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28)화 (29/186)

28화 두 번째 시스템 : 방출 (7)

광신도(狂信徒) 이오베.

새치가 듬성듬성 있는 머리의 그는 평범한 키의 어디에나 있을 법한 중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를 아는 자는 겉모습으로만 그를 판단하지 않는다.

저 잔잔한 미소를 하고 얼마나 많은 이단을 참살했는지.

오죽하면 중급 죄수 중 그의 악명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만나길 두려워했다.

이단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6급 죄수가 메이스를 들고 머리를 깨부수러 올 테니까.

더 공포스러운 건, 심판의 기준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청소 중인가?”

아겔의 물음에 이오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침 방출이라서 말이죠. 이단들이 많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이쪽으로 온 것도 더러운 기운이 느껴져 그런 겁니다.”

“여긴 내가 정리했네.”

“저희가 해야 할 일인데…… 대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아리스는 놀란 얼굴을 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한 이오베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했다.

“돌탄.”

이름이 불린 신실해 보이는 사제가 한 명 나와 아리스와 세로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움찔했지만, 사제는 머뭇거리지 않고 두 손을 들었다.

“어페로 말레딕쇼네 에트 사나 벌네라…….”

화아아악.

따스한 녹색 기운이 두 사람을 감쌌다.

진이 빠졌던 세로는 회복이 되는 것을 느꼈고, 아리스는 전신에 걸려 있던 저주가 사라졌다.

“어, 우와…… 몸이……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에요.”

“저주가 풀렸어?”

두 사람의 반응에 이오베가 빙긋 웃었다.

“감사의 의미입니다.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요.”

두 사람이 사제의 신성 치유를 받고 놀라는 사이, 이오베가 아겔에게 말했다.

그는 죽은 솔바린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 자도 악마숭배자입니까?”

“그런 셈이지.”

아겔의 말에 이오베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번엔 저희가 정리하기로 했습니다만…… 그 다르키스란 놈이 도망을 꽤 잘 치는지라.”

“이해하네. 하지만 내게 피해가 오진 않았으면 좋겠군. 저번엔 꽤 애를 먹었던지라.”

“절대로 그리 되도록 두진 않을 겁니다.”

“부담 갖진 말게. 내 눈에 띄면 내가 죽일 테니.”

“영감님 선까지 가지 않을 테니 안심하십시오. 제가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

대화에 끼지 못하는 세로와 아리스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누굴 죽인다는 말인지 몰라, 소년은 긴장한 낯빛을 했다.

이오베가 말했다.

“그보다…… 비보입니다만, 최근 ‘마피아킹’이 움직였습니다. 아마 포기하지 않은 것이겠죠.”

흠칫.

마피아킹이란 말에 아리스가 몸을 떨었다.

세로는 의아한 얼굴로 아리스를 바라보았으나, 궁금한 걸 묻기에는 고요한 복도에서 아겔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그쪽은 차라리 낫네. 불순한 의도는 아닐 테니.”

“혹시 모릅니다. 원체 속을 알 수 없는 자이니까요.”

“어쨌든 가르쳐 줘서 고맙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저 몸조심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이오베의 눈빛이 한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영감님은 반드시 살아남으셔야 하니까요.”

그의 말에 아겔이 혀를 찼다.

“고독에서 남 목숨이나 걱정하다니 쯧. 자네 걱정이나 하게.”

“하하, 영감님만 사실 수 있다면 전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달려가서 돕겠습니다.”

이오베의 말에 아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중급 죄수의 끝자락에 있는 6급 죄수가 직접 달려와 돕겠다니.

어렸을 때부터 아겔을 봐 온 아리스였지만, 노인이 그와도 밀접한 관계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단순히 아는 사이를 뛰어넘었다.

‘설마 광신도와도 협력 관계일 줄은 몰랐어…….’

광신도 이오베는 고독의 그 어떤 조직과도 타협하지 않고,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 집단 자체만으로 독불장군.

아예 처음부터 엮이지 않는 게 나은 미친 집단인 것이다.

그러나 소문과 달리 그는 아겔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듯 보였다.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사양하지 않겠네.”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이오베가 말했다.

“이런,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그가 성큼성큼 아겔 일행에게 다가왔다.

“축복하겠습니다. 성좌께서 여러분의 앞길을 지켜 주시기를…….”

메이스를 수만 번은 휘둘렀을 법한 그의 손에는 굳은살이 빈틈없이 박여 있었다.

이오베가 머리에 손을 올리자, 세로는 고개를 갸웃했고, 아리스는 긴장으로 몸이 굳었다.

화아아아아…….

성스러운 빛이 두 사람의 온몸을 감쌌다.

이전에 몸이 치유되는 빛과 달리 전신에 형용할 수 없는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세로와 아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힘이 넘쳐…….”

“이게 축복……?”

이오베가 빙긋 웃으며 손을 아겔에게 뻗으려 했다.

그러나 늙은 손이 그의 손을 가로막았다.

“난 됐네.”

“그래도…… 안 되겠습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게. 이미 알지 않는가. 나에겐 축복할 수 없네.”

“그래도 시도라도 해 보겠습니다.”

이오베는 눈을 감고 아겔에게 손을 뻗었다.

원래는 머리를 짚어야 하지만, 그냥 떨어진 채로 축복 기도했다.

-명예로운 믿음의 성좌시여…… 부디 측량할 수 없는 업을 지고 가는 자를 가엾이 여기시고, 손길로 보호하소서.

세로와 아리스에게 했던 것보다 더 긴 기도문을 읊조리는 이오베였다.

그러나.

…….

아겔에겐 빛이 서리지 않았다.

이오베는 감았던 눈을 뜨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제가 어리석었군요.”

“뭐랬는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지.”

그가 쩔쩔매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기분 상하게 할 의도는 절대로…….”

“사과는 받아들이지. 그럼 시간이 없으니 난 이만 가겠네.”

아겔은 몸을 휙 돌려 이오베의 곁을 지나쳤다.

어찌 보면 조금 무례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으나, 이오베는 아직도 미안한 표정이었다.

“예. 부디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아겔이 그냥 가 버리자, 세로와 아리스도 잽싸게 그를 쫓았다.

“하, 할아버지. 같이 가요……!”

…….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

이오베는 그 어둠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털썩.

갑자기 무릎을 꿇는 이오베.

그는 마치 신을 경배하는 듯한 경건한 자세로 아겔이 사라진 자리를 향해 엎드렸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모든 신도가 똑같이 엎드렸다.

신도 하나만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그들을 보고 당황할 뿐이었다.

“주, 주교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다들…….”

이제 막 고독에 들어온 신도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오베와 아겔의 관계를 알지 못했으니까.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선 이오베가 젊은 신도를 인자하게 바라보았다.

“자네, 신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젊은 신도는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았다.

“시, 신이요? 성좌님들 아니십니까. 믿음, 소망, 사랑의 성좌님 세 분을 포함한 11분의 성좌님이요.”

“그렇지. 그렇게 볼 수도 있고, 그게 맞지.”

이오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하나만 더 붙이면 된다네.”

“하나요……?”

“그래.”

그가 주먹을 쥐고 말했다.

“내게 신이란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자를 뜻한다네.”

“그런…….”

이단적인 말에 젊은 신도는 당황했다.

그러나 주교의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 있는 선배 신도들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마치 옳은 말을 하고 있다는 듯.

“저분은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실 분이시라네.”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아겔이 사라진 복도를 바라보았다.

오직 어둠만이 가득했다.

이오베가 조용히 읊조렸다.

-내 원을 들어주시옵소서, 나의 신이시여.

.

.

.

.

.

아겔의 뒤를 쫓아가는 세로와 아리스.

노인이 복잡한 분위기였기에, 두 사람은 조금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세로가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누나…… 아까 만난 그 아저씨랑 할아버지랑 무슨 말을 한 건지 아세요?”

소년의 물음에 아리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사실 나도 잘은 몰라. 할아버지랑 같이 있었던 건 내가 고독에 오고 1년 정도였으니까. 그 뒤론 간간이 만났고. 할아버지가 뭘 하고 사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스토커도 아니고.”

“아…… 죄송해요. 괜한 걸 물었네요…….”

“아냐.”

아니다.

사실 아리스도 알고 싶었다.

그 악명 높은 ‘광신도’와 아겔 할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그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할아버지를 살리고 싶어 한다니.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정보다.

아리스는 이것이 꽤 중요한 정보란 걸 단숨에 깨달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원래…… 할아버지는 성좌를 믿는 자들을 안 좋아한다고 알고 있었어.”

“아…… 성좌님들을 믿는 신도들이요?”

“그래. 왠지는 몰라. 그냥 그러시는 것 같더라고.”

“신을 믿는 게 나쁜 건가요?”

아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성좌를 믿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게 꼭 나쁘다고 볼 순 없었다.

성좌는 직접 현세에 개입하진 않지만, 자신의 대리자를 만들고 그 힘으로 연약한 자들을 구원하기도 하니.

특히 ‘사도’는 성좌의 대리인으로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어려운 신도들을 돕기도 한다.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남자가 광신도라고 했을 때, 난 싸울 줄 알고,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친밀해 보이셨어요. 아니, 딱히 친한 건 아닌가…….”

두 사람은 예상과 다른 관계였다.

그것이 아리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아겔 할아버지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알고 싶었다.

“그럼 ‘마피아킹’은 뭐예요? 이름 되게 촌스럽네요.”

“촌스러워? 하.”

아리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그 사람이 누군지 알면, 그런 소리 못 할걸?”

“왜요? 무서운 사람이에요?”

“절대로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내가 알고 있는 건…….”

마피아킹.

고독의 상급 죄수이며, 수십만은 가뿐히 넘는 죄수들을 통솔하고 있는 환약의 왕.

그는 이 교도소에서 환약을 유통한다.

절대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는 가능케 했다.

생산, 유통, 그리고 강매(強賣).

그는 돈을 받고 환약을 팔지 않는다.

값을 받지 않고 유통되는 환약. 마피아킹이 세력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아리스는 그가 만드는 환약의 제조 공정이 다른 것과 달리 특별하다고 들었다.

그 환약의 원료는 바로…….

“아니다.”

“네? 뭐가요?”

“그냥 좀 무서운 사람이라고……. 마피아킹은.”

“그렇구나.”

환약의 원료에 대해 차마 소년에게 하긴 어려운 아리스였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고 소문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괜한 이야기가 돌아다닐 이유 또한 없었다.

둘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사이에 아겔이 걸음을 멈췄다.

그가 멈추자, 아리스와 세로도 자리에 섰다.

[5-251]

아리스의 감방이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자신의 감방 앞에 도착한 것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언제 봐도 대단하다.

고독에서 유일하게 길을 아는 자.

심지어 자신의 감방 번호가 어딘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아시는 건지…….’

아겔이 말했다.

“도착했구나.”

“감사해요, 할아버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쉬운 얼굴의 아리스였다.

그는 이 얼굴조차 보지 못하겠지만, 목소리에 서린 감정은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에도 들를게요.”

“귀찮게 그러지 말거라.”

“후훗, 싫어요. 꼭 찾아갈 거예요.”

아리스는 아겔에게 다가가 그를 꼭 안아 주었다.

아겔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녀의 포옹을 받고만 있었다.

“건강하셔야 해요.”

“몸조심하거라.”

철컹.

감방의 쇠창살을 열고 아리스가 감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겔은 걸음을 옮겼고, 소년은 부지런히 그의 뒤를 쫓았다.

감방에 돌아온 숙녀는 쇠창살을 붙잡고 아겔이 사라진 복도의 어둠을 미련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건강하세요…….”

* * *

아겔은 복도의 어둠을 성큼성큼 밟고 나아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로 가야 할진 알고 있었다.

앞으로 견뎌야 할 시간의 무게도.

‘마피아킹이 움직이고 있다라…….’

저번에 사건이 있었던 뒤로 잠잠하더니 다시 고개를 든 모양이었다.

이오베가 처리할 수 없는 걸 대신해 준 것으로 겁을 먹었나 싶었는데, 이때까지 귀찮은 일이 없었던 것만으로 족히 여겨야 할 듯했다.

하여튼 흑마법사들은 귀찮다.

귀찮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때론 없애 버리는 것이 나을 정도로.

“어, 할아버지! 저기 팻말이 보여요! 우리 감방이에요!”

[3-448] 감방.

방출이 시작된 지 하루가 넘어가기 전에 돌아온 두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절박하게 바라는 그것을 아겔은 손쉽게 이루어 냈다.

누군가는 절대적인 운이라고 여길 법한 그런 일을.

철컹.

두 사람은 감방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겔은 들어가자마자, 기척을 파악했다.

넓디넓은 감방.

노인은 소리를 가늠했다.

‘우리밖에 없구먼.’

베캄 서클은 전멸했다.

로스나 서클의 남은 생존자들도 이미 방출 전에 전부 먹어 치웠다.

남은 건 마곤 서클.

그들은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다.

세로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제는 좀 괜찮은 건가요?”

“그래. 쉬어라.”

방출은 끝났다.

복도에 내던져지고 감방에 돌아가게 만드는 게 그 목적이니.

물론 어디에 있는지 모를 감방을 찾아 복도를 돌아다니는 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겔과 세로는 적막한 감방에서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리고 닷새째.

감방에서 침묵을 즐기던 아겔이 고개를 들었다.

‘냄새.’

노인의 코를 자극하는 몽실몽실한 향이 다가왔다.

환약의 향.

그 냄새가 바로 근처에서 나고 있었다.

“영감님!”

감방 앞 복도에서 마곤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컹.

“역시 살아 계셨군요. 다행입니다.”

감방문을 열고 들어온 마곤이 아겔을 발견하고 씩 웃었다.

그는 수하 몇 명과 함께 감방으로 돌아왔다.

수백 명의 수하는 사라지고, 그의 수하는 열 몇 남짓밖에 없었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제가 얼마나 기쁜지 모르실 겁니다.”

대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에는 이전보다 더 진득한 향이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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