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대비 (2)
어둑한 감방 안.
소년과 노인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세로는 긴장한 표정이었다.
점심이 지나고 아겔이 본격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지금이 그때였다.
‘근데 왜 앉으라고 하신 거지.’
아겔은 세로를 앉혀 놓고 한참이나 말없이 명상하는 듯 보였다.
마치 무술의 고수나 달인이 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보기만 해선 뭘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마나’ 또는 ‘기’에 관한 수련을 하는 걸까.
소년은 형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세상에는 어마어마한 강자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대부분 마나 혹은 기라고 불리는 것들을 활용해 싸운다고 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면 배울 수 없고, 또 배우는 자가 자질이 없으면 그런 힘들은 활용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기 사용자인 걸까.’
늙디늙은 그가 젊은 죄수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모습을 보면 그럴 법도 했다.
세로가 볼 때, 아겔은 육체 능력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노인은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기에 소년이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
한동안 고민에 빠져 있던 세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직도 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침묵을 이기지 못한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할아버지?”
“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지.”
“언제 시작하는 거죠……?”
“지금 시작하려고 했다.”
소년의 재촉을 듣고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자리를 옮기자꾸나.”
아겔은 세로를 데리고 감방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그래 봤자 정사각형 형태인 감방에서 벽 근처일 뿐이었지만, 세로는 감각으로 이곳이 다른 죄수들의 거리가 제일 먼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겔이 입을 열었다.
“벽에 기대고 앉아라.”
“……? 또요?”
왜 자꾸 앉으라고만 말하는지 소년은 의문이 들었으나,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물론 궁금한 건 물어보았다.
“앉아서 하는 무술 같은 게 있는 건가요?”
“음? 그게 무슨 말이냐.”
아겔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꾸 앉으라고만 하셔서…….”
노인이 헛웃음을 지었다.
“허, 앉아서 하는 무술? 88년 평생 처음 듣는 무술이구나. 그런 걸 배워서 어디다 쓰겠느냐. 차라리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게 고독에서 살아남기 유용하겠구나.”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서요. 그럼 주먹질하는 거나 발차기 같은 걸 배워야 하지 않나요?”
소년의 의구심 섞인 말에 아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딴 걸 왜 배우느냐. 너에겐 가장 강한 무기가 있는데.”
“가장 강한 무기요?”
“그래. 네 ‘피’ 말이다.”
피란 말에 세로가 몸을 움찔 떨었다.
피. 종족.
이 분류 때문에 소년은 그동안 잔혹한 일에 휘말렸었다.
이제 막 10살에 가까워질 나이에 말이다.
그런데 아겔은 바로 그 종족을 언급하고 있었다.
“주먹질? 기술? 너에겐 부질없는 것이다. 네가 배워야 할 건 그딴 게 아니야.”
노인은 소년에게 다른 걸 가르치길 원했다.
“그럼 뭔데요?”
“일단 눈이나 감아라.”
아겔의 말대로 세로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캄캄한 어둠이 펼쳐졌다.
“이제부터 네 안으로 들어가 볼 것이다. 준비됐느냐?”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일단 소년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아겔이 가까이 다가와 손을 잡았다.
세로는 그의 손길을 느끼고 움찔 떨었으나.
“숨을 들이쉬어라.”
아겔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호흡을 시작했다.
그러자…….
“어?”
소년은 어둠 속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꿈속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서 있는 자신.
분명 방금까지 앉아 있었는데 말이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도, 감방의 마법 횃불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 할아버지? 할아버지!”
세로의 다급한 목소리가 어둠에 울려 퍼졌다.
마치 산 위에 올라 소리치듯 메아리가 저쪽으로부터 들려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세로는 겁이 났지만, 울음을 꾹 참고 입을 앙다물었다.
[들리느냐.]
“할아버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로가 다급히 대답했다.
“들려요……! 어디에 계신 거예요? 여기 너무 무서워요…….”
[진정해라. 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노인의 목소리가 푸근하게 들려와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는 세로였다.
[너는 지금 너의 내면 안에 들어와 있다.]
“내면…….”
[한 발자국 걸어 봐라.]
노인은 마치 소년의 모습을 어디선가 보고 있는 듯 명령을 내렸다.
세로는 그의 말을 따라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발걸음을 내디딘 어둠으로부터 색깔이 피어오르더니.
“우와…….”
소년의 과거 기억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행복했던 시절.
형과 뛰놀던 시간.
세로는 검은색에서 화사한 색깔로 뒤바뀐 기억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만. 이제부터 바닥을 보지 말아라.]
아겔의 말에 소년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앞만 봐라. 바닥에 비치는 색깔 정도는 괜찮다. 그러나 절대로 고개를 숙여선 안 된다.]
“아, 알겠어요.”
노인의 강한 명령에 세로는 침을 삼켰다.
이제부터 뭔가 하려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걸어가라. 천천히.]
사방이 어둠이었지만, 세로는 ‘앞’이 어딘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노인의 말대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발을 디딜 때마다 연못 위에 잔물결처럼 기억이 퍼져 나갔으나, 세로는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까 본 기억엔 엄마와 아빠도 있었지만, 노인의 말을 어길 수는 없었기에 보지 않기로 했다.
‘참자…… 할아버지 말만 따르는 거야.’
세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아갈수록 사방의 어둠은 더욱 깊어지고, 바닥의 색깔도 더 선명해졌다.
-끄아아아악……! 습격이다!
-막아!
-여보-! 안 돼요-!
세로는 밑에서 끔찍한 과거가 펼쳐진다는 걸 알고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살던 마을을 습격한 괴한들.
커다란 기계 골렘들과 무수히 쓰러져 가는 마을 사람들.
붉게 타오르는 새벽.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도 세로는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괜찮아…… 다 지난 일이야…….’
스스로 다독여 보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끌려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하나 고개를 숙이지 말란 아겔의 말대로 끝까지 참아 내는 세로였다.
곧 마지막 기억까지 걸어왔다.
기억 너머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이었다.
다만, 평범한 어둠과 다르게 나아갈수록 더 깊어진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끝에 도달했느냐.]
“네…….”
[좋다. 계속 가라.]
“계속…… 가라고요?”
기억을 넘어서는 오직 어둠뿐이었다.
발판조차 없었다.
발을 내디디면 곧바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가야 한다. 강해지기 위해선.]
세로는 이를 악물었다.
앞으로 간다는 간단한 행위 하나가 이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지만.
‘하, 할 수 있어. 물러서지 않아.’
아겔의 말대로 세로는 기억을 넘어 어둠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헙……!”
그 순간 무거운 중압감이 세로를 짓눌렀다.
무언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아겔의 시선은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아겔이 뭔가 말하려고 할 때, 그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어둠이 찾아왔다.
{오랜만이야.}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마치 유혹하듯 세로에게 말을 걸었다.
{여태까지 날 불러 주지 않다니, 너무 서운한걸?}
세로는 아겔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며 입을 앙다물고 걸었다.
한 발자국 걷기도 힘들었지만, 전력을 다해 발을 움직였다.
{내 말이 안 들려? 하긴 너무 어리니까. 약해 빠져선 제 형 그리고 늙어 빠진 노인네에게 빌붙어 살아남는 겁쟁이.}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 파는 말에도 세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 때문이야. 알아? 네 부모랑 마을 사람들이 전부 잡혀간 거 말이야. 네가 울타리를 벗어나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거야. 그러니까. 누가 나가래?}
목소리는 세로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을 만큼 지독하게.
[겁쟁이약해빠진놈병신축복받은피도제대로못다루는버러지비겁한생존자멍청이개새끼거렁뱅이등신띨띨이패배자벌레빌어먹을쌍놈쓰레기얼간이저능아호로자식]
“헉헉…….”
얼마나 걸었을까.
세로는 더 이상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헉……!”
순간 발밑이 훅 꺼지며 소년이 추락했다.
세로는 급히 팔을 들어 어둠의 한 켠을 붙잡았다.
“끄으으으…….”
겨우 매달려 있었지만, 어둠이 자신을 빨아들이듯 발밑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 순간 소년을 아래를 바라보았다.
눈.
거대한 야수의 눈이 형형한 빛을 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날 보는구나!}
탁.
“아앗……!”
짐승의 눈을 보자마자, 세로가 잡고 있던 어둠을 놓쳤다.
소년은 끝없이 추락했고, 짐승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자신을 삼키려 했다.
{자알 먹겠습니다-!}
“으아아아아악---!!”
추락하던 소년의 팔을 누군가 붙잡았다.
텁.
늙은 손은 그대로 소년을 위로 끌어올렸다.
슈화아아악-!
“……!”
세로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아겔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식은땀이 전신을 적시고 있었다.
“괜찮으냐.”
“아…….”
눈앞에 서 있는 아겔은 자신의 팔을 붙잡아 주고 있었다.
털이 숭숭 난 팔을.
‘털? 왜 털이……?’
그제야 소년은 자신의 몸을 돌아볼 수 있었다.
형처럼 날카로운 손발톱과 털이 난 팔.
수인화의 정석적인 모습이었다.
“이, 이게…….”
“축하한다.”
아겔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면의 어둠을 이겨 냈구나.”
“내면의…… 어둠이요?”
세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다리를 살펴보았다.
넘치는 활력에 강철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손발톱.
소년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 강해졌다.’
아직은 팔다리를 수인화하는 게 한계인 것 같았지만, 이 정도라면 누군가에게 쉽게 당하진 않을 것 같았다.
세로는 감격한 얼굴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이걸 가르쳐 주시려고 하셨던 건가요?”
“음? 뭐 그런 셈이지. 성공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아겔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한 번에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내가 가르쳐 주려고 한 건 다른 거였다.”
긍정의 말을 들었어도 세로는 의아한 감정이 들었다.
“네? 그럼 뭘 가르쳐 주시려고…….”
“규칙을 이겨 내는 법.”
“네? 그게 무슨…….”
아겔은 그 말 이외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걸음을 돌려 감방 안으로 걸어갔다.
세로는 멍하니 서서 아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규칙을 이겨 낸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에 세로는 성장한 자신의 감각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넘치는 활력에 감각까지 이전과 차원이 다르게 예민해졌다.
어둠이 그득한 감방에서 눈에 힘을 주면 멀리까지 볼 수 있었고, 소리 또한 더 잘 들렸다.
“어……?”
세로는 이상한 걸 발견했다.
저 멀리에 있는 죄수들이 보였는데, 그들은 전부.
“왜 누워 있지? 돌아가신 건…….”
드르렁. 드르렁. 퓨우.
소년은 입을 막았다.
그들은 죽어 있는 게 아니었다.
“설마…….”
수백의 죄수가 잠들어 있다.
지금은 취침시간이었고 세로는 서 있었다.
* * *
아겔은 세로를 가르치고 한쪽으로 걸어왔다.
취침시간이지만, 일어서서 돌아다니는 건 아겔에게 전혀 문제가 없는 행동이었다.
일어나 있어도 전기 충격은 가해지지 않는다.
내면의 어둠을 마주한 자는 이렇게 규칙을 이겨 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도 할 수 있다.
세로에게 해 주었던 대로, 아겔은 스스로의 어둠과 마주했다.
아니, 지금도 그러하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세로가 잠깐 경험했던 어둠을 아겔은 살아가고 있다.
고독에 처음 갇혔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겔은 감방 중앙 쪽으로 걸어왔다.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엔 마곤 서클이 오른쪽엔 베캄 서클이 모여 자고 있었다.
‘쯧. 피 냄새는 오른쪽이 더 진했구먼. 나이가 들더니 헷갈렸나.’
냄새가 느껴진다.
두 서클에게서 나는 냄새.
왼쪽에선 몽실몽실한 무언가의 향기가.
오른쪽에선 짙은 피 냄새가.
‘하나 처리했더니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군.’
고독을 지배하는 자들의 영향력은 다만 그곳에서만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
피지배층에 해당하는 하급 죄수들까지 그 힘이 미친다.
그리고 이 감방도 마찬가지였다.
“힘 좀 써야겠구먼.”
개방까지 한 달이 남았다.
그리고 이제 방출이 시작될 차례였다.
이번에도 피 냄새가 아주 짙게 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