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24)화 (25/186)

24화 두 번째 시스템 : 방출 (3)

베캄은 눈앞의 노인을 보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아겔라스토스.’

그는 자신의 주인을 통해 노인의 진짜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평범한 인간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설마 그의 주인까지도 그를 알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방출이 시작되자마자 내게 말씀하실 정도라니.’

베캄은 방출이 시작되고, 그의 주인인 ‘백작’의 전언이 머릿속을 울리는 걸 느꼈다.

진조(真祖)인 그의 주인은 매번 방출이 시작할 때마다, 자신이 권속으로 삼은 자들의 시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짧게 전언을 남기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의 은혜를 받아 뱀파이어가 된 지 1년째인 베캄은 백작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건 이번이 2번째였다.

방출이 시작되자마자, 백작은 베캄에게 명령했다.

[그를 내게 정중히 데려와라.]

거부할 수 없는 주인의 명령.

그에 따라 베캄은 아겔과 충돌하지 않고 몰래 그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려 했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상대는 자신의 속셈을 파악해 버렸다.

“어떻게 알았지? 내가 감방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걸 말이야.”

“내 촉이 좋은 편일세. 우릴 포위하고 있는 듯한 위치도 걸렸고.”

아겔의 말에 베캄의 눈이 찌릿하게 자신의 수하들을 향했다.

실책을 깨달은 그의 수하들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베캄은 다시 아겔을 바라보았다.

“영감을 속인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쪽의 입장이란 것도 있으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입장이라.”

아겔은 흰 수염을 쓸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사연은 있는 법이지. 자네도 백작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인 게야.”

권속 따위가 주인의 말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가 이해해 주는 듯이 말하자, 베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잘 알고 있군. 이해해 줘서 고맙다. 이미 내 주인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물론. 그는 고독에서도 꽤 유명한 편이니 말일세.”

백작.

고독에 사는 모든 뱀파이어의 주인이자, 중급 죄수 끝자락에 위치한 6급 죄수.

그 앞에서 살아 나간 자가 없으며, 권속들조차 두려움을 느낀다는 존재.

베캄은 그런 자의 수하였고,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본디 중급 죄수들을 혐오했다.

고독에서 알고 지내게 된 동료가 아무 이유 없이 중급 죄수에게 살해당하고 난 후, 그는 중급 죄수들에게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중급 죄수들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그를 만나고선 생각이 뒤바뀌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백작과 자신의 차이는 가히 하늘과 땅의 차이.

감히 고개를 들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기에.

그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야 말았다.

‘그 대가로 난 힘을 얻었다.’

백작은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권속으로 삼아 주었다.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마음에 든다면서.

그때 이후로 베캄은 달라졌다.

평범한 인간이었을 때와 달리,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피만 빨아 대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넘치는 힘과 어둠을 뚫어 보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

별 볼 일 없던 그가 하급 죄수들을 이끄는 위치에 선 것도 모두 백작의 은총 덕분이었다.

그런 그의 주인이 자신에게 명령했다.

“정중하게 대할 것을 약속하지. 원래 백작님의 명령도 그러했다. 그러니 함께 가는 게 어때.”

고독에서 백작이 가지는 위상이 어떠한지 안다면, 그 누구라도 거절할 수 없는 제안.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가 불러 준다는 사실에 오히려 황송해할 판이다.

베캄은 그의 생각이 바뀌길 바랐으나.

그럼에도 아겔의 답변은 변치 않았다.

“거절하겠네.”

단호한 아겔의 태도에 베캄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위 죄수를 거스르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일.

특히 백작처럼 거대한 집단을 이끄는 죄수에게 대든다면 그의 수하들이 죽을 때까지 목숨을 노릴 것이다.

“귀찮구먼.”

아겔의 반응에 베캄의 눈썹이 꿈틀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내 거짓말을 즐기는 편은 아닐세. 나를 만나고 싶다면 직접 오라고 말해 주게. 그럼.”

그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몸을 돌렸고, 곁에 있는 소년의 팔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베캄의 수하들은 여전히 길을 비키지 않았다.

“큭큭큭…….”

저도 모르게 삐져나오는 실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은 베캄이 한순간 표정을 바꾸어 아겔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누가 널 순순히 보내 준다고 하더냐.”

“쯧…….”

노인은 가볍게 혀를 찼다.

베캄의 수하들은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고, 피를 갈망하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르르르…….

그때, 복도엔 세로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년의 눈이 짐승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누군가를 찢어 버릴 듯한 기세.

뱀파이어들이 본색을 드러내자, 소년은 저도 모르게 두 팔과 다리를 수인화했다.

베캄의 수하들이 달려들었고, 노인이 말하지 않아도 세로가 뛰쳐나갔다.

“크와아아앙!”

어린 소년은 뱀파이어들과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베캄이 조금 놀랐다는 듯이 눈을 떴다.

“웨어울프? 그 꼬맹이를 데리고 다닌 이유가 있었구나.”

스릉.

베캄은 검을 뽑아 들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헛웃음이 나온다.

믿는 구석이 고작 저 꼬맹이였단 말인가.

노인의 무력이 강해 봤자, 뱀파이어인 자신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게 네 보험의 전부였다면, 끝이다. 겨우 웨어울프 따위로 우릴 막을 순 없다.”

웨어울프라고 해 봤자, 목에 있던 급수는 1급에 불과했다.

3급인 자신의 수하들과 견줄 수 없는 격차가…….

그 순간, 베캄은 웨어울프를 보던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3급……?’

분명 소년의 모습이었을 때는 1이란 숫자였는데.

소년의 목까지 덮은 털 위에는 3이란 숫자로 바뀌어 있었다.

‘방금까지 1급이었는데……?’

싸우기 전에 상대를 파악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노인의 이상한 낙인이야 변수라고 쳐도, 소년의 변수는 없으리라 판단한 베캄이었다.

아겔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꼬맹이가 겨우 웨어울프 따위로 보이나?”

“뭐?”

노인은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이든 말을 이었다.

“목격자는 남겨 두지 않을 걸세. 자네 입이 무거운 건 알고 있으나, 염려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구먼.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입 다물고 있게. 안 그럼 아무리 자네라도 후회하게 해 주지.”

“무슨 말을 하는……?”

베캄은 순간 노인의 말이 이질적이란 것을 깨달았다.

벽을 보고 대화하는 듯한 그의 말투가…….

“……!”

짧은 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겔의 말을 이해한 흡혈귀의 송곳니가 길게 자라났다.

“감히…… 날 무시하고…… 백작님께……!”

노인은 자신에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통해 보고 있을 그의 주인.

백작.

그에게 권속인 자신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캄은 형용할 수 없는 모욕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노인을 향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이런 시건방진 노인네가……!”

부웅!

같은 3급 죄수라도 대응하기 어려울 법한 속도였지만, 아겔은 쉽게 피해 냈다.

베캄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은 아슬아슬하게 아겔의 살을 스치고 지나갔고, 노인의 몸에 얕은 자상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슥.

아겔은 베캄의 공격을 피하면서 품에 손을 넣어 단검을 하나 꺼냈다.

날이 조금 서 있는 게 아니라면 단검이라기보단 말뚝이라고 말할 그런 물건이었다.

베캄은 그것을 보고 비웃었다.

“그딴 이상한 단검 하나로 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챙!

베캄의 참격 하나를 단검으로 막아 낸 노인이 뒤로 밀려났다.

노인은 아무런 반동도 느끼지 못했다는 듯이 단검을 든 손을 털어 냈다.

그 태연자약한 모습에 베캄은 또 분노를 느꼈다.

그는 검을 고쳐 잡았다.

“내 주인님을 뵐 때는 멀쩡히 서 있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노인네.”

“착각은 자유지.”

탓!

베캄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는 이번엔 피하지 않는 아겔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미친 노인네. 뱀파이어인 나를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그러나 베캄의 예상과는 다르게 노인의 단검은 날카롭게 자신을 찌르고 들어왔다.

맞아도 큰 타격은 없을 텐데도 그는 본능적으로 단검을 피했다.

“크읏……!”

“감이 좋구먼.”

이젠 아겔이 베캄에게 달려들었다.

베캄은 그의 단검술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끼고 소리쳤다.

“노인을 공격해라!”

뱀파이어 수하들이 아겔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고 달려들었다.

-크하아아악!

평범한 인간을 묵사발 낼 수 있는 뱀파이어들은 몸 자체가 무기이다.

뱀파이어와 근접전을 한다는 것부터 실책.

그러나 노인은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이 뱀파이어들을 상대했다.

푹푹푹푹푹푹푹.

-키에에에엑!

단검이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의 눈을 정확하게 찔렀다.

눈도 안 보이는 노인이 보여 주는 단검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래도 숫자는 버거웠는지, 연신 뒤로 밀리는 아겔이었다.

베캄은 타이밍을 노려 뱀파이어들과 섞여 있다가, 노인을 향해 다가서며 검을 휘둘렀다.

촤악……!

아겔의 팔뚝에 이전보다 큰 자상이 생겨났고, 인간의 피 냄새를 맡은 뱀파이어들이 우뚝 멈춰 섰다.

-피, 피 냄새…….

-다, 다달콤한 향이야…….

-한 입만…… 한 입만 줘……!

그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고, 베캄조차 흡혈욕을 이겨 내지 못하고 눈이 붉게 물들었다.

“츄릅…… 과연 백작님께서 널 원하신 이유가 있구나.”

그의 피 냄새는 달콤해도 너무 달았다.

‘이, 이런 향은 처음이다…….’

그의 피를 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 있다면 극상의 쾌락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뱀파이어로서의 본능이 강렬하게 외치고 있었다.

“쯧. 백작도 그렇고 자네들도 착각이 크구먼.”

노인은 혀를 차며 단검을 든 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촤락!

그러자 말뚝처럼 생긴 단검이 쫙 펴지면서 숏소드와 비슷한 형태로 변화되었다.

단검이 아닌, 숏소드를 들게 된 노인의 자세가 이전과 달라졌다.

그는 뱀파이어들을 향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촤악!

“……!”

순식간에 뱀파이어 둘의 목이 날아갔다.

찔린 눈은 어떻게든 회복이 되겠지만, 목이 날아가면 반드시 죽는다.

“노인네 피가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는가. 이해할 수가 없구먼.”

뱀파이어들이 달려들었고.

노인은 그 사이에서 숏소드를 휘둘렀다.

베캄은 자신의 수하들 사이에서 날뛰는 노인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말도 안 돼…….”

단검이라 무시했던 숏소드는 전설 속의 명검이나 되는 것처럼 뱀파이어들의 육체를 손쉽게 썰어 버렸다.

흡혈만 한다면, 트롤과 회복력이 맞먹는 뱀파이어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몸을 회복할 새도 없이 참살당하고 있다.

노인 한 명에게.

어느새 달려들었던 뱀파이어들의 목만 가득히 복도를 메웠고.

노인이 검에 묻은 피를 떨어 내며 걸어왔다.

“이게 끝인가. 자네들은 원주민들보다 약하구먼.”

베캄은 아겔을 피해 냉정하게 생각하며 뛰었다.

그의 시선은 피에 온몸이 젖은 채로 홀로 서 있는 웨어울프에게 꽂혀 있었다.

‘저 꼬맹이라도 붙잡으면……!’

노인이 애지중지하는 꼬마이니 붙잡기만 하면 전세는 역전할 수 있다.

베캄은 뒤돌아 있는 세로의 어깨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팔 하나쯤은 잘라 두어야 고분고분할 것이다.

날카로운 검이 소년의 어깨를 강타했다.

툭.

“어……?”

검이 살을 파고 들어가지 못했다.

분명 전신 수인화도 아니고 팔다리와 어깨 정도밖에 변하지 않은 녀석인데.

자신의 검은 레드 오우거의 살갗도 베어 버렸는데.

검은 벽에 가로막힌 듯 나아가지 못했다.

“크르르르…….”

짐승이 몸을 돌리자, 노란 포식자의 눈빛이 드러났다.

그제야 너저분한 주변의 풍경이 베캄의 시야에 들어왔다.

내장과 살이 파헤쳐져 죽은 자신의 수하들.

잔인하게 유린당한 뼈와 살들의 존재만이 이전에 생명체였다는 걸 증명할 뿐이었다.

웨어울프에게 덤빈 자신의 수하 중 살아 있는 놈이 없다.

전부 죽은 것이다.

‘아뿔사…….’

“크와아아아앙!”

세로의 오른팔이 베캄의 목을 붙들었다.

“크허어억……!”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목을 파고들었고, 타는 듯한 고통에 그가 발버둥 쳤다.

그러나 힘이 어찌나 센지 벗어나는 게 불가능했다.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에 불에 덴 듯한 격통이 찾아왔다.

푸욱.

“컥……!”

심장을 관통한 숏소드.

검의 주인은 당연히 노인이었다.

푸슛.

아겔이 검을 뽑자, 베캄이 쓰러졌다.

어두워지는 시야 사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노인의 모습만이 보였다.

“난 경고했네.”

노인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베캄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 * *

노인은 숏쇼드를 다시 단검의 형태로 돌리고 품에 갈무리했다.

‘생기가 꽤 도움이 되었군.’

죽은 로스나의 품에서 가져온 구슬로 생기를 흡수했더니, 몸에 힘이 생겼다.

아직도 한동안은 걱정 없을 정도의 힘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회복도 되고 말이야.’

베캄에게 베인 상처들이 전부 회복되어 있었다.

흑마법에 대해선 무지한 노인이지만, 기를 다루는 방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직 생기(生氣)가 남아 있으니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크르르…….”

그는 세로를 돌아보았다.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아겔을 공격하진 않았다.

“이제야 좀 볼 만해졌구먼.”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

웨어울프인 그의 형 루카스와 달리, 소년의 진정한 정체는 순혈 늑대 인간이었다.

늑대란 종족과 인간이 억지로 섞인 웨어울프와 달리 인간의 모습을 하면서도 늑대인 종족은 실존했다.

비록 적은 수이긴 해도, 엄연히 은하 정부 국민 중 하나로 등록된 종족이다.

한데.

“아무리 라이칸스로프라고 해도, 성장이 조금 빠른 듯한데…….”

겨우 내면의 어둠을 조금 걸었다고, 이토록 성장하는 녀석은 아겔도 처음이었다.

가르친 자가 적진 않은데, 이만한 성장 속도를 보여 준 놈은 없었다.

단연 최고다.

“크르르르…….”

세로는 마치 아겔이 부모라도 되는 듯이 그르렁거리며 그에게 얼굴을 비비려 했다.

노인은 손을 들어 소년의 뺨을 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켕…….”

그러자 세로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이전에 맞은 것이 기억난 모양이었다.

아겔은 팔을 내리고 한쪽으로 걸어갔다.

“전처럼 뺨을 맞기 싫으면 원래대로 돌아오거라.”

내면의 어둠을 걸었으니, 돌아오는 방법 또한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아겔이 걸어가는 사이, 소년의 털이 점점 수축했고 이내는 완전히 사라졌다.

“어…… 할아버지? 이게 무슨…….”

세로는 어리둥절하다가, 주변에 널린 시체와 난잡한 살들의 향연을 보고 얼굴이 핼쑥해졌다.

“이거 다 할아버지가 하신 거예요……?”

아무래도 수인화를 한 이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라이칸의 천적인 뱀파이어들 때문에 강제로 각성한 느낌이었으니.

노인이 대답해 주지 않자, 세로는 뚱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가, 같이 가요……!”

아겔은 속으로 혀를 찼다.

‘상품으로 팔긴 좀 아깝구먼.’

시간을 들여 제대로 키우면 얼마나 성장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품’은 들어온 즉시 팔려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장기 보관은 아겔의 입장에서도 그리 달갑진 않으니까.

소장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대단해요. 어떻게 혼자서 백 명도 넘게…….”

“조용히 하거라. 방출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앗, 넵.”

세로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노인의 뒤를 따랐다.

아겔은 감방까지 거리를 가늠했다.

이 속도로 걷는다면 5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방출이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

뱀파이어들의 시체가 쌓인 적막한 복도.

쩌적.

근방의 온도가 낮아져, 벽에 서리가 꼈다.

차가운 한기가 잠시 그 자리에 머물다가 천천히 노인과 소년이 사라진 복도 쪽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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