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45)화 (46/186)

45화 무지의 대가 (2)

콰득……!

라이칸스로프의 날카로운 이빨에 윌리엄의 두개골이 두부처럼 으깨졌다.

아겔은 진득한 잔해를 삼키지 않고 입으로 퉷퉷 뱉어냈다.

더러운 걸 먹을 순 없으니까.

‘가짜군.’

두개골을 부수자 입에 가득 찬 건 뜨거운 피가 아닌, 썩어 버린 뇌였다.

굳어버린 시체.

이미 죽은 자의 시체를 가져와 꼭두각시처럼 부린 것이다.

겉모습만큼은 완벽하게 살아 있는 사람처럼 위장해 놓고.

육체를 다루는 흑마법사라면 간단히 할 수 있는 일.

그는 절대로 자신의 본체를 내보이지 않는 타입인 것 같았다.

쾅…… 쾅…… 쾅…….

복도 저 멀리에서는 규격 외의 시체 골렘과 안톤이 파괴적인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 전투의 소음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아겔은 손으로 주둥이를 훑었다.

‘저쪽은 알아서 할 테니. 이쪽을 정리하기만 하면 되겠구먼.’

안톤이 지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나 저런 시체 골렘 같은 대형 소환수라면, 더더욱.

그는 수없이 많은 전투로 인해 무기 숙련도와 힘을 쌓아 올린 육탄전의 스페셜리스트이니까.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그의 능숙함뿐만 아니라, 단순한 힘 대결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단순히 질량과 무게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

아겔이 있는 복도엔 피와 시체가 낭자해 있었다.

육안으로는 놈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겔은 놈이 있을 만한 곳을 천천히 살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날 찾는다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윌리엄의 목소리가 들렸다.

촤악!

뒤에서 일어난 시체의 목을 날렸다.

그러나 시체를 죽여도 본체를 죽인 건 아니었기에 허사나 다름없었다.

그 후로도 시체들이 하나씩 몸을 일으켜 세워 윌리엄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마치 인형처럼.

“신기해. 내 흑마법을 어떻게 깨뜨린 거지? 그거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닌데.”

촤악!

“하긴,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 안톤이 데리고 다니는 거겠지.”

촤악!

“자꾸 재미없게 굴 거야? 뭐라도 말 좀 해 봐.”

촤악!

“쳇, 그렇게 싸움이 좋아? 그렇다면…….”

한순간 시체가 일어나지 않았고, 윌리엄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으득…… 우드득…… 우드드드득……!

근처에 있던 시체 전원이 일어섰다.

죽은 자의 얼굴과 눈을 한 시체들은 부러지고 파헤쳐진 몸을 이끌고 아겔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슈우우우……!

거기에 흑마법으로 신체가 강화되기까지.

놈은 시체를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아까처럼 쉽게 당하진 않을 거야. 네 손톱에 한 방에 잘리긴 해도 좀 귀찮을걸?”

촤악!

윌리엄의 말대로, 아겔이 손톱을 한참 휘둘러도 시체들은 끊임없이 몰려왔다.

게다가 목을 잘라도 몸은 일어섰다.

사지를 잘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지 않는 이상, 시체들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데들리 마리오네트(Deadly Marionette).

윌리엄이 사용한 흑마법은 단순한 좀비를 만드는 술법이 아니었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시체들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시체 골렘에 들어간 시체의 양도 만만치 않을 텐데, 아직 시체는 수도 없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겔은 그 사이에서 놈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하나.

몇 분이나 시체들을 상대하며 두리번거리던 아겔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찾을 수가 없군.’

시체들과 다르게 살아 있는 인간의 특징은 명확하다.

심장이 뛰고 호흡을 하니 소리를 이용해 찾아낼 수도 있고.

땀이나 몸에서 나온 기름의 냄새를 추적할 수도 있고.

아니면 라이칸스로프가 태생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으로 생명이 있는 곳을 감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아겔이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외려 내가 현혹되고 있구나.’

라이칸스로프의 본능은 생명력이 있는 곳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걸 어느 정도 눈치챘는지, 시체에다가 생기를 조금씩 불어넣어 짐승 상태인 아겔의 감각에 혼란을 주고 있었다.

“푸핫……! 난 6급 흑마법사야! 안톤보다도 약한 네가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시체를 쪼개던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급수에 걸맞는 수준이긴 하구먼.’

그저 인간의 생명력을 과도하게 빨아 먹고 급수를 올렸던 이전 흑마법사들과 달랐다.

놈은 싸울 줄 알고 있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하여, 자신의 장점을 안다.

숨는 것.

놈은 그것을 살려 아겔의 체력 소모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 못 찾겠어? 그럼 못 찾겠다, 고블린이라고 말해야지. 그리고 항복하는 거야. 어때? 넌 안톤과 다르게 내가 특별히 살려 줄게.”

“이래도 자꾸 거부하면 죽일 거야. 너랑 안톤 둘 다. 살아 있을 때, 최대한 고통을 주면서 갈기갈기 찢어 줄게. 너무 기대돼.”

“너는 누가 만들었을까. 너 같은 실험체를 왜 밖에다 둔 걸까? 그 원주인이 누군지 알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흥분되지 않아? 큭큭큭…….”

아겔에게 심리전을 거는 것까지.

하나 노인의 정신은 같잖은 말 몇 마디로 흔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겔은 수도 없이 밀려 들어오는 흑마법사의 시체 인형을 바라보았다.

‘힘을 낭비하면 안 된다.’

가짜들에 홀려 진짜를 놓치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쉬익……!

시체들 가운데서 몇 구가 아겔에게 달려들었다.

그것들은 윌리엄이 택한 아직 멀쩡하고 쓸 만한 시체들.

윌리엄은 더욱 강력한 흑마법으로 시체들을 강화해 아겔이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싸움을 걸었다.

그가 직접 선택한 시체들은 아무리 라이칸스로프의 몸을 가진 아겔이라도 단숨에 처치하기란 쉽지 않았다.

쾅쾅쾅!

육탄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음이 났다.

강화 시체들과의 싸움은 주변에 있던 다른 시체들이 터져 나갈 만큼 강렬한 충격파를 냈다.

일단 5기.

시체 다섯 명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아겔에게 치고 들어왔다.

손과 발에서 검은 기운을 내고 있는 시체 다섯 기는 협공으로 아겔을 압박했다.

시체 다루는 실력이 월등한 건지.

윌리엄의 강화 시체는 수준 높은 무술을 구사하며 아겔을 압박했다.

먼저 덩치가 크고 몸이 단단한 놈들이 아겔의 정면에 섰고.

빠르고 공격성이 뛰어난 시체들이 급소를 노려 왔다.

‘전략이 훌륭해.’

하나하나 정신력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일 텐데, 이토록 세밀하게 조종하는 것은 대단했다.

하지만.

촤악!

아겔의 힘을 아직 제대로 가늠하진 못했는지, 정면에 서 있던 덩치 시체의 머리에 손톱이 박혔다.

잠시 통제력을 잃고 덩치가 휘청이는 사이, 나머지 시체들이 달려들었다.

아겔은 하나하나 시체의 팔다리를 잘라 버렸다.

먼저 달려든 놈의 팔을 잡고 찢었으며, 두 번째 놈은 허벅지에 손톱을 박아 넣어 아래로 그어 버려 다리를 찢었다.

나머지 두 시체의 공격을 가드를 올려 막아 낸 아겔은 밀리는 자세에서 몸에 회전을 걸어, 놈들의 어깨와 팔을 분리해 버렸다.

촤악-!

“키야, 싸우는 거 예술이네. 그거 자르기 쉽지 않을 텐데, 네 손톱이 진짜 단단하긴 한가 봐.”

머리가 없는 덩치가 일어서기 전에 아겔은 재빨리 팔다리를 끊어 냈다.

슈우우우……!

그와 동시에 새로운 강화 시체들이 또 일어섰다.

이번엔 아까보다 많은 10기.

윌리엄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 다시. 큭큭큭.”

* * *

쾅ㅡㅡㅡ!

시체 골렘의 주먹과 안톤의 전투 망치가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거의 반파된 주먹이었지만, 안톤의 타오르는 망치를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꾸륵꾸륵.

부서진 골렘의 주먹은 다시 다른 시체가 메우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이 과정이 반복되었다.

안톤의 하나 남은 오른눈이 꿈틀거렸다.

‘어르신을 이토록 오랫동안 홀로 두었다니…….’

개방이 끝날 때까지 아겔을 지키기로 약속한 안톤이었다.

알고 있다.

내기 따위 자신이 억지를 부린 것이다.

그저 어르신 곁에 있고 싶어서.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을 지키고 싶어서.

몇 마디라도 더 해 보고 싶어서.

‘어르신만큼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자는 없다.’

노인을 통해 안톤은 다시 삶을 찾았고, 심지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가 베푼 은혜가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

뿌득.

전투 망치 자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죽음.

그건 모든 전사가 두려워하는 하나의 숙적이자, 넘어야 할 산이 아닐까.

어떤 미친놈들은 싸우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 싸우다 죽으면 천국과 같은 곳을 간다고 하던데.

안톤은 성좌를 믿지 않았다.

아니, 성좌를 믿는 자들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미신적인 것을 믿을 만큼 안톤의 심령은 물렁하지 않았다.

쿠구구구……!

거대한 시체 골렘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톤은 전투 망치를 쥔 오른손을 놓고 주먹을 콱 쥐었다.

텅텅텅텅텅……!

순식간에 안톤의 몸을 가릴 만한 철 방패가 그의 오른팔에 전개되었고, 주먹과 방패가 충돌했다.

콰앙ㅡㅡㅡ! 촤아아아아악…….

주먹에 맞아 몇십 미터나 주르륵 밀려난 안톤.

그는 오른팔에 우그러진 방패를 벗어 바닥에 버렸다.

텅.

‘이대론 안 되겠군.’

안톤은 입에서 핏물을 퉤 뱉고 시체 골렘을 노려보았다.

한 방으로 잡기가 어렵다.

그러나 해내야만 한다.

주변에는 시체가 아직도 한가득 있었기에 시체 골렘은 언제고 몸을 회복하고 말 것이다.

놈을 넘지 못한다면, 아겔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다.

‘어르신을 위해.’

뿌드드드드득…….

전신이 과격하게 부풀기 시작하는 곰 수인.

근육이 한계치까지 힘을 발하는 상태에 도달했다.

안톤은 고개를 들어 시체 골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망막에는 시체 골렘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야는 복도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어둠.

복도보다 짙은 어둠이 가득한 곳.

내면으로 들어간 안톤이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복도의 안톤도 걷기 시작했다.

‘나아간다.’

두근…….

심장이 외쳤다.

더 이상 가지 말라고.

돌아올 수 없을지 모른다고, 공포의 감정을 표현했다.

하나 무시했다.

한 발자국 앞이 낭떠러지일지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는 공포를 견뎌 내었다.

그는 이전에 걷지 못했던 어둠을 나아가고 있었다.

쿵쿵쿵쿵쿵……!

발걸음 소리가 과격해지기 시작했고, 안톤의 속도가 점점 올라갔다.

내면의 어둠 속에서도, 복도에서도.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멈춰 즉사할 만한 공포가 엄습했지만, 안톤은 주둥이로 자신의 팔을 깨물며 버텼다.

쾅--!

안톤이 위로 도약했다.

20여 미터나 되는 시체 골렘의 키를 넘어서 도약한 안톤이 전투 망치를 크게 뒤로 젖혔다.

“비켜라…….”

-구오오오오……!

시체 골렘이 거대한 주먹을 들어 안톤을 향해 맹렬히 뻗었다.

안톤은 그 주먹을 향해 전투 망치를 내려찍었다.

“어르신께서 기다리신다.”

ㅡㅡㅡㅡ!!

폭음이 시작된 곳에선 전투 망치가 시체 골렘의 팔을 터뜨리고, 괴물의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그대로 터져 나갔다.

.

.

.

“큭큭, 아 근데 진짜 잘 싸우네.”

윌리엄은 시체 하나에 빙의해 시체들을 갈라 버리고 있는 짐승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가 직접 강화한 시체는 거의 80기.

장난스럽게 2배씩 늘려 왔더니, 벌써 이 정도까지 온 것이다.

“아, 100기 이상 직접 다루는 건 힘든데. 여기서 그만하면 안 될까?”

“크르르르…….”

라이칸스로프도 굉장히 지친 모습이었다.

숨을 거듭 반복해서 내쉬는 놈은 지쳤음에도 강화 시체를 하나씩 철저하게 부쉈다.

윌리엄은 놈이 탐났다.

‘저 정도 수인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리가 없어.’

태초부터 수인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그 기원이 미지에 감싸인 종족.

인간이 인공 생명체를 만들려다가 실패한 것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그래도 인간의 탐욕과 호기심이라면 그런 일이 아예 없다고 말하진 못할 것이다.

당장 흑마법사들도 무수히 많은 종류의 키메라를 만들고 있으니.

윌리엄이 보기에 저 늑대 수인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저 나이대에 내가 직접 강화한 시체 수십 구를 단신으로 상대한다? 말이 안 되지.’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작이 분명하다.

그게 누군지 몰라도 윌리엄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저걸 이제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광신도가 오기 전에 빨리 끝내야겠다.’

농락하는 것도 이제 끝이다.

눈앞의 늑대는 무던히 윌리엄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놈은 자신을 찾을 수가 없다.

그야 윌리엄은 본체가 없었으니까.

혼령으로서 존재하는 윌리엄은 흑마법으로 자신의 혼을 보존하고, 시체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흑마법사였다.

특수한 영혼 흑마법을 통해 살아온 윌리엄은 그래서 어떤 면에선 불사에 가까웠다.

영혼 스스로 자생할 수 없다는 페널티가 있지만, 이리저리 시체가 썩어 쓸모없어질 때마다 옮겨 다니기만 한다면 문제없다.

지금도 몇 번이나 아겔에게 공격당한 시체를 벗어나 다른 시체에 빙의했던 윌리엄이었다.

‘사돌이 돕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테지.’

육체 흑마법을 다루던 자신과 달리 사돌은 사령 흑마법에 정통했다.

그는 자신보다 급이 낮았지만,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흑마법을 개발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쓸모 있는 놈이 괜히 거물을 건드려 뒤져 버렸다는 점은 안타까웠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었다.

“크르르르…….”

라이칸스로프의 움직임이 드디어 멈췄다.

80기의 강화 시체를 전부 박살 낸 것이다.

짝짝짝.

윌리엄이 박수하며 그의 앞으로 시체를 움직여 나갔다.

“크으, 대단해. 내 강화 시체를 이렇게나 많이 부수다니.”

“…….”

“역시 넌 내 실험체가 될 자격이 있어.”

슈확-!

그가 손짓하자 더 많은 수의 강화 시체들이 일어섰다.

“하지만 이제 포기해. 나도 기다리다 지치겠다.”

늑대 수인은 기세를 조금 가라앉혔다.

그의 말이 통한 것일까.

짐승의 눈은 윌리엄을 직시했다.

“크르르르…… 자넨 참 신기하군.”

“응? 나? 내가 좀 대단하지. 큭큭.”

윌리엄은 자신을 가리키며 으스대었다.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대단한 건 모르겠고, 신기하다네.”

“뭐?”

“본체가 없고, 혼령으로만 존재하는 흑마법은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구먼.”

“……?!”

“꽤 많은 페널티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면으로는 불사에 가까운 삶을 누릴 수도 있겠어.”

윌리엄의 눈이 커졌다.

그가 놀랄 틈도 없이, 아겔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촤악……!

당황해서 피하지 못해 시체의 목이 잘려 나갔다.

‘뭐, 뭐야. 어떻게 알았지?’

윌리엄은 저놈이 이런 것까지 알 줄은 몰라 살짝 당황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놈이 자신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대로고, 혼을 다른 시체로 옮기면 되니까.

그런데 상대는 그것마저 눈치챘다는 듯이 발을 멈추지 않았다.

“혼령만 존재한다면 확실히 상대하기가 까다롭지.”

그는 자신의 혼을 마치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듯이 손톱을 휘둘렀다.

분명 물리적인 공격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한순간 섬찟함을 느낀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혼백 상태로 그의 손톱을 피해 냈다.

슈우우우…….

다른 시체에 들어간 윌리엄의 인상이 오싹함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안 거야?”

“나는 마법사만큼 지식이 많진 않지만, 보고 들은 게 적진 않다네.”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내 혼백을 어떻게 본 거냐고……!”

그제야 윌리엄의 시선이 짐승의 목으로 옮겨졌다.

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죄수 번호.

지금 이 순간 그 숫자가 정확히 보였다.

‘오, 오십일……?!’

아겔의 죄수 번호 51번.

윌리엄은 아겔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6급 흑마법사인 그가 고독에 살아가는 맹인 죄수를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다만, 앞에 있는 짐승의 죄수 번호가 아겔의 번호라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진짜 아겔인가……? 뭔가 잘못되었어. 당장 도망쳐서 제사장님께 알려야…….’

악마의 종은 아겔을 쫓는다.

그런데 이런 것까진 알고 있지 못할 것이다.

아겔의 죄수 번호가 다른 곳에 쓰여 있다는 것까진 말이다.

그게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윌리엄은 재빨리 다리를 놀렸다.

“어딜 도망가려는 겐가.”

“크윽……!”

시체를 강화해 도망치려 했지만, 아겔보다 빠를 순 없었다.

게다가.

쿵.

언제 왔는지 안톤이 윌리엄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곰 수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붉은 눈은 어둠 속에서 이글이글 빛나고 있었다.

“감히 어르신을 건드리다니…….”

“젠장…….”

우웅……!

윌리엄의 손짓에 수백에 달하는 시체가 일어섰다.

그냥 도망치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 해보자. 해보자고, 이 짐승 새끼들아.”

시체들과 짐승 두 마리가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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