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거점 공략 (3)
악마숭배자들의 본거지.
어두운 밤이라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각종 사이한 토템과 뼈로 장식된 알 수 없는 것들이 잔뜩 있는 곳이었다.
“제, 제사장님……!”
흑마법사 한 명이 다르키스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왔다.
뼈로 이루어진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던 다르키스가 눈을 치켜떴다.
“무슨 일이냐.”
“거점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다르키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상황에서 그의 일을 방해할 사람이라면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놈인가.’
그러나 수하의 입에서 나온 범인은 다른 자였다.
“백작이 흡혈귀들을 데리고 제1거점을 공격 중입니다!”
“뭐라?”
다르키스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악마숭배자들처럼 공좌를 따르는 백작 인듀라스.
그는 ‘탐식’을 따르고 자신은 ‘시기’를 따르긴 하나, 악마를 섬기는 똑같은 종이었다.
큰일은 아니었어도 몇몇 자잘한 일은 함께 행동하곤 했던 백작.
그가 자신의 일을 방해하다니 믿기 어려웠다.
뿌득.
다르키스의 주먹이 분노로 떨려 왔다.
아겔을 함께 죽이자는 제안을 거절했어도 괜찮았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하나 아예 관계를 저버릴 줄은 알지 못했다.
‘동맹을 버리고 그쪽을 택한다 그거지.’
그가 다르키스를 공격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아겔.
그자와 한패가 된 것이리라.
“살기 위해 본인이 누누이 말하던 귀족의 긍지를 버렸군.”
다르키스는 이내 분노를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정했던 일은 아니나, 대계를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적으로 돌아서도 그리 큰일은 아니다.
이 의식만 성공할 수 있다면.
“지원군을 파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수하의 간언에 다르키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인듀라스가 그의 권속과 함께 거점을 쳤든, 그곳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이럴 경우를 위해 충분한 대비를 해 두었으니.
제사장의 음기 서린 눈빛이 수하에게 향했다.
“그건 되었다. 그보다 번제를 서두르라 전해라. 바로 지금부터 의식을 시작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수하는 천천히 물러났다.
다르키스는 뼈 의자에서 일어났다.
정글을 지배하는 악마숭배자들의 본거지.
뼈와 살로 높이 쌓인 피라미드가 눈에 보였다.
피라미드 꼭대기엔 거점에 있는 것과 같은 커다란 ‘괴륙’이 있었다.
크기는 거점에 있는 것보다 훨씬 컸다.
두근두근…….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박동하는 끔찍한 육체의 혼합물.
썩은 피와 고름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르키스는 그것을 보고 안도감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곧 나의 주인께서 강림하시리라.”
감히 자신을 거역한 자들에게 천벌을 내릴 힘을 내려 주시리라.
그리고 악마숭배자들은 정글을 넘어 고독 구석구석에 손을 뻗치게 될 것이다.
* * *
아겔은 절벽을 향해 달렸다.
몬스터들은 이미 저 앞쪽에 달리고 있었다.
노인을 두려워하여 어떻게든 벗어나 보기 위해서 숨을 헐떡이며 전력으로 질주했다.
이미 거점의 목책 가까이 달리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목책 안쪽에서 무수한 흑마법이 쏟아져 내렸다.
떼거리로 몰린 몬스터들을 격추하기 위해서였다.
콰가가가가강-!
-저쪽에 몰린다!
-결계가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마!
-저주 마법이 끝나면 사출 마법을 사용해라!
거점의 흑마법사들은 결계를 믿고 있는지, 그리 당황한 기색은 아니었다.
차근차근 목책 근처의 결계에 달라붙은 몬스터들을 흑마법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저주와 각종 사출 흑마법에 당한 몬스터들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겔은 그걸 보고만 있지 않았다.
‘결계부터.’
그는 살기를 감추고 흑마법 세례를 가볍게 통과했다.
그 어떤 흑마법의 기운도 아겔에게 상해를 입히지 못했다.
몬스터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결계로 다가간 아겔은 어두운 반투명 막을 향해 손을 뻗었다.
텁.
그러자.
쩌적…… 쩌저저저적…….
거점 전체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겔의 손이 닿은 부분부터 발생한 균열은 끝을 모르고 점점 더 크기를 키워 갔다.
쩌저저저적……! 쩌저저저저저적!
흑마법 결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은 흑마법사들이 경악했다.
-겨, 결계에 금이 간다!
-보강해!
-마력을 더해라!
당황한 흑마법사들은 원인을 찾으려 하기보단 당장 결계를 보수하는 데 주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흑마법의 기운을 앞으로 흩뿌려서 금이 가는 결계를 복구하려 했다.
개중엔 뛰어난 흑마법사들도 있는지, 몇 군데 균열을 막았지만, 아겔이 일으킨 가장 커다란 균열은 복구하지 못했다.
쩌적……! 쩌저저저저저저저적……!
결계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거대한 균열은 더 이상 막을 수도 없이 그 몸집을 불린 상태였고, 복구하는 것보다 금이 가는 게 더 빨랐다.
그 모습을 본 흑마법사들의 눈에서 희망이 사라졌다.
누군가의 허탈한 감탄사가 들렸다.
-아.
결계가 박살 났다.
챙그라아아아앙---!!
아겔은 타이밍을 맞춰서 살기를 진득하게 흩뿌렸다.
그러자 결계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했던 몬스터들이 거구를 움직여 목책에 몸을 들이받았다.
도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었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콰직! 쾅! 쾅! 쿵! 쿠웅-!
쿠워어어어……!
커어엉!
깨개갱!
몸집이 어마어마한 녀석들은 살기 위해 목책을 넘고 무너뜨렸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목책은 순식간에 걸레짝처럼 변해 버렸다.
악마숭배자들은 끊임없이 흑마법을 날려 몬스터들을 죽여 보았지만.
공포에 정신이 나간 몬스터들은 다른 몬스터의 시체를 밟고 계속 앞으로 달렸다.
-제기랄, 이 미친 것들 좀 막아 봐!
-흑마법으로 길들인 놈들 데려와!
악마숭배자들은 자신들이 사역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불러 놈들을 가로막았다.
흑마법으로 사역한 몬스터들이 야생 몬스터들과 몸을 부딪치며 밀어냈다.
쿵쿵……! 쿵!
싸움이 점점 안정됨에 따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몬스터 수십 마리의 난동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나 거점이 난장판이 되는 건 막지 못했다.
아겔은 그 혼란의 틈 사이로 걸음을 내디뎠다.
애초에 몬스터들을 이용한 건 목책을 부수고 시선을 끌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겔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야였지만, 불길한 기운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먼저 그는 몬스터를 사육한 흑마법사를 향해 뛰었다.
어두운 밤, 난장판이 된 거점에서 아겔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아…… 이게 웬 난리야…….
-그러게. 그나저나 결계는 왜 깨진 거야?
-몰라. 빨리 복구하기나 하자.
상황이 진정됨에 따라 안심하고 있었던 그들에게 아겔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다.
푸욱.
“컥……!”
몬스터 테이머들의 목을 찔러 확실하게 죽였다.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수 있으니, 목을 반 이상 잘라 버렸다.
날카로운 단검에 한 번 걸리면, 치명적인 급소가 거칠게 훼손되었다.
아겔이 테이머 서넛을 죽이자, 그들에게 동화되어 있던 몬스터들이 미쳐 날뛰었다.
크어어엉-!
-뭐, 뭐야! 이 새끼 왜 이래!
-자, 잡아! 끄아아악!
잠들어가던 혼란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겔은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악마숭배자들을 하나씩 확실하게 죽였다.
개중엔 아겔의 기척을 느낀 놈도 있었지만, 은밀한 살수를 완벽하게 막아 내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몬스터에게 당한 상처가 아닌, 날카로운 것에 당한 시체들이 달빛에 드러나면서 흑마법사 한 명이 소리 질렀다.
-침입자가 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악마숭배자들이 서둘러 전투를 준비했다.
리더로 보이는 여자 흑마법사 한 명이 빠르게 그들을 지휘했다.
“조를 만들어라! 흩어져서 놈을 찾아!”
흑마법사들은 마치 잘 조직된 군대처럼 조를 이루었다.
절벽 끝에 위치하긴 했지만, 거점의 넓이가 워낙 넓어서 흩어져서 침입자를 찾아야 할 정도였다.
아겔은 달빛이 잘 비치지 않는 움막과 토템 사이로 몸을 움직였다.
매일 어둠 속에 살다 보니, 달빛에도 민감해진 아겔이었다.
거의 20일에 달하는 시간을 정글에 살아, 그 감각이 무뎌질 법도 했지만.
아겔의 기민한 감각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움막 사이를 살펴!
-넌 저쪽으로 가!
악마숭배자들이 거주하는 움막.
수십 명의 흑마법사가 한 조로 움직이며 아겔을 찾으려 했다.
아겔은 묵묵히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기회가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푸욱……!
-끅……!
-여기다!
짧은 사이, 수십 개의 흑마법이 아겔을 향해 날아왔지만.
노인에게 통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칼이 물을 베고 지나간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젠장, 흑마법이 안 통해!
그 사실을 깨달은 악마숭배자들이 다른 조와 합류하려 했지만, 아겔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촤륵.
단검을 숏쇼드로 변환시킨 아겔.
가장 앞에 있던 흑마법사의 머리를 잘라 버렸다.
잘린 머리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숏소드로 세 명의 목젖을 찔렀다.
말을 못 하게 된 3명을 넘어서 치명적인 급소만을 타격하며 나아가는 늙은 죄수.
-커헉…….
그 자리에 있던 마지막 흑마법사가 심장이 꿰뚫린 채로 죽었다.
아겔은 놈을 꼬치처럼 꿰뚫은 숏소드를 빼내고 피를 바닥에 흩뿌렸다.
노인은 5분 만에 40명의 흑마법사를 도륙했고, 다른 조가 도착하기 전에 자리를 떴다.
죽은 악마숭배자들의 위치에 도달한 조는 허탈함만을 느껴야 했다.
-제길…… 이 근처에 있을 거야! 서둘러!
-이쪽으로!
아겔은 근처에 숨어 있다가, 자리를 뜨는 조를 뒤따라 갔다.
그리고 조용히 뒤에서 한 명씩 입을 막으며 죽였다.
단검 형태로 바꾸어 바로 목젖을 찔러 버리면, 주변이 어수선한 상태라 사람 죽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10명을 살해하고 나서야 아겔은 들켜 버렸다.
-제길……! 놈이다!
-죽여!
나머지 30명도 아겔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개중에 사출 흑마법으로 땅을 공격해 아겔에게 간접 피해를 주려는 똑똑한 놈도 있었다.
직접적인 흑마법이 통하지 않으니, 땅을 터뜨리는 등의 공격을 해 보려는 것이었다.
푹.
-꺼으…….
그 친구는 관자놀이를 찔러 뇌를 헤집어 주었다.
똑똑한 머리는 이제 영원히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또 한 조를 살육한 아겔은 다시 움막 근처 어둠으로 몸을 숨겼다.
그 순간, 흑마법 주문을 외는 소리가 들렸다.
커럽티드 익스플로전(Corrupted Explosion).
스산한 기운이 근방에 있는 움막 전부를 감쌌다.
아겔은 그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재빨리 움막 근처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움막 몇 개가 완전히 박살 나며 주변으로 그 잔해를 흩뿌렸다.
상당한 폭발력.
그 잔해에 휘말렸다면, 중상을 입을 수도 있을 만한 위력이었다.
근처 30미터 정도에 넓은 구덩이가 생겼고, 한쪽으로 피해 있던 아겔의 모습이 달빛에 훤히 드러났다.
“너…….”
머리를 길게 늘인 여자 흑마법사.
시코는 가는 눈으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저 죄수가 몬스터들로 거점에 혼란을 주고 수십 명의 악마숭배자를 살해한 침입자가 분명했다.
“미쳐 버린 건가? 감히 우리 악마숭배자들의 거점을 습격하다니…….”
시코의 주변엔 눈대중으로만 봐도 기백은 넘는 흑마법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흑마법을 날릴 준비를 한 상태로.
아겔은 숨지 않고 가만히 그들의 거친 숨소리를 느꼈다.
흥분한 듯한 숨소리는 턱 끝까지 차오른 것은 아니었어도,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시코는 아겔의 죄수 번호를 살폈다.
어떤 막돼먹은 죄수이길래 단신으로 정글을 지배하는 악마숭배자들의 진영을 공격하는지 궁금했다.
그의 왼쪽 목을 살펴보았더니.
‘51번?’
급수는 없고 웬 번호만 남아 있었다.
저런 낙인에 대해선 시코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시코는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있다…….’
급수가 없는 죄수 번호.
늙은 겉모습과 눈에 붕대를 감고 있는 죄수.
그의 상관이 종일 떠들던 그 죄수.
아겔.
그가 분명했다.
“그만, 시코.”
“알메로스 님.”
시코는 고개를 숙였다.
제3거점의 책임자인 알메로스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알메로스는 가만히 서 있는 아겔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마치 사신이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선 확인부터 하겠다. 그쪽은 아겔인가?”
“그렇다만, 요즘은 내 이름을 아겔이라고 알고 있는 자가 많군.”
태연하게 단검에 묻은 피를 옷에 닦으며 대답하는 노인의 모습.
알메로스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저자는 소문의 아겔이 맞았다.
6급 흑마법사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입을 열었다.
“이거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군. 두 번째 만남이 이런 식으로 이뤄질 줄이야.”
“날 만난 적이 있던가?”
알메로스는 그가 눈을 붕대로 감고 있는 걸 보고서도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했다.
노인은 맹인이 아니라 마치 눈이 보이는 사람처럼 자신에게 고개를 향하고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그래. 내가 4급 죄수였을 무렵이었다. 중급 죄수 수천 명이 당신에게 죽었던 날. 있었다.”
알메로스의 대답에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가 살려 준 친구였나 보구먼.”
“…….”
마치 알메로스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아겔.
알메로스가 주먹에 땀을 쥐고 물었다.
“나를 아나?”
“그야 모르지. 그때 죽은 척하는 친구 몇 명을 살려 주었다네. 그 친구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진 모르지만, 자넨 용케도 살아 있었구먼. 그뿐일세.”
알메로스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는 자신이 죽은 척한 것을 알고도 일부러 살려 주었다.
아겔이 말했다.
“자네도 그랬다시피 내가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오는 헛된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말일세. 귀찮은 건 질색이라.”
“하하…… 그랬군.”
알메로스는 아겔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는 수천 명의 중급 죄수를 학살하고 몇 명을 살려 주었다.
살려 준 이들이 소문을 내면, 다른 죄수들이 더 이상 그를 찾지 않게 되리라고 여겼다.
그 잔혹한 학살의 순간을 고독 내부에 널리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
그랬던 그의 의도와 달리, 아겔은 아는 죄수는 다 아는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아겔은 턱수염을 쓸며 생각했다.
‘차라리 도망치는 게 나았겠구먼. 조용히 있으면 소문도 가라앉았을 터인데.’
중급 죄수들을 학살했을 때가 떠올랐다.
조금 아까웠지만, 후회스럽진 않았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바꿀 수 없게 된 과거이니까.
알메로스는 침을 한번 삼키고 말했다.
그의 눈에는 곧은 심지가 보였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우릴 전부 죽일 순 없어.”
알메로스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해 주었으면 했다.
아무리 중급 죄수의 정상인 6급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공포는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알메로스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곁에 선 수백의 악마숭배자들을 바라보았다.
책임자인 자신이 흔들리면 안 된다.
용기는 하나라도 쉽게 전달되지 않지만, 두려움은 손쉽게 모두에게 전염되어 버리니.
‘난 6급 흑마법사다. 정신 차려라, 알메로스. 제사장님께서 거점을 내게 맡기셨다. 믿음에 부응해야만 한다.’
새벽이 지나고, 날이 점점 밝아 오기 시작했다.
미명이 어둠을 조금씩 물리치려는 듯 보였다.
구름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지만, 빛이 생기자 알메로스는 희망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아겔의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으니까.
처연함이 감춰진 목소리가 흑마법사들의 귀에 들어왔다.
“준비해라.”
알메로스의 목소리에 그 자리에 있는 흑마법사 전원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가 죽기 살기로 아겔과 싸우기로 결심한 순간.
콰릉……!
번개가 쳤다.
어둑하게 밝아 오는 미명 사이에서 노인의 작은 미소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럼 어디 한번 시험해 보세나.”
탓.
아겔이 다 밝아 오지 못한 미명을 가르고 수백의 흑마법사를 향해 달렸다.
그와 동시에 알메로스가 전력으로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공격해애애앳-!!”
수백의 흑마법이 오직 정면으로 세례처럼 쏟아졌다.
안타깝게도 흑마법사들은 자신들의 공격이 적중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은 시야를 잃었다.
-어어……?
-아, 안 보여…….
-마법인가……!
눈을 감은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된 세상.
날이 밝아 옴에도 눈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알메로스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그 어둠이었다.
‘아. 안 돼…… 이럴 순 없어……!’
과거란 절벽을 타고 올라온 공포가 다시 그들을 찾아오고 있었다.
“오늘은 살려 주기 힘들 것 같구먼.”
메마른 목소리만이 혼돈에 빠진 거점에 파문처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