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46)화 (47/186)

46화 무지의 대가 (3)

윌리엄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시체를 일으켰다.

‘괘, 괜찮아. 아직 시체는 많아.’

연합을 습격해 수만 구의 시체를 만들어 냈다.

생명력만 충분하다면 아직 쓸 만한 시체는 넘쳤다.

문제는 연합원을 죽여서 얻은 이 생명력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가져다 바쳐야 할 제물이라는 점이었다.

‘내 생명력을 깎아서 흑마법을 쓸 순 없다.’

흑마법사들은 공통적으로 남의 생명력을 빌려 흑마법을 썼다.

그야 일찍 죽고 싶은 자는 없으니까.

애초에 자신을 언데드로 만드는 리치가 되지 않는 이상, 흑마법사는 타인의 생명력을 구해야만 한다.

아직 예비 생명력을 쓰고 있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전부 바닥날 판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콰앙-!

안톤의 전투 망치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강화 시체 수십 구가 박살 났다.

촤악!

언제 지쳤었냐는 듯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시간에 체력을 회복한 늑대 수인은 다시 시체들을 휩쓸고 있었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윌리엄은 참담한 당혹감을 느꼈다.

당장 도망치고 싶었으나, 시체에서 혼백을 옮길 때마다 어떻게 아는지 늑대 수인이 귀신같이 따라붙었다.

늑대 수인이 자리를 옮기면 안톤도 천천히 시체를 박살 내며 따라왔다.

돌아갈 시체까지 전부 박살 나면, 윌리엄은 이곳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아, 안 돼……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빙의할 시체가 없다면 그는 죽은 목숨이다.

자신의 혼백은 시체에서 나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홀로 존재할 수 없게 되고, 소멸하게 될 테니까.

그는 이를 꽉 깨물고 품에서 ‘구슬’을 꺼냈다.

‘쓰자…… 내가 중요하지, 생명력이 중요해?’

곧 있을 악마숭배자의 대의를 위해선 수없이 많은 생명력이 필요하지만, 그게 대수겠는가.

이걸 모으느라 들인 수고를 생각하면 아깝긴 해도, 생명력이야 다음에 다시 모으면 그만이었다.

우웅…….

윌리엄의 몸 아래서부터 마력이 들끓어 올랐다.

지금 당장 저 두 짐승을 막을 방법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놈들을 막기 위해선 시체 골렘보다 더 강력한 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시체의 숫자를 늘리고, 몸을 숨기는 데 일가견이 있지만, 윌리엄은 시체 골렘보다 강력한 개체를 소환하진 못했다.

그래도 일전에 사돌에게서 영감을 얻은 흑마법이 하나 있긴 했다.

윌리엄은 도망치기를 멈추고, 남은 시체 더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콥스 컴프레스 컨버전스(Corpse Compress Convergence)……!”

아겔과 안톤을 상대하는 놈들을 제외한 나머지 시체 더미가 한군데로 모이기 시작했다.

모인 시체들은 시체 골렘이 만들어졌던 이전과 다르게 기괴하게 압축되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드득……!

수백 구의 시체가 하나의 인간 형태로 압축되는 역겨운 모습.

윌리엄은 구슬에서 생명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흑마법을 멈추지 않았다.

윌리엄은 곧바로 다음 흑마법 술식을 준비했다.

당장 준비해야 저 짐승들이 시체들을 전부 박살 내기 전에 흑마법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이번에야말로 사돌의 지식을 빌린 흑마법……!’

복잡한 흑마법 술식이 윌리엄의 눈앞에서 그려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설계된 회로가 구성되고, 그 회로를 통해 생명력이 흘러 들어갔다.

구슬에 담긴 생명력이 술식을 완성시켰다.

윌리엄이 시동어를 외쳤다.

“듀엔디 디센트(Duende Descent)!”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원혼을 불러 시체에 강림시키는 흑마법.

누가 올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강림시키기만 한다면 시체는 이전보다 월등하게 강력해진다.

이걸로 시간을 벌어 빠져나가야만 한다.

급조한 흑마법이었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우웅…….

윌리엄의 귓가엔 셀 수 없이 많은 혼령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

---!

---!

자신을 불러 달라고.

지상에 강림하겠다고.

그러나 윌리엄은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에도 굴하지 않고 강력한 원혼을 찾아 헤맸다.

‘평범한 걸로는 저놈들을 막을 수가 없어……!’

육체는 준비했으나, 강림할 영혼이 약해 빠진 것이라면 소용없다.

원혼, 그것도 강력한 감정을 지닌 놈이 필요했다.

죽어서까지 끊어 낼 수 없는 지독한 야망과 감정에 사로잡힌 영혼.

증오심이나 복수심, 슬픔이나 절망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원혼이야말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을…….

…….

‘어?’

순간, 원혼들의 외침이 사라졌다.

대신 하나의 원혼이 보였다.

“아……?”

덜컥 겁이 났다.

감정의 깊이가 보이지 않았다.

원혼이 가진 원망의 늪의 끝은 느낄 수 없었다.

[----…….]

원혼이 입을 벌려 뭐라고 의사를 전달했다.

‘뭐……?’

윌리엄은 그가 자신이 만들어 낸 시체에 강림하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흑마법의 술자인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떻게 흑마법 술식을 무시하는 거야……!’

원혼의 힘이 막대한지, 구슬에 담긴 생명력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명력까지 빨아들이고 있었다.

‘미친…… 위험할 거란 건 알고 있었는데.’

죽은 자의 세계에서 원혼을 불러오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가능하더라도 미지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명력을 거의 다 내준 윌리엄은 탈력감을 느끼며 엎드렸다.

“끄으으으…….”

윌리엄이 만들어 낸 시체에서 점점 붉은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원혼이 강림한 것이다.

‘돼, 됐다……?!’

시체에 강림한 원혼이 고개를 들었다.

우드득.

기괴한 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몸을 푸는 원혼.

이게 자신이 몸이 맞는지 확인해 보는 모양이었다.

‘으으…… 어, 어마어마한 사기(死氣)야…….’

붉은 기운을 내뿜는 사령(死靈)의 기세는 위압적이었다.

윌리엄은 그 기세에 눌려 한 걸음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걸음 소리를 내는 순간, 저 시체에 강림한 원혼이 자신을 찢어발길 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다행히 시체에 빙의한 원혼은 자신을 불러 준 자에겐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흡…….”

남은 시체를 전부 박살 낸 안톤이 먼저 위험을 감지하고 붉은 시체에게 달려들었다.

전투 망치가 공기를 찢어발기고 시체의 머리로 떨어졌다.

콰앙-!

한순간 복도가 흔들리지 않았나 착각할 만한 위력.

시체의 머리를 정확하게 찍었다.

그러나.

“……!”

안톤의 눈이 커졌다.

전투 망치는 시체의 머리를 부수지 못했다.

오히려 머리에 얹힌 상태로 있었다.

붉은 사령은 천천히 손을 들어 망치를 밀어냈다.

“끄흡……!”

안톤은 힘으로 도끼를 끌어 내리려 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날 공격한 건가?]

심령을 울리는 듯한 혼백의 목소리.

시체의 뻥 뚫린 공허한 눈에 형형한 빛이 차올랐다.

붉은 사령이 움직여 안톤의 복부에 주먹을 내질렀다.

뻐억-! 쿠당탕……!

육중한 몸무게의 안톤이 한참을 땅을 구를 정도의 위력.

그 모습을 보고 윌리엄이 쾌재를 불렀다.

‘아, 안톤까지 저 정도로 만들 원혼이라고?’

도대체 어떤 원혼이길래.

윌리엄은 시체 더미 속에 누워 붉은 사령을 바라보았다.

사령은 눈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득. 우드득.

한쪽에서 뼈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귀찮은 걸 불렀군.”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겔이었다.

윌리엄이 주먹을 쥐었다.

‘이겼다. 수인화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거야.’

하긴, 자신의 강화 시체를 수백 구나 단신으로 이겨 낸 놈이다.

지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

붉은 사령이 소년의 모습을 한 아겔을 발견했다.

사령은 아겔을 발견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뛰었다.

쿵쿵쿵쿵쿵……!

빠른 속도로 소년을 향해 달리는 붉은 사령.

소년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윌리엄은 손에 땀을 쥐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놈을 죽여. 후환은 없애는 게 나아.’

온전한 실험체를 얻긴 힘들겠지만, 갈기갈기 찢긴 것이라도 나중에 수거할 수 있으리라.

달려가던 사령이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저게 뭐 하는 자세인지 몰라도, 저 속도에 그대로 내려치기만 해도 소년은 육편 조각이 되리라.

“죽여!”

그렇게 윌리엄의 마음이 안심으로 잠식되어 갔지만.

상황은 그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어……?”

달려가던 시체가 멈췄다.

소년의 발 앞에서.

쿵.

그리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쿵.

다른 무릎도.

이내 허리를 숙이고 소년 앞에서 절을 올리는 시체.

윌리엄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뭐,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붉은 사령이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정말 절을 올리는 자세였기에.

그 누구도 아니고 다름 아닌 꼬마에게 말이다.

윌리엄은 숨 쉬는 것도 까먹고 입을 막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 *

아겔은 자신의 앞에서 절을 올리는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보였다.

붉은 사령이 시체에 강제로 들어와 있었다.

죽은 자들의 혼돈 속에나 있어야 할 원혼이 말이다.

사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과 혼돈을 걷는 자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

심령을 울리는 공포가 담긴 목소리였으나, 소년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듯했다.

시체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때가 이르기도 전에 괴로움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겔의 눈에 시체의 몸이 들어왔다.

몸이 떨리고 있다.

혼백의 감정에 동조한 육신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조용히 있던 소년이 입을 열어 메마른 목소리를 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 이름은 먼지입니다. 세상에 이루 셀 수 없이 많이 있기에…….]

“먼지라.”

아겔은 입가에 실소를 머금었다.

죽은 영혼에 이름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본인이 원하는 것이 그의 이름이 될 것이다.

[부디 날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하여 주소서.]

“그러할 권리가 나에겐 없다.”

[때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하지 않는다.”

아겔의 말에 사령은 다시 한번 크게 몸을 떨었다.

원하는 확답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사령은 몸을 일으키긴커녕, 오히려 더 깊게 숙였다.

[구별된 이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부디 나로 당신 앞에서 물러나게 하소서. 허락하소서. 내가 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시체의 간구함에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시체가 그대로 쓰러졌고.

사아아아…….

원혼이 아겔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겔은 사라지는 원혼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안톤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손으로 배를 감싸고.

“어, 어르신. 방금 그건……?”

“별거 아니다. 몸은 괜찮으냐.”

자신을 주먹질 한 방에 쓰러뜨린 시체.

평범한 것이 아님을 안톤은 알고 있음에도, 아겔의 말에 더 이상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예. 갈비가 부러졌지만, 곧 붙을 겁니다.”

“그럼 되었다.”

아겔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이곳에 남은 시체는 전부 못 쓸 정도로 훼손이 되었다.

안톤과 아겔이 박살 냈기에.

오직 하나만 제외하고서 말이다.

슥.

소년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하나 남은 시체에게 걸어갔다.

시체는 아겔이 다가오자, 마치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아겔은 여린 손을 뻗어 시체의 목을 콱 움켜쥐었다.

“큭……! 너, 너 뭐야……? 당신 누구야……! 도대체 어떻게…… 헉…….”

소년의 눈동자가 윌리엄의 심령 가장 깊은 곳을 관통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은가.”

윌리엄은 벌벌 떠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켜보게. 죽은 자들이 있는 곳에서.”

“히, 히익……!”

“다만, 좀 오래 걸릴 걸세. 그곳에서의 시간은 영원과 같을 테니.”

“아, 안 돼…… 자, 잠깐만! 날 살려 주면……!”

아겔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부디 죽어서도 고통받게나.”

소년의 여린 손이 시체의 머리로 가더니 시체에 붙어 있던 혼백을 확 잡아 뜯어냈다.

.

.

.

시체가 한가득 남은 복도.

아겔은 두어 시간 정도 이곳에 남아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쓸 만하구먼.’

소년의 몸은 5급 죄수를 훌쩍 뛰어넘었다.

아직 6급을 넘보진 못할 테지만, 그래도 가공할 만한 성장 속도였다.

물론 이것도 아겔이 라이칸스로프의 본능을 강제로 각성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로가 어둠 속에서 깨어난다고 해도 이만큼 바로 강해지진 못한다.

‘그래도 꽤 성장했겠지. 왕과 거래하기엔 충분하겠구먼.’

아겔이 소년의 몸을 차지한 것은 그저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세로에겐 미안하지만, 어른의 사정이란 건 존재하는 법이었다.

슥.

한동안 앉아서 몸을 회복하던 아겔은 근처 시체 더미를 뒤져 구슬을 챙겼다.

‘이미 생명력을 다 써 버렸군.’

생기가 담긴 구슬이었지만, 원혼을 부르느라 다 사용한 것이다.

한 명의 죽은 자를 소환하겠다고, 수만 명의 생명을 갈아 넣은 것.

비효율의 극치였다.

하긴, 이 우주가 그런 비효율 정도는 감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풍요롭긴 했다.

물론 그 풍요도 소수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안톤이 다가왔다.

“저는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어르신.”

붉은 사령에게 맞고 갈비뼈가 전부 부러졌던 안톤은 2시간 만에 말끔해진 모습이었다.

회복력이 남다른 것도 그의 강함의 원천이었다.

“볼일이 더 남으셨습니까?”

“그건 이제 알아봐야겠구나.”

“그럼…… 제가 함께 있어도 괜찮으십니까?”

아겔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왜 안 되겠느냐.”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갔다.

안톤은 기뻐하는 기색을 무던히 감추며 그 뒤를 따랐다.

그 감정은 온전히 아겔에게 전달되고 있긴 했지만.

“…….”

한동안 걸음을 옮기던 아겔은 한쪽 마법 횃불 아래에 가서 섰다.

[중급 복도 9086]

그는 팻말을 들추어 그 안을 손으로 쓸었다.

늙은 손이 아니라 낯설었지만, 음각 문자를 읽는 데 문제는 없었다.

[경매. 호출.]

문자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독방형이 끝나려면 일주일쯤 남았구먼.’

아겔은 시간을 가늠해 보고 안톤에게 말했다.

“투기장에 가야겠구나.”

“앞장서겠습니다.”

두 사람은 피 냄새로 얼룩진 복도를 두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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