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두 번째 시스템 : 방출 (1)
아겔은 옆에 있는 세로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들었다.
“헉……!”
그와 동시에 죄수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후, 또 시작할 줄은 알았지만 그게 오늘이었다니.
-시발…… 길만 잘 찾으면 돼. 쫄 것 없어.
-젠장, 복도는 언제 나와도 기분이 엿 같아지는 곳이야.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할아버지?”
당황함이 묻어 나오는 음색이었다.
그와 다르게 아겔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방출이란다. 감방 안에 있는 죄수들을 복도 아무 곳으로 내쫓는 시스템이지.”
고독의 시스템 중 하나인 ‘방출’은 모든 죄수를 감방 밖으로 텔레포트시킨다.
예외는 없다.
모든 죄수가 복도에 던져지고 다시 자신의 감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른 감방은 들어갈 수 없다.
전기 충격을 좋아하는 변태가 아니라면 말이다.
아겔의 말을 듣고 나서야 소년은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시스템…… 저번에 마물이 나온 것과 비슷한 건가요?”
“그래.”
그래도 소년은 같은 감방 인원들은 한자리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좀 놓은 모양이었다.
“뿔뿔이 흩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근데 돌아갈 수 있을까요? 다들 길을 모르는 것 같은데.”
“그리 걱정할 것은 없다. 네 말대로 방출도 소환처럼 그저 시스템에 불과하니까.”
아겔은 마치 쉬운 일인 것처럼 말했지만, 세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우선 복도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었고, 지도 같은 것도 없는 상황에 어느 길로 가는지 어떻게 정한단 말인가.
애초에 소환조차 소년에겐 쉬운 고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년의 우려와 다르게 죄수들은 빠르게 규합되었다.
서클장인 마곤과 베캄이 다가왔다.
“영감님, 방출입니다.”
“알고 있네.”
[하급 복도 8972]
베캄이 복도 벽에 걸린 팻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쉽게도 내가 정찰한 곳이 아니군. 돌아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
“나도 이쪽은 모른다.”
마곤과 베캄은 [3-448 감방]을 배정받고 주기적으로 복도에 나가 주변 길을 살폈었다.
방출이 시작되기 전, 감방 근처의 팻말을 외우면서 감방으로 돌아올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둘조차 모르는 길인 모양이었다.
베캄이 말했다.
“일단은 아는 곳이 나올 때까지는 무작정 돌아다녀야겠군.”
복도의 팻말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찾아 놓았던 길이 나오면 미리 정찰한 지식을 가지고 감방을 찾는 것이다.
마곤이 복도를 둘러보는 듯 두리번거렸다.
“바로 움직이시죠, 영감님. 복도에서 시간을 지체하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베캄도 그 말에 동의했다.
“동의한다. 우리처럼 숫자가 많으면 몬스터나 다른 죄수들의 이목이 쏠릴 수도 있지.”
하급 죄수가 복도에 오래 머무는 건 위험하다.
물론 아겔은 복도가 그리 무섭진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산책도 하는 곳인데 무서울 리가.
‘길은 얼추 알겠군.’
감방으로 돌아갈 가장 빠른 길이 느껴진다.
아는 자는 많지 않지만, 그에게 있어서 복도에서 길을 찾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어디로 가면 감방에 도달할 수 있을지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고독의 구조가 수백 번 ‘변환’되었어도 이 능력은 변함이 없었다.
아겔 자신도 왜 길을 아는지 알 수 없었지만, 찾을 수 없는 답에 매몰되어 골머리를 앓고 싶진 않았다.
쟁점은 그게 아닌 방출이 일어났을 때, 해야 할 일.
노인은 팻말과 그 아래에 각인된 음각 문자를 손으로 쓸며 읽었다.
[출장]
노인은 의미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이 출장을 갔다면, 당분간은 못 만나겠군. 역시 감방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구먼.’
결정을 내린 아겔이 고개를 돌렸다.
“좋아. 그럼 어느 쪽으로 가 볼지 정해 보겠나?”
다수로 이루어진 서클의 수장인 마곤과 베캄, 두 사람에게 던져진 질문.
노인의 말에 마곤이 먼저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 보도록 하죠. 가장 너비가 넓으니 대비하기도 쉬울 겁니다.”
네 방향으로 나 있는 복도 중 하나였다.
복도의 너비가 굉장히 넓어 보였는데, 최소 마흔 명은 나란히 갈 수 있을 만했다.
“모르는 소리.”
베캄이 그의 말에 반대했다.
“넓은 곳이 몬스터에 대비하기 쉽다곤 하나, 오히려 복도가 넓은 곳에서 더 많은 몬스터가 나타난다. 좁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큰 싸움을 피할 수 있다.”
이번엔 마곤이 눈을 부라렸다.
“너야말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좁은 곳은 강력한 몬스터가 지키고 있다는 거 모르냐? 귀신이라도 마주치면 어쩔 거냐.”
“귀신은 어차피 어딜 가든 마주칠 수 있으니, 복도의 넓고 좁음의 문제가 아니다.”
“복도에 대해서 잘 아는 줄 아나 본데. 네 방식대로 가면 반드시 위험한 일이 생긴다.”
“적어도 내가 너보단 복도를 더 오래 다녀 봤다. 어느 게 더 위험한 건지 잘 알지. 얕은 지식으로 내 수하들을 위험에 빠뜨릴 생각 마라.”
흥, 누가 할 소릴. 네 지시대로 하다간 감방에 돌아가기도 전에 몰살당할 거다.
되는대로 지껄이는군.
두 사람이 서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고, 주변 죄수들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세로도 마찬가지였다.
수백 명의 죄수를 이끌어야 할 수장들이 논쟁에 휘말린 모습에 자연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 와중에 아겔은 담담히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감춰진 의도를 읽으며.
잠시 듣고 있던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노인은 허투루 질문한 게 아니었다.
몇 가지 의도가 들어 있었고, 그것이 지금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우선 그가 알아낸 것은.
‘거짓말이구나.’
이 둘은 거짓말하고 있다.
처음에 팻말을 보고 길을 모르는 복도라고 말한 두 사람의 말은 거짓이다.
둘은 어디로 가야 감방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아마 새 감방에 배정되자마자, 길을 외우는 데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감방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다.
‘제 주인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려는군.’
하급 죄수들을 몰래 주무르고 있는 강자들의 손아귀.
둘이 몸을 담고 있는 고독의 거대 세력.
마곤과 베캄의 진정한 주인.
그들이 있는 곳에 서로를 데려가려는 것이다.
단서는 너무도 명확하다.
[3-448 감방]에 배정되었을 때부터 코를 찌르는 환약과 피 냄새가 증거이니.
그러므로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게지.’
점점 격화되는 서클장들의 언쟁에 세로가 아겔에게 꼭 달라붙으며 말했다.
“어…… 싸우시진 않겠죠?”
“아마 싸울 거다.”
“네? 그럼 큰일 아니에요?”
“우리끼리 싸우는 건 자충수이니 서로 공격하진 않을 거다.”
“어. 그럼 안 싸우는 거 아니에요?”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싸운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적은 따로 있으니까.
발걸음 소리는 이미 방출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나고 있었다.
그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아겔밖에 없었고.
아겔은 복도의 어둠 저편을 바라보았다.
“타이밍이 괜찮구나.”
“네?”
곧 어둠 속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케게겔겔……!
아니, 수백 수천.
죄수들의 숫자를 가뿐히 뛰어넘을 식인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어린아이보단 크고 인간 어른보단 작은 초록색 고블린들.
보부상 고블린인 제이콥과 달리 이들과는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
샛노란 눈빛을 가진 이 종족에게 사람은 먹잇감일 뿐이니까.
식인 고블린이 몬스터로 분류되는 이유였다.
곧 죄수들도 식인 고블린 무리를 발견했는지, 곳곳에서 큰 목소리로 알려 왔다.
-식인 고블린이다……!
-젠장, 수가 많아!
-평소엔 백 마리도 안 몰려다니는 놈들이……! 젠장!
죄수들은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식인 고블린은 평소엔 먹잇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1~2급 몬스터라고 해도 숫자가 이렇게 많으면 쉽게 볼 수 없다.
식인 고블린의 등장에 서클장들이 선두에 서서 전투에 돌입했다.
싸움을 피할 수 없으니, 일단 빠르게 정리하자는 생각은 일치한 모양이었다.
마곤과 베캄이 소리쳤다.
“두 방향씩 맡는다!”
“공격해!”
전투가 시작되었다.
콰직! 스걱! 촤악!
잔혹한 피륙음이 네 갈래 길 각지에서 들려온다.
-감히 고블린 따위가……!
-뒈져!
-너흰 한주먹거리도 안 돼!
하급 죄수라곤 해도 반 이상이 3급인 죄수들은 식인 고블린 따위가 어찌해 볼 수 있는 급수가 아니었다.
주먹질만으로 머리통을 박살 내고, 발차기로 몸통을 부순다.
베캄처럼 검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은 더욱 수월하게 고블린은 도륙했다.
“크하아아악……!”
그래도 가끔 몇몇은 고블린의 눈먼 손톱에 당하기도 했고,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죽는 건 십상이었다.
한 사람에게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달려드니, 가히 인해전술.
끝도 없이 고블린이 몰려왔다.
아겔은 세로의 손목을 붙잡고 한쪽 복도를 향해 달렸다.
“이쪽이다.”
“에엑……! 고블린들이 너무 많은데요! 뭐 하시려고요!”
아겔이 달리는 방향은 마곤과 베캄이 가리키지 않은 진짜 감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길은 당연히 수백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막고 있었다.
놈들은 알아서 달려드는 먹잇감을 향해 침을 뚝뚝 흘리며 돌진했다.
-케게게겔!
-케겔!
노인이 벌레 단검을 꺼냈다.
“길을 뚫을 테니 바짝 붙어서 달리거라.”
“네?! 같이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따로 가야 한다.”
짤막하게 대답한 아겔은 고블린의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
“어?”
세로는 일단 그를 따라 달리면서도 벙찐 얼굴을 했다.
-키헤에에엑!
-케엑…….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고블린을 찌르고 베며 나아가는 아겔.
어떤 고블린도 그를 1초 이상 멈춰 세우지 못했다.
수백의 고블린 사이를 달려가는 아겔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촤악! 서걱!
정말로 뚫린다.
빈틈없는 바다에 공간이 생겨난다.
살벌한 피륙음과 고통스러운 비명이 수놓아진 더러운 길이.
노인의 의지 앞에서.
세로는 바짝 정신을 차리고 고블린들의 손길을 피해 노인의 뒤를 따라 달렸다.
바로 뒤에선 고블린으로 이루어진 바다가 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이미 선두에 서서 고블린들과 격전을 치르는 죄수들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소년은 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된 건지 의아해하면서 팔을 들었다.
“흐아아압……!”
세로도 두 팔을 수인화하여 자신을 가로막는 고블린들의 사지를 갈라 버리며 아겔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노인 때문이다.
저 늙은 죄수 때문에 불가능한 선택이 가능하게 되고 있다.
세로도 그에 따라 전엔 절대로 하지 않았을 선택을 따르게 되었다.
‘이건 정말…….’
뭐라 표현하기도 벅찬 기묘한 위화감.
으드드득!
생각을 멈춘 세로는 다리까지 수인화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놓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촤악!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노인의 마지막 참격 끝에 고블린으로 이루어진 그물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
.
.
“숨 좀 돌리고 가자꾸나.”
그렇게 말하는 노인은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는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태연한 모습의 아겔은 주워 온 고블린의 가죽으로 단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는 중이었다.
“헉헉…….”
반면, 세로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렇게 미친 듯이 뛴 적은 처음이었다.
전력으로 달리지 않았다면, 다시 고블린 떼가 자신을 둘러쌌을 테니 멈출 수 없었다.
힘이 조금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소년은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힘이…….’
온몸에 고블린의 더러운 피가 튀었고, 냄새가 났음에도 상쾌하다.
이전에 참고 참아 왔던 무언가가 둑을 터뜨리고 나온 것처럼 세로는 쾌활한 자신의 육체를 느꼈다.
고블린이 자신의 손톱 한 방에 머리가 갈라지고, 살덩이가 짓이겨졌다.
종족에 내재한 힘을 끌어냈을 때, 비로소 세로는 해방감을 느꼈다.
소년이 속으로 기뻐하든 말든 아겔은 단검을 깨끗이 닦아 내자마자, 가죽을 땅에 버리고 일어섰다.
“가자꾸나.”
“헉헉…… 좀만 더 쉬면 안 돼요?”
세로는 아직 숨이 다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채근하는 노인이 야속하기만 했다.
일단 일어서긴 했지만, 조금만 더 쉬고 싶은 기색이었다.
“죽고 싶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거라.”
“……죽고 싶진 않아요.”
“그럼 움직여라. 지금도 누가 우릴 찾아올지 모른다.”
“우릴 찾는 사람이 있어요?”
세로의 물음에 아겔은 속으로 정정했다.
우리가 아니라 나.
아겔은 죄수들에게 노려지고 있는 처지.
상급 죄수들조차 그를 탐낸다.
그렇다고 딱히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럽진 않다.
이젠 너무 익숙해져 버렸고, 으레 강한 자는 약한 자를 괴롭히지 못하여 안달이 나는 법이니까.
‘아니, 이놈의 정체가 까발려지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될 수도 있긴 하겠군.’
아겔은 상념을 지우며 소년을 채근했다.
“상급 죄수라도 마주치면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을 게다. 그러니 어서 감방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알겠어요. 가요.”
노인과 소년이 복도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겔은 어둠을 걸어가며 생각했다.
‘방출은 시작한 직후가 가장 위험한 법.’
시스템의 무서움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