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37)화 (38/186)

37화 궁금증 (3)

촤악……!

흑마법사의 팔이 날카로운 손톱에 당해 피를 흩뿌렸다.

“크읏……! 이 새끼가……!”

그는 재빨리 팔을 감싼 채로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흑마법을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블랙 스웜프(Black Swamp)……!”

대상을 느리게 만드는 흑마법이 아겔에게 쏟아졌다.

아겔은 검고 질척거리는 물을 그대로 뚫고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듯이 달려들어 손톱을 휘두르는 수인.

흑마법사는 서둘러 검은 보호막을 만들고 공격을 방어한 다음 물러섰다.

아겔이 따라붙으려 하자, 그에게로 다른 흑마법들이 무더기로 날아들었다.

콰가가강!

잠시 복도가 흔들릴 정도의 위력.

덕분에 한숨 돌린 흑마법사는 동료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제기랄, 저 새끼 뭐야. 이 정도로 강하다는 말은 없었잖아.”

“그래 봤자, 1급이지. 하급 죄수한테나 당하고 앉아 있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여자로 보이는 흑마법사와 덩치가 왜소한 남자.

그리고 처음 공격을 당한 남자까지.

세로를 넘겨받기 위해 온 흑마법사는 모두 3명이었다.

전부 5급의 실력자들.

꼬마 하나를 데리러 온 것치고는 과도한 전력이었지만, 다르키스의 명령이 있었기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팔을 지혈 중인 흑마법사, 아각은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뭔가 이상해. 내 흑마법이 전혀 먹히지 않았어.”

상대를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저주 흑마법을 사용했으나, 오히려 소년은 짐승 울음소리를 냈고, 블랙 스킨으로 감싼 팔까지 뚫고 손톱이 들어왔었다.

더불어 느리게 만드는 흑마법까지 무시하고 돌진하는 모습까지.

그의 감각은 소년이 위험한 존재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여흑마법사, 리제가 코웃음 쳤다.

“흥, 그러니 흑마법 수련 좀 하라니까. 5급에 올랐다고 다인 줄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변명은 되었다.”

왜소한 남자, 그릭이 두 손에 어두운 기운을 그러모았다.

“웨어비스트일 뿐이다. 당장 제압하고 제사장님께 진상한다. 낭비할 시간 따윈 없다.”

“동감이야.”

리제도 흑마법 술식을 허공에 그려 나갔다.

순식간에 어두운 기운이 복도 주변을 잠식하는 듯했다.

그런데도 짐승의 모습을 한 소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크르르르…….”

“…….”

생각보다 소년이 흘리는 기세가 사나워서 세 사람은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긴장되는 적막.

먼저 움직인 건, 그릭이었다.

팍……!

땅을 박차고 오른 그릭은 짧은 순간, 육체를 마력으로 강화했다.

자신의 몸을 저주해 내구성을 튼튼하게 만드는 흑마법.

근접전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아무리 웨어비스트라도 내게 힘으론 안 되지.’

겨우 1급 죄수일 뿐이다.

팔다리는 부러뜨려도 상관없으니, 손속을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의 주먹과 털이 솟아난 주먹이 맞부딪쳤다.

그런데.

쿵……!

“……?!”

그의 예상과 다르게 소년의 팔은 부러지지 않았다.

그릭은 눈을 부릅뜨고 소년을 노려보았다.

‘내 힘을 받아 내다니……?’

오히려 짐승은 자신의 주먹을 붙잡은 채 대등하게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크르르르…… 크와앙!”

날카로운 이빨로 자신을 물어뜯으려는 소년.

그릭은 서둘러 몸을 뒤로 내빼면서, 발로 소년의 복부를 밀었다.

강한 밀치기에도 소년은 개의치 않고, 복도 바닥을 박찼다.

발톱에 석조 바닥이 카득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부웅……!

날카로운 손톱이 그릭의 콧잔등을 훑고 지나갔다.

허공에 흩어지는 핏방울들.

그릭은 코를 감싸고, 주먹으로 소년의 턱을 후려쳤다.

퍽……!

잠시 허공에 떠 있던 소년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착지했다.

으득.

턱뼈를 다시 맞추고 달려드는 소년이었다.

“크와아앙!”

펑!

리제가 날린 흑마법이 소년의 얼굴에 맞아 터졌다.

잠시 말미를 얻은 그릭은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확실히 이상하군. 저게 정말 1급 죄수인가?”

“내 말 맞지! 뭔가 이상하다니까!”

리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그릭. 너도 겁먹은 거야? 저딴 개새끼 따위에?”

“겁먹은 게 아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을 뿐.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잡지 못할 것도 아니다.”

리제가 던진 흑마법의 기운이 사라지자,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진심으로 던진 흑마법을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끄떡없었다.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내 공격이 안 통하잖아?”

그제야 세 사람의 시선이 소년의 왼쪽 목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아각이 반응했다.

“뭐, 뭐야 저건……?”

거기엔 아까와 조금 다른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

[51번]

* * *

아겔은 세로의 몸을 통해 느껴지는 흉포한 감정과 사나운 기세를 만끽했다.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서 뭐라도 찢어 버리고 싶었다.

‘이것이 라이칸스로프의 본능.’

죽더라도 싸우길 원하는 전사의 본능이 이 꼬마의 몸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저 먼 옛날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순혈’만이 가진 포악성.

그렇기에 라이칸스로프가 멸종 위기에 달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왕자 하나는 잘 남겨 두었군.’

그는 세로의 몸을 차지한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평범한 순혈 라이칸도 아니다.

앞으로도 무수히 개화할 여지가 있는 왕족으로서의 본능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아겔에게 눌려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소장이 가져온 상품은 생각보다 더 비싼 것이었다.

‘아쉽구먼. 이걸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상품은 ‘경매장’에 올라가야 할 테니, 아겔과 같이 고독에 길게 머무를 수는 없다.

하지만 노인은 아까운 감정을 곧 털어 냈다.

고독엔 소년 말고도 꽤 괜찮은 ‘몸’들이 있으니까.

게다가 누군가의 몸을 ‘거래’로 차지할 수 있는 건 영원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되면 본체인 늙은 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 몸은 언제쯤이 한계이려나.’

다른 자의 몸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아겔의 소소한 취미지만, 늙은 몸도 나쁘지 않다.

실상 의식은 본체에 머무르는 게 제일이다.

남의 몸은 적응하기도 어렵고, 빙의하는 몸마다 필요한 정신력도 제각각이니.

독방에 앉아 있기 심심할 때마다, 취미 삼아 빙의하곤 하는 아겔이었다.

싸우는 건 본신(本身)이 더 편하다.

‘그럼 제대로 해볼까.’

우득. 우드드드득……!

소년의 몸이 더 진하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세로는 넘지 못했던 수인화의 한계가 노인의 정신력 앞에 허무하게 부서진다.

주둥이가 길어지고, 노랗던 눈은 푸른색 차가움이 감돌게 되었으며, 키가 커진다.

은빛 갈기가 가슴과 목둘레를 덮고, 회색 털이 아닌 검은 털이 전신을 뒤덮는다.

완전한 라이칸스로프의 형상으로 변한 소년의 몸.

아직 10살이 넘지 못했어도 키가 2미터에 달했다.

“크르르르……! 쿠와아아아아아아악--!!”

목구멍에서 치미는 참을 수 없는 포효를 내지른다.

복도의 공기는 포효로 인해 경직되고.

“큭……!”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마주한 흑마법사 셋의 표정이 창백해진다.

뭐라 불평도 하기 전에 라이칸스로프가 뛰어들었다.

“크릉……!”

흉폭한 기세로 달려오는 짐승.

네 발로 뛰다가 강력한 뒷발로 땅을 박차, 팔을 휘둘렀다.

10미터 거리가 1초도 되지 않아 좁혀졌지만, 세 사람은 간신히 흑마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블랙 스킨(Black Skin).

글루미 베리어(Gloomy Barrior).

둠드 아머(Doomed Armor).

세 사람은 각자 흑마법을 사용해 라이칸의 공격을 방어하려 했다.

도망칠 수가 없을 정도로 빨랐기에 세 사람의 순간적인 판단이 방어로 일치한 것이다.

그러나 방어는 실수였다.

콰창!

먼저 리제가 만들어 낸 보호막이 첫 번째 휘두름에 가차 없이 깨져나갔고, 자신의 몸에 방어 흑마법을 쓴 두 사람은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을 맞고 날아갔다.

리제는 두 사람이 맞는 것을 보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안티 모랄(Anti-Morale).

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사기와 의욕을 낮추는 저주를 걸어 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는 듯했다.

여전히 흉포한 기세로 달려드는 라이칸이었다.

“크릉……!”

리제는 기세에 밀리지 않고 사출 흑마법을 사용했다.

비셔스 블레이즈(Vicious Blaze).

검게 타오르는 자그마한 불꽃들이 총알처럼 날아가 늑대인간의 전신을 두드렸다.

라이칸스로프는 두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리고 돌진했다.

몸이 얼마나 단단한지 리제는 자신 있는 흑마법을 썼음에도 그의 몸을 뚫지 못했다.

“젠장! 어서 일어나!”

아직도 두 사람은 벽에 날아가 처박힌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끌기 위해 강수를 두었다.

바이올런트 붐(Violent Boom).

블랙 포그(Black Fog).

콰앙--!

그녀와 라이칸스로프 사이에 커다란 폭발이 생기면서 검은 안개가 팍 터져 나갔다.

터져 나간 검은 안개는 리제의 아군들의 모습을 감춰 주었다.

거기에 상대방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 오감의 활용을 방해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어둠 속에서 빛나는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크르르르…….”

날카로운 짐승의 세로 눈동자는 자신들의 위치를 찾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시간을 벌 수 있다.’

리제는 침착하게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조용히 움직였다.

시간만 벌 수 있다면 제압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러던 순간, 검은 안개 속에서 빛나던 두 눈동자가 사라졌다.

‘……!’

리제는 경악했지만, 가까스로 소리를 참을 수 있었다.

놈이 눈을 감았다.

자신의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단순한 짐승 새끼가 아니야……!’

그녀는 라이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게 되자,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그러나 그건 패착이었다.

콰득!

“꺄아아아아아아악……!”

어느새 뒤에서 나타난 라이칸스로프가 그녀의 어깨죽지를 물어뜯었다.

고통이 엄습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다른 팔을 강화해 짐승의 눈을 찌르려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눈을 뚫지 못했다.

그저 짐승이 눈을 감은 것만으로도 흑마법으로 강화된 손이 뚫지 못했다.

푸욱-!

이빨로 팔을 뜯어낸 라이칸은 손톱으로 리제의 배를 쑤셨다.

“끄으으으…… 푸륵…….”

삽시간에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간 리제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축 늘어졌다.

시전자의 죽음으로 검은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충격에서 회복한 두 남자가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가, 감히 리제를……!”

“…….”

아각은 분노한 얼굴로 라이칸을 바라보았다.

그는 전력을 다해 마력을 끌어모아 흑마법을 준비하려 했다.

“죽여 버리겠어…… 그릭, 바로 간다!”

“아니.”

아각의 말에 그릭은 고개를 저었다.

“후퇴해야 한다.”

“뭐……?”

달려들려던 아각이 그 말에 몸을 멈칫거렸다.

아각이 무섭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후퇴해? 리제가 죽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우린 살 수 있을 것 같아, 씨발?!”

아각은 그렇게 말하고 입에 피를 잔뜩 묻힌 라이칸에게 홀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무서우면 날 보조하기나 해!”

그릭은 아각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그도 싸우고 싶었고, 싸울 마음이 있었다.

리제가 저놈에게 토막이 나기 전까진.

‘오판했다. 겨우 1급 죄수가 아니었어.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저놈에게 있다.’

5급인 자신들이었다.

셋이 뭉치면 복도의 귀신도 능히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인데, 경우 1급 죄수에게 패배 직전까지 몰렸다.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고가 우선. 다 죽는 결말은 옳지 않다.’

아각이 푼수긴 해도 5급인 만큼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으리라.

그릭은 그렇게 판단하고 복도의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 모습을 발견한 아각이 소리쳤다.

“야, 야……! 그릭! 너 이 미친 새끼……! 날 혼자 두고!”

“크르르렁……!”

“헉……!”

잠시 눈을 판 아각은 그 대가를 참혹하게 치러야 했다.

라이칸스로프가 달려들었고, 아각은 어깨를 물렸다.

“크악……!”

블랙 스킨으로 피부를 강화해 보았지만, 무자비한 짐승의 이빨은 서서히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한번 물린 순간 빠져나갈 틈은 전혀 생겨나지 않았다.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이빨을 느끼며, 아각은 절망을 느꼈다.

몇 번이고 블랙 스킨을 중첩해 보아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젠 날카로운 손톱마저 그의 배를 천천히 뚫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끄으으으…… 이 개새끼가……아아아아아-!”

그는 전신의 마력을 긁어모았다.

마력까지 모자라 자신의 생명력까지.

연모했던 리제의 복수를 위해 한목숨 바칠 생각을 하면서.

익스플로딩 슈릭(Exploding Shriek).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앙!

흑마법이 복도 한가운데에서 광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

.

타다다다닥.

그릭은 두 사람을 버리고 재빨리 악마숭배자의 근거지를 향해 달렸다.

거기까지만 가면 제사장과 다른 동료들이 있을 테니, 안전할 것이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었지?’

아겔이란 노인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최근 제사장인 ‘악마의 종’은 아겔에게 코가 꿰였다.

눈이 돌아가서 그 노인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어떤 피해든 감수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그가 명령했다.

곁에 있다던 소년이라도 붙잡으라고.

인질로 삼아 아겔을 꿰어 낼 수 있도록.

그릭은 명령을 따랐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릭 일행이 마주한 소년은 평범한 놈이 아니었다.

겉모습으로 판단한 것은 실책이었다.

‘그런데 그 꼬마마저 저런 괴물이라면, 도대체 그 노인은…….’

그릭은 고개를 확확 저었다.

‘털어 버리자. 다시 일어서면 돼. 아각과 리제를 잃은 건 사고였을 뿐이다.’

악마숭배자란 집단은 광대하다.

집단의 우두머리가 6급으로, 고독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건 아니었지만, 숫자만큼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수많은 흑마법사가 ‘악마의 종’ 아래에 결집한 것이다.

고독에서 5년이나 살아온 그릭도 처음 겪는 결속감.

그가 있다면 분명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긴다.

실수는 만회하면 된다.

‘파이럼, 그놈에게 연락해서 다시 기회를 만들어야겠군.’

아직 실패했다고 여기진 않는 그릭이었다.

타다다닥.

복도에 그가 달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다다닥.

타닥…….

“……?”

뭔가 기묘함을 눈치챈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복도의 어둠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릭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타다다닥.

타닥…….

아까부터 느껴지는 위화감을 떨칠 수 없었던 그릭은 다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

저 멀리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개의 푸른 구슬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선명하게 빛나는 푸른 짐승의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그릭은 저주 흑마법을 자신에게 걸고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집히면 죽는다.

‘따돌려야 한다.’

이쪽 복도라면 잘 알고 있다.

워낙 길이 어렵고 복잡한 곳이라 잘만 하면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그는 숨이 벅차도록 뛰었다.

가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리저리 복도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최대한 상대를 혼란시키기 위해 흑마법도 사용했다.

이걸로 추적을 무마할 수는 없겠지만,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헉헉……!”

마력을 다 소진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과할 정도로 마력을 남발했다.

‘이 정도라면 따라오지 못하겠지.’

그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뒤에선 마법 횃불이 빛나도 어둠만이 그득한 복도가 보였다.

‘다행이군. 어서 보고하러…….’

그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그러자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커다란 짐승의 손이 보였다.

부웅.

“씨발…….”

콰직……!

* * *

교정관실.

7급 교정관이 머무는 곳으로 고독의 교정관들은 전부 개인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도관들은 절대로 꿈도 꿀 수 없는 혜택.

겨우 1급수 차이로 파격적인 대우 차이가 벌어졌지만, 테이지는 그게 부럽진 않았다.

큰 혜택은 큰 책임을 진 자에게만 따라오는 것이니까.

똑똑.

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교도관 테이지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안쪽에서 짧은 대답이 들렸다.

달칵.

테이지는 복도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무로 지어진 문이지만,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아래 계급은 절대로 출입할 수 없다.

교정관실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 화려한 색깔이 빛나고 있었다.

타닷! 타다닥! 핑!

꼬마 한 명이 소파에 앉아, 커다란 화면 앞에서 고개를 쭉 빼놓고 게임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소년은 열성적으로 격투 게임에 몰입하고 있었다.

앞이 보이긴 하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머리카락이 덥수룩했다.

그가 바로 고독의 7급 교정관 중 하나.

청권(靑拳) 소류아였다.

“6급 교도관 테이지입니다.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류아 님.”

“어. 뭔 일이야? 아이 씨, 매너해라.”

어린 모습답게 미성으로 답하는 교정관은 그녀의 말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투였다.

오직 게임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겔라스토스 건에 대해서입니다. 자료 열람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 이름을 듣자, 소류아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아겔 영감? 그 노인네는 왜…….”

뚜워어어어-!

K.O.-!

배때기가 뚫려 소류아의 캐릭터가 다운되었다.

“아, 씨바…… 호게스 개새끼…….”

소류아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노인네 자료는 왜? 위에서 뭐 내려왔어?”

“아닙니다. 순전한 제 개인적 호기심입니다.”

“그래? 그럼 기각이야. 자료 열람 허락 못 해.”

“…….”

소류아는 다음 판을 위해 게임기를 조작했다.

테이지는 잠시 침묵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귀신이 고장 났습니다.”

“뭐?”

그제야 소류아가 고개를 들어 테이지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입니다. 귀신이 고장 났습니다. 수호부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공격받았습니다.”

테이지의 말에 소류아는 귀찮다는 듯이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아, 씨바 또 귀찮은 일 생겼네.”

그는 한동안 중얼중얼 불평불만을 내뱉었다.

-또 짬처리 나한테 시킬 거 아냐. 예휴, 그냥 내가 해야지. 그 노답 살인마 아저씨나 시킬 것이지, 맨날 가만히 있는 나만 시켜…….

구시렁거리던 소류아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너 그거 어떻게 아냐? 귀신 망가지는 거 누구한테 들었어?”

“아겔라스토스가 말해 줬습니다. 고장이 났다고 했습니다.”

“아하~”

소류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노인네랑 만난 모양이지?”

“예. 제가 직접 독방까지 인도했습니다.”

“그렇게 된 거군.”

소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겔 영감 만날 일이 흔하진 않을 텐데, 그렇게 만났구나? 거기서 궁금해진 거고.”

교정관은 게임기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테이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명령이야. 아겔 영감에 관해선 관심 갖지 마. 절대로.”

“…….”

테이지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리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 내 말이 마음에 안 들어?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다른 교정관한테 가서 말해도 다 똑같이 말할걸?”

소년이 씩 웃었다.

“아님, 우리보다 더 높은 분들에게 가 보든가.”

“…….”

7급보다 높은 위치.

8, 9, 10급의 존재들.

그들은 고독에서도 웬만하면 만날 수 없는 자들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간수와 교도관들 대부분이 퇴사할 때까지 그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고 했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란 뜻이었다.

“현명하게 행동해. 너무 깊은 비밀에 손대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야. 버릇 잘못 들면 나중에 고치기 힘들다?”

소류아는 그렇게 말하고 교정관 배지가 달린 제복 겉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리고 한쪽 방에 소리쳤다.

“야, 나와! 일하자!”

“옙!”

그의 부름에 호게스가 한쪽 방에서 호다닥 나왔다.

교정관 소류아와 같이 게임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노란머리 간수는 테이지를 발견하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교도관님.”

“…….”

테이지는 인사를 받아 주진 않았다.

다만, 조용히 그를 노려보았다.

아겔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유일한 간수.

도대체 이들 사이엔 무슨 비밀이 있길래 이렇게 꽁꽁 싸매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알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테이지는 주먹을 꽉 쥐었다.

호게스가 허리를 숙여 교정관에게 속닥였다.

-그런데 교정관님, 무슨 일이죠?

-짜증 나는 일이 생겼어. 귀신 하나 없애야 해.

-아하, 그렇군요. 그럼 저는 안 가도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따라와. 걸어가면서 마지막 판 복기나 하게.

교정관이 문을 열고 나가니, 테이지도 안에 머무를 순 없어서 따라 나왔다.

-그보다 너 매너 안 하냐?

-교정관님이 너무 못하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전 충분히 매너 게임하고 있는데.

-ㅅㅂ, 솟권 18. 퇴사하면 만든 새끼 죽여 버린다. 솟, 너프 안 하냐.

두 사람은 테이지를 놔두고 복도 한쪽으로 걸어갔다.

테이지는 그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가 허탈한 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