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미아
세로는 아겔의 지도에 따라 매일같이 내면의 어둠을 마주했다.
하루, 이틀, 삼일, 일주일이 가도록.
아겔은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는 법에만 몰두하도록 세로를 가르쳤다.
첫날부터 수인화란 성취를 이뤄 내 세로도 그의 지도를 의심하진 않았으나, 날이 갈수록 성취가 더뎌졌다.
“무, 무서워요…… 이, 이제 그만…….”
“흠…….”
지금까지 쌓인 방대한 과거의 기억을 걸어온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첫날엔 무려 10시간가량 내면 속에 있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점차 어둠을 마주하는 시간이 줄어, 8일째 되는 지금은 1시간도 채 넘기지 못했다.
“헉헉…….”
“수고했다.”
전신에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는 세로.
노인의 가르침에 따라 천천히 호흡을 되찾으려 했다.
아겔은 수염을 가다듬으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하긴. 이 과정이 쉽진 않지.’
어둠을 마주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아니, 단순히 쉽다고 말할 수 없이 평범한 사람은 기겁하며 도망치려 할 만한 경험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위를 걷는 건 튼튼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어둠 속에서 일반인은 한 걸음조차 내딛지 못하리라.
하나, 이 과정을 이겨 내기만 한다면 그 누구도 쉽게 침범할 수 없는 고강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다.
더불어서 ‘자아’를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세로는 아겔에게 말한 적이 있다.
어둠 속에서 짐승의 눈이 보고 있었다고.
아겔이라고 그게 뭔지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다.
다만, 소년의 다른 일부분이라고 추측성 짙은 대답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시간이 걸리겠구먼.’
첫날에 소년이 오래 내면 속에 거할 수 있었던 것도 지나온 과거에 기대어 가능했던 것이다.
내면 속 어둠을 더 걷고 싶다면, 그만한 일을 겪어야 한다.
가령 목숨이 위험한 일이라든지.
혹은 온 세상이 뒤바뀌어 보일 깨달음이라든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기뻐한다든지 어떤 것이든 필요하다.
아겔이 세로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이 훈련은 중단하겠다.”
그 말에 세로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벌써요? 이제, 그만하는 거예요?”
세로는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강해지고 있긴 한데, 벌써 끝을 내는 것에 대한 감정이리라.
“다음에 다시 할 게다. 지금은 다른 걸 해야지.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수인화해 보거라.”
아겔의 말에 세로는 눈을 감고 감각을 떠올렸다.
인간에서 짐승으로 변화하는 감각.
이성 대신 본능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세로는 쉽게 해냈다.
으드득.
팔과 다리, 어깨의 골격이 순식간에 성장하고 복슬한 털이 자라난다.
소년의 눈동자는 아직 인간의 것이었지만, 이전에 없던 짐승의 날카로움이 더해졌다.
아직 이빨은 날카롭게 자라지 않았다.
“다 했어요.”
팔다리, 어깨.
아직 골반은 무리였고,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이제 뭘 해야 하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소년은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나와 한번 겨뤄 보자꾸나.”
“네?”
휙!
노인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소년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엇……!”
이전이라면 절대로 피하지 못할 은밀하고 갑작스러운 출수.
그러나 소년은 빠른 몸놀림으로 노인의 주먹을 피해 냈다.
하지만 공격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퍽.
“켕……!”
다음으로 오는 주먹에 코를 맞고, 세로는 뒤로 물러서며 두 손으로 코를 박박 문질렀다.
“으윽…… 갑자기 공격하는 게 어디…….”
뭐라고 항변하기도 전에 아겔의 몸이 눈앞에 있는 게 보였다.
“힉……!”
아겔의 주먹과 발이 난무했다.
세로는 최대한 피하면서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빡.
“윽……!”
“언제까지 도망만 칠 거냐. 괜찮으니 공격해 보아라.”
머리통에 딱밤을 쥐어박힌 세로가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 할아버지라도 안 봐 줄 거예요.”
촤악!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을 찢었다.
아겔의 머리를 노리고 한 공격이었으나, 노인은 쉽게 피해 냈다.
그 뒤로도 소년은 아겔에게 달려들며 머리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힘은 좋지만, 수가 다 보인다. 자꾸 머리만 노리면 안 되지.”
퍽.
어깨에 주먹을 맞은 소년은 잠시 몸을 물렸다.
“으윽…….”
“생각하지 말고 싸워라. 그냥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는 거다.”
“본능…….”
아겔은 내면의 어둠을 보는 훈련을 할 때도 본능을 염두에 두라고 지속적으로 말했다.
세로는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날렸다.
‘본능적으로…….’
촤악! 촤악!
잘은 모르겠지만, 소년은 조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어둠 속을 걷던 그 위태로운 감각을 떠올리면 되는 것 같았다.
공격이 이전과 달라졌다.
머리로만 향하던 공격은 다리로, 팔로, 어깨로, 복부로.
그리고 더 세밀하게는 손가락으로, 발가락으로, 귀로, 심지어는 코까지 노리는 공격도 보였다.
아겔은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소년의 공격을 피하며 흡족한 마음을 숨겼다.
‘말한다고 바로 하는 건 참 좋은 재능이군.’
소년에게 생각하며 싸우는 방법 따윈 필요 없다.
그저 본능이 말하는 대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 제일 좋은 수단.
세로는 착실하게 본능을 이용하는 법을 배워 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말하는 대로 쑥쑥 성장하는 재능까지 더해지니, 앞으로 소년이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한 10년만 있어도 지금의 날 따라잡으려나. 순혈이라 더 빠를 수도 있겠군.’
하나 소년이 고독에 10년이나 머물 일은 없을 것이다.
상품은 금방 팔려 나가니까.
노인은 쓸데없는 상념을 멈추고, 세로를 제대로 상대했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벅!
소년의 전신이 주먹에 난타당했다.
“케헥……!”
“맞는 방법도 잘 알아야 한다. 고통을 느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자는 차원이 다르니까.”
“그, 그만……! 아파요!”
한참 동안 아겔은 사정없이 소년을 때렸다.
얼굴, 겨드랑이 안쪽, 오금, 턱, 목, 명치.
성기를 제외한 중요한 급소는 맞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다.
결국 세로는 전신에 힘이 빠진 채로 널브러졌다.
“끄으…….”
“…….”
드디어 주먹질을 멈춘 아겔이 쓰러진 세로 옆에 앉아 소년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복도.
오늘은 세로와 대련하기 위해 감방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감방 안에선 죄수들의 시선이 우려되었으니까.
‘그나저나 오늘이구먼.’
오늘이 바로 방출이 시작되는 날이다.
고독에 3년 이상 머문 자들은 대충 감을 잡을 것이다.
소환과 다르게 방출과 개방은 정기적으로 진행되니, 대충 언제 시작하는지 느낌은 올 것이다.
죄수들이 그 시간 동안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대비한다고 해서 그리 달라지는 게 많진 않지. 특히 하급 죄수들은…….’
죄수들이 대비할 것을 생각하고 고안된 시스템이다.
그리 만만할 리가 없다.
방출은 고독의 죄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시스템.
하급 죄수들의 생존율은 극악이고, 마치 살충제 앞의 벌레처럼 죽어 나간다.
간수에게 전해 들은 통계로 따졌을 땐 시스템 중 두 번째로 많이 죄수들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겔에겐 딱히 감흥이 있는 일은 아니었다.
“후우…….”
숨을 고른 소년이 노인의 곁에 와 앉았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그런지 회복 속도가 남달랐다.
진심은 아니어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때려 놓았을 터인데.
‘아니, 내가 늙은 것인가.’
의문이 들긴 했지만, 아겔은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약 일주일 전에 흡수했던 생기가 그의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지금도 그 힘은 소모되고 있었지만, 오늘 다가올 방출을 손쉽게 버티기에 차고 남을 정도다.
‘쯧, 다른 힘에 기대면 안 되는 것을.’
기실 이런 것에 의지할 필요도 없었지만, 좋은 기회가 있는데 놓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훗날을 위해 준비하는 건 참된 생존의 자세.
유비무환의 마음이렷다.
“할아버지. 왜 이렇게 잘 싸우세요……?”
상념에 빠진 노인에게 세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싸우는 사람 처음 보느냐.”
“네. 할아버지 같은 사람은 처음이에요. 인간이고 엄청 늙었는데 그렇게 잘 싸우는 건 처음이에요. 혹시 인간 맞으세요?”
농담이나 헛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담긴 질문이라 생경한 감정이 들었다.
어린아이의 솔직한 의문.
아겔 또한 정직하게 대답했다.
“난 인간이다.”
“제가 본 인간들은 안 그러던데…….”
세로는 의심이 된다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할아버지 주먹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되게 날카롭다고 해야 하나. 혹시 기나 마나를 사용하실 수 있으세요?”
“음…….”
아겔은 벽에 머리를 기댄 채로 말했다.
“마나는 아니지만, 기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단다.”
“역시……!”
“하지만 남이 도와주지 않는 이상 혼자선 불가능하지.”
“아…….”
세로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숨에 이해한 표정이었다.
기란 참으로 복잡한 힘.
세상엔 많은 기인(氣人)이 있는데, 그 종류조차도 다 집계하지 못할 만큼 다양했다.
어찌 되었든 아겔의 말에 따르면 그는 제대로 된 기인도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건 더 이상 묻지 말거라.”
“아, 네…….”
노인의 실력에 대한 질문을 금지당하니 세로는 곧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아겔은 침울해진 소년을 보고 말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꾸나. 뭐 궁금한 거 없느냐?”
소년은 궁금한 게 많았는지, 금세 밝아진 얼굴이 되었다.
“아, 많아요.”
세로는 아겔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몇 살이세요?”
“88살이다.”
“취미는요?”
“딱히 없다. 밤에 잠이 안 오면 복도를 산책하기도 한단다.”
“친구는 있어요?”
“없진 않지.”
“어떤 친구가 있어요?”
“차갑지만 온기 있는 친구가 있고, 곰처럼 생긴 친구와 아주 무뚝뚝한 친구도 있단다.”
“얼마나 무뚝뚝한데요?”
“친구가 된 지 40년이 됐는데, 아직도 그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지.”
“우와…… 말도 안 하는데 어떻게 친구가 되었어요?”
“친구가 되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구나.”
소년은 아겔에게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꽤 놀란 듯했다.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으실 줄 알았는데.”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만 찾아간단다. 그들은 나와 감방이 다르거든.”
“신기하네요. 같은 감방에 배정된 적은 없으세요?”
“한 번도 없다.”
그 말에 세로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같은 감방에 배정된 적이 한 번도 없다니.
노인이 말해 준 바에 따르면 감방은 약 3개월마다 바뀐다는데, 이곳에서 꽤 오래 살았던 아겔과 한 번도 같은 감방이 되지 않았다면.
‘이상하네. 하급 죄수가 아닌 걸까.’
세로는 복잡한 생각은 버리고 좀 더 깊은 질문을 해 보기로 했다.
“취침시간에 일어서는 방법은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아겔은 취침시간에 걸어 다닐 수 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이제 소년도 그럴 수 있게 되었다.
일반 죄수라면 그들을 보고 기함을 할 법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고독의 규칙이자 시스템인 ‘불립’의 규칙을 어긴 것이니까.
누구도 전기 충격에서 예외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발견했다.”
소년이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숨 쉬고 있다 보니 살았다’와 다르지 않은 대답이었지만, 세로는 포기하지 않았다.
“……. 그럼 먹을 게 부족할 때는 어떻게 했어요?”
“벌레를 먹었다.”
“어떻게요? 눈도 안 보이시잖아요. 잡기 어려울 텐데.”
“그냥 배고파서 찾으니까 금방 잡히더구나.”
“…….”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라 세로의 얼굴이 뾰로통하게 변했다.
소년은 마지막 수를 던졌다.
“그럼 고독엔 왜 오게 되었어요?”
“…….”
세로는 아겔이 잠시 말문이 막히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번만큼은 방금처럼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다.
정확한 사연을 말하지 않으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리라 생각하는 세로였다.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가 죽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소년은 당황한 기색으로 어버버했다.
세로는 침착함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노인의 말을 곱씹었다.
범죄자들 대부분은 아내를 죽였다고 말할 텐데, 그는 죽었다고만 말했다.
세로의 머릿속에 위화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게 고독에 들어온 사연이 될 수 있을까.
“참으로 예쁘고 웃음이 밝은 사람이었지.”
노인은 그때를 떠올리는 듯했다.
고독에 수감되기 전의 기억.
이제 10살이 넘은 세로로서는 그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너도 그랬겠지만, 나도 억울하게 들어왔단다. 이 얘기는 다음에 좀 더 해 주마.”
세로는 뭔가 말하려 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이곳은 억울하다고 내보내 달라는 말이 통하는 곳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겔에게 세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나가려 해 보진 않으셨어요?”
“왜 안 그랬겠느냐. 여기 오고 한 3년은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쳤고, 1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 봤지.”
아겔은 탈옥을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이 거대한 행성 감옥은 평범한 인간 따위가 나가기엔 너무도 광대하고 오만한 곳이었다.
수백의 대마법사들이 쌓아 올린 미로는 노인에게 그 무엇과 비할 수 없는 절망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한 명의 죄수는 깨달았다.
“그 누구도 여기서 나갈 수 없단다.”
“…….”
쿠궁…….
그 말을 끝으로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진동에 세로가 놀라 벌떡 일어섰다.
“모, 몬스터인가요……?”
“아니. 곧 시작되겠구나.”
“네……? 뭐가요?”
방출이 시작된다.
이제 모든 죄수가 길 잃은 미아가 된다.
끝없이 펼쳐진 미궁에 갇혀 벌벌 떨며 집을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미쳐서 실성할 것이다.
끝없는 공포에 짓눌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강력한 힘으로 미궁을 유린하는 자가 모습을 드러내리라.
아겔은 복도 너머 어둠을 바라보았다.
두려워하지 않고 수많은 위험을 뚫어 낼 용기만 있다면, 길을 찾는 건 시간문제이다.
돌아가는 길은 누구나 찾을 수 있다.
다만, 아겔은 다른 길을 하나 더 찾았을 뿐이다.
4년이나 걸렸지만 말이다.
그저 돌아가는 길이 아닌,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그렇게 60년을 더 견뎠고 여전히 시간에 달린 문제.
그때까지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느냐…….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익-----!!
경고성 짙은 소리가 모든 감방을 울렸다.
-방출을 시작하겠다.
간수의 목소리.
아겔은 입술을 비죽이며 고개를 들었다.
고독에서도 시간은 가고 있었다.
째깍.
초침 소리가 들리자마자, 모든 죄수가 감방에서 복도로 내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