜만이네.”

움직이는 CCTV는 도망치는 아겔의 모습을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림몰도 맥주병을 따고 한 모금 들이켰다.

“운이 없군요. 하필이면 귀신에게 쫓기다니. 곧 죽겠습니다.”

“……?”

호게스가 앉은 의자에서 고개를 들고 눈썹을 치켜떴다.

“야, 51번 복역 기간 몇 년이야.”

“64년입니다.”

“저 영감탱이가 귀신한테 뒤질 것 같아?”

“…….”

51번이 고독에 들어온 지도 오래되긴 했다.

그러나 림몰은 그가 귀신에게까지 살아남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됩니다. 며칠 전에 직접 귀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저 녀석 기수를요. 저놈을 마주치고도 5급 미만의 죄수가 살아남을 리 없습니다.”

“새끼, 쫄았네. 귀신이 무섭냐?”

“……전혀요. 선배는 만나자마자 오줌을 지리시겠지만 말입니다.”

“헤, 난 귀신이랑 붙어도 이기거든? 저런 육체류는 특히 더.”

간수들은 복도를 돌아다녀도 성좌 교단이 지급한 ‘수호부(守護符)’ 덕에 귀신에게 공격받지 않는다.

작은 부적은 신성력을 품고 있는 아티펙트이며, 귀신은 범접할 수 없는 성좌의 힘이 담긴 것이니까.

“우린 수호부가 있지만, 죄수들은 귀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전혀 없어. 특히나 저런 육체류 귀신은 힘으로 못 꺾으면 바로 끔살이지.”

호게스가 씩 웃었다.

“하지만 우리 아겔 영감은 달라. 내기할래? 저기서 영감이 죽을지 안 죽을지.”

“받아들이겠습니다. 라테 맥주 500병.”

“세게 나오는데? 받고 500병 더.”

“……이번 달 월급 마작에 반이나 날렸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감당됩니까?”

“다음 달 월급이라도 받아서 낼 테니 걱정하지 마. 그보다 할 거야, 말 거야?”

“콜입니다. 후회하셔도 절대 안 물러 줄 겁니다.”

호게스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이미 승리한 듯이 입술을 씰룩이며 미소를 지었다.

“훗. 새꺄, 땅을 치고 후회할 건 너다.”

호게스가 인수인계를 마치고 CCTV실에서 나왔다.

그는 휘파람을 불며 어두운 복도를 거닐었다.

맥주 1천 병을 받을 것에 신이 났다.

한동안 술값은 굳었다.

“어리바리한 신입 자식. 저 영감이 겁도 없이 복도를 돌아다니는데 이유도 없을 것 같냐.”

CCTV실 근무 교대가 완료되었다.

.

.

거친 박자로 뛰는 심장과 안정감 있는 호흡.

노쇠한 육신의 삐걱거리는 비명.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불협화음.

사지를 잘라 버릴 가위의 날카로운 멜로디.

아겔은 소리에 집중한 채로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거기 서라니까아아아아아아------!!]

마치 돌로 석벽을 긁는 듯한 거친 음색이 들려온다.

아겔은 귀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영체류였다면 벌써 붙잡혔겠구먼.’

벽을 뚫고 다니는 종류의 귀신이었다면, 이미 몇 번이라도 붙잡혔을 것이다.

지금 그가 멀쩡하게 도망칠 수 있는 건 이리저리 방향을 틀 때마다 귀신이 똑바로 쫓아왔기 때문이다.

대신 육신을 가진 귀신의 경우, 일반적으로 영체류 귀신보다 훨씬 강하다.

최소한 5급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간수와 비견할 만한 힘.

그러나 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탓.

달리던 그가 우뚝 멈추어 섰다.

그러자 무섭게 추격하던 귀신도 걸음을 늦추었다.

[킥킥, 포기한 거야? 숨이 차? 다리 아파? 잘라 줄까? 그럼 안 아플 텐데.]

귀신이 다가와 직경 1미터는 되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긴 장발 속의 충혈된 커다란 눈이 아겔의 얼굴 앞에 있었다.

[응? 왜 말이 없어? 유언도 안 남기고 싶어? 사람은 죽을 때 유언을 남긴다고 하던데?]

“자네는 날 죽이고 싶은가?”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귀신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넌 날 속였어! 네가 거짓말했잖아!]

쾅쾅쾅!

격분한 귀신이 가위를 마구 휘둘렀다.

아겔은 가위를 피해 물러났지만, 죄수복 상의가 베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군. 내가 언제 자네를 속였다는 거지?”

[4년 4개월 13일 3시간 45분 51초 전에 네가 말했잖아! 나랑 가위바위보 하면서 놀아 주겠다고. 4년 4개월 13일 3시간 45분 54초 전에 말한 것도 기억 못 하는 거야?]

기수와 약속을 한 적이 있던가.

머리를 자르는 귀신들, ‘기수’.

늙은 죄수의 기억엔 기수들과 대화를 나눈 적조차 없다.

‘뭔가 이상하구먼.’

귀신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특히 원귀의 경우 증오심과 원한에 심(心)과 혼(魂)이 휘둘려, 제대로 현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발언과 행동을 반복하고 생각하는 구조와 욕구의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그게 귀신이다.

‘하지만 날 알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가위 귀신은 그가 아겔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보자마자 아겔이라고 소리를 친 게 그 증거.

애초에 귀신이 아겔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누군가 아겔의 이름과 외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누가 보냈으려나.’

머릿속으로 고독의 정점에 위치하는 높은 급수의 죄수들 이름이 떠오른다.

몇 번이나 마주쳤던 위험한 인물들.

그들은 아겔을 노렸지만, 한 번도 빠져나가는 데 실패해 본 적은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살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중 하나를 떠올린 아겔이 입을 열었다.

“사돌인가?”

[…….]

순간, 귀신의 흔들거리는 몸이 멈추었다.

그러나 금방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돌? 그게 뭐야?]

“5년 전 애송이가 꽤 많이 컸구먼. 이젠 귀신도 부릴 줄 알고.”

귀신이 자꾸 멈칫하는 걸 느낀 아겔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귀신으로 하는 인형 놀이는 아직 익숙하진 않은가. 자네의 인(印)이 다 보인다네.”

그 말에 귀신이 몸을 완전히 멈추었다.

…….

분위기가 바뀌었다.

새빨갛게 충혈된 귀신의 눈동자에 다른 감정이 깃들었다.

귀신의 입이 죽 찢어졌다.

[……역시 대단해, 영감. 내 인은 어떻게 봤지?]

귀신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마치 젊은 남자의 목소리처럼 바뀐 목소리는 아겔을 알고 있는 듯했다.

[쉽게 볼 순 없었을 텐데. 어떻게 알아챈 거야.]

노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보긴 뭘 본다는 건가. 나는 눈이 없다는 걸 잊었는가.”

[……!]

“그냥 한 번 던져 봤을 뿐이네.”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대방은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 감춰진 것은 놀라움이라기보단 분노에 가까우리라.

“사령술사, 사돌.”

[날 속이다니…….]

“자네는 날 못 잡네. 모르겠는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상대방이 아겔을 사로잡으려는 시도는.

하나 아겔은 단 한 번도 상대의 손아귀에서 탈출에 실패한 적 없었다.

가위를 잡은 귀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뿌드득.

[이번엔 달라.]

귀신이 손 하나를 들어 주먹을 쥐었다.

[마침내 난 ‘복도의 귀신’들까지 조종할 수 있게 되었어. 아무리 영감이라도 도망칠 수 없을 거야.]

귀신을 조종할 수 있다는 말.

확실히 귀신을 부리는 능력은 위협적인 힘이다.

고독의 복도는 귀신과 몬스터가 가득 차 있는데, 그중 귀신을 부릴 수 있다는 건 복도에 나온 죄수들 대부분 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중급 죄수까지 말이다.

[게다가 나뿐만이 아니야. ‘괴물’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가 말하는 괴물은 복도에 사는 몬스터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독에 군림하는 괴물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송곳니’, ‘과학자’, 그리고 우리 ‘악마숭배자’까지.]

[아무리 영감이라도 절대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돌이 슬슬 구슬리는 말로 아겔을 유혹했다.

[포기하는 게 어때? 차라리 내 밑으로 들어와. 그럼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 테니까.]

확실히.

아무리 아겔이라도 급수가 5개씩이나 차이가 나는 자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다.

하나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겔은 다만 끌끌 웃으며 품에서 벌레 단검을 꺼냈다.

[……정말 해보겠단 거야, 영감?]

“못 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내가 조종하는 이놈은 5급이다. 부리기 전의 급수와 달라지지 않았어.]

“급수를 따지는 건 여전하구먼.”

그런 것으로 따졌으면 아겔은 이미 옛적에 죽었어야 했다.

숫자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순간 지는 거나 다름없다.

‘본질을 봐야지.’

겉으로 드러난 귀신의 외형 뒤에 있는 녀석.

녀석은 그래 봤자 20살 안팎의 겁쟁이다.

직접 오는 게 두려워서 귀신을 보내는 것을 보라.

“여기서 한참 나이를 먹으니 깨달은 게 있다네. 살고 싶으면 도망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지.”

늙은 죄수가 한 걸음 내디뎠다.

“하나.”

“지금은 굳이 도망갈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꼬마야.”

[크으으윽……! 아겔--!]

벌레 단검을 들고 아겔이 뛰었다.

늙은 죄수는 귀신의 머리카락에 가려진 이마를 향해 땅을 박차고 올랐다.

그곳에 흑마법의 인이 있었다.

귀신이 급하게 커다란 가위를 들었다.

그러나 대응은 이미 반 템포 늦었다.

“악마숭배자들에게 전하거라. 헛수고하지 말라고.”

[크아아악-! 언젠간 너를 반드시 붙잡고 말 테다---!!]

비명과도 같은 귀신의 목소리가 복도를 뒤덮었다.

싹둑!

촤악!

* * *

“헉헉…….”

멘록과 호루크는 복도를 헤매고 있었다.

미로 같은 복도는 어딜 가나 똑같은 모습이었기에 제대로 길을 들었어도 돌아보면 헷갈리는 곳이었다.

‘영감님을 따라다닐 땐 몰랐는데…… 이래서 복도에선 길을 찾는 게 불가능한 거군요…….’

특징적인 부분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똑같은 미로.

너비와 바닥, 일정한 간격마다 있는 마법 횃불.

다른 것이라곤 복도와 감방마다 걸려 있는 팻말의 글자뿐이었다.

멘록이 침을 퉷 뱉었다.

“젠장, 길 잘 든 거 맞지?”

“여태까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또 헷갈리는군요…….”

헤어지기 전, 아겔의 말대로 왼쪽 왼쪽 오른쪽으로 나아갔다.

이제 쭉 가면 감방이 나온다는 뜻.

그러나 앞에 가득한 어둠 때문에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또 답답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지만, 호루크는 애써 떨쳐 냈다.

나아가야만 한다.

영감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갑시다, 멘록.”

“제길, 알았어.”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걸을 때마다, 앞이나 뒤에서 오싹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들은 두려움을 참아 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마음가짐으로 그들은 나아갔다.

마침내 나타난, 새로운 마법 횃불.

겨우 200미터 정도를 걸었는데도, 한참이나 행군이라도 한 느낌이었다.

“저기 횃불이 있다. 감방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

“알겠습니다.”

호루크가 앞서서 걸어갔다.

그는 어둠 속을 걸어가다, 사람의 인형(人形)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가 있다……!’

재빨리 전투태세를 취한 호루크는 목소리를 듣고 이내 부리를 벌렸다.

“늦었구먼. 길을 알려 줘도 이리 늦으면 어쩌잔 말인가.”

“영감님!”

“뭐야, 영감! 살아 있었잖아! 어떻게 귀신한테서 살아남은 거야?”

“끌끌, 그럼 죽길 바랐나? 그보다 어서 감방으로 들어가세. 마물을 처리해야지.”

눈 없는 노인은 [1-257 감방]의 문을 열었다.

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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