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거점 공략 (1)
바를라가 천막으로 돌아왔다.
“어르신께서 벌써 사라지셨습니다.”
성자는 조금 우려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천막의 분위기는 고요했다.
안톤은 그저 무기와 배낭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설 따름이었다.
“우리도 출발한다. 박쥐, 너도 출발해라.”
“감히 귀족인 나에게 명령하지 마라, 하찮은 곰탱이. 알아서 할 테니까.”
“어르신께서 지시하신 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이겠다.”
“흥, 너야말로.”
두 사람은 살벌한 기세로 대화하긴 했어도 서로를 해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딱. 파다다닥.
인듀라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박쥐 하나가 천막 안으로 들어와 빙빙 돌았다.
“이 녀석이 거점까지 안내해 줄 거다. 멍청하게 길 잃지 말고 잘해라, 하찮은 것아.”
파드드드득.
백작의 몸이 순식간에 박쥐 수십 마리로 화해 천막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인듀라스가 사라지자마자, 안톤이 박쥐를 따라 천막 문을 나섰다.
세로도 묵묵하게 안톤의 뒤를 따랐다.
바를라는 마을의 책임을 다른 죄수에게 부탁하고 안톤에게 합류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육중한 몸의 안톤은 놓칠 수가 없었다.
“무기술사님. 어르신이 우려되지 않으십니까?”
바를라는 궁금했다.
그는 아겔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노인을 말리지 않은 안톤의 모습에 더 흥미가 동했다.
왜 그는 아겔이 혼자 떠나는 것을 말리지 않았을까.
안톤은 묵묵한 음성으로 답했다.
“당연히 걱정된다.”
“그럼 왜 말리지 않으셨습니까? 무려 흑마법사가 1천 명입니다. 아무리 어르신이라도…….”
고독에서 흑마법사가 가지는 위상은 작지 않다.
비록 고독의 거두(巨頭)들이 세운 세력에 비하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약하다는 건 아니었다.
고독에선 누구나 쉽게 흑마법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손쉽게 타인을 농락할 수 있을 만한 힘을 얻는다.
고매한 경지로 올라서기는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하급 죄수들이 흑마법사의 길을 택하면, 오래 살아남을 확률이 급격히 올라간다.
일정 경지까지는 쉽게 대할 수 없는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 흑마법사들이 1천 명이나 모였다면, 아무리 중급 죄수의 끝자락에 있는 바를라라 하더라도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급 흑마법사들만 거점을 지키고 있다는 법도 없고.
그러나 안톤의 답은 확고했다.
“감히 내가 말릴 수 있는 분이 아니니까. 그분의 생각은 내 것보다 심오하고, 그분이 걷는 길은 내 길보다 한없이 깊숙하다.”
경전의 한 구절을 읽는 것 같은 대답에 바를라는 잠시 멍한 얼굴이 되었다.
마치 신을 따르는 신자의 모습 같았다.
바를라를 흘깃 본 안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의 우려를 이해한다. 그럼 묻고 싶은 게 있다. 네 생각에 어르신은 어떤 사람이지?”
“어르신 말씀입니까?”
바를라는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에게 늙은 죄수는 어떤 의미를 가진 사람일까.
그는 어떤 사람일까.
제대로 정리되진 않았지만, 바를라는 답을 기다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일단 머릿속에 떠오른 것부터 말을 꺼냈다.
“어르신은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참 특이한 분입니다. 그분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죽이시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셨죠.”
“사람을 살려요……?”
세로가 의뭉스러운 얼굴로 질문했다.
소년은 그가 사람을 살려 주는 모습은 그다지 보지 못했었다.
바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지금 우리와 같은 관계죠. 각각 다른 이유로 아겔 어르신과 엮였지만, 제가 여태껏 어르신을 지켜봐 왔을 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예요?”
성자가 확고하게 말했다.
“먼저 적대하지 않으면, 그분 또한 적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를라는 아겔과 함께 보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대부분 개방 때 만난 시간이었다.
아겔은 자신을 공격하지만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먼저 칼날을 들이밀지 않았다.
어찌 보면 관계에 대한 수동적인 자세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 기준만큼은 확고부동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바를라는 그의 기행을 떠올리고 말해 주었다.
생판 남이었던 죄수가 아겔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처음 보는 늙은 죄수에게 누가 도움을 청하겠는가.
그런데 그 죄수는 뭐라도 좋다는 심정으로 아겔에게 도움을 청했었다.
아겔은 거래를 하자고 제안했고, 위험에 빠진 죄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은 그 죄수를 확실하게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가로 목숨을 취하지도 않으셨고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 일이…….”
대가를 받긴 했어도 과하게 취하진 않았다는 말.
그보다 누군가를 구해 준 적이 있다는 말에 세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년은 잠시 생각 속에 빠졌다.
되돌아보면 그가 자신을 구해 준 적이 전혀 없진 않았다.
“참 특이하십니다. 몇몇 기준은 이해할 수 있어도, 또 다른 것들은 기행이나 다름없습니다.”
“요점은 참 신기한 분이시라는 거지. 내 말 잘 들어라.”
안톤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이 남의 영혼을 취하고 강인하게 만들어 주며, 눈도 없이 수십 년을 고독에서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냐?”
“…….”
안톤의 말에 바를라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초라한 행색과 달리 아겔은 고독에서 가장 평범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애초에 이런 교도소에 그런 평범한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어르신은 비상한 분이시다. 비밀도 많으시고,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시지. 그렇다고 화가 나진 않는다. 어르신의 결정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바를라는 안톤의 말을 이해했다.
안톤은 마치 자신이 성좌를 대하는 것처럼 아겔을 대하고 있었다.
곰 수인은 주먹을 쥐었다.
“흑마법사 무리? 어르신이 쓸어버리겠다고 하시면 그렇게 되는 거다. 다만, 본인의 건강을 우선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고, 내가 그분의 결정이나 행동에 악영향을 주고 있진 않은지 조심할 따름이다.”
안톤은 이번 싸움에서 아겔이 사망할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고 있었다.
그보단 마치 나이 든 할아버지를 대하듯이.
그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었다.
스릉.
“어르신 걱정은 그만하고 우리 일에 집중해라. 우릴 믿고 맡기셨는데, 제대로 못 하면 어르신을 뵐 면목이 없다.”
안톤이 대검을 꺼내 들었다.
앞쪽에서 정글의 몬스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흑마법사들과 싸우기 전에 합을 맞춰 보자.”
안톤의 말을 들은 바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는 아겔이란 노인을 100% 신뢰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믿는 것보다 더.
대화는 끝났다.
이젠 죽고 죽이는 살육의 시간이 도래했다.
쿠워어어어어어엉--!!
안톤이 기선제압하듯 포효를 내지르고 앞으로 뛰었다.
.
.
.
백작은 정글의 어둠 속에 멈춰 서 있었다.
박쥐로 변한 상태로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서, 그는 이미 거점 앞에 도달한 상태였다.
백작을 막을 만한 몬스터도 거의 없었기에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인듀라스는 아겔의 모습을 떠올렸다.
홀로 어둠 속으로 기세 좋게 나서던 늙은 죄수의 모습.
믿는 구석이 없으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다.
백작은 새삼 신기하단 감정이 들었다.
어떤 삶을 살아왔으면, 그런 인물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인지.
겉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노인네와 다름없는데 말이다.
“살아온 시간은 내가 더 길 텐데, 크큭…….”
사실 아겔이 제안하기 전까지 인듀라스는 거점을 하나씩 파괴하자는 말을 하려 했다.
나눠서 공격하는 것보다 다 같이 공격하는 게 더 수월하고 확실할 테니까.
그러나 아겔의 명령 아닌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말이 당연하고, 또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말하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다른 대안은 없다는 듯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배짱이 두둑하다고 말하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백작은 그 기세에 휘둘려 저도 모르게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나의 아이들아.”
인듀라스의 말에 고요한 어둠 속에서 수천 개의 붉은 눈동자가 동시에 번뜩였다.
굶주림으로 차오른 눈동자는 갈증을 해소해 줄 혈향을 찾아 헤매는 듯했다.
곧 인듀라스의 두 눈도 붉게 달아오른 채로 흑마법사들의 거점을 바라보았다.
악마를 섬기는 입장에서 비슷한 처지에 처한 저들과 자신들.
하나 악마를 섬긴다고 언제나 동료일 수만은 없었다.
“나 탐식의 사제가 명한다. 오늘 동족의 피로 만찬을 열어 보자꾸나.”
파드드드득……!!
수천 마리의 박쥐가 동시에 숲을 떠올라 거점을 향해 쏟아졌다.
인듀라스는 고귀한 발걸음을 내디디며 거점을 향해 걸어갔다.
“다음 티 타임은 좀 더 길었으면 좋겠군.”
거점 공격의 시작은 흡혈귀들이 열었다.
* * *
“우걱우걱…… 음식을 더 가져와라.”
뱃살이 나온 중년 남성이 여성 흑마법사에게 명령했다.
알메로스.
그는 거점 중 가장 커다란 제3거점을 책임지고 있는 악마숭배자의 간부였다.
제사장인 다르키스의 명령을 받아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목조 건물의 푹신한 몬스터 가죽 위에서 만찬을 흡입하고 있었다.
알메로스가 있는 목조 건물에선 거점의 모습이 훤하게 보였다.
넓게 두른 목책은 흑마법사들이 돌아다니며 경비를 서고 있고,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목책 너머로 순찰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정글의 절벽에 위치하였기에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곳 안에 있기만 해도 든든했다.
거점의 중심엔 기괴한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인간이나 몬스터의 육체를 제멋대로 섞어 놓은 것 같은 둥그런 물체.
제사장이 만들어 냈다는 저 ‘괴륙(怪肉)’은 악마의 힘을 대신 감당해 줄 제물이었다.
아직 제대로 완성된 건 아니라, 하루에 수십 명의 사람을 저 괴륙에 흡수시켜야만 한다.
오늘도 해가 진 밤에서야 제물을 흡수시키고 있었다.
-사, 살려 줘……! 제발……!
반항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괴륙이 알아서 사람을 채 갔다.
꿀렁이는 육체에서 그로테스크한 팔이 뻗어 나와 인간을 잡아간다.
저것만 지키면, 알메로스가 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흑마법사들을 격려하는 정도?
그의 곁에서 여성 흑마법사 한 명이 보름간 흑마법으로 숙성한 과실주를 따랐다.
“크흐흐, 그래. 잔이 비었으니 따라야지.”
그는 단번에 잔을 비우고 쩝쩝 입맛을 다셨다.
“주변에서 이상한 걸 발견하진 않았나?”
알메로스의 질문에 여성 흑마법사, 시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알메로스 님. 거점을 건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제사장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이야.”
“물론입니다.”
시코는 빙긋 웃으며 대답하긴 했지만, 속으론 알메로스를 경시하고 있었다.
이 돼지 같은 흑마법사는 급수가 6급이면서도 얼마나 걱정이 많은지 모른다.
모든 일은 시코에게 전가해 놓고 이것저것 묻는 것이 그녀는 짜증스러웠다.
알메로스가 다시 한번 잔을 비우고 말했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른 얼굴이었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늙은 죄수가 보이면 무조건 보고해. 알겠지?”
또 시작이다.
술만 마시면 또 그놈의 늙은 죄수 이야기를 꺼내는 알메로스였다.
시코는 한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우리 쪽에서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예 도망친 게 아닐까요?”
“도망쳐? 왜?”
알메로스의 물음에 시코는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우리가 두려워서 도망치는 게 아니겠어요?”
“두, 두려워? 쿠핫……! 쿠하하하하핫!”
알메로스가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바람에 입에 있던 음식물 조각이 시코의 얼굴에 튀었다.
시코는 극심한 경멸의 감정을 숨기며 얼굴에 묻은 음식물을 닦아 냈다.
“쿠하하핫……! 농담이 아주 재밌구나!”
시코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웃으시는지 전 잘 모르겠는걸요?”
한동안 대소를 터뜨리던 알메로스가 웃음을 멈추었다.
아직 얼굴에 웃음기가 남아 있긴 했지만, 사뭇 진지하기도 했다.
“너는 제사장님께서 이 의식을 치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백만 번제요? 당연히 강해지기 위해서 아니겠어요? 어떤 흑마법사든 악마에게 힘을 받아 강해지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요.”
“그렇지.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지. 제사장님의 오른팔인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기를 집어서 뜯어 먹었다.
“사실 그런 욕망을 제하고서라도 제사장님은 반드시 강해져야만 해.”
“왜죠? 다른 이유가 있나요?”
“방금 말했잖아.”
우걱우걱.
순식간에 고기를 뜯어 먹은 알메로스가 뼈를 내려놓았다.
“그 늙은 죄수. 아겔 때문이야.”
시코의 눈이 일그러졌다.
“겨우 듣도 보도 못한 늙은 죄수 하나 때문에 제사장님께서 이 의식을 서두르셨다는 말씀입니까?”
“듣도 보도 못해? 쿠핫! 하긴 너는 고독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노인에 대해 잘 모를 테지.”
알메로스는 자신이 흑마법사가 되기 전을 떠올렸다.
6급이란 자리에 오르기 전엔, 그도 평범한 4급 죄수였다.
악마숭배자란 조직에 들어와 흑마법사가 되기 전에 그는 아겔을 딱 한 번 직접 볼 수 있었다.
“그 노인에 대한 소문은 중급 죄수들 사이에서도 무성했지. 고독에 어느덧 적응해 버린 죄수들은 궁금해진 거야! 그 노인이 대체 뭐길래 자꾸만 소문이 나도는 건지!”
시코는 어느새 알메로스의 이야기에 빠져 버렸다.
돼지 같은 놈이지만, 옛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꽤 흡입력이 있는 편이었다.
“그때 중급 죄수들은 꽤 단합력이 있었어! 누가 이끌었는지도 모르지만, 그 아겔이란 영감을 한 번 찾아가 보기로 한 거지. 급수도, 생김새도, 어느 감방에 사는지도 모른 채. 그러다가 정말 우연처럼, 우린 그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알메로스는 씩 웃고 포도주잔을 들었다.
잠시 쉬어 가는 타이밍에 시코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빨리 말해 주세요.”
“쿠핫, 이야기할 테니 재촉하지 말아라.”
포도주를 비운 알메로스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이 희번뜩 빛났다.
“중급 죄수들은 대체로 노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독에서 이름을 날리는 게 눈에 거슬렸던 거지. 몇몇 중급 죄수가 아겔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알메로스는 그때의 기억에 살짝 몸서리쳤다.
자신은 덤벼들지 않았다.
저렇게 많이 나서는 데 굳이 달려들 이유가 있나 생각하면서.
그리고 눈을 잠깐 깜빡였다.
“그냥 눈을 깜빡인 것뿐이었다. 나는 마치 잠든 것 같았지. 일어나 보니, 주변에 있던 죄수들이 전부 죽어 있었다…….”
“…….”
집중해서 듣고 있던 시코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말도 안 되는 일이네요. 꿈을 꾸신 건 아니에요?”
“그럴 리가…….”
알메로스의 손이 떨려 왔다.
그때의 일은 진짜였다.
중급 죄수 수천 명이 죽어 있었다.
마치 서로를 공격한 것처럼.
시코에게서 원하는 반응이 보이지 않자, 알메로스는 흥이 식었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잡았다.
“됐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가서 순찰자들이나 확인하고 와라.”
시코는 피식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알메로스 혼자 방에 남았다.
그는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음식을 퍼먹었다.
마치 그때의 기억을 잊으려는 듯이.
우걱우걱…….
* * *
아겔은 홀로 정글의 어둠을 걷고 있었다.
은밀하게 이동하는 것도 아닐진대, 정글을 가득 채운 몬스터들은 노인에게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끼잉…….
오히려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덜덜 떨었다.
몬스터들은 누가 포식자이고 누가 피식자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살기로 인해.
늙은 죄수는 익숙하게 그사이를 지나갔다.
‘하루 정도면 도착하겠구먼.’
진득한 살기가 정글의 밤을 제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