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회의
타이룽은 흥겨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모집될 회의 때문에 그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완전히 아겔 영감님 이야기가 주를 이루겠구나!”
소장님께서 회의를 소집하신 이유는 다름이 아닐 것이다.
이제 새로 부임하는 교정관.
그리고 급변하고 있는 외부의 영역들.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위 간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다.
고독엔 따로 회의실이 없었다.
그렇기에 소장이 주관하면 소장실에서, 서기관이 주관하면 서기관실에서 회의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고독의 교도소장실 앞에 선 타이룽이 노크했다.
“똑똑~!”
-열려 있으니까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타이룽은 마치 신입 사원처럼 밝은 미소와 목소리를 하며 소장실로 들어갔다.
지금 고독의 고위 간부 중 자신보다 연차가 낮은 자는 없었기에 웃음은 필수였다.
소장실은 각종 자료가 책장에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왠지 모를 어수선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곳곳에 굴러다니는 술병이 이를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소장실 중앙에는 이야기를 나눌만한 낮은 테이블과 긴 소파가 있었다.
소파엔 먼저 모인 교정관들이 앉아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어랏?”
소파엔 타이룽을 제외한 교정관 여섯과 베믈리오가 앉아 있었다.
타이룽은 베믈리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질문했다.
“소장님께선 아직이십니까?”
“그런 셈이지. 앉아라.”
넵! 하고 대답하며 타이룽은 싱글벙글 톨먼 옆에 앉았다.
톨먼은 시끄러운 놈이 옆에 앉아 귀찮다는 얼굴을 했다.
타이룽은 자리에 앉아 해맑은 표정으로 교정관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귀신 담당 소류아.
투기장 담당 톨먼.
순찰 담당 주암.
셰프 오드리.
특수 감방 담당 쉬카.
기관 담당 아마넬.
자신까지 총 일곱의 교정관이 한자리에 전부 모였다.
아직 자리에 위치하지 않은 건 3명이었다.
타이룽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집행관님은 당연히 못 오실 테고, 봉인술사님도 오늘은 아마 불참? 그럼 소장님만 오시면 되겠네.’
생각이 스치자마자, 소장실 문이 열렸다.
문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을 보고, 소파에 앉아 있던 전원이 일어섰다.
“됐다, 앉아라.”
묵직한 음성으로 말하며 뚜벅뚜벅 자신의 상석으로 걸어가는 남자.
잘 단련된 근육과 야성미 넘치는 각진 얼굴을 한 남자는 제복을 대충 입은 모습으로 상석에 앉았다.
“하아…… 시작해.”
깊게 숨을 내쉬는 그의 호흡에서 진득한 술 냄새가 났지만, 누구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근무 중 음주는 권장 사항이니까.
서기관을 제외한 교정관들이 자리에 앉았고, 베믈리오가 입을 열었다.
“그럼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각 교정관은 담당 관련 보고부터 하도록.”
톨먼부터 정해진 순서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소장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교도소장은 피로가 짙은 얼굴로 대충 넘겨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류아의 차례가 돌아왔다.
소년과 같은 모습을 한 소류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차게 보고했다.
“어, 최근에 7급 귀신 한 마리가 망가졌는데, 고쳤어요! 그 뭐냐…… 테이지? 걔가 알려 줬는데, 아마 아겔이랑 만난 모양이에요. 귀신도 망가진다는 걸 아겔 영감이 가르쳐 준 것 같던데요?”
어린애 같은 보고에 교정관들은 침묵을 지켰고, 서기관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는 듯했다.
소장이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그 테이지란 교도관. 죽여야 할 것 같은데요? 아겔 영감에게 너무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서요.”
“…….”
같은 근무자를 죽이자는 말에도 섣부르게 반대하자거나 찬성하자는 말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겔 영감이 엮인 순간부터 가볍게 여길 사항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서기관이 조용히 말했다.
“……근무자 죽이겠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집행관님은…… 읍읍……!”
붉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 오드리가 소류아의 입을 막고 자신의 품에 앉혔다.
소류아는 그녀의 품에 쏙 들어왔다.
“다음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조곤조곤하게 보고를 마친 오드리는 타이룽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차례였다.
“하핫! 제 차례군요! 현재 사육시설은 120%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다음 개방과 소환 때에도 문제없이 돌아가리라 생각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느끼고, 타이룽은 씩 웃었다.
이들이 원하는 내용은 바로 다음 것임을 알기에.
“그럼 1급 죄수 아겔라스토스의 상태를 보고하겠습니다.”
그는 아겔에게 보여 줬던 것처럼 똑같이 테블릿 기기에서 홀로그램을 띄웠다.
조그마한 노인의 형상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현재 아겔라스토스는 ‘알약’의 도움이 없인 살기조차 힘듭니다. 그마저도 이젠 효과가 무색해지고 있으니 대단히 위험합니다. ‘빙의’ 없이 살아간다면 본체의 수명도 2년을 넘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많아도 6개월. 빠르면 3개월 안에 사망할 것입니다.”
“…….”
아겔이 죽을 것이란 말에 적막함이 소장실을 감돌았다.
이곳에 있는 자 중 아겔의 죽음을 바라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들의 주인이 내린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룽이 설명을 이었다.
“그래서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앞으로는 알약의 무상 지급을 고지했습니다.”
“상품 보관 일을 그만두라고도 권했나?”
소장의 물음에 타이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도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는 고개를 들고 교정관 한 명을 지목했다.
“주암.”
이름이 불린 교정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아겔라스토스와 주요 죄수들 관계도를 정리했습니다.”
교정관 주암이 리모컨을 누르자, 테이블 중앙에 홀로그램 문자가 떠올랐다.
적대
악마의 종(6), 주술사(7), 마피아킹(7), 약탈자(7), 괴노야(8)
중립
요괴(8), 죽은 자(8)
우호
까마귀(7), 벌레임금(8)
오직 상급 죄수들로만 이루어진 이명(異名)들.
글을 읽은 소류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쟤는 왜 추가된 거야? 중급 죄수잖아.”
소년의 손가락이 ‘악마의 종’을 가리켰다.
주암은 소류아가 아니라 소장을 바라보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이번 개방 때, 상급 죄수로 급수 변경이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넣었습니다.”
“흠…….”
중급 죄수가 상급 죄수로 급수 변경이 일어나는 일.
만만히 볼일은 아니었다.
봉인이 아니었다면, 8급이 9급으로 성장하는 일이니까.
아겔에게 어떤 영향이 갈지 모른다.
주암이 설명을 이어 갔다.
“아마 이번 개방 때를 잘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아겔라스토스와 가장 마찰이 잦았던지라.”
타이룽은 속으로 신음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근무자들은 고독 내부 생활엔 절대로 터치해선 안 된다.
시찰을 나온 정부나 교단에 들킬 위험이 있었고, 앞으로 새로운 교정관이 올 것이기에 더더욱 덜미가 잡힐 일은 벌일 수 없었다.
투기장 담당 톨먼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아겔 영감을 어디 한 곳에 격리하는 건 어떻습니까. 다른 죄수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면, 몸은 안전할 겁니다. 그와 관련된 자료를 전부 삭제해도 탈은 없을 거고요.”
톨먼의 주장에 서기관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 전대 교정관도 그렇게 주장했지. 하지만 기각했다.”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아겔 영감이 거절했으니까.”
“…….”
“우리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관련 자료를 전부 삭제한다고 해도 탈이 아예 없을 순 없다. 정부와 교단의 시찰 과정 중에 덜미가 잡힐 수도 있으니.”
크흠.
중후한 헛기침 소리에 교정관들이 입을 다물고 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침묵 가운데, 소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겔은 스스로 생존할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 계속. 우린 다른 부분에 신경 쓰면 된다. 그가 대처할 수 없는 걸 막아 주면 될 뿐이다.”
교정관들이 침묵으로 긍정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교정관 부임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지.”
* * *
투기장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아겔은 소년의 몸을 이끌고 독방 입구에 앉아 있었다.
저벅저벅.
복도 한쪽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겔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네요, 영감님.”
“호게스. 나도 반갑구먼.”
노란 머리 간수는 플라스틱 케이스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서기관이 독방형이 끝나면 전해 준다던 보상.
미리 받는 거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알약입니다. 들으신 대로 3개가 들어 있습니다.”
“고맙네.”
호게스는 케이스를 독방 앞에 두고 물러섰다.
“독방형 끝나시는 것 축하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일 보게.”
짧은 용무를 마치고 호게스는 곧바로 돌아갔다.
아겔은 케이스에서 알약 3개를 꺼내 타이룽이 준 조그마한 케이스에 넣었다.
이로써 알약은 4개였다.
아겔은 케이스를 품에 갈무리하고 독방 입구를 바라보았다.
곧 독방형이 끝난다.
일주일 동안 그는 독방 입구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을 거듭하면서.
‘그리 다를 것도 없겠지만…… 아닌가. 모르겠구먼.’
사실 아겔이 고독에서 지내 온 생애를 돌아보면, 도망자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고독엔 상식을 벗어난 강자들이 수두룩하다.
죽지 않기 위해선 그들의 손길이 닿는 곳을 최대한 피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다행히 고독의 ‘길’을 아는 아겔에겐 도망치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다른 것들이 걸렸다.
특히 아겔에게 영혼을 바친 자들.
그들마저 강자들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아겔은 항상 그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만큼 성장하길 바라기도 했고.
그들은 스스로 힘을 갈고 닦을 수도 있지만, 아겔의 빙의를 통해 더욱 강해지곤 했다.
‘빙의를 최대한 포기해 보자.’
앞으로의 방침이었다.
사육사 타이룽의 말대로라면, 빙의로 인해 본신의 육체가 망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몸이 죽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다 허사가 될 것이다.
‘하기야. 내 힘도 아닌 것을 남용했으니, 오히려 대가로 비싼 값은 아니구먼.’
라이칸스로프의 왕, 탈라할에게 말했듯이 빙의는 아겔의 능력이 아니다.
기실 아겔에겐 아무런 능력이 없다.
다만, 눈이 없어도 길을 찾고 걸어갈 수 있는 능력?
적어도 그것은 극한까지 단련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올랐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고독의 강자들이 갖춘 능력과 비교했을 땐, 조금 아쉬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나 아겔은 그런 것을 가지고 낙담하진 않았다.
이 정도로도 살아남는 데 크게 문제가 있진 않으니까.
저벅.
생각에 빠진 아겔에게 안톤이 걸어왔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어르신.”
아겔은 안톤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은 안톤의 감정을 알 수 있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나, 이들은 불가능하다.
겉으로 매일 같이 무덤덤함을 유지하기도 했기에 더더욱 알기 힘들 것이다.
“상품 보관도 이제 마지막인데, 앞으론 뭘 하고 지낼까 고민 중이었단다. 꽤 재미있는 취미였는데 말이지.”
“몸 상할 일 없이 편히 지내시기만 하셔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게 말처럼 쉬워야 말이지.”
아겔의 말에 안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 상할 일.
고독에선 수시로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게 일상이다.
자신이 아겔을 지켜 줄 수 없는 때도 분명히 있다.
고독은 죄수를 고립시키는 곳이니까.
“우선 이번 개방을 넘기는 것부터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개방 때도 제가 반드시 지켜 드리겠습니다. 어디에 떨어지든 영감님을 찾아가겠습니다.”
굳건한 결의의 감정이 담긴 목소리.
안톤의 말에 아겔은 조금 놀랐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꽤 말이 많구나.”
“아, 그것이…….”
흐뭇한 미소가 소년의 입에 걸렸다.
“네가 날 위해 이렇게 길게 말해 주는 건 처음인 것 같구나.”
“예, 음. 그게…… 그렇군요…….”
자신의 감정이 다 들통나는 줄 아는 안톤은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겔이 질문했다.
“정말로 개방이 시작되자마자 날 찾으러 올 게냐?”
“…….”
잠시 머뭇거리던 안톤이 아겔의 눈치를 살폈다.
“그…… 제가 있는 곳에서 꿀만 채집하고 바로 가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어르신도 꿀을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솔직한 대답에 아겔은 속으로 웃었다.
하여간 거짓말이라곤 죽어도 못 하는 안톤이었다.
“그래…….”
짧게 대답한 소년이 갑자기 풀썩 쓰러졌다.
안톤은 화들짝 놀라 소년의 맥을 짚었다.
다행히 살아 있었다.
‘아.’
뭔가를 떠올린 안톤이 세로의 몸을 안은 채, 독방 입구를 바라보았다.
쿵…… 쿠구구구구구…….
커다란 독방 입구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 보이는 좁디좁은 방.
그곳에서 노인은 옷을 털고 일어났다.
눈에는 붕대를 감은 모습 그대로.
“1시간 뒤에 개방 시작이다. 준비하자꾸나.”
안톤은 담담하게 독방에서 걸어 나오는 노인을 보며 한껏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단 하루도 지낼 수 없는 독방에서 그는 2주 동안 있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안톤을 보고, 아겔은 마음의 다짐을 마쳤다.
이 고독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위협하는 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제거하겠다고.
이성은 강렬하게 거부하고 있지만, 감성이 외치고 있었다.
이 다짐은 수동적으로 피해 왔던 지난날의 태도와는 달랐다.
‘싸움을 피하는 것도 질렸구먼.’
그것이 외려 생존에 도움이 될 자세란 걸 깨달았다.
도망자로 사는 건 이제 끝이다.
고독에 존재하는 아겔을 노리는 수많은 강자.
하나하나 격파해 나가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겔은 소년의 품에서 연생초를 꺼내 씹어 먹고 알약 하나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의 주름진 손에 점점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