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궁금증 (2)
델라무는 체력단련실 한쪽에 있는 그의 개인실로 세로를 데려왔다.
공간이 꽤 넓고 밖에선 보지 못하는 곳이었기에 뭔가를 하기에 적당한 곳 같았다.
델라무가 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는 긴장한 기색을 무던히 감추려는 얼굴로 세로를 바라보았다.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델라무는 흥분한 모습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뭐부터 하면 되지?”
“아, 음. 일단 똑바로 앉아 주세요.”
세로가 시키는 대로 델라무가 앉았다.
소년은 아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을 앉힌 후에 손을 잡아 주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온기가 있던 그 손길의 감촉이 떠올랐다.
‘비슷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세로가 말했다.
“눈을 감아 주세요. 아무것도 상상하시면 안 돼요. 숨 들이쉬시고요.”
“알겠다.”
세로의 말대로 델라무는 편하게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다.
소년은 델라무의 손을 잡았다.
그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세로는 개의치 않았다.
“시작할게요.”
세로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
.
.
“어라……?”
세로도 어둠 속에 들어와 있었다.
본능적으로 내면의 어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자신의 내면이라는 사실.
“쯧쯧,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구먼.”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방에 있어야 할 그가.
어둠 앞에 서 있었다.
딱……!
세로는 아겔에게 딱밤을 맞고 이마를 문질렀다.
“악……! 하, 할아버지?! 어떻게…….”
정신 속 세계임에도 이마가 굉장히 아픈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겔이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궁금할 것이다.
어떻게 독방에 있는 자신이 여기에 와 있을 수 있는지.
“넌 나와 ‘거래’하지 않았느냐.”
“아, 거래…….”
분명 그랬다.
세로는 내면의 어둠을 전수받기 전, 그와 거래하겠다고 말했다.
분명한 언약(言約).
그저 약속이 아닌, 보이는 것을 초월한 무언가인 듯했다.
아겔이 말했다.
“거래 내용에 내 요구 사항을 말하진 않았지.”
소년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반면, 아겔은 거래하겠냐고만 말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이 약속을 통해 아겔은 무엇을 가져간 것일까.
“네 내면에 내가 들어올 수 있는 이유지. 하나 내가 가져간 것이 뭔진 말해 주지 않겠다. 앞으로는 누군가와 약속이나 거래를 할 땐, 꼭 잘 알아보고 해야 한다.”
“아, 네…….”
세로는 아겔이 무엇을 가져갔는지 궁금했으나, 그를 믿었다.
그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해치려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겔이 옆으로 돌아서서 검은 공간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자, 보아라.”
화악…….
거대한 검은 공간 앞쪽이 색깔로 형형색색 뒤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스크린이 나타난 것 같은 모습에 세로의 눈이 커졌다.
“이것이 델라무의 내면이다.”
“델라무 형의…… 내면이요?”
“그래. 네가 그를 내면의 어둠 속으로 인도하였다. 놈은 지금 자신의 어둠 속에 있지.”
어마어마한 색채를 지닌 델라무의 내면.
눈을 떼기도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색채가 가득했다.
저 공간에서 어둠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델라무는 어둠을 걷기에 부적합하다. 내면의 색채가 너무 밝아서 그곳에 마음을 빼앗기고, 진정 걸어 가야 할 어둠을 보지 못하는 게지.”
“그, 그렇구나……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경험은 델라무라도 처음일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빠져나올 방법도 찾지 못하고, 계속 기억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 종국에는-
아겔이 가볍게 대답했다.
“죽는다.”
“…….”
“정신이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현실 속에선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는 게지.”
소년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자신이 델라무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말에, 세로는 겁을 집어먹었다.
잘못했음을 깨닫고 몸을 덜덜 떠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으냐.”
아겔의 말에 세로의 얼굴이 거무죽죽해졌다.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해서…….”
세로는 보지 못했지만, 아겔은 그 모습을 보고 미세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겔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나는 관대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이번 실수는 넘어가도 다음은 없다.”
세로는 보지 못하는 아겔의 속마음이 어둠 속에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내 것을 잃을 순 없지.’
그 자리에서 주먹을 쥐고 끅끅 울음을 참는 소년.
죄송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아겔이 말했다.
“용서한다. 대신 대가는 치러야겠지.”
“대가…….”
“그래. 어떤 일이든 결정했으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단다. 그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마.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중(重)할수록 강자가 되는 법이니 명심하거라.”
“네.”
아겔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델라무의 색채가 채운 공간이 다시 어둡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전 소년의 것보다도 더 어둡게.
뒤에 있는 세로의 기억 색채 또한 잠식되도록.
아겔이 다가와 손바닥으로 소년의 눈을 가렸다.
단순히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굉장한 불안감을 느꼈다.
“당분간 널 어둠에 유폐하겠다.”
마치 존재가 지워져 버릴 것만 같은 그런 공포가.
“자, 잠깐만요……!”
그러나 소년의 말에도 노인은 멈추지 않았다.
사아아아…….
천천히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소년의 몸.
손부터 발, 그리고 머리끝까지.
내면세계에 있던 소년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
소년을 지워 버린 후, 아겔은 다시 델라무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천천히 기억의 색채를 살피는 노인.
그는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
“호오, 이전보다 나아졌구나.”
델라무의 색채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화려했으나, 걸어가야 할 어둠이 이전보다 커졌다.
물론 처음부터 대부분이 어둠이었던 세로와는 출발선부터 다르지만.
“조금 도와줄 순 있겠구먼.”
아겔은 델라무의 기억 속으로 손을 뻗었다.
* * *
94번 체력단련실.
파이럼은 덤벨 컬을 하면서 이두근을 자극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싸우기 전, 몸 상태를 긴장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아무리 나라도 이번엔 긴장이 좀 되는군.’
그가 연락하고 있던 집단은 바로 ‘악마숭배자’.
파이럼은 호시탐탐 이 체력단련실을 노리고 있었다.
체력단련실이야말로 이 고독에서 중급 죄수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보물.
귀신과 타 집단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성역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싸움과 운동이란 목적 하나로만 모인 이 장소의 결속력은 어느 곳보다 강하다.
파이럼은 이 체력단련실의 2인자.
그는 자신보다 뒤늦게 이 체력단련실에 들어온 델라무를 시기하고 있었다.
‘젠장, 내 몸이 더 좋은데…….’
키와 체급 면에선 파이럼이 월등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싸우기만 하면 델라무를 이길 수 없었다.
역시 전 투기장 챔피언이란 이름은 어디 가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끝이야. 악마숭배자가 날 돕기로 했다.’
정말 우연처럼 아겔 영감이 체력단련실에 들렀고, 그의 상품까지 이곳에 맡겨졌다.
악마숭배자들은 아겔의 처단을 원한다.
소년을 인질로 잡아 넘기면, 악마숭배자들의 저주받은 힘을 받을 수 있을 테고.
‘그럼 이 체력단련실은 내 것이 된다.’
키 작고 근육의 모양도 볼품없는 델라무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야말로 이 체력단련실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그는 드디어 덤벨을 내려놓았다.
한껏 긴장한 그의 이두근엔 핏줄이 솟아나 있었다.
파이럼은 델라무의 개인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해야 할 말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
조그마한 낌새도 보여선 안 된다.
이제 막 들어온 꼬맹이이니 자신이 체단실의 룰을 숙지하도록 만든다는 명분으로 꼬마를 데리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악마숭배자들에게 넘기기만 하면 끝.
파이럼은 쉬운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괜찮아. 문제없어.’
그 어느 때보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똑똑. 달칵.
“델라무.”
그는 개인실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한쪽에 명상하듯이 앉아 있는 델라무와 소년만이 있을 뿐이었다.
“델라무?”
1인자는 파이럼의 부름에도 대답이 없었다.
마치 긴 잠에 빠진 모습 같았다.
이런 모습의 델라무는 처음인지라, 파이럼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치, 침착해. 녀석이 깨어 있다고 가정한다.’
그는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이 꼬마는 내가 교육하겠다. 우리 체단실에 왔는데, 룰 정도는 숙지해야지. 귀찮게 네가 할 필요 없다.”
파이럼의 설명에도 델라무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침을 삼키며 델라무 앞에 있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이, 일어나라, 꼬마. 내가 널 교육해 주겠다.”
“…….”
소년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고개를 들었다.
파이럼은 소년의 눈빛에 심장이 한 번 철렁이는 것을 느꼈다.
‘뭔 꼬마 눈빛이 이리 살벌하지……?’
분명 처음 왔을 때는 어리바리한 것이 그 나이대에 맞는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소년의 눈빛은 마치 수십 년을 살아온 누군가의 것처럼 냉철하고 무감각했다.
“일어나라니까.”
“…….”
소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이럼은 민망한 느낌에 두서없이 말을 꺼내며 소년의 손을 잡고 끌었다.
“나, 날 따라와라. 그보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세로.”
짧은 반말에 파이럼은 언짢음을 느꼈지만,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순 없었다.
그는 개인실 문을 열고 나왔고, 델라무만이 정좌한 자세로 그곳에 남게 되었다.
달칵.
.
.
.
아겔은 체력단련실을 보고 있었다.
‘아, 이 감각…….’
시각.
보이지 않던 세계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잊고 있었던 세계가 펼쳐짐과 동시에 또 다른 세상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든다.
광활한 어둠 속을 자유로이 배회했던 이전의 시간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촉각과 미각, 그리고 후각까지 인간을 초월한 라이칸스로프의 날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다만, 청각만큼은 아겔보단 둔했다.
그래도 젊은 육체와 쾌활한 심장 박동까지.
어린 것의 몸은 언제 느껴도 경이로웠다.
‘오랜만이구먼.’
아겔은 세로의 의식을 대신하고 있었다.
내면의 어둠에 유폐된 세로.
잠시간 아겔이 소년의 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는 젊고 탱탱한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내재한 종족의 힘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mail protected]#^#%&@#%@#^~!]
내면에 있는 세로의 진정한 자아가 뭐라고 떠들고 있긴 하지만, 아겔을 밀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주도권은 아겔이 잡고 있다.
세로가 종종 보여 줬던 이성을 잃은 모습은 그가 있는 이상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아겔은 작은 시선을 통해 자신의 손을 잡고 이끄는 파이럼을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파이럼이 흠칫 눈을 내렸다.
“왜. 룰을 숙지하는 게 불만이냐?”
“…….”
아겔은 대답하지 않았다.
꼬마의 몸으로 대답하지 않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파이럼은 눈썹을 씰룩였다.
아겔은 파이럼의 색채도 알고 있었다.
그저 느낌만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이 남자도 강렬한 기억에 파묻히려 했기 때문에 내면의 어둠을 걷기엔 부적합했다.
철컹.
체력단련실의 문을 열고, 파이럼이 나왔다.
세로의 몸에 빙의한 아겔은 아무 말 없이 파이럼을 따라 나왔다.
파이럼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잠시 복도를 걷던 파이럼은 한쪽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몇 분 후, 검은 로브를 쓴 자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랬나.’
저들에게서 느껴지는 음험한 기운.
틀림없이 악마숭배자들이었다.
파이럼은 세로를 그들에게 넘기려는 것이다.
인질로 삼기 위해서.
‘목표는 역시 나.’
최종적으로 아겔을 붙잡기 전에, 같이 다니던 꼬마를 붙잡는다.
너무 속 보이고 편리한 방법이다.
파이럼이 입을 열었다.
“약속대로 데려왔다.”
“훌륭하군.”
로브를 입은 자 중 하나가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5라는 숫자와 함께 검은 문신 같은 것이 새겨진 얼굴이 드러났다.
파이럼은 소년의 손을 그 남자에게 넘겼다.
홀쭉한 남자는 세로의 팔을 넘겨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했던 대로 넘겨 주실까.”
“물론이야, 크크큭.”
흑마법사는 품에서 동그란 무언가를 하나 꺼내 파이럼에게 넘겼다.
“이것의 효과는 이미 봤으니 알고 있겠지?”
“그래.”
아겔은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경단을 바라보았다.
아마 악마숭배자들이 사용하는 약 같은 것인데, 일시적으로 기량을 폭발하도록 하는 효과를 지녔으리라.
‘델라무에게 이기기 위해 거래를 했군.’
파이럼의 욕망은 언제나 체력단련실을 차지하기 원했으니,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는 원하던 물건을 받고 쿨하게 등을 돌렸다.
“그럼 가 보지.”
“수정구슬 잘 가지고 있으라고. 나중에 또 거래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뭐, 알겠다.”
파이럼이 사라지자, 로브를 입은 자들이 발걸음을 채근했다.
“가자. 제사장님께 가져가 드리면 좋아할 거야.”
“그래.”
5급 죄수가 아겔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소년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의아함을 느낀 남자가 세로를 내려다보았다.
“뭐야, 이 새끼. 왜 안 움직여?”
“킥킥, 그러니까 운동 좀 하라니까. 애새끼 하나 못 데려가서야.”
주변의 비웃음이 들리자, 소년의 팔을 잡은 남자가 이를 으득 갈았다.
그는 검은 기운을 그러모으더니, 세로의 눈앞에 가져왔다.
“죽기 싫으면 따라와라, 꼬맹아. 넌 팔린 거야.”
그는 저주의 흑마법을 담아 소년의 머리에 덮었다.
그러나.
“크르르르…….”
“……?”
소년의 목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겔은 이 전조와 같은 시동음이 마음에 들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온전한 짐승의 본능.
‘라이칸스로프 왕자의 육체는 어떠한지 궁금하구먼.’
소년의 몸이 아겔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전신이 우두둑거리며 짐승처럼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