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39)화 (40/186)

39화 1인자 (2)

“승자는 델라무-!”

아겔은 링 위를 바라보았다.

싸움 하나 이긴 거 가지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델라무의 모습.

무뚝뚝하던 그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가.’

아겔은 싸워서 이긴다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진 않았다.

이기는 것으로 인한 결과를 더 신경 쓸 따름.

가령 살아남는다든지.

혹은 소중한 사람을 지킨다든지.

‘쯧, 늙더니 쓸데없는 감상이 많아졌군.’

아겔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링에서 누군가의 처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 말도 안 돼…….”

의식을 잃고 다운되었던 파이럼이 어느새 일어서 있었다.

그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델라무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어째서 난 널 이길 수 없는 거지?”

파이럼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에 델라무가 고개를 돌렸다.

“왜 난 널 이길 수 없는 거냐, 델라무…….”

“…….”

파이럼의 중얼거림엔 한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원하는 목표를 불의를 저지르고서라도 이루려 했으나, 그 또한 실패해 버렸다.

그가 느끼고 있을 자괴감의 크기가 어떠할지 아겔은 짐작할 수 있었다.

델라무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른다. 그냥 내가 강했고, 네가 약했다는 것뿐.”

“……!”

“투기장에 약자는 없어. 모두 뒈졌으니까. 여기가 투기장이 아닌 걸 감사해라, 파이럼.”

“…….”

델라무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네 숨에서 불결한 냄새가 나. 흑마법의 냄새. 놈들이 준 알약을 먹었나?”

그의 추궁에 파이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놈들과 거래를 했다. 꼬마를 넘겨주고 왔지.”

“꼬마?”

델라무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여기서 꼬마라면 세로밖에 없었다.

그런데 세로의 몸을 차지한 아겔은 바로 그의 뒤에 서 있었다.

파이럼이 실성한 듯 웃었다.

“큭큭큭…… 꼬마를 팔아서 내가 원망스럽나, 델라무? 어쩔 수 없지. 나도 네가 원망스러웠어.”

“뭐?”

그가 두 팔을 벌렸다.

“투기장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어차피 1인자가 되지 못한 삶은 내겐 죽는 것보다 끔찍하다. 자, 이제 모두 같이 죽자.”

두근.

파이럼의 심장이 있는 가슴 부근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불길한 기운이 심장과 입에서 흘러나왔다.

델라무는 당황한 얼굴이 되어 뒤로 물러섰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파이럼의 눈빛이 위험하게 변했다.

“크하하하! 모두 터뜨려서 죽는 거다!”

우우우웅-!

검은 기운이 폭발할 듯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마치 터질 듯이 부푸는 힘 때문에 체력단련실에 있던 수하들이 뒤로 물러섰다.

-저, 저게 뭐야……!

-피해랏! 터진다!

델라무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먹에 기를 담았다.

‘단번에 부숴야 하나……?’

자신의 판단조차 믿을 수 없었다.

5급 죄수인 파이럼이 작정하고 흑마법의 힘을 빌려 자폭하려는데, 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체력단련실이 혼란에 빠진 순간.

누군가 링 위로 도약했다.

푸욱!

“컥……!”

무덤덤한 목소리가 링 위에서 들려왔다.

“그만두게. 요란한 건 싫어하는 편이라.”

커다란 짐승의 손이 파이럼의 가슴을 뚫고 나와 심장을 쥐고 있었다.

불길한 보랏빛으로 물든 그의 심장은 원래 자리에서 끄집어냈어도 박동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두근.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은 그 심장을 사정없이 쥐어짰다.

퍽……!

심장이 터져 나갔고, 커다란 짐승의 팔이 파이럼의 가슴을 쑥 빠져나왔다.

“끄으으…….”

쿵.

심장이 사라진 파이럼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심장을 빼앗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 넌…… 끄으으으…….”

분명 자신이 흑마법사들에게 팔아넘긴 소년이었는데.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와 똑같은 눈빛이었다.

파이럼의 몸이 힘없이 링 위로 쓰러졌다.

델라무는 눈을 부릅뜨고 팔이 커다랗게 변한 아겔을 바라보았다.

아겔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방어전에 성공한 걸 축하하네, 델라무.”

“…….”

그 모습에 주변에 서 있던 단련실 수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꼬마, 저렇게 강했나?

-파이럼을 단숨에…… 아무리 지쳤다곤 하지만.

-가슴을 정확하게 뚫었다. 보통 실력이 아니야.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죄수들이 한꺼번에 링에 올랐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델라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소년에게 다가가려 할 때, 델라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

-델라무 형님……?

수하들이 델라무의 말에 멈칫했다.

델라무는 소년의 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겔 영감님이다. 건드리지 마라.”

-……?

뜬금없는 델라무의 말에 그의 수하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형님. 이 꼬맹이가 아겔 영감님이라니…….

-무슨 말씀을…….

델라무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목을 봐라. 죄수 번호를.”

체력단련실에 있던 모든 죄수의 시선이 소년의 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

입이 벌어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명백하게 새겨져 있는 51번.

아겔 영감의 죄수 번호가 소년의 목에 있었다.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꼬마의 몸을 빌렸지. 독방에 갇혀서 답답한 마음에.”

“그런 것도 가능했다니…….”

델라무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아겔에 대한 소문은 중급 죄수들 사이에서도 무성하기만 할 뿐 뭐가 진실인지 제대로 아는 자는 없었다.

아겔이 상대방의 몸을 빼앗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소문도 그중 하나였다.

델라무는 처음엔 그게 과장된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진실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델라무의 의문에 아겔이 답했다.

“늙은이의 별것 없는 재주라 생각하게.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

저게 대단한 게 아니라면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델라무는 침착하고 싶었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은 쉽게 잠잠해지지 않았다.

그는 흑마법사인가?

아니면 악마?

아니면 그것보다 더한…… 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

그의 상념을 지우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보다 자네, 저번에 말했던 결투란 거. 지금 해 보겠나?”

우득.

아직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은 아겔의 오른팔이 뼈 소리를 냈다.

“이 몸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말이지. 어떤가.”

“…….”

델라무의 표정이 바뀌었다.

파이럼과 싸워 쌓인 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좋아, 영감님. 지금 당장 하자고.”

“빼지 않아서 좋군.”

수하들이 델라무를 만류하는 듯 보였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싸워 이기며 성장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남자.

아겔은 링 구석에서 결투를 준비하는 델라무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제대로 한계까지 시험해 보아야겠구먼.’

흑마법사들과의 싸움은 세로의 몸을 한계까지 끌어내지 못했다.

혹 델라무라면 이 몸의 한계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순전한 아겔의 호기심이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한 차례 싸운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시작부터 온 힘을 다할 생각이었다.

우득. 우드드드득!

소년의 전신이 검은 털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가슴께에 은빛 갈기가 생겨났고, 짐승의 날카로운 푸른 눈이 나타났다.

완전한 라이칸스로프의 모습.

10살 남짓으로 보이는 소년이 2미터의 거인으로 변하자, 체력단련실의 죄수들이 기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

짐승의 울음소리가 내는 공포에 누구도 오금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오직 링 위에 선 델라무만이 자신의 커다란 창을 잡을 뿐이었다.

붕붕붕!

3미터짜리 창을 허공에 돌리며 손을 푼 델라무가 자세를 잡았다.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

말은 필요 없다.

아겔은 더 기다리지 않고 바로 땅을 박찼다.

쿵!

“쿠화아아아악-!”

“……!”

빠른 속도로 접전을 펼치는 두 사람.

델라무의 창이 먼저 아겔의 팔을 찔렀다.

퉁.

분명 찔렀는데, 창날이 근육과 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델라무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미친……!”

“쿠화아아악!”

스치기만 해도 살가죽이 죽 찢어질 듯 예리한 손톱이 허공을 갈랐다.

델라무는 빠르게 손톱을 피하면서 창을 휘둘러 운신을 방해하는 링의 로프를 죄다 잘라 버렸다.

두 사람의 무대는 그때부터 체력단련실 전체였다.

링에서 나온 둘은 이곳저곳에서 손톱과 창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맞붙었다.

싸움을 지켜보던 죄수들은 휘말리지 않으려면 멀리 도망쳐야만 했다.

아겔은 델라무가 창날에 기를 싣는 것을 느꼈다.

‘본격적으로 시작인가.’

무형의 기운이 창날에 실리자, 그때부턴 아겔도 창을 무시하지 못했다.

심장이 뚫리면 죽을 테니까.

한순간 델라무의 눈이 빛났다.

그는 근육이 부풀어 오른 팔로 빠르게 창을 세 번 찔렀다.

삼진섬(三進錟).

일·이·삼 격의 길이가 모두 다른 찌르기는 상대방의 중심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초일 뿐이다.

아겔은 중심이 흐트러지는 걸 감수하고 찌르기를 전부 피해 냈다.

다음에 올 일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온다.’

그의 예상대로 델라무가 흔들리는 아겔에게 창을 찔러 왔다.

섬뢰(錟雷).

번개처럼 델라무의 창이 쇄도했다.

정확히 심장을 노리고.

‘날카로운 일격이군.’

확실히 투기장 챔피언을 지내본 자라면 이 정도 훌륭한 한 수는 준비해 두어야 한다.

다만, 상대가 나빴을 뿐이다.

콱!

중심을 잃은 것처럼 보였을 뿐, 아겔은 전신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는 자세를 바로 하고 날아오는 창대를 주둥이로 깨물었다.

델라무의 창은 거기서 단 한 치도 나아갈 수 없었다.

“……!”

당황한 델라무가 대처할 새도 없이, 아겔이 주먹을 뻗어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쩍-!

“크학……!”

각혈하며 바닥을 구르는 델라무.

20여 미터를 구르고 나서야 그는 멈추었다.

시퍼렇게 멍든 복부가 보였다.

창을 퉤 뱉은 아겔이 델라무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끝인가.”

“…….”

일부러 손톱이 아닌 주먹을 휘둘러 보았다.

주먹의 위력도 알아보고 싶었기에.

하나 그 위력에 내장이 파열될 만한 피해를 받았을 텐데도, 델라무는 기어이 일어섰다.

어차피 여기서 지면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결투에서 맞붙은 두 사람 중 하나는 죽어야만 한다.

그게 결투니까.

결연한 눈을 한 델라무가 보였다.

“……끝을 보자고, 영감님.”

“크르르륵…….”

델라무는 전신에 있는 기를 전부 모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압-!”

마치 갑옷처럼 그의 몸을 감싸는 기의 행렬.

아겔은 그 모습을 보고 손톱을 길게 뽑았다.

‘웬만한 강철로는 벨 수도 없겠구먼.’

마지막 일격이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겔은 달려오는 델라무를 향해 마주 뛰었다.

‘음……?’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찰나의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감각이 느껴지면서 아겔의 눈이 델라무의 목을 향했다.

아까와 다른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호오.’

6

델라무의 급수가 한 단계 올랐다.

이 짧은 순간,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든 것이다.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걸 확인한 짐승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촤아아아아아악-!

두 사람이 서로를 스치고 지나갔다.

델라무의 가슴엔 손톱이 남긴 자상이 팍 튀었고, 아겔은 멀쩡한 모습으로 뒤를 돌았다.

‘흠, 이제야 힘이 빠지는군. 방금이 꼬마가 낼 수 있는 한계인가.’

전력으로 휘두른 손톱이다.

델라무가 두른 기의 행렬을 잘라 내고 간섭할 정도의 힘.

아겔은 소년의 한계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소년의 몸으로 극한까지 수인화하면 델라무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물론 아겔의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힘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쿵…….

겨우 버티고 서 있던 파이터가 쓰러졌다.

아겔은 그가 쓰러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짐승의 손이 파이터의 가슴에 올려졌다

당장이라도 심장을 끄집어낼 듯이.

“크르르르…….”

“쿨럭…….”

입에서 피를 토하는 델라무의 모습은 전혀 정상이 아니었다.

손톱이 너무 깊게 파고들었다.

가슴과 입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고 있었다.

델라무는 죽음이 다가온 사람치고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아겔이 그를 내려다보며 질문했다

“자네, 고독에 처음 들어왔을 때 몇 급이었지?”

“급수……?”

그는 거의 반쯤 감긴 눈으로 아겔을 쳐다보았다.

“사, 삼 급…….”

“그렇군.”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레귤러가 발생했다.

최초로 급수가 세 단계나 오른 자가 생겼다.

그저 평범한 개싸움꾼이라고 생각했던 남자.

3급이었던 그는 4급을 지나, 5급이 되었고 투기장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죽음 직전, 6급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델라무가 피를 토하며 말했다.

“이, 이제 됐어…… 주, 죽여 줘…… 내 끝을 봤다…… 후, 후련해. 여한은 없, 다…….”

“흐음.”

우득. 우드득.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겔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예상이 빗나가는 즐거운 일이 생겼다.

과연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여기서 끝나 버릴지.

몸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쓸모가 있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생각에 빠진 아겔은 체력단련실의 철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덜컹-!

“데, 델라무 님……! 큭…….”

전신에 피를 흠뻑 뒤집어쓴 죄수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그를 아는 죄수들이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뭐, 뭐야…… 론도 몰골이 왜……?

그는 죄수들의 부축을 받아, 델라무의 곁으로 걸어왔다.

그는 다 죽어 가는 델라무를 발견하고 절망한 얼굴을 했다.

“아아…… 이, 이럴 수가…….”

그의 모습을 본 델라무가 잠겨 가던 눈을 떴다.

억지로 죽음을 유예하고 있는 듯했다.

“뭐냐…… 무슨, 일…… 이냐…….”

“크흑…… 체력단련실이 습격받고 있습니다…… 저, 전쟁이에요……!”

“전…… 쟁?”

전쟁이란 말에 수하들이 술렁였다.

도대체 누가 체력단련실을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론도라 불린 남자가 땅에 손을 짚고 말했다.

“크흡…… 아, 악마숭배자. 그놈들이 쳐들어왔어요……! 내부에 배신자들이…… 크흑……! 벌써 24번, 59번 실장님들이 당했습니다.”

“뭐라고……?”

전쟁.

악마숭배자들이 운동을 좋아하는 자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아겔은 묵묵히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악마숭배자들이 움직였구먼.’

놈들은 사람을 습격해 잡아간다.

생명력과 마력을 자원으로 삼는 놈들이니, 그런 일은 당연했다.

이번엔 위치가 어딜까 짚어 보는 아겔에게 큰 웅성거림이 들렸다.

-혀, 형님……!

쿵.

델라무가 아겔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죽어 가면서도 아겔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영, 감님…… 부탁이 있, 습니다…….”

평소 해 왔던 반말이 아닌 존대.

아겔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게.”

델라무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이…… 체력단련실의 1인, 자가 되어 주십, 시오…… 쿨럭…….”

“…….”

그 말에 아겔은 속으로 혀를 찼다.

체력단련실을 소유하고 있는 건 오로지 1명의 죄수.

델라무와 같은 실장들을 두고 거대한 연합을 거느린 자다.

이곳의 실장이 되는 순간 그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직 생활은 딱히 흥미가 없는 아겔이었다.

“부디 제 아우들을 지켜…….”

아겔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쓸데없는 일엔 관심이 없구먼.”

“…….”

아겔은 고민하는 척 턱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물론 이미 할 말은 정해 놓았다.

델라무는 죽는 순간까지 애가 타는 심정일 것이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나와 거래를 하는 걸세.”

“거, 래……?”

“그래. 자네 목숨을 살려 주지. 거기에 악마숭배자들도 물러나도록 해 주겠네.”

무릎을 꿇은 델라무가 고개를 들었다.

“저, 정말…… 입니까?”

“내가 손해이지만, 나와 거래하겠다면 들어주도록 하지.”

델라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조건이 뭡, 니까.”

그 말에 아겔은 흡족한 마음을 숨겼다.

어린 손이 느릿하게 그의 턱을 붙잡았다.

아겔이 고개를 숙여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자네의 영혼을 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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