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60)화 (61/186)

60화 세 번째 시스템 : 개방 (7)

띠릭. 띠리릭.

수많은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수백의 연구원이 관리하는 사육시설.

연구와 실험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사육시설은 몬스터나 괴물에 관하는 고독의 시스템을 관장하기도 했다.

복도를 돌아다니는 ‘귀신’을 제외하고, 고독에 있는 모든 괴물은 이곳에서 빚어졌다.

사육시설엔 ‘개방’ 시스템을 관장하는 곳이 존재했다.

그중 간판에 ‘정글’이라고 적힌 곳을 향해 누군가 활기찬 발걸음을 옮겼다.

“일은 잘되어 갑니까?”

“아, 사육사님.”

CCTV를 보고 있던 팀장이 일어나 타이룽을 반겼다.

타이룽은 사육시설을 책임지는 총 책임자.

여기서 그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은 없었다.

팀장은 곧바로 보고를 시작했다.

“개방 3일째, 정글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태껏 대적자 시스템도 제대로 이행되고 있습니다.”

“흐음…….”

여전한 폭탄 머리의 남자는 입술을 씰룩이며 모니터에 떠오른 정글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모니터엔 첫째 날과 둘째 날의 대적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어라? 이거 맞습니까?”

“예?”

“오늘 대적자 말이죠! 이거…… 재밌는 사람이 걸렸네요.”

난수 프로그램을 통해 임의로 정해지는 대적자.

오직 살아 있는 자만이 대적자로 선정되고, 대적자가 다음 날이 되기 전까지 살아 있으면 자동으로 괴물을 소환시킨다.

세 번째 날의 대적자는 익숙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늘의 대적자는 아겔이었다.

‘마침 너무 잘되었군요……!’

최근 특별한 녀석 하나를 만들고 있었던 타이룽은 기분이 좋아졌다.

타이룽은 모니터에 비치는 아겔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일 소환되는 게 뭐죠?”

“이겁니다.”

팀장은 홀로그램 테블릿을 가져와 화면을 띄웠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랩터.

키는 3미터가 넘었고 가죽이 질기다 못해 바위처럼 단단하며, 웬만한 중급 죄수조차 따라올 수 없는 속도를 낼 수 있는 놈.

확실히 1급 죄수 대적자로는 알맞은 괴물이었다.

그러나 타이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걸로는 안 되죠! 저분이 어떤 분인데?!”

“예……?”

“그딴 시시한 것 가지고는 영감의 간에 기별도 안 갈 거란 말입니다!”

1급 죄수의 대적자?

아겔이라면 이런 하찮은 괴물과 싸우긴커녕 귀찮아서 두고 가 버릴 것이다.

그럼 재미없다.

타이룽이 자신의 기기에서 팀장의 기기로 자료를 슥슥 넘겼다.

“내일 소환되는 건 이걸로 설정해 주세요. 이거면 충분할 겁니다.”

“아…… 예.”

팀장은 군말 없이 타이룽의 지시에 순종했다.

그가 대답하든 말든 타이룽은 화면 안에 있는 아겔을 뚫어지게 보았다.

“하하, 정말 재밌는 볼거리가 생기겠어요!”

광기마저 엿보이는 번들거리는 타이룽의 눈빛에 팀장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 * *

-이, 이겼다……! 괴물을 물리쳤어!

-맙소사! 성자님 만세!

-만세-!

괴물이 흩날렸던 가루가 가라앉자, 바를라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다가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고독에서 괴물을 물리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바를라가 세운 업적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성자는 그리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기쁘진 않았다.

‘어르신 덕이지.’

괴물을 물리칠 수 있었던 건 80% 이상이 아겔 일행의 힘 덕분이었다.

정면에서 주의를 끌었던 안톤과 약점을 찾은 세로.

그리고 도대체 무슨 수인지 모르지만, 괴물조차 단숨에 죽일 만큼 치명적인 수를 쓴 아겔까지.

자신은 저들을 회복시켜 주고, 딱 한 번 괴물의 주의를 끈 게 다였다.

이 찬사는 늙은 죄수가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는 이런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성자는 웃는 얼굴로 추종자들을 대하면서 그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역시 성자님이셔! 괴물도 성자님 앞에선 꼼짝도 못 하는구만!

-정말이야! 성자님의 공이 지대했을 거야.

-암! 저 곰 수인도 대단하긴 한 것 같지만, 성자님을 무시할 수 없지!

하급 죄수들은 거의 성자의 힘인 줄만 알고 있었으나.

-근데 저 영감. 그 소문의 할아범 아니야?

-그럴 리가. 그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데?

-내 옆 감방 죄수에게 들었는데, 영감을 따르는 자 중에 곰 수인이 있다고 했어.

-설마.

숫자가 많진 않지만, 중급 죄수들은 대개 아겔에 대한 소문을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저 노인이 아겔이라 의심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성자는 그저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로 그는 아겔이지만, 본인이 밝히지 않는데 자신이 말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바를라는 침묵을 지키기로 하고 추종자들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여기서 지낼 겁니다. 준비하도록 하죠.”

-예, 성자님!

흩어지는 죄수들 사이에서 바를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쉽지 않겠어.’

바를라는 아겔이 1급 죄수란 걸 알고 있었다.

목에 쓰여 있진 않지만, 고독의 근무자들은 그를 1급 죄수로 판별했다.

왜?

그를 숨겨 주기 위해.

하나 급수가 1급수라고 소환되는 괴물이 약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대적자가 아겔이니 어떤 괴물이 소환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꾸욱.

바를라는 지팡이를 굳게 잡았다.

과연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속마음을 알고 싶은 바를라였다.

.

.

.

아겔은 바를라를 돌려보내고, 그의 추종자들이 제멋대로 떠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지금 바로 바를라와 헤어질 생각은 아니었지만, 거리는 두었다.

시끄러우니까.

‘여벌 목숨 하나가 생겼다고 치면 되겠구먼.’

바를라의 회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독에서 그만큼 치유력이 뛰어난 자는 단연코 없다.

저 스스로가 극히 소탈하고 약자를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지,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고독의 커다란 세력 중 하나를 일굴 수 있을 실력이다.

그가 목숨을 거래 내용으로 올려놓은 건 아겔이 종용한 바가 아니었다.

아겔도 생각지 못한 수확이 생겨 조금 떨떠름한 참이었다.

‘괴물 한 마리 사냥한 대가치고는 너무 비싸.’

적어도 이번 개방까지는 나타나는 괴물을 족족 사냥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아겔이었다.

값의 차이를 아는데, 몰염치하게 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쿵.

안톤이 다가와 아겔에게 말했다.

“어르신. 먹을 것이라도 좀 가져오겠습니다. 내키지 않지만, 성자와 함께 계시겠습니까.”

“그래, 그러거라.”

안톤은 세로를 데리고 잠깐 자리를 비웠다.

한적한 정글에 홀로 남은 아겔은 나무에 기대어 시원한 그늘을 느꼈다.

‘따사롭군.’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정글 안이었지만, 아겔은 그렇게 느꼈다.

개방을 처음 경험한 죄수는 이 온기 넘치는 분위기에 감동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함정이다.

개방이 끝나면 다시 끔찍한 철창 안으로 돌아가야 하고, 이 정글조차 사실 온화한 곳은 아니었다.

겉은 풍요로워 보이지만, 그 속은 살풍경한 곳.

언젠가 다시 이 자유를 맛보리라는 희망으로 죄수를 괴롭히는 곳이다.

슥.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글 안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만을 부르는 듯한 느낌.

굳이 물러설 필요가 없었기에 아겔은 걸음을 옮겼다.

정글 안쪽으로 들어가자, 햇볕이 잘 비취지 않는 그늘이 나타났다.

나무들 사이 작은 공간에 난데없는 티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2개의 의자 중 하나에 사람이 앉아서 티를 음미하고 있었다.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남자는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초대에 응해 줘서 고맙군, 영감.”

절도 있고 온유한 태도로 차를 홀짝이는 남자.

과연 흡혈귀의 왕이라 불릴 만큼 인듀라스의 기세는 고고했다.

근처에 깔려 있던 음산한 분위기가 그의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었다.

백작은 또렷한 눈으로 아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앉지. 대화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

아겔은 군말 없이 인듀라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백작은 그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조용히 침을 삼켰다.

‘드디어.’

그는 아무나와 겸상하지 않는다.

겉으론 고고한 태도를 보이는 인듀라스였지만, 속은 떨렸다.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제대로 아겔과 대화하는 지금 이 순간을 말이다.

아겔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 백작은 알고 있었다.

그가 겸상하는 기준은 잘 알지 못하지만.

‘아겔 영감의 가치는 지대하다.’

하나만 생각해도 되었다.

그를 따르는 죄수 중엔 감히 백작이 쳐다볼 수도 없는 자들이 있으니까.

아겔의 자리에 따뜻한 김을 내는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인듀라스가 마시는 피가 아닌 진짜 차였다.

“걱정하지 말고 들어도 된다. 독은 전혀 안 탔으니까. 후룩.”

찻잔에 담긴 피를 음미하면서도 인듀라스의 눈은 아겔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찻잔을 잡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주르륵 쏟았다.

쨍강.

찻잔을 바닥에 던져 깨뜨린 아겔이 태연하게 말했다.

“향이 좋은 차로군. 잘 마셨네.”

“…….”

향을 맡는 시늉도 하지 않는 모습에 인듀라스는 잠시 벙찐 얼굴을 했다.

그는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입에 맞았다니 다행이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날 찾아온 본론만 말하게.”

백작은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토를 달 순 없었다.

“경고하러 왔다. 악마숭배자들이 영감을 찾고 있어.”

“그거야 언제나 그래 왔던 일이지.”

“이번엔 다르다. 놈들은 ‘백만 번제’를 준비하고 있다.”

“……?”

아겔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백작이 설명을 이었다.

“악마숭배자들은 정글의 죄수를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고 있다. 모두 희생제물이지.”

“희생제물이라.”

평소 인간을 자신들의 힘으로 치환시켜 왔던 놈들이 이번엔 다른 목적을 위해 인간을 포획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저주 토템을 만들어 거점 삼고, 근처에 있는 죄수들을 모조리 포획한다. 그리고 본거지로 옮기고 있지. 단숨에 공좌에게 바치기 위해서.”

“그랬군.”

공좌(空座), 혹은 ‘악마’, ‘악신’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인간을 바치면 굉장히 좋아했다.

희생제물로 인간을 바치면 자신의 힘 일부를 나눠 줄 정도였으니.

백만 번제란 인간 백만 명을 바치겠단 의미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놈은 6급의 벽을 뛰어넘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상급 죄수인 적이 더 늘어나는 건, 영감에게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니겠지.”

“그거야 그렇지.”

백만 명의 인간을 바친다면 그가 7급으로 올라서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7급 죄수부터는 상급 죄수로 분류된다.

그들은 사람이란 범주에서 벗어난 존재들.

아겔을 따르는 ‘까마귀 코르브스’도 사람이지만, 능력을 보면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인듀라스는 조금 우려스러움이 드러나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 잘못하면 다르키스는 정말로 ‘사도’가 될지도 모른다.”

사도.

11성좌와 우주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공좌(空座)’의 대리인.

빛의 사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막강한 기적을 일으키며, 성좌 교단의 기둥으로 서 있다.

다만, 사람들은 반대쪽에 서 있는 자들을 잘 알지 못했다.

어둠의 사도들.

그들은 다양한 이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별빛을 말살하는 자.

검은 구덩이의 화신.

운명이 보내온 죽음의 선고.

그들이 외계(外界)로 거처를 옮기거나, 자취를 감춘 지도 오래되었다.

하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인듀라스는 잠시 눈을 감고 돌아올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돌아온 건 말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한 소리를 들었다.

큭큭. 큭큭큭큭.

백작이 화들짝 놀라 눈을 떠서 아겔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눈에 비친 상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겔이 웃고 있었다.

“큭큭큭큭, 사도라.”

그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었다.

인듀라스는 손가락 끝이 짜릿한 놀람의 감정과 동시에 자그마한 불쾌함도 느꼈다.

“왜…… 웃는 거지?”

아겔은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순간 인듀라스는 섬찟한 감정이 들었다.

웃음소리만 멈추었을 뿐이지, 그의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미소가 백작에게 당황스러운 느낌을 선사했다.

“사도는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니야.”

백작은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의문 하나가 떠올라 침을 삼키고 질문할 따름이었다.

꿀꺽.

“그럼…… 어떻게 해야 사도가 될 수 있는 거지?”

아겔은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가 대답하지 않자, 백작은 속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쉽군.’

‘사도’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아겔이었지만, 그가 입을 열지 않겠다면 알 방법이 없다.

억지로 그의 입을 열 순 없으니까.

…….

잠시 후, 아겔이 입을 열었다.

“이 이야길 내게 하는 걸 보면, 자넨 놈과 아예 등졌다고 볼 수 있겠구먼.”

맞는 말이기에 인듀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영감이 등진 놈을 내가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현명한 선택일세.”

아겔이 인듀라스를 바라보았다.

백작은 순간 그에게 눈이 있다고 착각했다.

얼굴이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자네도 돕지. 난 이번 기회에 악마숭배자들을 끝장낼 생각이라네.”

“…….”

인듀라스는 잠시 침묵했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건 그에게 호의를 살 기회였다.

그러나 쉽게 응하고 싶진 않았다.

인듀라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나에겐 뭘 줄 거지?”

그는 아겔의 거래에 관해서도 알고 있었다.

오직 거래로만 움직이는 아겔.

그는 거래한 내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킨다.

알만한 죄수들은 전부 아는 사실이었다.

아겔이 답했다.

“살려 주지.”

“…….”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자네에게도 손해는 아닐 걸세.”

생각지 못한 답에 백작은 멍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오늘따라 귀족다운 모습이 자꾸만 무너지고 있었다.

주변에서 그의 수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그는 굴욕을 무릅쓰고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아겔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곧 죽음과 다름없으니까.

“자, 잘 부탁한다.”

“거래 성립일세.”

두 사람은 짧은 티타임을 즐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