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23)화 (24/186)

23화 두 번째 시스템 : 방출 (2)

아겔과 세로가 복도를 걷고 있었다.

방출이 시작된 지도 3시간 정도가 지났다.

제대로 복도를 돌아다닌 건 처음인 소년은 어둡기만 한 이 장소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비리고 기름진 냄새, 철분의 향이 돌로 이루어진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생명이 스러진 데서 나는 냄새인 것 같았기에,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소년의 감각대로 얼마 가지 않아, 죄수들의 시체가 무더기로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윽…….”

“될 수 있으면 시체가 쌓인 곳엔 가까이 가지 마라.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찌걱…… 찌걱…….

군데군데 보이는 시체 근처에 커다란 벌레들이 모여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길이만 10미터는 넘어 보이는 지네나 사람 머리통만 한 벌, 개미 등.

다행히 벌레들은 살아 있는 먹이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벌레는 우릴 공격하지 않는 건가요?”

“그럴 리가. 다만, 쉽게 얻은 먹이를 먼저 먹을 뿐이다.”

근처에 있는 벌레들이 공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세로의 몸은 살짝 떨려 왔다.

-키에에엑!

실제로도 벌레 몇 마리가 아겔과 세로에게 달려들었지만.

콰득!

아겔의 단검에 찍혀 과연 벌레답게 죽어 버렸다.

다시금 안정감을 느낀 세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궁금했던 걸 질문했다.

“저, 할아버지. 왜 우린 따로 나온 거예요? 같이 가는 게 안전하지 않아요?”

상식적으로 길을 모른다면 수백의 죄수와 같이 길을 찾는 게 나을 거다.

하나인 것보단 나을 테니까.

몬스터가 많아도 결집한 숫자로 극복해 낼 수 있기도 하고.

협동의 힘이 독불장군을 넘어선다는 건 소년의 머릿속엔 기본 전제로 깔린 의식이었다.

세로뿐만 아니라 다들 그럴 것이다.

아겔은 그 생각을 부정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지.”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집단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다.

무리를 이끄는 수장은 겨우 2명이었지만, 둘의 자존심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는 사실은 똑같다.

“복도에선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위험하다.”

숫자?

하급 죄수들이 몰려 있어 봤자, 귀신 하나 감당하지 못한다.

개체당 5급은 기본으로 넘어가는 이 존재들은 하급 죄수의 숫자와 상관없이 학살이란 결과만을 낳는다.

“귀신도 못 막을 텐데, 중급 죄수들을 마주치면 어떨 것 같으냐.”

“아…….”

“6급 죄수만 해도 하급 죄수 1천 명은 가뿐히 제압하지. 만약…….”

아겔이 말을 잠깐 흐리자, 세로는 침을 삼켰다.

“7급, 또는 그 이상의 상급 죄수를 만난다면?”

고독에 있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범죄자들이다.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범죄자가 과연 같은 재소자에게 자비심을 베풀 정도로 아량이 넓을까.

고독은 엿 같은 곳이니 우린 같은 처지이며 함께 잘 이겨 내자고 격려해 줄까.

“……다 죽겠네요.”

아니.

고통도 느낄 새 없이 단숨에 죽여 주면, 감사한 일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들은 ‘벌레’에 불과하니까.

가지고 놀 수도, 나중에 먹기 위해 식량으로 저장해 놓는 것도.

모조리 강자의 권한이다.

아겔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럼 여기서 생각해 보자꾸나. 그들은 왜 무리를 나누지 않았던 걸까.”

“네? 어, 그건…….”

합당한 결정은 무리를 조로 나누어 감방까지 스스로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몰려 있어 봤자, 떼죽음을 당할 테니.

그저 감방에서 다시 만나길 기도하는 게 최선이다.

“잘 모르겠어요…….”

“두 서클장이 한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 다른 서클도 함께 가야 한다고. 뭔가 이상하지 않느냐.”

아.

세로는 노인의 말을 듣고 어렴풋이 느낌이 오는 것 같았다.

소년은 갈등을 일으키던 두 서클장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강력하게 주장하는 두 사람.

그들의 눈 속에서는 한 가지의 감정이 결여된 모습이었다.

마곤과 베캄은 고독에서 3년을 살았다고 했다.

아무리 3년 동안 이 고독에서 살았더라도, 이런 무자비한 시스템 속에선 꼭 있어야 할 감정이 있다.

그건 바로.

‘두려움.’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왜 두 사람은 복도에 던져졌어도 무서워하지 않았던 걸까.

세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추측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요?”

아겔은 소년의 말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가 대답하지 않자, 세로는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멈춰 서 있었다.

그 이유는 소년도 알 수 있었다.

곧 복도의 어둠을 뚫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오, 영감. 살아 있었군. 꼬마 친구도.”

앞에서 베캄과 그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베캄이 말했다.

“죽은 줄 알았더니, 이리 살아 있는 걸 보니 반가운데.”

“나도 그렇다네.”

베캄과 그의 서클은 식인 고블린 수천 마리를 물리치고 살아 있었다.

비록 숫자는 100여 명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지만, 어쨌든 적을 이겨 낸 것이다.

“마곤은 어떻게 되었는가.”

“아, 우리랑은 헤어졌다. 아무래도 의견이 계속 맞질 않아서 그냥 떨어져서 가기로 했다.”

“그렇구먼.”

아겔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방향을 주장하던 이들이 쉽게 헤어졌다.

노인은 그 부분을 간과하지 않고 담아 두었다.

베캄이 물었다.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식인 고블린들이 꽤 많았는데 말이야.”

“운이 좋았다고 말해야겠군. 놈들의 포위망이 허술한 곳을 발견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네.”

“대단해. 눈도 없을 텐데 그런 것도 알고.”

“꼬마가 말해 주었지. 당시엔 상황이 급박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네.”

“아아, 그런 건 이해하니까 괜찮다.”

아겔의 말에도 세로는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고블린 무리를 뚫은 건 온전히 아겔 혼자서 한 일.

세로는 노인이 괜히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 거라 여기고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베캄은 그가 감방 동기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말에도 크게 감정을 나타내진 않았다.

살기 위해선 동료도 버리는 곳이 고독의 생리이니 말이다.

“그래도 아쉽긴 하군. 우리가 정말 동료였다면 버리고 도망치진 않았을 텐데.”

“이제 막 감방에 온 주제에 동료로 취급해 달라고 말할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구먼. 내 목숨은 내가 챙겨야지.”

“크크, 맞는 말이야.”

베캄이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감방까지 같이 돌아가는 건 어때? 소수보단 다수가 나을 거야.”

그가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해 왔다.

세로는 아겔이 과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호기심이 짙은 얼굴로 지켜보았다.

‘어떻게 대답하실까?’

여태는 혼자서 움직이는 걸 선호하던 노인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면 정말 소수와만 어울리는 아겔.

거절할 수도 있었다.

세로는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상상해 보았다.

만약 아겔이 베캄의 말을 거절한다면.

꿀꺽.

‘설마 같이 안 간다고 하면 공격하진 않겠지?’

그럴 수도 있다.

세상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보다 더 흉악하게는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하는 자들도 있으니까.

대개 그런 사람들을 범죄자라고 불렀다.

두려운 상상 속에 빠진 소년에게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세.”

아겔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딱히 이유를 덧붙이진 않았다.

베캄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택이야. 다수가 함께하는 게 일을 도모하는 데 훨씬 쉬운 법이지.”

베캄이 앞장섰다.

“그럼 가자. 아는 길을 찾으려면 바삐 움직여야 할 테니.”

노인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소년 또한 긴장한 기색으로 아겔의 옆에 따라붙었다.

이제 일이 어떻게 되든 소년은 아겔을 따르리라 마음을 먹었다.

.

.

“아겔 영감. 궁금한 게 있다.”

“말하게.”

베캄이 걷는 와중에 노인에게 질문해 왔다.

주변을 열심히 살피는 그의 수하들과 달리 베캄은 여유로워 보였다.

“마곤 녀석이 말하길 당신은 고독에서 오래 살았다고 했다. 얼마나 있었지?”

“그리 길진 않네. 얼마나 있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구먼.”

“신기해. 당신처럼 눈도 없는 사람이 이런 고독의 시스템을 이겨 내고 살아왔다는 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나. 운수가 좋다고 생각은 하고 있네.”

“목의 낙인엔 왜 급수가 없는 거지?”

“그거야 나도 잘 모르네. 애초에 눈이 없으니 내 남들과 낙인이 다르다는 것도 처음엔 몰랐구먼.”

“확실히 그렇겠군.”

아겔은 그가 걸어오는 질문 몇 개는 정확한 답을 주지 않고 회피했다.

베캄은 그가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더 캐묻진 않았다.

“꼬마랑은 어떤 사이지? 전에 봤을 때부터 함께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손자는 아니라고 말한 것 같은데, 돌아보니 내가 멍청한 질문을 했었군.”

베캄의 질문에 세로도 귀를 쫑긋했다.

아닌 척했지만, 소년은 아겔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스승과 제자?

친구?

아니면 종족을 초월한 우정?

“꽤 깊은 사이인 것 같은데, 맞나?”

거창한 것을 기대한 세로에게 들려온 답은 조금은 매정한 것이었다.

“글쎄, 그냥 전 감방 동기라네.”

“그렇군.”

애매하게 일축한 아겔의 말에 세로는 살짝 시무룩해졌다.

소년은 실망했지만, 아겔이 말하는 것에 반박하거나 따지진 않았다.

쿵.

앞쪽에서 거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중량이 최소한 몇 톤은 되는 녀석 같았다.

“몬스터군.”

“그런 것 같구먼.”

베캄이 칼을 뽑아 들었다.

죄수들은 긴장한 얼굴로 복도 어둠에서 나타난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크르르르…….”

온몸이 붉은 가죽으로 덮인 레드 오우거(Red Ogre).

덩치는 평범한 오우거와 똑같았지만, 녀석의 기세는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다.

“4급 몬스터 레드 오우거다. 한 마리뿐이니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군.”

베캄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긴 3급 죄수가 수십 명이 모인다면 4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급수는 대체로 10배의 기량 차이를 나타내지만, 전투의 다양한 변수를 담기엔 부족한 것이니.

베캄과 그의 수하들이 달려들었다.

“우리가 할 테니, 뒤로 물러나 있어라!”

그렇게 외치며 베캄이 선두에 서서 검을 휘둘렀다.

촤악!

강철보다 두꺼운 오우거의 가죽.

원래는 칼 따위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아야 할 가죽이 쩍 갈라졌다.

“쿠워어어어억……!”

상처 입은 오우거가 분노하여 팔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아겔은 전투가 심화되는 과정을 보고 있다가, 뒤로 살짝 물러섰다.

세로가 의아한 얼굴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그러다가 이내 왜 그가 물러서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소년은 뒤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래.”

뒤에도 한 마리가 더 있다.

아겔이 말했다.

“짝짓기에 성공한 레드 오우거는 두 마리가 함께 다니지. 뒤에서 매복하고 있는 놈이 느껴지느냐?”

“네…….”

짐승의 감각을 가진 세로는 뒤에서 은밀하게 숨은 거대한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졌다.

숨었다곤 하나 그 거대한 몸에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와 침이 뚝뚝 흐르는 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어, 어떻게 하죠? 한쪽만 바라보고 있다간 큰일이 날 수도…….”

“내가 처리하고 올 테니, 넌 여기서 가만히 있거라.”

“네?”

세로는 어떻게 혼자서 레드 오우거를 상대하냐는 말은 하지 못했다.

소년이 말하기도 전에 노인은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 갔기 때문이다.

세로는 이를 악물고 아겔의 기척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어둠 속에서도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세로였다.

‘정면으로 뛰어가셨어. 그다음 벽을 밟고…… 어……?’

놓쳤다.

마치 사라진 것처럼 아겔의 기척을 놓쳤다.

그러나 레드 오우거의 기척은 여전했다.

‘소리가 안 들려?! 어디로 가신……!’

소년은 종족의 힘을 개화하면서 이전보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곱절은 향상되었다.

그렇기에 놓치지 않을 거라 자신했었는데, 보기 좋게 아겔의 기척을 놓치고 말았다.

‘괘, 괜찮을까?’

적막한 어둠 속.

세로는 긴장한 채로 뒤쪽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고요함이 불안해질 무렵, 짤막한 비명이 소년의 귀에 들려왔다.

-쿠워어어어어…….

노인이 뛰어간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비명을 끝으로 거대한 몬스터의 기척은 더 이상 세로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세로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저벅.

아겔이 다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죄수복 안쪽에서 꺼냈던 벌레 단검을 다시 갈무리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엔 눈알 같은 무언가를 하나 들고 있었고, 입은 오물거렸다.

“맛이 괜찮군.”

세로는 그게 오우거의 눈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어벙한 얼굴로 말했다.

“괘, 괜찮으세요, 할아버지?”

“난 괜찮다. 그보다 하나 먹겠느냐?”

이상한 진물이 묻어 있는 레드 오우거의 눈알.

세로는 역겹게 생긴 그것에서 꽤 고기다운 냄새가 난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맛있어 보여서 역겨웠다.

“저는 됐어요…….”

“맛있는데, 흠.”

아겔은 주먹만 한 수정체를 빠르게 먹어 치웠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리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마침 저쪽도 레드 오우거 사냥이 이제 막 끝난 참이었다.

베캄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앉아 있었다.

그가 아겔과 세로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후, 힘들었군. 어, 왔나. 뒤에 있으랬더니 생각보다 멀리 도망가 있었군.”

“몬스터와는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지.”

“큭큭, 목숨 하나는 기가 막히게 챙기는군. 하긴 그래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테지.”

베캄이 자리에 일어서서 죄수들에게 말했다.

죄수들은 베캄이 상처를 낸 레드 오우거의 가죽 사이 살을 마구 뜯어 먹고 있었다.

“그만. 이제 출발한다. 얼마 남지 않았어!”

“예!”

죄수들이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로 대답했다.

무리는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길을 찾았다.”

앞서가던 베캄이 알려왔다.

그가 감방을 중심으로 정찰한 범위 안에 들어왔다는 의미였다.

그는 아겔 옆에 있는 세로를 보며 말했다.

“이제 길을 헤매지 않고 감방에 도착할 수 있으니 마음 편하게 먹어, 꼬마 친구.”

“아, 네…….”

아겔은 걸어가며 베캄 서클의 숫자를 가늠했다.

‘93명. 식인 고블린을 만나서 100명 정도가 죽고, 오우거를 상대할 때 8명이 죽었다.’

오우거와의 전투로 인한 인원 손실까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노인이었다.

200여 명 중에서 반 정도를 살리고 돌아간다.

꽤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하급 죄수 중 살아서 감방에 돌아오는 숫자가 5분지 1이면 기적일 정도이니.

하급 죄수는 방출 때 복도를 헤매며 무더기로 죽어 나가니까.

기실 아는 길을 찾는 것만 해도 큰 운이다.

방출이 시작되고 고독의 어느 곳으로 떨어질지는 완전한 임의니까.

그러나 아겔이 그들의 숫자를 센 건 잘했다고 성과를 칭찬해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노인은 지나치는 갈림길마다, 어느 곳으로 가는 길인지 확인했다.

베캄이 앞장서서 가는 길은 감방으로 가는 길도 있었지만, 갑자기 꺾어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있었다.

마치 이리저리 배회하는 듯이.

곁에서 베캄의 수하들이 걷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걸음은 자신과 세로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다.

어디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레드 오우거를 물리치고 승리의 환희에 차 있던 자들이 어색한 침묵 속에 있다.

그로 인해 아겔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베캄은 감방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노인은 자리에 멈춰 섰다.

“이 길이 감방으로 돌아가는 길이 맞는가?”

베캄은 멈춰 서지 않고 고개만 살짝 돌려 말했다.

“당연하지. 내가 직접 정찰 나왔던 길이다. 확실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베캄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아겔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다시 한번 묻겠네. 이 길이 맞나.”

“…….”

아겔의 말에 베캄 서클 전원이 걸음을 멈추었다.

수십 쌍의 시선이 쇄도하여 곁에 있는 소년의 마음을 옥죄였다.

그제야 베캄도 멈춰 서서 뒤돌아 아겔을 마주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

“내가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말이냐?”

“잘못된 길이라고 하진 않겠네. 자네 입장에서는 맞는 길이니.”

“내 입장에서는 맞는 길?”

아겔이 말했다.

“나는 그저 자네들이 가는 곳에 들리고 싶진 않구먼.”

“그게 무슨 소리야. 들린다니.”

“여기까지 안내해 줘서 고맙네. ‘백작’에겐 나 대신 안부 전해 주게.”

“…….”

순간, 정적이 복도를 에워쌌다.

대신 그 자리를 지독한 피 냄새가 채우기 시작했다.

아겔은 세로의 손을 잡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베캄의 수하들이 나와 돌아가려는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뒤에서 베캄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큭큭, 눈치챘나.”

입술 사이로 숨겨 뒀던 피를 갈구하는 이빨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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