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40)화 (41/186)

40화 휴식 (1)

델라무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아겔을 올려다보았다.

무덤덤한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눈동자는 수십 년간 고독을 살아온 노인의 것이었다.

델라무는 고개를 숙였다.

영혼.

그걸 내어 준다는 게 델라무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투기장의 정상, 챔피언 자리에서 떨어져 내린 자신을 받아 준 곳은 이 체력단련실.

즉, ‘운동 연합’밖에 없었으니까.

아겔은 고뇌에 빠진 델라무를 내려다보았다.

‘고민 중이군.’

지금 이 순간도 생각이 수십 번이나 가슴과 머리를 왕복하고 있을 것이다.

영혼에 관한 일이라면 흑마법이나 마법의 극의(極意)에 다다른 자 혹은 성좌를 모시는 사제와 사도들만이 제대로 알고 있을 테니까.

평범히 육신을 단련한 자들은 기(氣)나 알 따름이다.

영혼을 내어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세를 살아갈 권리를 포기하고 이 현세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미이니.

아겔은 속으로 웃었다.

그가 진정 원하는 건 영혼이라기보단 그것에 간섭할 ‘권리’ 정도일 뿐이니까.

사람의 혼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성좌’들과는 다르다.

…….

죽음이 찾아온 듯한 수십 초가 지나고, 델라무가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바, 받아들이겠습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래는 성립되었네.”

그가 직접 거래가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자, 수하들이 술렁였다.

-지, 진짜 거래했어. 형님은 이제 안 죽는 건가?

-델라무 형님은 뭘 건 거지?

-입 다물어. 아겔 영감님의 거래 조건은 당사자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어.

-들어도 잊어버린다는 괴상한 소문도 있으니까.

이것이 그토록 유명한 ‘아겔의 거래’.

그와 거래한 자들은 무언가를 크게 얻고, 또 무언가를 크게 잃는다 하여 아는 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델라무의 조건은 알 수 있었으나, 아겔의 조건은 알 수 없다.

목숨을 살려 주는 대가로 그는 도대체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수하들은 긴장한 기색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겔이 델라무의 머리에 손을 짚었다.

“그럼 우선. 좀 쉬도록 하게.”

“예……? 아…….”

무릎을 꿇었던 델라무는 옆으로 쓰러졌다.

죄수들이 쓰러진 그의 곁으로 모였다.

다행히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

“회복실로 옮겨 놓게.”

소년은 델라무의 앞에서 돌아서서 죄수들을 등졌다.

“아, 내 먹을 것도 좀 부탁함세.”

그는 그렇게 말하고 델라무의 개인실로 들어갔다.

죄수들의 시선은 멀어지는 아겔과 델라무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

.

아겔은 델라무의 개인실에 들어와 한쪽에 정좌했다.

그는 눈을 감고 소년의 몸 상태를 살폈다.

‘양호하다. 조금 지치긴 했지만, 이삼일이면 회복할 수 있겠어.’

가히 경이로운 회복력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겔의 육체로는 이만한 회복력을 낼 수 없다.

소장에게 받을 ‘물건’이 없다면 기실 살아남기도 힘들 것이다.

델라무와 싸울 땐, 아겔도 소년의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했다.

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하급 죄수들은 우러러볼 수 있을 만큼 강한 5급 죄수이며, 고독의 봉인이 풀린다면 7급까지 넘볼 수 있는 자이니.

그런 자가 여기서 6급으로 성장하기까지 했다.

여태껏 고독에선 없던 세 번째 급수 변경을 이루어 내고.

‘성장 폭은 이 꼬맹이가 더 높겠지만, 이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야.’

보통 노력으론 급수 변경의 근처까지 가지도 못한다.

뼈를 깎는 노력과 피를 쏟는 각오가 필요하다.

델라무는 그런 과정을 3번이나 거쳤으니, 처음엔 그를 범부(凡夫)라 여겼던 아겔도 흥미가 생겼다.

물론 급수 변경은 힘들다 뿐이지,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수의 죄수가 들어오는 이 고독에선 그리 희귀한 일도 아니다.

아겔도 종종 그런 모습을 목격했고, 실제로 그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은 자들은 전부 급수 변경을 해 온 자들이었다.

‘이 고독에서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면, 결국 죽음뿐이니.’

노인의 본체의 경우는 그럼에도 상당히 특이했다.

그의 몸은 단 한 번도 급수 변경을 경험하지 못했다.

너무 옛날에 찍힌 낙인이라 그런가.

51번이라는 번호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그의 급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이 낙인을 찍은 ‘술사’만이 진실을 알고 있겠지.

그는 아겔조차도 만나기 힘든 인물이었다.

애초에 어딜 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니고 음침한 편이라, 몇 번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였을 정도다.

눈을 감고 있는 아겔에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달칵.

문을 열고 죄수들이 들어왔다.

델라무의 체력단련실에서도 수위를 다툴 만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은 직접 아겔의 식사를 가지고 왔다.

그중 이마에 더듬이가 달린 하얀 피부의 남자가 아겔에게 다가왔다.

그는 먹을 것이 담긴 접시를 그의 앞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아겔은 접시에 담긴 식사를 손으로 집어 보았다.

소년의 몸은 아겔의 본신보다 후각이 발달되어 있어서, 음식에 독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 정확하게 판가름했다.

그 후각의 판별에 의하면 식사엔 독 따윈 없었다.

하기야 독이 든 음식을 가져왔다면, 아겔의 성정상 당장 이곳에 있는 전원을 살해할 것이다.

이들도 그 사실을 알 테고.

더듬이 남자는 조심스럽게 아겔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겔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예, 그렇습니다.”

더듬이 남자가 아겔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식사가 끝나시면 바로 출발하십니까?”

고독 이곳저곳에 있는 체력단련실.

흑마법사들이 습격한 그곳에 지원을 갈 것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아직은 출발할 때가 아니지.”

“예? 그러면 언제…….”

“기다리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들어 더듬이 남자의 얼굴엔 아쉬움과 불안함이 서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나가 공격받는 연합을 지원하고 싶을 테지.

그러나 서두르면 독일 될 뿐이다.

우선 아겔도 소년의 몸을 회복시켜야 할 테고.

더듬이 남자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나가 보게. 조용히 식사하고 싶으니.”

“예.”

더듬이 남자를 포함한 체력단련실 일원들이 개인실에서 나갔다.

나가기 전, 그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당장 출발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목소리들.

아겔은 신경도 쓰지 않고 식사를 입에 가져갔다.

우걱우걱.

잘 먹지 못한 소년의 몸은 먹을 것을 갈망했고, 그리 맛있는 고기가 아닐지라도 입은 음식물을 환영했다.

어린 혓바닥이 전해 주는 생생한 맛을 느끼며 아겔은 만족했다.

체력단련실 일원들도 복도에서 몬스터를 사냥해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무슨 고기인지 몰라도 먹을 만했다.

애초에 맛이 존재한다는 것부터 아겔을 만족시키기 충분했다.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친 아겔은 접시를 밀어 두고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이번 일로 얻을 소득에 관한 생각이 들었다.

‘또 영혼 하나가 늘었군.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겠지.’

종속 관계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고독에서 오래 살기 위해선 우군을 많이 만들어 두는 편이 좋았다.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평상시엔 혼자서도 위기를 면할 수 있지만, 카라이스만의 고독은 특수한 교도소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옳다.

물론 누군가와 오랫동안 같이 있는 것도 꺼려지기도 하니, 아겔은 홀로 일상을 누리는 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아겔은 턱수염도 없는데 습관처럼 턱을 매만졌다.

‘흐음, 보험을 좀 들고 싶은데.’

이대로 이 근육 덩어리들만 데리고 악마숭배자들을 몰아낼 순 없었다.

그들은 기(氣)만 다루는 이들에겐 완벽한 대응을 갖추고 있을 테니.

기실 그들이 ‘운동 연합’을 공격한 것은 아주 만만하고 질 좋은 사냥감이기 때문이다.

매일 운동하니 생명력이 넘치고, 사로잡는 것도 그들 입장에서는 쉬운 편이니.

그러니 휴식을 하는 동안 준비도 해 놓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겔은 눈을 감았다.

…….

쿠우우우…….

순식간에 주위를 감싸는 어둠.

아겔은 세로가 사라진 내면에 서 있었다.

아직 어둠 속에 유폐되어 있을 테니 이 내면은 아겔의 것이었다.

“주변에 괜찮은 놈이…….”

늙은 본체에 있을 때의 습관 때문에 위험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아겔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 머물면서 누군가를 찾아 헤매듯이 걸어 다녔다.

“오, 하나 있군.”

근처에 괜찮은 녀석이 하나 있었다.

아겔이 이전에 어둠을 심어 두었던 녀석.

놈도 그에게 ‘영혼에 간섭할 권리’를 바친 자 중 하나였다.

아겔은 주저하지 않고 그를 불렀다.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세로의 내면 어둠 한쪽이 이에 반응하듯 꿈틀거렸다.

명령은 전달되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이고 내면에서 나가려 했다.

“?”

밑에서 지켜보는 거대한 짐승의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푸른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포식자와 피식자가 누군지 정확하게 가르는 눈빛.

[너…….]

포식자의 위압감이 짙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 아겔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할 말이라도 있는가?”

[감히 나를 밀어내고……! 어서 비켜! 그건 내 몸이란 말이다-!]

거대한 짐승의 눈이 윽박질렀다.

이건 세로는 아니었다.

세로라면 이렇게 무례하기 굴진 않았을 테니.

아겔이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단지 세로의 내면에 남아 있는 종족의 ‘본능’.

자아처럼 형성된 깊은 무의식이나, 나중엔 세로의 본의식과 합쳐질 하나의 ‘기능’에 불과하다.

소년의 공격성과 힘을 증폭해 줄 정신 중 하나일 뿐이기에 아겔은 전혀 겁이 나지 않았다.

“나 같은 노인네에게 밀린 주제에 권리를 주장하는가.”

[닥쳐라-! 어디서 개뼉다구 같은 노괴가 굴러와선 내 몸을……!]

아겔이 순간 손을 뻗었다.

어둠을 콱 쥐어 잡은 노인의 손은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듯한 모양새였다.

[컥……!]

“입 다물어라, 찌꺼기야. 내가 널 내버려 두는 이유는 꼬마 때문이다.”

이미 세로는 거래를 통해 아겔에게 영혼의 권리를 바친 상태.

마음만 먹으면 이따위 본능은 당장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허나 그건 세로의 성장 가능성을 잘라 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끄으으으…… 인간 주제에 어떻게 이런 정신력이…….]

정신력이란 말이 아겔의 가슴에 파문처럼 튀었다.

인간인 그가 이런 정신력을 가지게 된 원인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매일 어둠을 마주했으니까.

“그러니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 시끄럽게 굴지 마라. 지금 당장 사라지기 싫다면.”

[…….]

아겔은 손을 내렸다.

그러자 거대한 짐승의 눈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더 깊은 내면으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아겔과 그의 간극을 깨닫고.

.

.

소년은 눈을 떴다.

의식을 되찾은 아겔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준비는 끝났고. 그럼 잡초도 미리 뽑아 놔야겠구먼.’

식후 운동으로 괜찮을 것 같았다.

달칵.

그는 개인실을 나섰다.

체력단련실 일원들의 시선이 아겔에게로 모였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단련실을 가로질렀다.

그러자 조금 밝은 얼굴을 한 더듬이 남자가 다가왔다.

“혹시 지금 가시는 겁니까?”

“아닐세. 그저 출발하기 전에 준비라도 좀 하려고 하는 것뿐일세.”

또 부정의 대답을 들은 더듬이 남자의 입술이 꾹 맞물렸다.

그가 질문했다.

“어떤 준비를…….”

“우선 단련실 인원을 전부 모아 줄 수 있겠나?”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더듬이 남자는 그러겠다고 말하면서 인원들을 모았다.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곧 94번 체력단련실에 있던 수백 명의 죄수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아겔은 소년의 눈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운동을 방해하고 불러 모은 아겔에게 불만을 느끼는 자.

아직도 아겔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지 의심하는 자.

두려움을 살짝 느끼는 자까지.

다양한 감정이 얼굴에서 보였다.

‘역시 눈이 있는 게 좋긴 하구먼.’

그렇게 생각하며 아겔이 한 남자를 가리켰다.

“자네.”

“예?”

“앞으로 나오게.”

그에게 불린 남자는 평범한 죄수였다.

3급 죄수로 열심히 근육을 단련한 청년.

청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아왔다.

옆에선 더듬이 남자가 물었다.

“오그는 왜 부르시는…….”

“뭐 별거 아닐세. 우선 배신자부터 처리해야지.”

“배신자……?”

순간 더듬이 남자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커다랗게 변한 아겔의 팔이 다가온 오그라는 청년의 목을 갈라 버렸기 때문이다.

촤악……!

쿵. 데구르르…….

-……!

체력단련실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가 여기서 오그를 죽이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 무슨……!

-오그를 죽였어!

경악에 빠진 그들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또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푸쉬이이이…….

목이 날아간 시체가 급속도로 부패하기 시작했다.

체력단련실에 있는 모든 연합원이 시체에서 흘러나온 기운을 느꼈다.

-큭……! 흑마법?!

-분명해. 흑마법이야.

-오, 오그가 배신자였어?

-파이럼도 흑마법사들과 거래했다더니, 오그까지…….

아겔의 조용한 목소리가 죄수들의 술렁거림을 뚫고 나왔다.

“지금부터 잡초를 뽑도록 하겠네.”

-…….

겉으로는 애송이나 다름없는 소년의 목소리에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뜻은 가볍지 않았으니까.

그 후로 체력단련실에는 피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씨발……! 도망쳐!

-여기서 나가! 잡히면 안 돼!

사태를 파악한 몇 배신자들이 도망치려 했지만, 아겔은 용납하지 않았다.

촤악-!

단 한 사람도 그의 손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목을 내놓아야 했다.

아니면, 무릎을 꿇고 목숨만은 부지한 채로 제압당하던가.

꿀꺽.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만약 저 손톱에 걸리는 게 배신자들이 아닌 자신의 목이었다면?

은연중 그런 생각이 죄수들의 머릿속에 자리했다.

죄수들의 눈에는 하나의 이미지가 천천히 새겨지기 시작했다.

손톱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낫을 휘두르는 사신의 모습이.

하나 정작 소년의 얼굴은 마치 벼를 베는 능숙한 농부처럼 평온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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