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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50)화 (51/186)

50화 짧은 접견 (2)

라이칸스로프의 왕, 탈라할은 잠시 멍한 얼굴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불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라이칸스로프가 완전체로 변할 수 있는 나이는 대체로 30~40살이 되는 때.

그것도 수차례 각성 의식을 거쳐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스스로 원할 때 수인화를 통제할 수 있는 나이는 50대가 되어서야 가능할 터인데.

그의 아들은 이제 10살에 다가가는 나이였다.

그는 자신이 환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님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넌 뭐지?”

‘어떻게’라는 의문보단 아들의 몸을 차지한 저 영혼에 대한 의문이 먼저 떠올랐다.

완벽한 수인화.

각종 실험이나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은 순수한 라이칸스로프의 종족성이 드러난 수인화였다.

그걸 가능케 한 건 바로 아겔이었다.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자네 아들은 무사하다 못해, 원래라면 이룰 수 없는 성취를 이뤘다는 게지.”

“…….”

아겔은 탈라할의 의문에 답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과일 하나를 주워 입에 쏙 넣었다.

아삭.

“나이도 있는 친구가 먹을 것 귀한 줄 모르면 쓰나.”

“…….”

아겔은 주둥이를 움직이며 엉망진창이 된 소파에 가서 앉았다.

조용히 남자를 바라보며 앉으라는 신호를 주며.

남자는 잠시 아겔을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 거지?”

“어렵진 않았네.”

아겔은 세로가 내면의 어둠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왔고, 그 밑에 자리한 ‘본능’을 조금 손봐 주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소년의 육체는 라이칸스로프의 육신으로 성장하기 충분했다.

“영업 비밀이니 묻지 말게.”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탈라할은 이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크크크큭…… 크하하하하핫……!”

남자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와중에도 베믈리오와 아겔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탈라할의 눈이 짐승의 것으로 뒤바뀌어 번뜩였다.

“난 말장난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화악-!

장신의 남자가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베믈리오도 손가락을 튕겼다.

시간이 억겁처럼 느려지는 와중에 아겔은 그의 주먹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쯧. 제 아들놈 키워 줬는데도 감사하진 못할망정.’

생각하는 와중에도 주먹은 빠르게 아겔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분명 현실에선 눈 깜빡이는 순간보다 빠른 주먹이겠지만, 1초도 수백 개로 가르는 강자들의 싸움에선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그가 전력을 낸 주먹은 아니란 뜻이었다.

촤르르륵……!

베믈리오가 소환한 종이들이 탈라할의 주먹을 가로막았다.

겨우 종이 따위로 막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베믈리오가 소환하는 종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종이는 주먹에 닿아 찢어지긴 했어도, 탈라할의 주먹 속도를 확실히 늦추었다.

아겔은 별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고.

애초에 이 남자는 적이 아니다.

‘라이칸스로프 왕의 내면은 어떨까.’

아겔이 그의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 * *

어두운 공간.

라이칸스로프의 왕, 탈라할은 사방이 어둠인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인간의 형태로 제 아들에게 주먹을 뻗고 있었는데.

그는 지금 완벽한 라이칸스로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본 모습이 까발려진 것처럼.

“큭. 재미난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

그는 이곳이 자신의 내면임을 곧바로 깨달았다.

스스로 내면에 이렇게 깊게 들어오는 방법 따위 모르지만, 수인족의 정점에 서면서 늘어간 건 눈치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바닥은 그의 기억의 색채들이 화려하게 채우고 있었다.

‘저기에 있군.’

자신을 내면으로 끌어들인 존재가 바로 저곳에 있었다.

탈라할은 앞쪽이라고 느껴지는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간 걷다 보니, 그는 한쪽 기억에 걸터앉아 있는 노인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웬 낚싯대 하나를 들고 밝은 기억에 걸터앉아, 저 끝이 없는 어둠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왔는가.”

“…….”

탈라할은 노인이 자신의 아들의 몸을 차지한 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노인의 몸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슥.

마치 유령처럼 허공을 지나갈 뿐이었다.

“네가 내 아들을 맡아 준 거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노인을 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탈라할은 그 옆에 걸터앉았다.

여기선 현실과 다르게 힘의 척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 같았다.

어차피 싸움조차 성립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성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탈라할이었다.

그는 한동안 자신의 내면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굉장한 능력이군. 살면서 이렇게 강력한 힘은 본 적이 없어.”

“나의 힘이 아니라네. 그저 빌려 쓰는 재주일 뿐이지.”

“그런가.”

모호한 대답에도 탈라할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는 수백 년을 살아온 자신도 모르는 신비가 가득한 곳이니, 어떤 대답을 해도 거짓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만한 공포는 정말 처음이야.”

자신에게 공포감을 선사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우주 전역을 뒤지더라도 100을 넘지 못하리라.

그런데 그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저 여태껏 쌓여 온 감정과 기억의 힘으로 견뎌 낼 수 있을 뿐.

탈라할은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곳이 정신세계임에도 눈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이게 본체의 모습인가?”

“그렇다네. 여기선 본 모습이 그대로 나오지. 자네의 본 모습도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래.”

탈라할은 10m가 넘는 거대한 늑대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이것도 최대한 축소한 크기였다.

“다시 한번 묻겠다. 넌 누구지?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고독에 갇혀 있는 거냐.”

아겔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탈라할은 그가 고독의 죄수임을 알고 있었다.

목에 드러난 죄수 번호는 육체에만 새겨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누군지 알면. 그땐 뭐가 달라지나?”

“흠. 그거야 모르지. 우리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지. 난 애매한 관계를 싫어한다.”

라이칸스로프라는 멸망해 가는 종족을 이끄는 탈라할은 누군가를 만나도 관계는 확실히 해야 했다.

적을 친구로 대할 수 없고, 친구를 적으로 대할 수 없으니.

왕의 사소한 결정 하나가 종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

“늑대를 사냥하는 사냥꾼은 누구인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탈라할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왜 묻는 거지?”

“그게 나와 자네의 관계를 정의할 수도 있으니까.”

아겔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탈라할은 이내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성좌 교단이다.”

“그렇군.”

아겔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지.”

아겔은 그렇게 말하며 낚싯대를 끌어 올렸다.

낚싯줄에는 자그마한 빛 하나가 달려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탈라할은 알고 있었다.

“좋은 격언이다. 왠지 힘이 나는 말이군. 하지만 네가 누군지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

아겔은 잠시 어둠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는가.

다만, 느낀 바를 말할 뿐이었다.

“나는 복수해야만 하네.”

탈라할은 잠시 어둠이 깊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된다. 네 뜻을 알 것 같으니까.”

“고맙구먼. 별로 꺼내고 싶은 기억은 아니라서.”

둘은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탈라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 거지?”

똑같은 질문.

라이칸스로프의 왕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에 그는 거듭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아들은 10살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완벽하게 수인화할 수 있다니…….”

“자네 아들은 용감하더군.”

아겔은 세로가 내면의 어둠을 걸어온 과정을 알고 있었다.

어둠을 건너오는 과정은 아무나 견뎌 낼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겨우 10살 남짓한 어린아이였지만, 소년이 걸어온 길은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아들이 여길 걸어갔단 말이지?”

“금방 이해하는구먼.”

탈라할은 내면의 어둠을 걷는 과정이 어떠한지 단숨에 알아챘다.

자신의 내면에 들어와 있으니까.

10살도 안 되는 아들이 이 공포를 이겨 냈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일 뿐이었다.

탈라할이 말했다.

“누구나 가능한 일은 아니겠군.”

설사 다른 라이칸스로프라도 세로가 걸었던 길은 쉽게 걸을 순 없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 안쪽으로 걸어가는 건 그만큼 두려운 일이니까.

어둠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기에.

아겔이 말했다.

“그런 의미로 자네 아들은 이미 충분히 강한 전사라네.”

“그런가…….”

라이칸스로프 종족은 최소 40살은 되어야 한 명의 전사로 인정받는다.

아겔이 질문했다.

“내 하나만 물어보지. 자넨 아들이 필요한 것인가, 전사가 필요한 것인가.”

“…….”

노인의 질문에 탈라할은 입을 꾹 다물었다.

부성애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그가 필요한 건 오직 ‘사냥꾼’에 맞설 전사.

순혈 전사 한 명이 아까울 시기였다.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탈라할조차 낯설었다.

“왕으로서 말하자면 난 전사를 원한다.”

종족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전사를 원하는 게 맞다.

그런데 노인의 물음은 다른 걸 원하는 것 같았다.

“내게 아버지의 역할이라도 바라는 건가.”

“마음 한구석으론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구먼. 안 그럼 이 세상이 너무 팍팍하니 말일세.”

아겔은 낚싯대를 한쪽에 내려놓았다.

“세로의 내면을 가득 채운 게 뭔 줄 아는가.”

“……모른다.”

알 수 있을 리 없다.

정녕 아들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있을 리가.

누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아겔이 답했다.

“꼬마 주제에 당돌하더군. 희망을 품고 있었다네.”

“희망…….”

“그래. 언젠간 아비의 품으로 돌아갈 그 날을.”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에도 곁에 앉아 있는 탈라할을 올려다보아야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아들을 원치 않는다면, 세로를 내어 주지 않겠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아들을…….”

탈라할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말문이 막혔다.

아겔은 그 모습을 보고 등을 돌렸다.

“고민해 보게. 아들을 원하고 있는지, 전사를 원하고 있는지.”

“…….”

왕의 내면은 지독한 침묵에 휩싸였다.

* * *

베믈리오는 짧은 찰나,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짐승의 왕이 내지른 주먹은 아겔의 얼굴 한 치도 안 되는 거리에서 멈추었다.

수인족의 정점에 이른 남자.

주먹 하나로 행성을 부술 수도 있는 힘을 갖추었다.

그런 상황에서 베믈리오조차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우려가 현실이 되진 않았다.

탈라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주먹을 내렸다.

죽일 듯이 주먹을 내지르다가, 멈추는 모습을 보고 베믈리오는 속으로 안도했다.

‘해낸 건가.’

짐승의 왕은 주먹을 내리고 잠시 소년을 바라보다가, 응접실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40일 뒤에 찾아오겠다.”

계약한 기간에 찾아오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가는 고객.

그가 나간 응접실은 고요함에 물들었다.

아겔은 어느새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긴장 풀게. 내 잘 이야기해 두었으니.”

사정을 이해한 베믈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당연히 공짜는 아니라네. 나도 애를 먹었으니.”

아겔의 말에 베믈리오는 미세한 미소를 띠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그의 앞에 자그마한 플라스틱 케이스 하나가 나타났다.

“값은 제대로 치르겠다.”

베믈리오는 케이스를 열었다.

케이스 안에는 플라스틱병 3개가 들어 있었다.

“흠.”

아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나씩 병을 따서 안에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이것은 ‘거래 대금’이었다.

물건을 확인한 아겔은 플라스틱병을 케이스 제자리에 두었다.

“확실하구먼.”

“물론이다. 이번엔 좀 신경을 썼지.”

무려 라이칸스로프 왕의 혈족을 맡아 주는 일이었다.

거기에 소장이 신경 써서 물건을 구해다 주었다.

오직 아겔을 위해.

베믈리오는 케이스를 닫았다.

그는 이윽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온 톨먼에게 케이스를 넘겼다.

“독방형이 끝나면 전달하도록 하지.”

“알겠네.”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겠단 의사 표현에 베믈리오는 응접실을 나가는 아겔을 바라보았다.

“톨먼, 안내하게.”

“예.”

돌아가는 아겔 뒤로 톨먼이 따라붙었다.

.

.

.

탈라할은 교도관을 따라 움직였다.

고독은 공간 이동 포털이 아니면 출입이 거의 불가능한 행성이었으니, 내부에 준비된 절차를 따라야 했다.

그를 안내하는 교도관이 덜덜 떨며 말했다.

“이, 이쪽입니다.”

그는 교도관의 안내에 따라 포털 위로 올라섰다.

곧 마나가 요동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동을 준비하는 탈라할은 조용히 자신이 만났던 노인을 떠올렸다.

‘아겔라스토스.’

자신의 아들을 지켜 준 노인의 이름.

‘꽤 괜찮은 친구가 될 수 있겠군.’

파아아아앗.

포탈에서 밝은 빛이 솟아올랐고.

수인족의 왕은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

.

.

아겔은 안톤이 있을 지하 대기실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군이 되었으면 좋겠구먼.’

탈라할의 내면을 살펴본 아겔은 그가 괜찮은 사람이란 걸 느꼈다.

비록 이 우주를 지배하는 성좌 교단에 쫓기고 있는 신세일지라도.

잘만하면 괜찮은 동역자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걸음을 걷던 아겔은 한기를 느꼈다.

톨먼도 차가운 공기를 느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찾아온 모양인데.”

“아무래도 내 제자 같구먼.”

아겔이 톨먼을 쳐다보았다.

“돌아가겠는가. 자넨 바쁘지 않나.”

그 말에 톨먼은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밀린 업무가 산더미다.

여기서 돌아가야 어느 정도 처리할 수 있으리라.

“사고 치지만 말아 줘, 영감.”

“노력해 보겠네.”

아겔의 대답을 듣자마자, 톨먼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아겔은 계속해서 한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리스의 한기와 유사한 그 차가운 느낌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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