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3)화 (14/186)

13화 새로운 감방 (1)

아겔은 감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여는 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무리했군.’

조종받는 귀신이라지만, 5급이다.

무려 네 단계나 격차가 존재한다.

1급 죄수인 그가 5급 귀신을 상대했는데, 몸에 무리가 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귀신을 처치하는 데는 성공했다.

조종을 받는 귀신이라 흑마법 술식이 새겨진 ‘인’을 훼손하기만 하면 되었으니.

귀신은 소멸되었고, 심지어 부리고 있던 사돌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가 갔으리라.

흑마법 중 ‘부림술’은 정신과 정신을 연결하는 방식일 테니, 강제로 연결이 끊기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념에서 벗어난 아겔이 감방 중앙을 둘러보았다.

이제 화력이 다 떨어졌을 ‘작은불거북’을 처리해야 한다.

그의 예상대로 화력이 다 떨어졌는지, 감방은 다시 차갑게 돌아와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내디디며, 노인은 마물의 기척을 살폈다.

‘음?’

마물의 기척이 없다.

놈이 살아 있다면 숨이라도 쉬고 있어야 할 터인데,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대신 마물의 것이 아니라 다른 소리가 들린다.

‘숨 쉬는 기척이 2개. 두 명이나 살아남았다는 건가?’

작은불거북이 내뿜은 불이라면, 열기 때문에 방 안에 있던 모든 게 익었어도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도 살아남았다는 건 그 정도는 견뎌 낼 수 있는 자라는 뜻이다.

중앙으로 이동한 아겔은 마물이 있던 자리를 확인했다.

‘호오, 직접 죽이기까지.’

처음에 화력을 쏟아붓는 놈이긴 해도, 뜨겁고 단단한 등딱지를 부숴야 죽일 수 있는 놈이다.

그런 놈이 등딱지가 개박살이 나고 내장까지 파헤쳐진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호기심이 솟는다.

곁에 다가온 호루크가 말했다.

“누가 한 거죠?”

“아마 감방에 우리 말고 생존자가 있었던 모양일세.”

“그런 실력자가 있었다니. 전혀 몰랐습니다. 누구일까요?”

이게 가능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겔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갈색 머리 청년의 곁에 머물던 금발 소년.

소년이 마물을 처리한 게 틀림없었다.

녀석은 ‘귀한 피’이니까.

‘역시.’

저 멀리 벽 쪽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소년과 벽에 기대 기절한 갈색 머리 청년이 보였다.

기척을 느낀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하는 얼굴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

소년의 눈은 짐승의 것을 하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그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다.

“크르르르…….”

겉모습은 소년 그대로였지만, 이성은 날아간 듯 짐승의 울음소리를 냈다.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바로 공격을 할 기세였다.

성인 웨어비스트도 수인화의 정신 부담을 견디지 못하는데, 하물며 꼬마가 버틸 수 있을까.

“뭐야, 이 꼬맹이. 정신줄을 놓은 것 같은데.”

소년은 커다란 멘록을 보고 달려들었다.

“크와아앙!”

“뭐야 정신 나갔냐?”

손톱이 날카롭게 솟아오르며 멘록의 몸을 향해 휘둘러졌다.

코뿔소 수인은 가소롭다는 듯이 그 공격을 맞아 주었다.

“흥, 그래 봤자, 살쾡이나 삵 종류 같은데, 그런 얄팍한 손톱으론…….”

촤악!

소년의 손톱에 멘록의 가죽이 갈라졌다.

“뭐야, 내 가죽에 상처를?!”

깜짝 놀란 그는 마구 휘둘러지는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곧 두 사람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크르르르…….”

소년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커다란 덩치의 멘록과 대등하게 힘을 냈다.

“말도 안 돼…… 꼬맹이 주제에 무슨 힘이……!”

아겔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평범한 웨어비스트가 아니다.

그를 보호하고 있는 갈색 머리 청년은 평범하지만, 소년은 갈래가 다르다.

복도 팻말 밑에 있던 음각 문자가 떠오르는 아겔이었다.

‘흠, 역시 이쪽이 상품이었나.’

늙은 죄수는 소년에게 접근해 발목을 걷어찼다.

“크왕!”

자빠졌다가 재빨리 일어서서 아겔을 향해 달려드는 소년.

그는 제멋대로 휘둘러지는 손톱 공격을 피하고, 소년의 뺨을 쳤다.

짝! 짝! 짝!

“정신 차려라. 너라면 할 수 있다.”

웨어비스트들은 불가능하나, 소년이라면 가능하다.

수인화를 하면서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

지금 비록 나이가 어려 수인화가 불가능하겠지만, 이성은 똑같이 잃은 상태다.

조금만 도와주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이 널 삼키게 두면 안 된다.”

짝짝짝!

소년은 체력이 다 했는지, 기세 좋게 달려들다가 이젠 아겔에게 뺨을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아겔은 본격적으로 소년의 몸 위에 올라타 뺨을 때렸다.

“크와아아앙!”

손톱을 휘둘러 반항하려 했지만, 아겔에게 닿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는 풀마운트 자세를 잡고 소년의 뺨을 후려쳤다.

“어어…… 영감,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멘록이 만류하는 듯했지만, 아겔은 듣지도 않고 뺨을 때리는 데 집중했다.

짝짝짝!

얼마나 맞았을까.

소년의 짐승 같은 눈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 어어…….”

아이가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보고 아겔은 곧바로 일어섰다.

뺨이 부푼 소년도 고개를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라졌던 이성이 반복되는 충격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아이의 눈이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

“아저씨들은…….”

“용케도 마물을 해치워 놓았더구나. 쓸 만한 실력이야.”

“마물……?”

소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마물을 상대할 때 정신이 날아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금발 소년은 곧장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살려 주셔서요…….”

아이는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세 사람이 마물을 해치워 줬다고 착각하는 듯했다.

아겔이 말했다.

“이름을 알고 싶구나.”

“아, 저는 세로에요…….”

“난 아겔이라고 한단다.”

“저…… 다른 사람은 없나요? 살아남은 사람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리라.

혹시 누군가 더 살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

그러나 고독은 속 편한 희망을 품어도 좋은 곳이 아니었다.

감방엔 작은불거북의 화염과 열기에 당한 시체들만 남아 있었다.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잿더미가 된 것들도 다수.

열기를 피해 벽을 긁거나, 위로 타고 올라가 보려 한 흔적도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아무도 감방문을 열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지 못해서 일어난 참사다.

화염을 피해 감방문 밖으로 나간 사람은 오직 아겔을 포함한 3명.

그리고 감방 안에서 초인적인 재생력과 힘으로 살아남은 2명.

“5명이 전부다.”

두 번이나 반복된 소환에 평범한 1급 죄수들은 전부 몰살당했다.

‘몇 번 경험이라도 해 봤다면, 몰살까지 가진 않았을 테지만.’

소환이라는 게 끔찍한 시스템이긴 해도 몇 번 겪다 보면 못 이겨 낼 것도 아니다.

애초에 소환되는 마물은 각 감방의 수준에 맞게 조정되니까.

그래도 이번 소환의 경우, 이 감방에 아겔이 있어서 소환의 난이도가 조금 어려웠을 수도 있다.

“고독의 현실이란다. 받아들이거라.”

“……약한 자는 죽는다는 거 말인가요?”

주먹을 쥔 소년은 고개를 떨구었다.

약자.

혹은 소수.

소년의 종족을 짐작해 보건대 이 종족은 명백한 소수 종족이다.

숫자가 적다는 건 그만큼 큰 집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

사람 대부분이 대(大)를 위해 소(小)의 가치를 쉽게 망각하거나 억지로 지워 버리곤 하니까.

아마 소년도 그런 일들을 당해 왔을 것이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란다.”

그 말에 고개를 든 소년의 눈은 물기로 차올라 있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이 찬 눈빛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노인의 메마른 목소리가 공허한 감방에 울렸다.

“고독에선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현실 말이다.”

매일 수없이 많은 죄수가 수감되는 교도소에선 그만큼 죽어 나간다.

급수가 어떠하든지.

성격이, 얼굴이, 능력이, 과거가, 인맥이, 매력이 어떻든지.

죽는다.

어둠이 그 장막으로 사망을 숨기고.

저항할 수 없는 찰나에 죄수들을 덮친다.

“그리고 고독에선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보다 더 괴롭단다.”

늙은 죄수는 소년을 두고 몸을 돌려 감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 * *

늦은 밤, 취침 시간이 되어 감방 안쪽에는 세 사람이 누워 있었다.

멘록은 뒤통수에 깍지를 끼고 말했다.

“영감. 내일도 그 결손 인원 보충? 뭐 그런 거 하려나?”

“아마도 그렇겠지. 고독엔 항상 많은 죄수가 들어오니까.”

‘고사형’ 판결을 받는 죄수들은 넘쳐 난다.

판결의 대상자는 오직 고독에만 수감되니, 이 넓은 우주에서 그 판결을 받는 자가 전부 고독으로 온다고 보면 된다.

개중엔 판사나 변호사, 실패한 정치인.

퇴물이 되어 범죄를 저지른 헌터나 모험가, 혹은 종교인도 있다.

가지각색의 직업과 인종, 과거와 사연을 가진 자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대개는 길게 살아남지 못한다.

최소한 싸울 줄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자만이 고독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문득 아겔이 말했다.

“고독의 죄수가 사망하는 가장 큰 원인이 뭐일 것 같나.”

“그야, 소환 같은 개떡 같은 시스템 때문이겠지.”

“복도에 돌아다니다가 가장 많이 죽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의 추측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틀렸다.

복도는 목숨을 잃기 위험한 곳이긴 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아니었고.

소환도 죄수들을 괴롭히기 위한 시스템이지 죽이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이번 소환 때는 ‘살상용 마물’을 보내서 그런 것이지, ‘비살상용 마물’을 보내었다면 더욱 끔찍한 광경을 보았으리라.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죄수들의 잔인한 모습을.

“죄수끼리 서로 죽인 게 가장 많지. 시스템으로 죽은 것보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많을 걸세. 특히 집단끼리 싸웠을 경우,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그럴 수가…… 간수들은 그런 걸 막지 않는 겁니까?”

멘록이 입술을 씰룩였다.

“제길, 이 쓰레기 같은 교도소에서 뭘 바라. 이런 곳에서 간수가 뿅 나타나 ‘죄수끼리는 싸우면 안 됩니다’라고 말해 주길 바라냐? 정신 차려, 여긴 고독이야.”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멘록의 말이 맞다.

여긴 고독이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오직 스스로 활로를 찾아내야 하는 험지.

물론 험지에서도 인간성은 드러난다.

도덕적인 인간은 같은 재소자에게 자비나 은혜를 베풀기도 하지만, 대게는 그런 것보단 증오와 탐욕, 분노, 질투로 서로를 대한다.

그 결과는 역시 사망과 살인이다.

“그러니 항상 처음 보는 죄수들을 조심하게. 여기서 가장 큰 적은 사람일세.”

“풋, 그럼 영감도 조심해야겠네. 도무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으니까.”

멘록이 이죽거렸다.

그와 반대로 호루크는 진지하게 아겔을 바라보았다.

“전 절대 영감님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쯧, 멋쟁이 군인 납셨네. 이봐, 영감. 그럼 만약 내가 배신하면 어떻게 할 거야?”

멘록이 장난기 섞인 말을 했다.

아겔이 입을 열었다.

“날 배신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네.”

“엥? 진짜로? 뭐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사귀었어?”

“날 배신한 놈들은 내가 전부 죽였기 때문이지.”

…….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돌아누운 코뿔소 수인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ㅅㅂ, 이승에 없다는 말이었냐…….

아겔이 말했다.

“후환을 남기지 말게. 오래 살고 싶으면.”

그 말을 끝으로 더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두 수인은 생각이 많아졌겠지만, 늙은 죄수는 편안히 생각을 정지했다.

고독의 밤이 깊어졌다.

.

.

.

취침 시간이 끝나자마자, 몸을 일으키는 아겔.

코뿔소 수인과 참수리 수인은 시간이 흐르며 더 강해지는 전기 충격을 온몸으로 느끼고 신음을 냈다.

“끄응, 이 X 같은 건 진짜 적응이 안 돼.”

“동감입니다…… 게다가 재가 너무 많아서 목이 아프군요.”

어제 너무 많은 일이 있었는지, 오늘은 더 일어나기 힘들어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아겔은 그들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 감방 중앙으로 걸어갔다.

감방 중앙엔 사람 2명이 보였다.

갈색 머리 청년과 금발 소년.

금발 소년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겔 할아버지.”

“오냐. 자네도 잘 잤나?”

“…….”

갈색 머리 청년은 잘 잤냐는 물음에 대답하진 않았다.

그저 가늘게 뜬 눈으로 아겔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이 많을 것이다.

그는 프로그맨을 상대하다가 기절했었고, 아마 그 후론 기억이 없을 것이다.

죄수복이 시꺼멓게 그을린 자신의 동생을 보고 놀랐을 테지만, 동생 또한 기억나는 게 없으니 상황 파악은 전혀 못 했겠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 줘.”

그는 자존심을 무릅쓰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겔이 태연하게 말했다.

“딱히 별일 없었네. 어제 일이 중요한가? 어쨌든 이리 살아남았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대답해 줘. 당신이 그 마물을 죽인 거야?”

청년이 집요한 얼굴로 물었다.

꼭 답을 듣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답을 들은 청년이 질문을 이었다.

“그 후로도 마물이 하나 더 나타났다고 들었어. 그것도?”

“그건 꼬마 친구가 했지.”

아겔의 말에 청년이 놀라 소년을 바라보았다.

꼬마 소년, 세로도 보름달 눈이 되었다.

기억이 없는 사이 자신이 마물을 해치웠다는 사실에 놀란 것일까.

청년은 떨떠름한 얼굴로 아겔을 다시 바라보았다.

“……고맙다. 우릴 살려 줘서.”

“무얼. 요즘 감사 인사를 많이 듣는구먼. 전혀 감사할 일이 아니건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아겔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다른 뜻은 없었다.

‘상품’과 굳이 반목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갈색 머리 청년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루카스다. 여긴 세로.”

“꼬마 친구의 이름은 어제 들었네. 난 아겔이라고 부르게.”

“아겔 영감이군.”

“다들 그렇게 부르지.”

통성명을 마친 그들은 잠시 잡담을 나누다가, 간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침 점호를 시작하겠다.

멘록은 뻐근한 전신을 두들기며 인상을 찌푸렸다.

좀비 때문에 거의 몰살당했던 감방이 오늘은 마물 때문에 떼거리로 죽었다.

그런데도 아침 점호는 정상적으로 했다.

-인원 파악을 실시하겠다.

-총원 91명, 사망 86, 현재원 5.

이틀 동안 이 감방에서만 죄수가 150명 이상 죽었다.

멘록은 고독에 온 지 40일 만에 이 교도소의 위험성을 ‘조금’ 이해했다.

150명이나 죽었는데, 간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점호를 한다.

몸이 절로 떨렸다.

‘참 X 같은 교도소야.’

코뿔소 수인은 지난번처럼 결손 인원을 보충하겠다는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간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현재원을 이감하겠다.

멘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 뭐? 이감하겠다고?”

아겔이 턱수염을 쓸었다.

이감은 다른 죄수들이 있는 방으로 이곳의 죄수들이 옮긴다는 뜻.

여러 감방을 오가는 아겔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이지만, 여태 이 감방에서만 있었을 4명은 아닐 것이다.

“잠깐 집중해 주겠나.”

늙은 죄수의 말에 4쌍의 시선이 모였다.

“이감된다면, 아마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이 크네.”

“뭐라고?”

갈색 머리 청년, 루카스의 눈이 커졌다.

그의 동생 세로도 형과 떨어지기 싫은지 두려운 눈빛이었다.

루카스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정말이야?”

“다섯 명이 한 감방으로 이감될 희망이라도 바라는가?”

“…….”

그제야 루카스는 자신이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이 입술을 짓씹었다.

고독이 죄수가 원하는 대로 해 줄 리가 만무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악을 가정해야 한다.

감방에 나뉘어 들어가게 되면 아무리 아겔이라도 큰 도리가 없다.

‘그저 각자 잘 살아남는 수밖에.’

그러나 지금 아겔이 이들을 불러 모은 건 속 편한 격려나 위로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없으니 잘 듣게. 곧 ‘방출’과 ‘개방’이 있을 거라네.”

“방출? 개방? 그게 뭔데.”

“그게 무엇인지는 직접 경험해 보면 알겠지.”

아겔은 멘록과 호루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방출’ 때라면 잘 살아남을 것이다.

문제는 개방이다.

“정글에 도착하면 반드시 바다가 있는 쪽으로 달리게. 반드시.”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정글이 어디 있어.”

“이해가 잘 가지 않습…….”

두 수인이 의문을 표할 때, 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감을 시작하겠다.

감방 중앙 마법진에서 터져 나오는 빛.

그들의 의문이 해소되기도 전에 빛이 그들의 몸을 집어삼켰다.

* * *

파아아아앗! 번쩍!

새로운 감방의 중앙에서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곧 그 위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겔은 새로운 감방에 도착했다.

‘흐음…….’

넓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 넓이가 5천 평은 될 법한 대형 감방.

죄수가 족히 수백 명은 될 것이다.

“여, 여긴…….”

아겔은 옆을 바라보았다.

금발 소년 꼬마와 함께 온 것 같았다.

그 뜻은.

‘진짜 상품은 요 꼬맹이라는 것이군.’

소장은 아겔을 주시한다.

아겔과 소년이 함께 왔다는 건, 이 소년을 보호하라는 뜻일 것이다.

빛이 사그라들자, 주변에서 죄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형 감방이라 그런지, 감방의 밝기가 밝았다.

수백 명의 죄수가 신입을 보기 위해서 천천히 걸어왔다.

-뭐야, 늙은이랑 애새끼?

-오오, 어린애다! 맛있겠다…….

-쳇, 어디 갖다 써먹지도 못 할 놈들이 왔네.

죄수들은 아겔과 세로를 보고 품평을 늘어놓았다.

개중엔 소년을 보고 침을 뚝뚝 흘리며 식욕을 드러내는 놈도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겁을 먹은 세로가 아겔에게 꼭 달라붙었다.

“하, 할아버지…… 무서워요…….”

아겔은 말없이 세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는 우선 소리로 어느 정도 감방의 상황을 파악했다.

‘대부분이 2급 죄수. 더러 3급도 있지만, 소수.’

혼자라면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만, 꼬맹이를 돌봐야 하니 아겔이라도 대비는 해야 한다.

“뭐야, 늙어 빠진 노인네랑 애새끼가 왔어? 정말 쓸 데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네.”

죄수들 한쪽에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해졌지만, 살짝 파여 노출이 있는 드레스를 입은 붉은 머리 여자.

허리엔 채찍을 차고 있었다.

새로운 죄수들이 이감되어 왔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 선 수십 명의 죄수가 맞장구치듯 말했다.

-맞습니다, 로스나 님. 참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놈들이네요.

-역시 안목이 뛰어나십니다.

-그냥 먹을까요? 구더기죽보단 맛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한 무리 죄수들의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어머, 저 노인네 봐. 눈엔 붕대를 감고 있네? 진짜 별꼴이야. 어떻게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

-몰골도 거지 같네요. 별 볼 일 없는 늙은이가 분명합니다.

-신경 쓰지 마시죠, 로스나 님. 곧 죽을 노인네일 뿐입니다.

아겔은 여자의 조롱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너 나 무시하는 거니? 늙어 빠져서 이젠 내 말도 안 들려? 내가 누군지 몰라? 야, 늙은이!”

아겔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그녀에게 잘 보이길 원했는지, 죄수 하나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로스나 님께서 말씀하시잖아.”

거칠게 아겔의 어깨를 붙잡는 죄수.

아겔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내 몸에 손대지 말게.”

“이런 늙은이가 진짜…… 주제 파악 못하냐? 감히 로스나 님을 거스르고도 무사히 지낼 수 있을…… 아아악!”

아겔은 그 팔을 붙잡아 몸을 돌려 꺾었다.

“아, 아악! 이, 이거 안 놔?”

“힘 빼게. 부러지니까.”

“크윽…… 좋은 말 할 때 놓?! 아, 아악……!”

한 손으로 남자의 팔을 꺾어 제압한 아겔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저 새끼가…….

수백의 죄수들이 아겔에게 적의를 가지고 달려들 기미를 보였다.

그 앞에서도 아겔은 태연하기만 했다.

로스나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다 늙은 영감탱이가 겁대가리가 없네?”

“저승사자 빼고는 딱히 무서운 게 없는 편이라.”

“그럼 오늘 하나 만들어 줘야겠네. 붙잡아 놓고 채찍으로 살점을 하나하나 떼 줄게.”

아겔을 보던 여자의 눈이 옆의 소년에게 향했다.

세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가학적인 탐욕이 들어 있었다.

“…….”

세로는 두려운 듯이 아겔의 뒤에서 그의 죄수복을 꼭 붙들고 있었다.

옷을 잡은 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어린아이라면 이런 상황이 두려울 법도 하다.

그러나 6개월만 지나도 여기 있는 모두가 이 아이 하나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아, 아겔 영감님?”

그때, 죄수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겔은 자신의 앞으로 떡대 큰 중년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덩치 큰 남자가 자신을 살피는 듯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아, 정말로 아겔 영감님이 맞으시군요…… 정말로 당신이셨군요…….”

“자네 누군가?”

아겔은 제압했던 죄수를 놔주었다.

“저 마곤입니다, 마곤. 당신이 정글에서 살려 주셨던…….”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먹먹해지는 게 들렸다.

감정이 벅차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아겔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뭐 하냐! 얼른 인사 안 드리고! 너희 큰 형님이시다!!”

그 말에 감방에 있던 죄수 수백 명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댔다.

“““““안녕하십니까, 큰형님!!!”””””

어마어마한 인사 소리가 우레처럼 감방에 울렸다.

수백 명의 죄수가 일제히 인사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쯧, 형님이라고 불릴 나이는 한참 지났건만.”

아겔은 혀를 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