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세 번째 시스템 : 개방 (2)
개방이 시작된 지, 반나절.
정글의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다.
아겔은 이동하면서 마주치는 모든 흑마법사를 처리했다.
정글 같은 숲이 우거진 곳은 기습의 장점을 살리기 쉬웠다.
아겔의 기습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하기도 했고.
그는 최대한 힘을 낭비하지 않는 선에서 흑마법사들을 제압했다.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을 끌고 와 싸움을 붙여 힘을 빼놓거나, 넝쿨 지옥 같은 특수한 지형으로 유인해 단번에 사로잡기도 했다.
지금은 나무대로 만든 바람총으로 흑마법사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은 토템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퐁…… 픽.
숨을 내뿜자, 독침이 날아가 흑마법사 목뒤에 박혔다.
정글 두꺼비 독이 발린 침에 온몸이 순식간에 마비된 흑마법사는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흑마법사들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퐁퐁퐁퐁퐁퐁퐁퐁퐁.
도무지 알 수 없는 방향에서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독침을 막을 순 없었다.
-컥……!
-적이야!
-젠장, 독침이잖아! 실드를 펴라!
-원주민인가?!
개중엔 머리가 좀 돌아가는지 실드 마법을 전개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나 실드 마법을 전개하자, 주변에서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불이다!
-움직여!
퐁.
불을 피하는 과정에서 실드 마법이 풀려 버린 놈들에게 다시 독침을 박아 주었다.
끝까지 실드 마법을 유지하는 놈들은 직접 가서 실드를 깨고 죽여 주었다.
대단한 성취를 이룬 놈은 없어서 상대하기 어렵지 않았다.
한 차례 사냥을 마친 아겔은 주변에 다른 이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미완성된 토템에도 불을 질렀다.
화륵.
마비된 흑마법사들은 불에 휩쓸려 잿더미가 되도록 내버려 두고 자리를 떴다.
바람총과 독침을 만드는 방법은 이 정글에 사는 원주민들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
이 정글에서는 몬스터보다 위험한 것이 바로 원주민.
그들은 은밀하게 독침을 쏘며 죄수들을 사냥했다.
그뿐만 아니라, 체력도 좋아 장기전에도 강점을 보였고 우악스러운 힘과 착착 들어맞는 협공으로 웬만한 중급 죄수까지 사냥할 실력을 갖추었다.
정글에선 원주민을 조심해야 했다.
이동 준비를 마친 아겔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음?’
저쪽에서 아주 작게 들리는 풀잎 스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아겔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가 서 있던 자리로 독침 몇 개가 지나쳐 갔다.
‘놈들이군.’
아겔은 곧장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며 적들과 거리를 쟀다.
천천히 접근하는 원주민들.
저들은 사냥에 있어서 극도로 신중하게 움직였기에 섣불리 반격하면 큰코다칠 수도 있었다.
-……?
아겔을 사냥하려고 했던 원주민들은 갑자기 기척이 사라지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늙은 녀석이 있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원주민들은 천천히 아겔이 있던 자리를 수색했다.
발자국조차 남지 않았기에 아겔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email protected]%^&*#^$^#^%@!
-#%@#$^$%&*##%?
뭐라고 말을 주고받던 원주민 두 명 중 한 명이 뒤를 돌아보았다.
-……!
뒤쪽에 있던 원주민 동료 몇 명이 쓰러져 있었다.
목에 독침이 박힌 상태로.
동료가 당했다는 사실에 원주민들은 급작스럽게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퐁.
[email protected]#$^!
여지없이 원주민 한 명이 독침에 맞아 쓰러졌다.
남은 원주민 열댓 명은 소리를 내지르며 아겔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email protected]#%@#$^#$%^$%!
-#$%&^*#$$%&!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놈들은 제 동료가 마구 쏘는 독침에 맞아 쓰러지기도 했다.
아겔은 당황하지 않고 한 놈씩 독침을 맞춰서 쓰러뜨렸다.
-켁…….
마지막 한 놈을 쓰러뜨리자, 아겔은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원주민들은 소리와 진동에 민감했지만, 이들도 사람이었다.
몸을 숨기는 데 이골이 난 아겔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약 20여 명의 원주민이 쓰러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아겔은 어깨와 다리를 풀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꽤 나쁘지 않구먼.”
알약의 힘이 남아 있어서 기분도 상쾌할 지경이었다.
원주민 따위를 상대하는 데 힘을 낭비하지 않았단 사실도 마음에 들었다.
몸 상태를 점검한 아겔은 손수 원주민들의 목을 꿰뚫어 죽여 주었다.
이들은 정글 두꺼비 독에 내성이 있어서, 금방 일어설 것이니 제대로 처리해 둬야 탈이 없었다.
‘흠. 꼬마가 잘 버틸 수 있을는지.’
개방 첫날부터 원주민과 만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건 운이 좀 많이 나쁠 때였다.
대체로 사흘이 지나면 만나는 게 보통이었다.
‘잘 해내겠지.’
아겔은 서서히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밤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아겔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대체로 어두운 정글이 더욱 위험했다.
길을 잃고 안전지대를 확보하지 못한 채로 돌아다니면,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야행성 몬스터가 돌아다니기도 했고.
하지만 아겔에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었다.
밤이나 낮이나, 그에게 보이는 건 오직 어둠뿐이었으니까.
* * *
세로는 아겔의 당부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갑자기 정글에 떨어져서 겁이 나긴 했지만, 한 지역을 둘러본 후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주변을 확인했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돌아다니는 맹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조금 무섭네…….’
이 정글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세로는 긴장이 되었다.
미지의 장소라는 점에서 고독의 복도와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수풀이 가린 곳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이 소년의 긴장감을 확 끌어올리기도 했다.
도대체 이 정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세로는 그게 자신에게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후우…….”
소년은 깊게 호흡을 들이쉬었다.
다행히도 세로는 반나절이 지나도록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몬스터라도 지나가다 마주칠 법한데, 소년이 있는 곳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로가 있는 곳이 특별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저 정글의 한 부분일 뿐.
운이 좋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밤에는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지.”
소년은 긴장감을 털어 내기 위해 아겔이 당부한 내용을 혼잣말로 읊조렸다.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빙빙 돌던 중 세로는 드디어 몬스터 하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앗…….”
크르르르르…….
거의 황소 크기만 한 재규어가 몸을 바짝 세운 채로 세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검은 몸체의 맹수는 세로를 잔뜩 경계했다.
자신과 비교해 엄청난 덩치를 가진 맹수의 모습에 세로는 덜컥 겁을 집어먹었지만.
‘아냐……! 괜찮아! 할아버지와 함께 싸워 보기도 했잖아……!’
세로는 애써 자신을 다독이며 재규어에 맞서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은 흑마법사의 좀비 떼와 싸워 보기도 했다.
기억이 흐릿하긴 했지만, 5급 죄수였던 델라무와도 겨뤄 보기도 했고.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도 소년은 굴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크르르르르…….
짙게 울리는 맹수의 경고가 담긴 울음소리.
왠지 모르게 친숙했기에 세로는 자신의 목으로도 그런 소리를 내보았다.
“크르르르……!”
……!
세로가 울음소리를 내자마자, 재규어는 흠칫 뒤로 물러나더니 이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마치 한순간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재규어가 도망가자, 세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다행이다.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싸울 만큼 세로는 멍청하지 않았다.
아겔을 따라다니며, 싸우는 것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할아버지에게 받은 은혜가 정말 고맙게 느껴지는 소년이었다.
마음을 놓고 다시 영역을 빙빙 돌던 세로는 문득 어깨가 따끔해서 짧게 소리를 냈다.
“아야! 뭐지……?”
세로는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기다란 침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침이 박힌 곳부터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
순간, 세로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독침을 인지했다.
세로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나무 뒤로 숨었다.
퓨뷰뷰븃……!
숨은 자리에서도 정면에서 독침이 쏟아졌다.
세로는 몇 대 맞는 것을 감수하고 재빨리 뛰어서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뭐, 뭐야……! 갑자기 독침이 엄청나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세로는 앞만 보고 달렸지만.
“헉……!”
각종 뼈로 코와 얼굴을 뚫은 원주민들이 무기를 들고 세로의 앞에 나타났다.
소년은 이미 원주민들이 세로를 포위당한 상태였다.
앞뒤 양옆 어느 쪽으로도 도망갈 수 없는 완벽한 포위.
마치 먹잇감을 노리듯, 원주민들은 세로의 전신을 훑었다.
세로는 이를 드러내며 싸울 준비를 했다.
“크읏……!”
으드드드득.
뼈와 살이 급격히 성장하며 짐승의 모습으로 변해 가는 세로.
아겔과 달리 아직 완전한 늑대의 형상으로 변하지 못했지만, 이전에 비하면 몰라볼 정도로 수인화에 성공한 세로였다.
소년은 자신이 벌써 이만큼 성장했나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앞에 있는 적들이었다.
“크와아아앙……!”
세로는 독침을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수인화하면서 가죽도 질겨졌기에 그때부턴 독침이 통하지 않았다.
이미 박혀 있던 독침도 알아서 뽑혀 나왔다.
다만, 마비 효과까지 줄어들진 않았다.
세로는 몸이 제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원주민들을 향해 매섭게 공격을 퍼부었다.
-……!
갑자기 키가 훌쩍 커진 짐승의 모습이 되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는 세로.
그 모습에 원주민들은 당황했다.
손톱에 걸린 동료의 목이 그대로 갈라져 버렸다.
촤악!
-$%%^&(*$%&!
원주민들은 보고만 있지 않고 밧줄에 달린 날카로운 갈고리를 던지며, 세로를 속박하려 했다.
“크륵……!”
갈고리는 세로의 가죽을 뚫진 못했지만, 원주민들은 능숙하게 몸의 각진 곳을 노려 갈고리를 고정했다.
이런 사냥은 몇 번이나 해 보았다는 듯이 능숙했다.
꾸드드득……!
“크으으…….”
20명에 달하는 원주민들이 전력으로 소년을 속박하자, 세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원주민 중 몇 명이 나와 세로의 목을 향해 날카로운 것들을 찔러 넣으려 했다.
치명타를 입히려는 것이었다.
“크륵……! 쿠와아아앙……!”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물리치려 했지만, 원주민들은 그게 발악이라는 걸 느꼈는지 오히려 더 거세게 창을 박아 넣으려 했다.
그들의 시도가 헛되지 않았는지, 곧 소년의 목 가죽에 상처가 생기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이대론 안 돼……!’
생명의 위협을 느낀 세로는 고개를 미친 듯이 움직이며 이빨로 밧줄을 잡아 뜯었다.
-%&$%&@#!
날카로운 이빨에 밧줄 몇 개가 잘려 나가고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졌다.
소년은 남아 있는 밧줄 끝에 있는 원주민들을 끌어당긴 후에 하나씩 이빨로 물어 죽였다.
속박에서 자유롭게 된 소년은 온몸에 밧줄과 갈고리를 주렁주렁 단 채로 원주민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
-#@$^%^&&*!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원주민들.
도망치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세로는 그들을 따라가 남김없이 죽였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즐겁기도 했고.
“헉…… 헉…….”
주위가 고요해지고 나서야 소년은 이를 감추었다.
내면에서 솟아오르던 폭력적인 본능을 겨우 잠재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글에 원주민들의 피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자신의 피도 없진 않았지만, 새 발의 피였고 그마저도 상처가 아물어서 거의 흘리지 않았다.
“후욱, 후욱…….”
세로는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채 자신의 힘을 되돌아보았다.
전신에 마비의 기운이 가득했지만, 느껴지는 힘만큼은 폭발적이었다.
2주 전과는 다른 힘이었다.
“더 강해진 건가……?”
세로는 몰랐지만, 어느새 왼쪽 목에 있던 숫자는 ‘3’으로 바뀌어 있었다.
“후, 다행이야. 그래도 죽진 않았…….”
쉬기 위해 자리를 옮기려던 세로는 순간 위험한 기운을 느꼈다.
고개를 틀었지만, 날아오는 기운은 이미 바로 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퍼엉……!
“컥!”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반발력이 세로를 거칠게 밀어냈다.
소년의 몸은 바위와 나무를 맞고 튕겨 나오며 바닥에 쓸렸다.
찰나의 순간, 팔을 얼굴 위로 교차해 큰 피해는 막았지만, 두 팔의 뼈는 완전히 부서졌다.
“끄으으으…….”
세로를 공격한 것은 흑마법이었다.
소년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을 공격한 자들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거 이 애새끼가 한 거야?
-몰라. 근데 왜 짐승에게 당한 것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있지?
“조용히 해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흑마법사들을 고요케 했다.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목에 5라고 적혀 있는 흑마법사.
그는 시체가 가득한 장내를 둘러보다가 세로를 내려다보았다.
“토템을 만들기 좋겠군. 준비해라.”
-예!
흑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리더로 보이는 흑마법사는 세로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살기가 번들거리는 그 눈빛에 세로는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속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에 공포를 느꼈다.
그 감정은 단순히 남자가 두렵다는 것이 아닌.
‘싸, 싸우고 싶어.’
자신을 죽이려는 자와 격렬하게 싸우고 싶은 마음.
감히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적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은 본능.
라이칸스로프의 야성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투기를 눈치챈 흑마법사 리더가 씩 웃었다.
“그 꼴이 되었는데도 싸우고 싶어 한다니, 재밌는 꼬마구나.”
허리를 편 남자의 손에 흑마법의 기운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어른에게 대드는 꼬마는 좋아하지 않아. 당장 고통스럽게 죽여 주마.”
그의 손에서 2미터가 넘는 검은 창 하나가 날카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기운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창은 맞으면 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종류였다.
“고통 속에서 죽어 가거…… 읏……?”
뭐라 말을 꺼내던 흑마법사는 순간 자신의 목을 잡고 눈을 찡그렸다.
그의 목엔 독침이 박혀 있었다.
깜짝 놀란 흑마법사 리더가 수풀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노인 한 명이 바람총을 들고 있었다.
“어른의 물건엔 함부로 손대는 법이 아닐세. 자네도 예의는 없구먼.”
그가 독침을 쏜 장본인이라는 것을 눈치챈 흑마법사가 곧바로 창을 던졌다.
아겔은 그 창을 피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