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7)화 (18/186)

17화 마찰 (1)

“……!”

소년은 예상치 못한 광경에 몸이 굳었다.

노인은 아까 먹은 고기를 전부 토해 내고 있었다.

단 한 조각도 남김없이.

구역질을 마친 노인이 근처의 분뇨를 한 손으로 집어 토한 잔해를 그대로 덮었다.

토사물을 전부 가린 아겔이 천천히 세로에게 다가왔다.

두려움에 굳어 버린 발은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까 먹은 것을 그대로 토해 버리는 노인.

그 모습은 어린 세로의 세계에선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미지의 날것이었다.

“아직도 궁금하나, 꼬마 친구?”

“…….”

그는 마치 방금 행위가 그 답이 되지 않았냐고 묻는 듯했다. 

세로는 떨리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왜…… 토한 거죠?”

“난 저들과 다르니까. 겸상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 독을 쓸 수도 있으니.”

아겔은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세로는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믿을 수 없어요…….”

“이해한다.”

아겔은 굳이 변명하거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럼 믿고 싶은 대로 믿거라.”

“…….”

스스로 내린 결정은 반드시 본인이 책임지게 되어 있다.

소년이 아겔의 말을 믿든 말든.

어딜 가나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지만, ‘고독’에선 특히 더욱 그렇다.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그 대가가 따라오는 속도는 순식간이다.

아겔은 소년을 지나쳐 걸어갔다.

“다만.”

“……?”

걸음을 잠시 멈춘 노인이 말했다.

“나 없이 이 감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거라.”

“……!”

그 말에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주먹을 꽉 쥔 소년은 고개를 푹 숙였다.

‘맞아…….’

노인의 곁에 붙어 있지 않았다면, 소년이 감방에 오자마자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는 힘없는 소년에 불과했으니까.

“내가 저들과 식사를 같이 한 건 베캄이란 자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위험을 감수한 게지.”

한 감방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를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그가 하급 죄수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는 1급 죄수의 목숨을 벌레처럼 여겨. 오직 2~3급 죄수만이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오늘 죽은 자들도 전부 1급 죄수였다.”

아겔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로는 노인과 떨어지는 순간 베캄에게 붙잡혀 식량으로 전락할 것이다.

소년의 왼쪽 목에는 1로 시작하는 낙인이 새겨져 있으니까.

아무리 희귀한 종족의 수인일지라도 그들에겐 상관없다.

한 끼 식사 거리가 되는 미래밖에 남지 않는다.

“내 곁에 머물라 강요하진 않겠다. 하지만 현명하게 생각해라.”

“…….”

세로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말을 마친 아겔은 소년을 두고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소년의 숨소리에 노인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꼬맹이에게 너무 심했나.’

웬만한 9~10살 어린아이라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을 것이다.

대개 그 나이대 아이들은 냉철하지 못하고 감정적이며, 무엇보다 경험이 부족하니까.

악마가 내린 동아줄을 잡을 수 있을 만한 강단은 없다.

하지만 저 소년은 다르다.

고독에 와서도 아겔을 만족케 하는 행동이 미세하게나마 보였다.

저런 아이라면 상품이 아니더라도 고독에 충분히 적응할 가능성이 보였다.

“흠흠.”

아겔은 드물게 흥얼거렸다.

오랜만에 원석 같은 녀석을 만나 그답지 않게 조금 들떴다.

‘선택을 기다리는 건 항상 즐겁단 말이지.’

어찌 되었든 거래는 성사될 것이다.

노인은 어두운 감방 안쪽으로 걸어갔다.

.

.

아겔과 대화했던 세로는 한쪽 구석에 쪼그려 있었다.

노인의 말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울렸다.

-네가 나 없이 이 감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리숙한 계산으로도 불가능해 보였다.

이 감방의 죄수 대부분이 3급 죄수다.

그의 형, 루카스가 달려들어도 한 명 이길 수 있을까 말까 한 자들이 수백 명이나 있다.

노인과 떨어지는 순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소년은 아직 아겔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무, 무서워…….’

노인의 담담한 말투와 행동.

생명에 대해 너무 무뎌진 듯한 그의 모습들.

모든 정황이 의심할 수밖에 없었기에 소년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혼자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동안 보호자 노릇을 했던 형은 이곳에 없으니까.

‘어떻게 하지…….’

순간, 세로는 우유부단한 자신이 한스러웠다.

이때도, 저때도 오직 형의 말만 들으며 살아온 자신.

항상 자신을 돌봐 주던 루카스 형이 떠올랐다.

‘지금 루카스 형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반드시 자신을 지킬 수단을 강구했을 것이다.

루카스는 적응이 빠르고, 현실적인 사람이니, 안전을 위해 위험한 사람과 잠깐의 동맹도 불사했으리라.

동생인 세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감수했으리라.

…….

잠시 후, 미약한 목소리가 입 밖으로 무심코 흘러나왔다.

“돌아가야 해.”

소년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결정을 내렸다.

노인을 의심할 수는 있다.

거기까지 괜찮다.

그러나 늙은 죄수의 곁을 떠나선 안 되었다.

잠깐의 두려움으로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순 없었다.

자신을 끝까지 찾고 있을 루카스 형을 위해서라도 세로는 일어서야만 했다.

빌어먹더라도 살고 싶었다.

죽기 싫다.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자.’

어린 세로일지라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늙은 죄수가 자신을 곁에 두려는 건 분명 소년과 형에게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뭔가를 내줘야 한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당장 목숨보다 중할 리 없다.

‘그리고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하자.’

소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에게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

넓은 감방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취침 시간도 다가오고 있으니까.

“쓰읍, 하.”

세로는 아직 공기 중에 남은 아겔의 냄새를 맡았다.

사람을 쫓는 건 소년에게 쉬운 일.

그저 냄새가 강해지는 곳을 따라가면 된다.

감방엔 수백 명의 죄수가 있고 그들의 체취가 가득하긴 했지만, 소년은 정확하게 아겔의 냄새를 잡아 냈다.

잊을 수 없는 아늑한 향이었다.

천천히 향을 따라가던 소년은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라, 이게 누구야? 오늘 이사 온 우리 귀여운 꼬마잖아?”

움찔 놀란 소년이 뒤를 바라보았다.

분홍색 드레스가 노출한 매혹적인 피부.

채찍 마녀 로스나.

3급 죄수들을 이끄는 그녀가 수하 몇 명과 서 있었다.

“혹시 길을 잃었니? 하긴, 여기가 넓긴 해서 길을 못 찾을 만도 하구나.”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그러니?”

로스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입을 가렸지만, 그 사이에서 움찔움찔 위험한 미소가 새어 나오려 했다.

“귀여운 꼬마가 혼자 다니니까 너무 걱정스럽네. 누나가 데려다줄까?”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어머, 기특하기도 해라.”

세로는 그녀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로스나의 수하들이 가려는 길을 막고 서 있었다.

“……!”

“꼬마야. 이 무서운 곳에서 혼자 다니면 안 되지. 안 그럼 무서운 사람들이 잡아갈지도 모른단다?”

“날 건드리면 큰일 나요.”

“호호호, 그래? 누나는 하나도 안 무서워. 오히려 재밌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는걸? 여긴 참 지루한 곳이거든.”

“…….”

로스나는 쉽게 소년을 보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세로의 얼굴이 적대적으로 변했다.

“크르르르…….”

그러나 로스나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더 기쁘다는 듯이 두 손을 꼭 모았다.

“어머, 너 수인이니?! 웨어비스트야? 이걸 어쩌면 좋아!”

“…….”

“내 귀여운 애완동물들이 요즘 자꾸 죽어 나가서 가슴 아팠는데……! 잘 됐다, 넌 쉽게 안 죽을 것 같아서 다행이야.”

가학적인 욕망이 그녀의 눈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어리거나 예쁜 것을 곁에 두고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소년을 향해 탐욕을 드러냈다.

“자, 이리 온.”

“크와아아앙!”

세로는 곧장 로스나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손발톱이 위협적으로 자라났다.

로스나는 귀엽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리에 채찍을 풀었다.

“말 안 듣는 애완동물은 맞아야지!”

그녀는 채찍을 들어 소년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촤악!

튼튼한 채찍이 소년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커헉……!”

땅을 구르는 세로.

잠시간 숨을 못 쉴 만한 위력에 소년은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꾹 참아 보려 했지만, 쉽게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소년은 가슴을 부여잡고 로스나를 올려다보았다.

‘끄으으…… 이, 이게 3급 죄수…….’

그녀와 자신 사이에 있는 간극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채찍으로 단 한 대를 맞았을 뿐인데, 거부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쩍 갈라진 가슴이 아물어 갔으나, 워낙 부상이 커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끄으으으…….”

소년이 전력을 다해 일어섰다.

포기할 수 없다.

몸이 움직이는 한 대항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성은 그게 반드시 죽을 길이라 소리쳤다.

저런 괴물에게 어떻게 대항할 수 있겠냐고.

또 한 번 채찍을 맞으면 이번엔 반드시 죽을 거라고.

반면에, 마음속 어떤 소리는 낮게 속삭였다.

‘뭐? 무슨 소리야…….’

그래야만 한다.

대항해야만 한다.

죽더라도 싸워야만 한다.

그게 삶의 이유가 아니겠느냐고.

‘아냐, 차라리…….’

끔찍한 고통을 맛본 소년은 그냥 그녀의 애완동물로 사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분명 자신을 죽이려는 기세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첫 공격부터 단숨에 죽였을 테지.

‘그럴까…… 애완동물로 살아야 할까…….’

이성은 그게 옳다고 말했다.

잘 생각했다고 칭찬하고 박수한다.

솔직히 저런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고 자조한다.

힘겹게 붙잡은 마음이 흔들릴 때쯤, 낮은 목소리가 다시 소년의 머릿속을 울렸다.

안 돼.

왜.

그게 진정한 죽음이니까.

“크르르르…….”

더 짙은 야수의 울음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로스나는 기세가 이전보다 흉포해진 세로를 보고 기뻐했다.

“어머, 지금 앙탈 부리는 거야? 너무 좋다.”

탓!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세로.

로스나의 수하들조차 한순간 소년의 모습을 놓칠 정도의 속도였다.

날카로운 손톱이 적의 심장을 노리고 들어갔다.

그러나.

촤악!

채찍이 한 발짝 더 빨랐다.

“캬학……!”

같은 부위에 공격을 허용한 소년은 결국, 힘을 잃고 쓰러졌다.

로스나는 1급 죄수인 소년이 상대할 만큼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쿡.

“끄으으…….”

그녀는 세로의 목에 발을 올려놓고 지그시 눌렀다.

“앙탈 부리는 게 길들이는 맛이 있을 것 같네? 어쩜 이리 완벽한 애완동물이 떨어졌을까. 방금 더 빨라진 거 봤어? 잘 기르면 더 멋있어지겠지?”

-축하드립니다, 로스나 님. 새로운 애완동물을 얻으셨네요.

-딱 로스나 님의 취향과 맞는 것 같습니다.

“나, 너무 기분 좋다.”

수하들은 곁에서 아부하는 말을 떠들어 댔다.

세로는 고통을 참고 최대한 버둥거려 보았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100킬로가 넘는 쇳덩이가 목을 짓누르는 것 같았고, 눈앞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발아래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숨이 점점 막혀 왔다.

‘혀, 형…….’

지금이라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달려오는 형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소년은 금방 깨달았다.

그건 단지 상상일 뿐이란 걸.

감방의 어둠 속엔 아무것도 없다.

도와줄 사람도.

그의 형도 없다.

소년은 홀로 남겨졌다.

다만, 형이 와 구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긴 했다.

그래서 상상 속의 형을 끈질기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달려오는 형은 가까워지지 않았고 시야는 어두워져 가기만 했다.

그의 형은 영원히 자신에게 닿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상상이 무너져 갈 때쯤.

‘어…….’

형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천천히 걸어왔다.

차근차근.

확실하게.

소년과 노인 사이에 있는 어둠이 좁혀지고 있었다.

상상 속 그의 형은 지우지 못했던 어둠의 간극을 담담히 밟고 나아오고 있었다.

‘할아버지……?’

현실이란 어둠 속에서 나타난 키 작은 노인.

흰 머리에 낡은 죄수복을 입은 늙은 죄수.

로스나와 그 수하들조차 그의 등장에 숨소리를 멈추었다.

어둠 속에서 들린 낮은 목소리가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심령을 울렸다.

“내 친구를 놔주게.”

흐릿한 현실을 떠나, 소년의 의식은 선명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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