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식사 (1)
“이쪽으로 오시죠. 식사를 마련했습니다.”
아겔은 마곤의 안내에 따라 감방 내부를 걸었다.
세로는 방금 노인이 했던 말 때문에 살짝 두려운 듯, 그의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왔다.
아겔이 넌지시 물었다.
“구더기죽인가?”
“아닙니다. 오늘 점심에 구더기죽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식사를 어떻게 하지?”
마곤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등에 무언가를 짊어지고 오는 죄수들이 보였다.
대개 몬스터의 사체였다.
“구더기죽이 나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 매번 복도에서 사냥해 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굶어 죽습니다.”
아갤이 알만 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가 위험하긴 해도 어차피 굶어 죽을 거라면 뭐라도 해 보는 게 낫지.’
마곤이 다친 수하들을 착잡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매번 사상자가 없진 않지만, 모두 자원해서 하는 일이니 불만은 없습니다.”
시체를 짊어지고 오는 죄수 행렬 중에는 팔이 잘리거나, 큰 중상을 입은 자들도 있었다.
용기를 내 식량을 구하러 나가지만, 복도의 위험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많은 친구를 잃었겠군.”
“예…… 개방이 끝나고 3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10명만 남았습니다.”
‘개방’이 끝나면 감방이 뒤섞인다.
아겔의 시간 감각으로 개방이 끝난 지 약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으니, 하루에 평균 2명이 사망한 것이다.
‘소환’도 있었을 테니, 그때 사망자가 몰렸을 것이다.
‘선방했군. 집단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구먼.’
3급 죄수들이 주를 이룬다고 하지만, 고독에선 피지배층이나 다름없다.
한 집단을 통솔하는 건 사회에서의 난이도와 차원이 다른 곳이기에 그의 능력이 출중함을 증명한 셈이다.
아겔이 입을 열었다.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네.”
“……감사합니다.”
마곤이 안내하는 곳으로 오자, 그의 수하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200여 명의 수하.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식량.
기껏해야 100명이 먹을 분량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곤은 거리낌 없이 죄수들의 중앙에 앉았다.
“영감님, 앉으시죠. 오늘은 식인 고블린, 코볼트를 잡아 왔습니다.”
마곤의 수하들은 익숙하게 날카로운 뼈 같은 것으로 몬스터들의 가죽을 발라내었다.
그리고 마법을 쓸 줄 아는 자가 불을 냈다.
“마법사도 있었구먼.”
“예. 한 명이고 불밖에 못 붙이는 정도지만 쓸 만하죠.”
아겔은 마곤 근처에 모여 앉은 자들에 집중했다.
그들은 평범한 수하들과 달리 기세가 마곤과 비슷한 자들이었는데, 대우가 달라 먼저 식사하는 게 가능한 듯 보였다.
능력 위주로 부하들의 지위가 갈린다.
이도 역시 괜찮은 형태의 집단 위계였다.
곧 노릇노릇 익은 고기들이 나왔다.
마곤이 권했다.
“드시죠. 먹어도 되는 것들입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불로 구워도 못 먹는 게 있긴 하지만, 그런 건 잘 구분한 모양이었다.
“그럼.”
아겔은 잘 익은 고기에 손을 가져갔다.
손으로 잡고 한 입 뜯으니, 노릿한 내음과 퍽퍽한 살이 느껴졌다.
몬스터의 기름은 역했고, 불쾌하게 씹히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도 아겔은 잘만 고기를 씹었다.
“맛이 괜찮구먼.”
“잘 드시니 다행입니다. 전 아직도 조금 꺼림칙하긴 합니다만…….”
질겅.
마곤도 고기를 들어 뜯었다.
“살려면 먹어야죠. 별수 있겠습니까.”
아겔의 곁에 있는 세로는 조금 망설이는 듯 보였다.
몬스터 고기라니 충격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잠시 눈치만 보던 소년은 뭔가 결심을 굳힌 표정을 하고서 고기를 들어 입에 가져갔다.
고기를 뜯고 몇 번 오물거리던 소년은 두 눈을 꼭 감고 억지로 고기를 식도로 넘겼다.
꼴깍.
“…….”
맛이 없다느니, 취향이 아니라느니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처음에 꾹 참았던 표정도 사라지고 소년은 묵묵히 고기를 씹었다.
아겔과 소년의 식사가 끝났다.
그러나 아직 못 먹은 자들은 많았고, 식량은 벌써 동이 났다.
식사하지 못한 죄수들이 고기 냄새가 나는 곳을 어슬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못 먹인 자들은 어찌하나?”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다시 사냥을 나가거나 아니면…….”
“야, 조폭!”
뭔가 설명하려던 마곤은 날카로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로스나의 패거리가 몰려와 있었다.
그녀는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왔다.
“내놔.”
다짜고짜 내놓으라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마곤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물건 달라는 듯이 지껄이지 마라. 그건 네 권리가 아니다.”
“허! 너도 동의해 놓고 무슨 착한 척이야? 우리도 내놓을 테니 너희도 내놓으라고.”
아겔은 세로를 데리고 잠시 뒤로 물러나 사태를 관망했다.
노인의 뒤에 바짝 붙어 있는 소년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뭘 달라는 걸까요……?”
“글쎄, 일단 지켜보자꾸나.”
그는 소년에겐 얼버무렸지만, 뭘 달라고 하는 건지 예측이 되었다.
마곤은 잠시 입술을 굳게 닫더니, 뒤돌아 수하 중 한 명뿐인 마법사에게 말했다.
“아각, 오늘 죽은 동생이 있나?”
“예…… 서루와 요카 사냥 중에 죽었고, 류고스와 마스가 굶어 죽었습니다…….”
“네 명이나…… 알겠다.”
마곤이 지시하지 않아도 그의 오른팔인 마법사는 수하들을 시켜 뭔가 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턱.
죽은 수하 4명을 로스나 앞에 떨구었다.
로스나의 비웃음이 입꼬리에 걸렸다.
“어머나, 오늘은 식량이 많네? 우린 2명밖에 안 죽었는데, 이를 어째?”
“2명분은 기억할 것이다.”
“쳇, 쩨쩨하긴. 뭐 알겠어. 나중에 우리 쪽에서도 더 죽으면 줄게.”
로스나의 수하들도 나와 서클에서 죽은 자들을 내놓았다.
아겔의 곁에 있던 세로가 입을 벌렸다.
“설마…… 죽은 사람들을 교환해서…….”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는 거다. 아주 흔한 일이지.”
“우읍…….”
세로는 역겨운 기분이 들어 급히 입을 막았다.
아겔은 소년의 등을 두드려 주진 않았다.
“참거라. 힘들게 먹었는데, 쏟아 내면 기운이 더 빠질 게다.”
소년을 뒤에 숨긴 아겔에게 마곤이 다가왔다.
“영감님. 식사가 부족하진 않으셨습니까?”
“난 괜찮으니, 남은 게 있다면 자네들끼리 먹게. 대접해 줘서 고맙네.”
“아, 다행입니다. 그럼 저흰 마저 식사하겠습니다. 편히 쉬시죠.”
마곤과 수하들은 다시 ‘식사’하러 돌아갔다.
겨우 토를 참은 세로는 아겔의 손을 꼭 붙들었다.
“이, 이건 정말…… 아니에요. 사람이 할 짓이 아닌…….”
“내가 말했지 않느냐. 환경 또는 극한의 상황은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고.”
굶주린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그게 설령 동족을 잡아먹는 일일지라도.
실상 벌레들은 이미 하는 짓이었다.
동족을 잡아먹는 건 자연에서 매우 흔한 일.
다만, 사람들은 그걸 역겹고 끔찍한 행위로 기억할 뿐이지.
고독에 적응한 죄수 중에서 그걸 자연스럽지 않다고 인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츄릅.
마곤의 수하 중에서 입에 차오르는 침을 닦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그게 긴급한 필요에 의한 게 아니라, 기호로 바뀌면 발생하지.’
그때부턴 답이 없다.
그리고 아겔은 사람을 먹는 자들이 어떤 길을 걷게 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꼬마야.”
“네?”
“몬스터와 벌레는 먹어도 된다.”
하지만.
잠시 뜸을 들인 노인이 소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소년의 긴장한 기색이 느껴지는 듯했다.
“절대로, 절대로 저들과 같이 되어선 안 된다.”
세로는 담담한 말에 담긴 거대한 무게를 느끼고 침묵했다.
* * *
“흠, 하아…… 맛있어…….”
로스나는 풍족한 식사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무정한 손길이 안에 있는 것을 꺼냈고, 혀는 탐닉했다.
입을 오물거리는 얼굴엔 미약한 쾌락이 떨려 왔다.
“이게 이렇게 맛있는 부위일 줄 누가 알았겠어, 그치?”
“예, 예…… 그렇죠…….”
“너도 먹을래?”
“감사합니다…….”
로스나의 손에서 핏물이 섞인 조각을 받아 든 수하가 굽신거리며 먹어 치웠다.
몇 번 오물거린 그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야. 나머지는 다 너희가 먹어. 뇌만 남기고.”
-감사합니다, 로스나 님!
-헤헤, 잘 먹겠습니다!
로스나는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수하가 그녀를 불렀기 때문이다.
“로스나 님.”
“왜, 무슨 일이야.”
수하인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기 보고 시간입니다.”
“쳇.”
미간을 살짝 찌푸린 로스나는 감방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한 서클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건 다름이 아니었다.
3급 죄수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바로 ‘선택’받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선택받지 못했던 그녀는 3급 죄수들 사이에서도 한낱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지.’
먹을 것을 찾아 두려움으로 복도를 배회하던 그녀는 구세주를 만났다.
어둠을 장막 삼아 몸을 가린 그는 대면하여 마주 볼 수도 없을 만큼 격이 높은 존재.
그녀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대의 앞에 엎드려 은혜를 간구할 뿐이었다.
-사, 살려 주세요.
-고개를 들어라.
몸을 벌벌 떨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남자의 로브 안에 있는 어둠을 마주했다.
그 이후로 그녀는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힘을 준 건 고맙지만, 정기 보고는 귀찮단 말이야.’
그녀의 임무는 서클을 만드는 것.
그리고 구성원의 ‘생기’를 흡수해 전달하는 것이다.
흑마법은 생명력을 원천으로 하기에 많은 생기가 필요하다.
로스나의 주인은 흑마법사였다.
그녀는 한쪽에 무릎을 꿇고 앉은 다음, 품에서 조그마한 구슬을 꺼냈다.
구슬을 바닥에 놓고 톡톡 건드린 다음, 그녀는 바닥에 머리를 대었다.
곧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스나.
“예, 주인님.”
어두컴컴한 목소리가 구슬에서 들려왔다.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진척은?
“반 정도 모았습니다. 다음 개방 전까지는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다. 감방에 특이사항은 없나.
“없습…….”
버릇처럼 말하려던 로스나는 입을 멈추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이감되어 온 늙은이를 떠올렸다.
‘그 노인네……‘
마음이 들지 않는 놈이었다.
자신을 보고도 전혀 기가 눌리지 않는 모습에 조폭 놈의 은인이라니.
왠지 잡아다가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은 느낌이 드는 노인이었다.
“오늘 제 감방에 이감되어 온 사람이 둘 있었습니다.”
무심코 한 말이었는데, 그녀의 주인은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딴 것이 특이사항인가.
주인의 목소리에 노기가 섞인 것을 감지한 로스나가 황급히 더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부디 용서해 주세요……! 그게…….”
로스나는 전신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노력했다.
“고독에선 처음 보는 늙은이였는지라……! 잘 아시다시피 여긴 늙은이가 살아남기 좋은 환경이 아니까요…… 그래서…….”
-늙은이?
늙은이란 말에 그가 반응했다.
-정확히 말해 봐라.
“아, 그게…… 일단 외형이 특이했어요. 희고 긴 봉두난발에 눈을 붕대로 감은…….”
-뭐라……?
주인의 목소리에 작은 놀라움이 담겼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바닥과 거의 닿은 로스나의 얼굴이 의아하게 변했다.
-정말이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직접 두 눈으로 봤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잠시 침묵하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드시 그 노인을 붙잡아라. 절대 죽여선 안 된다.
“예?”
로스나는 순간 얼빠진 소리가 들렸다.
주인은 노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아앗……! 네! 그러겠습니다……!”
-내가 친히 찾아갈 것이니, 개방 전까지 그 노인을 붙들어라.
주인의 확언.
로스나는 긴장하여 침을 삼켰다.
‘지, 직접 오겠다니…….’
주인이 직접 오는 건 두려웠지만, 종인 그녀는 주인에게 반대 의견을 피력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녀는 거듭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빨리 돌아가 임무를 수행해라.
“알겠습니다, 위대한 악마의 종이시여…….”
주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몇 분이 지나서야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노인네를 붙잡으라고……? 도대체 왜…….”
맛도 없어 보이는 노인네다.
주인님의 명령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단 해내야만 한다.
안 그럼 자신에게 부여된 ‘권능’을 다시 회수할지도 모르니까.
“쳇, 노인네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은데.”
로스나는 다시 자신의 서클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몸에서 흑마법을 끌어올리며.
…….
그녀가 사라진 자리 근처에서 인기척이 났다.
슥.
죽은 듯이 있던 죄수는 마치 뭔가 있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했다.
감방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그 기술은 로스나 따위가 간파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쯧, 귀찮은 게 달라붙었구먼.”
아겔은 돌아가는 로스나의 발걸음 소리를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