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4)화 (15/186)

14화 새로운 감방 (2)

감방 전원의 시선이 아겔에게로 모여들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수백의 죄수.

그리고 그 선두에서 사각턱을 가진 마곤이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영감님은 잊으셨어도 전 잊지 않았습니다. 절 살려 주셨던 그 날을…….”

“내가 말인가?”

“예. 분명 영감님이셨습니다.”

아겔은 기억을 되돌려 보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마 그땐 원주민 사냥에 집중하느라 근처에 있던 마곤을 그냥 지나친 것 같았다.

“솔직히 난 기억이 잘 안 난다네.”

“그러십니까? 그래도 괜찮습니다. 영감님이 제 생명을 구해 주신 은인이시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제가…… 모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저 여자와 친한가?”

아겔의 질문에 마곤은 로스나를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겔은 턱수염을 쓸었다.

누군가의 섬김을 받아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혼자 있는 게 익숙하기도 했고.

‘나쁘지 않게 써먹을 순 있겠군.’

아겔은 상황에 따라 행동하기로 했다.

마곤이란 남자 또한 저 여자 못지않은 ‘서클’을 이끄는 수장이다.

잘만 하면 귀찮은 일은 넘어갈 수 있으리라.

“마음이 가는 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마곤이 고개를 한 번 더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고 로스나가 비웃음을 흘렸다.

“흥, 하여간 조폭들이란 꼬라지가 웃기지도 않네. 시끄럽기 짝이 없어.”

그녀가 사뿐사뿐 가까이 다가왔다.

“그 영감탱이가 뭐건 볼일은 내가 먼저야. 내 부하를 건드렸으니.”

그녀의 주장에도 마곤은 흔들리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영감님을 건드리지 마라.”

로스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했다.

“뭐? 참나.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그 녀석이 내 수하를 먼저 건드렸다니까? 혹시 너도 귀가 멀어 버린 거니?”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죄수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로스나의 부하가 먼저 아겔을 건드렸다는 걸.

그녀는 수하를 건드렸다는 빌미로 아겔에게 손을 대고 싶은 것이다.

이런 억지가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는 강하니까.

그러나 마곤은 입장을 고수했다.

“나는 한 번 말했다. 두 번 반복하지 않겠다.”

로스나는 손으로 살짝 입을 가린 채 말했다.

“싫다면?”

두 사람 다 물러서지 않으려 하는 듯 보였다.

마곤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전쟁이다.”

전쟁.

단어 하나에 담긴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자들은 눈을 크게 떴다.

붉은 머리 여인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너 제정신이니?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저딴 영감탱이 하나 때문에 전쟁을 하겠다고?”

“물론이다.”

마곤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미친, 너희가 우릴 건드리면 베캄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결국, 공멸이야!”

“그러니까 포기해라. 네가 포기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로스나는 이를 갈았다.

으득.

그녀의 매서운 눈초리가 아겔의 전신을 훑었다.

“두고 봐. 언젠간 이 일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

잠시 노려보던 로스나는 결국 그녀의 수하들과 함께 물러갔다.

마곤이 말했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젠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사각턱의 남자는 자신의 수하들 사이로 걸어갔다.

노인은 소년의 손을 잡고, 말없이 남자의 뒤를 따랐다.

.

.

한쪽으로 온 아겔이 자리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극진한 태도로 아겔을 안내한 마곤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무릎을 꿇자, 마곤을 따르는 모든 죄수 또한 무릎을 꿇었다.

아겔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굳이 무릎을 꿇을 것까지 있나.”

“제 존경심의 표현이니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뭐 그렇다면야. 한데, 솔직히 말해 보세.”

아겔은 이 남자가 누군지 모른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생명의 은인이라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언제 자네를 구해 줬단 말인가.”

“분명 구해 주셨습니다. 1년 전 개방 때…… 정글에서 원주민에게 쫓기던 저를 구해 주셨죠.”

개방과 원주민.

이젠 너무도 익숙해진 단어들이다.

아겔이 말했다.

“착각한 것 아닌가.”

“분명 영감님이셨습니다. 그때 저는 원주민의 화살에 맞아 정신이 흐릿했지만, 분명 영감님께서 절 추격하던 원주민들을 몰살시키셨죠.”

‘정글’의 원주민은 화살을 쏜다.

하급 죄수들의 천적이라고 불리는 원주민들 또한 1에서 3급은 되는 강자들이었고, 죄수들은 그들을 두려워했다.

원주민들은 단순히 숫자로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그때 이후로 다짐했습니다. 영감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은혜를 갚기로요.”

“흐음…….”

아겔에게 다른 사람의 말 진위를 따지는 능력 따윈 없다.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모른다.

그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말이다.

하나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것이 아겔에게 적대적인 감정으로 가져서 그런 것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그는 아겔을 만나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질문 몇 개 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무엇이든 답해 드리겠습니다.”

마곤이란 중년은 기쁜 기색으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아겔이 질문했다.

“이 감방에 대해 말해 주게.”

“예, 우선 이곳은 [3-448] 감방입니다. 감방의 50%가 1급 죄수이고, 30%가 2급 죄수, 나머지가 3급 죄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으로 시작하는 감방이니 1급 죄수가 가장 많았다.

마곤은 그런 것 이외에도 이 감방의 상황을 말해 주었다.

“우선 이곳엔 아까 봤던 ‘채찍 마녀’라고 불리는 로스나라는 년이 있습니다. 그리고 ‘칼잡이’ 베캄이 있죠.”

마곤을 포함한 채찍 마녀와 칼잡이가 세 파벌, 즉 ‘서클’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각각 수백 명씩 휘하를 두고 있어서 쉽사리 서로를 건드리지 못하고 3파전의 형태로 감방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은 세 파벌이라 싸움이 없지만, 놈들은 분명 다른 서클을 흡수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로스나와 베캄은 욕심이 많습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을 잡은 자, 누군가의 머리 위로 올라선 자는 쉽게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견고히 하려 한다.

“당장은 ‘방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각 서클에서 사람을 뽑아 감방 근처를 수색하고 있죠.”

아겔의 시간 감각에 따르면, 곧 방출이 시작된다.

이곳 죄수들은 벌써 방출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군.’

아겔이 질문했다.

“자네 고독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이제 3년 되었습니다.”

“나쁘지 않구먼. 고독에 잘 적응한 듯허이.”

마곤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전부 영감님 덕이죠. 절 살려 주신 덕분에 부끄럽지만 작은 규모로 서클도 꾸렸고요.”

“글쎄, 내가 한 게 있나 싶긴 하구먼.”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영감님이 제 목숨을 살렸고, 그게 제 동생들을 살리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아겔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항상 말하지만, 고독에선 살아 있는 게 더 고통스럽다.

이곳에서 살려면 단순한 생존 욕구에서 더 나아가, 하루하루 씁쓸하고 역겨운 고통을 견뎌 낼 목적과 이유가 필요하다.

그런 게 없다면 끔찍한 고통에 쉽사리 목숨을 포기하게 된다.

노인은 그런 모습을 지금까지 몇 번 보았는지 셀 수도 없다.

겉으로는 수백 명의 죄수가 끈끈이 뭉쳐 있는 듯 보이지만, 과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들이닥칠 때는 몇 사람이나 살아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아겔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노인은 내색하지 않고 주제를 바꾸었다.

“그러니까 이 감방엔 서클 세 개가 있다는 말이지. 서클의 크기는?”

“베캄이 미묘하게 크고, 로스나가 제일 적지만, 셋이 비슷한 크기입니다.”

그러자 마곤도 본 주제로 돌아왔다.

“로스나는 과격합니다. 힘으로 죄수들을 굴복시키죠. 그의 밑에 있는 놈들은 전부 그년의 힘을 두려워합니다.”

“베캄도 비슷하지만, 더 영악합니다. 강한 힘을 가진 동시에 설득력이 좋죠. 그놈을 따르는 녀석들은 전부 헛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헛된 희망?”

마곤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급 죄수 무리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겁니다.”

“호오, 하급 죄수를 통합한다라…… 보통 배짱이 아니군.”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요. 하급 죄수가 얼마나 많은데…….”

마곤에 따르면 베캄은 야욕이 대단한 남자인 것 같았다.

베캄은 한 감방에서 군림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고독의 모든 하급 죄수를 수하로 두길 원했다.

실제로 이 감방 외에도 수하를 둔 것은 오직 베캄뿐이라고 했다.

“그놈은 확실히 3급 죄수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제가 나서도 열에 넷 정도 이길까 합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의 감방에서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저울 위에서 말이다.

“한데 그 베캄이란 자는 왜 안 보였지?”

“아, 오늘은 복도로 나갔습니다. 놈은 직접 움직이는 걸 좋아합니다.”

아겔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꽤 감탄했다.

‘직접 위험을 감수하는 자라. 서클이 가장 큰 것도 이해는 가는군.’

앞서서 움직이는 자는 누군가 뒤따르는 결과를 만든다.

실질적으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3급 죄수 따위가 겁도 없이 복도를 나다닌다면,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일 거다.

‘하기야. 고독에 들어오기 전엔 5급 실력자였을 테니.’

모든 죄수가 고독에선 ‘낙인’이 찍힌다.

아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모든 죄수의 왼쪽 목에 찍히는 죄수 번호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 때문에 본래 힘의 1%밖에 내지 못한다.

왼쪽 목에 새겨진 숫자는 그렇게 떨어진 급수가 찍혀 있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아겔은 벽에 머리를 기댔다.

“좋은 정보 고맙네. 이제 난 좀 쉬고 싶군.”

“편히 쉬십시오. 혹시라도 식사가 나온다면 불러 드리겠습니다.”

마곤과 그의 수하들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

잠시 숨을 고르던 아겔은 곁에서 세로가 자꾸만 꼼지락거리는 것을 느꼈다.

“불안하느냐.”

“네? 아…… 형이 없어서…….”

세로는 형과 떨어진 게 처음인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장했다.

이제 9~10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보호자 없이 이런 교도소에서 생활하면서도 울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다.

“할아버지는…… 안 무서워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아겔을 걱정하는 어투로 말하기까지.

‘이놈 물건이군.’

아겔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뭔 줄 아느냐?”

“뭔데요?”

“바로 배고픈 것이란다. 굶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건 없거든.”

노인이 배를 두들겼다.

홀쭉하다고도 표현하기 힘든 빼빼 마른 배였다.

“내가 첫날 살인을 저지른 것도 놈이 내 식사를 방해했기 때문이지.”

“……밥을 먹기 위해선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요?”

똘망똘망한 어린 눈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질책하는 말투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듯한 어투.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우에 따라선 그럴 수 있지.”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일이 아닌가요? 형이 그렇게 말했는데…….”

세로의 물음에 아겔은 입술을 씰룩였다.

나쁘다라.

참 재미있는 단어다.

“그럼 이 고독은 참 나쁜 곳이구나. 마물이나 몬스터를 풀어 사람을 죽이는 곳이니.”

“……그렇네요.”

“그럼 우릴 이곳으로 보낸 사람들도 나쁜 사람일까?”

“음…….”

“사람이 서로 죽고 죽이는 곳을 만들고, ‘합법’의 이름 아래 그곳에 사람을 가두는 것. 다른 말로는 살인교사라고 말하기도 하지.”

“…….”

“가둔 사람이 나쁜 걸까, 갇힌 사람이 나쁜 걸까.”

소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겔은 과거를 떠올렸다.

고독이 지어질 당시, 모든 은하 정부와 성좌 교단이 찬성을 던졌다고 들었다.

흉악범들을 가두기 위해.

고독엔 끔찍한 흉악범들이 갇힌다.

그럼 이 교도소를 만든 자들은 과연 뭐라고 불러야 할까.

범우주적 살인 공장을 만든 역겨운 권력과 자본의 악마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곳에 갇히다니 말이야.”

“부당…… 이 뭐죠?”

“옳지 않다는 의미다. 대체로 당한 쪽은 억울한 법이지.”

“억울…….”

소년의 주먹이 꼭 쥐어졌다.

“억울해요…….”

아겔은 소년이 고독에 갇히게 된 경위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소수 종족.

다른 말로 ‘희귀한 종족’은 있는 자들의 눈엔 가치 있는 장난감, 혹은 전리품이다.

소년은 죄를 지어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여긴 장난감을 잠깐 보관하는 장소에 불과하다.

‘합법’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아겔이 말했다.

“상황은 사람을 바꾸기도 하지. 억울하게도 우린 이곳에 갇혀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단다.”

아겔은 턱으로 감방 안을 돌아다니는 죄수들을 가리켰다.

“저들이 보이느냐.”

“네.”

“장담하는데, 저들 중 사람을 잡아먹지 않은 자는 한 명도 없을 게다.”

“저, 정말요……?”

“그래. 원래부터 그러진 않았겠지. 하지만 이 교도소가 저들을 그렇게 만든 거란다.”

아겔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리고 우린 피비린내가 좀 심한 감방으로 온 것 같구나.”

그때, 저쪽에서 마곤이 다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영감님. 곧 점심 식사 시간입니다.”

“좀 빠르구먼.”

“예, 그런 편이죠.”

아겔은 마곤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맞잡은 손에서 그윽한 피비린내가 풍겨 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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