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75)화 (76/186)

75화 의문 (2)

아겔은 바를라의 대답에 쉽사리 대답해 주지 않았다.

성자는 인내를 가지고 몇 분간 그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대답이 없는 아겔은 처음인지라, 바를라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그는 악마와 거래한 것인지에 대해서.

바를라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볼 요량이었다.

“대답하시기 어려우시다면, 다른 것부터 대답해 주십시오. 어르신, 제3거점을 확실히 파괴하고 오셨습니까?”

아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의 도움 없이 혼자 하신 일이십니까?”

늙은 죄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바를라는 옅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더더욱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도…… 전 어르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군요.”

바를라는 아겔을 안다.

고독에 처음 들어왔던 13년 전부터 만난 노인이었다.

처참한 진실일지언정 그가 거짓말을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제3거점을 파괴하고 왔다는 말도 사실일 것이다.

그것도 단 하루 만에.

심지어는 곧바로 자신들을 도우러 오기까지 했다. 상급 죄수는 되어야 보일 법한 무력을 아겔 혼자서 보인 것이다.

괴물을 사냥하는 것과 이번 일은 별개였다.

“어떤 1급 죄수가 홀로 악마숭배자의 거점을 박살 낼 수 있단 말입니까.”

그가 강자를 사냥하는 데 특화된 능력을 지니고 있더라도, 이번처럼 대군과 싸워 순식간에 격파했다는 것은 바를라의 의심을 가중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흑마법도, 신성력도 통하지 않는 특이 체질.

바를라가 알기로 이 세상에 그런 특이 체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경험을 쌓은 성자조차 치유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의심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했다.

“오만하긴 하지만, 제 치유가 듣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흑마법사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어르신만…… 게다가 흑마법까지……!”

조금씩 목소리가 커지던 바를라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고개를 숙였다.

“조금 흥분한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악마와 거래한 자에게 제 목숨을 내어 드릴 순 없어서…….”

“이해하고 있네.”

성자가 고개를 들었다.

“반대로 말하면, 악마와 거래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어르신은 제 목숨을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전…… 그걸 바라고 있고요. 어르신께선 절 함부로 하지 않으실 걸 알기에 건 조건이었습니다.”

“알고 있네.”

바를라의 결연한 목소리에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지 못하는 많은 비밀을 가지고 계시죠. 그것들은 말씀 안 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꼭 듣고 싶군요.”

성자의 눈에서 형형한 빛이 흘러나왔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부디 솔직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악마와 거래하셨습니까?”

아겔은 침묵했다.

고요한 침묵은 마치 긍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바를라가 입술을 씹었다.

“역시…… 그랬군요…….”

성자는 허탈한 목소리를 내며 머리를 짚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눈 없이도 고독을 64년간 살아온 아겔의 비밀.

그가 악마와 거래했다면 모든 게 설명이 가능했다.

마치 배신당한 것 같은 느낌이 바를라의 전신을 사로잡았다.

악마와 거래한 자에게 목숨을 바치겠다고 약속했으니.

하나 아겔의 말이 그의 심경을 다시 뒤바꾸었다.

“거래, 약속, 혹은 시험.”

“……?”

바를라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겔이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잡더니 바닥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바를라는 노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얼굴을 했다.

“어르신?”

“…….”

아겔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계속 글자를 썼다.

바를라도 알고 있는 은하 정부 공동어였다.

탓.

글자 쓰기를 마친 아겔이 나뭇가지를 버렸다.

그리고 뒤돌아 수풀 속으로 걸어갔다.

“오늘 이야기는 이쯤 하세. 이가 시리구먼. 잠이 안 오면 책이나 읽게.”

“…….”

바를라는 사라지는 아겔의 뒷모습과 땅바닥에 쓰인 글자를 번갈아 보았다.

그는 아겔을 붙잡지 않았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간 아겔의 저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악마의 제재를 받고 계신다……!’

그가 직접 말로 전달해 주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땅에 글자를 썼겠지. 바를라는 찬찬히 땅바닥에 쓰인 글씨를 살폈다.

-너는 누구기에 나를 찾아오는가, 나의 소원을 이루어 줄 자인가.

마치 시구와 같은 독백.

바를라는 그 문장들로부터 의미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아직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천천히 살펴보자.’

-소원을 들어준다면, 반드시 나의 빛을 바쳐야겠지.

찾아온 자와 소원, 그리고 빛.

이 단어들로 인해 바를라는 어렴풋이 아겔이 전달하려는 바를 읽어 낼 수 있었다.

‘거래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신다.’

찾아온 자는 악마. 그리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건 거래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빛을 바친다는 건 영혼을 바친다는 뜻일 터다.

-그리하여 빛을 잃었다. 그렇다면 혼은 온전히 나의 혼이요, 소원은 성취를 향해 나아간다.

“어……?”

다음 구절에 바를라는 턱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악마와 거래하는 장면인데, 뭔가 이상했다.

빛이 영혼을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혼이란 단어가 등장해 버렸다. 그렇다면 빛은 무슨 의미일까.

‘악마가 대가로 영혼을 받지 않고, 다른 걸 가져가 버렸다?’

바를라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악마와 거래를 했는데, 영혼이 본인의 소유라니.

‘영혼이 아닌, 다른 것을 걸었단 말인가.’

그런 건 듣지 못했다. 악마는 반드시 영혼을 취한다. 그런데 악마와 거래해 놓고 영혼을 대가로 내놓지 않았다면, 아겔의 이해할 수 없는 무력은 설명하기 어려웠다.

“빛…… 빛을 빼앗기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르신.”

성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단 건너뛰고 다음 구절을 읽었다.

-내 소원은 해 너머에 있지만, 빛이 없어도 어둠 속에 묻히지 아니하리라.

“…….”

그것으로 구절이 끝났다.

바를라는 한참이나 아겔이 남겨 준 구절에 대해 생각했다.

“해 너머에 있다는 건 아직 소원이 성취되지 않았다는 것 같은데…….”

해는 시간을 세는 기준이고, 너머라는 건 아마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다음 문장에 주목했다.

어둠 속에 묻히지 아니하리라. 파멸하지 않을 거란 이야기 같았다.

바를라는 악마와 거래하고도 파멸에 이르지 아니한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 사람이 있긴 한가?’

악마와 거래하면 반드시 영혼까지 빼앗기며 파국을 맞이한다. 바키아의 경우가 그렇다.

그리고 악마숭배자의 수장인 다르키스의 최후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좁은 식견으론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아겔이 악마와 거래했다는 가정에 그는 64년이나 고독에서 생존했다는 사실이다.

바를라는 아겔이 남겨 준 글자를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읽었다. 마음에 새기기 위해.

혹시 자신이 놓친 게 있지 않을까 살피면서.

거의 외울 정도가 되어서야, 성자는 조심스럽게 바닥의 글자를 지웠다.

그리고 피로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르신…… 당신은 정말 누구십니까…….’

스무날 정글의 밤은 별빛조차 눈 감고 있었다.

* * *

제2거점을 공략한 다음 날.

먹구름으로 어둑어둑한 아침, 아겔이 일행을 불러 모았다.

“오늘도 연락이 없구먼.”

“예.”

“…….”

자리엔 쿠라스크와 안톤, 세로와 바를라가 함께하고 있었다.

아겔이 입을 열었다.

“되도록 인듀라스와 함께 본거지로 가고 싶었지만, 연락이 없으니 우리 먼저 출발하는 것으로 하겠네.”

“캬앗, 영감. 묻고 싶은 게 있다. 정말 백작과 한패가 된 거야?”

쿠라스크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질문했다.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길, 그놈도 악마를 따르는 놈이잖아. 믿을 수 있는 거 맞아?”

“나와 거래했다네. 자네처럼 말이지.”

“거래했다고? 거래 내용이 뭔데?”

“같이 악마숭배자들을 치면 살려 주겠다고 했지.”

“…….”

쿠라스크는 아겔의 대답에 잠깐 멍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이건 뭐, 해도 줫 같은 일을 시키고, 안 하면 뒈진다는 의미인가?’

하이에나 수인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자신의 상황도 그리 다르진 않을 것이다. 아겔과 거래를 했으니, 내용을 어기면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다.

그는 이 꺼림칙한 노인을 적으로 돌리고 싶진 않았다.

“뭐, 그랬다면 다행이고. 백작 정도 되는 녀석이면 능력으로 후달리진 않겠지.”

“질문은 이게 끝인가?”

바를라가 손을 들었다.

“본거지는 어떻게 치실 생각입니까? 무턱대고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큰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전략 회의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로 계획 같은 건 없네. 생각해 둔 바가 있나?”

“저희 전력부터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래.”

아겔 일행은 서두르지 않고 전력부터 살폈다.

우선 6급에 해당하는 죄수는 쿠라스크, 바를라, 안톤.

중급 죄수의 끝자락에 있는 이들이니 전투력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다.

수인화하면 5급까지도 힘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된 세로.

앞선 세 사람보단 못하지만,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는 전력이다. 물론 아직 부족함이 많긴 하다.

그리고 쿠라스크의 수인들이 있었다.

바를라가 쿠라스크를 바라보았다.

“비스트 서클은 수인이 몇 명 정도 있습니까?”

“여기로 데려온 건 아주 극히 일부야. 연락하면 달려올 놈들이 1천은 돼. 젠장, 원래 몇천 명은 되는데, 약탈자로부터 도망치다가 대부분 잃었어.”

“모자랍니다. 악마숭배자 본거지에는 흑마법사의 숫자만 만 명을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전멸입니다.”

아무리 수인이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강하다고 해도, 적은 수로 흑마법사 군단을 넘볼 순 없었다.

바를라가 1천이나 되는 전사에게 전부 신성 보호막을 씌워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봉인된 힘이 풀린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그건 헛된 기대나 다름없었다.

쿠라스크가 말했다.

“동의해. 우리가 한 놈씩 죽인다 쳐도 9천이나 남아. 잘 쳐줘도 이 정도지, 전쟁엔 변수가 너무 많아. 다른 수가 없다면, 이대로 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을걸?”

“그건 마지막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나온 계산이다.”

“……?”

그동안 조용히 있던 안톤이 외눈을 떴다.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쿠라스크가 침을 삼키고 물었다.

“뭐, 뭔데. 내가 모르는 비장의 수라도 있어?”

안톤은 망설이지 않고 즉답했다.

“어르신이 계신다.”

“…….”

잠깐 침묵이 흘렀다.

정적을 깨고 쿠라스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그래. 그럼 나머지 흑마법사 9천 명은 영감 몫이야. 전략 회의 끝. 출발하자. 다 뒈지러 가는 거야.”

“진정하십시오, 쿠라스크.”

“진정하라고? 지금 내가 장난치는 것 같아? 말이 되는 소릴 해!”

바를라의 중재에도 쿠라스크는 방방 뛰었다.

자리에 모인 이들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흑마법사만 만 명이 넘는 본거지를 치러 가는 데, 전력은 턱없이 부족했고, 유일한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아겔은 묵묵부답이었다.

“아겔 영감이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건 인정해. 하지만 이건 전쟁이야! 아무리 영감이라도 수만에 달하는 흑마법사와 맞설 수는 없잖아. 내가 상식적으로 틀린 말을 하고 있나? 아니지?”

쿠라스크가 아겔을 바라보았다.

“이봐, 영감. 당신은 분명 악마숭배자들을 공격하는 걸 잡초 뽑는 것처럼 말하면서 거래를 제안했지. 특별한 수가 없다면, 난 이 거래를 파기할 거야.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이 파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어. 날 이해하지? 승산도 없는 사지에 내 수하들을 밀어 넣을 순 없다고.”

“이해하네.”

1천이 넘는 수인들의 대장으로 서 있는 쿠라스크. 하이에나 수인의 열변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서클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말이었다.

적에겐 약삭빠르고 험하게 구는 하이에나였지만, 자기 무리만큼은 극도로 아끼는 남자였다.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자 쿠라스크가 움찔했다.

그러나 늙은 죄수는 그에게 손대중하려고 일어선 게 아니었다.

“자넨 아직 날 못 믿는구먼. 못 미더우면 거래를 파기해도 괜찮네. 자네 말대로 책임을 묻지 않지.”

“정말?”

“대신.”

아겔의 기세가 스산해졌다. 그에 쿠라스크가 저도 모르게 발톱을 뽑았다.

“내가 정글의 주인이 되었을 땐, 이곳에 자네가 있을 땅은 없을지도 모르겠구먼.”

“…….”

“강요하지 않겠네. 어쩌겠나.”

쿠라스크가 주먹을 쥐었다.

그는 비스트 서클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약탈자’에서 탈퇴하고 쫓겨온 자신들. 상급 죄수들이 있는 ‘산 너머’로 다시 돌아갈 순 없었다.

게다가 정글은 수인들이 살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바다’나 ‘천공’이 어울리는 종족도 있지만, 수인은 대개 정글에 사는 게 알맞은 종족이었다.

이 땅을 포기하라는 말은 비스트 서클의 미래가 사라진다는 의미와 다름없었다.

쿠라스크가 이를 갈았다.

“캬앗, 그런 식으로 나오기냐?”

“다른 선택지가 없으면 나와 함께 가면 된다네.”

“시발, 약아빠진 노인네.”

긍정의 의미로 알아들은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쿠라스크가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수가 없는 건 아니지. 나는 우리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네. 거점은 게 눈 감추듯 해치운 바가 없지 않으나, 쿠라스크 말대로 이젠 제대로 된 전쟁이지. 전쟁은 항상 변수가 많은 법이고.”

아겔이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풍뎅이의 막대 모양 손잡이와 끝이 뾰족한 단검.

모두의 시선이 그 단검에 몰렸다.

“지리의 이점을 살린다면 가능하네.”

“지리의 이점……?”

세로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아흐레. 악마숭배자들을 전멸시키도록 하지.”

* * *

악마숭배자의 본거지.

그곳은 넓은 평원이었다.

근처 커다란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가를 전부 독점한 그들은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주변에 목숨을 위협하는 함정이나 정글 식생군이 많았지만, 흑마법사들이 사는 데는 어떠한 지장도 없었다.

다르키스는 분노하고 있었다.

거점이 두 개나 부서져서 의식을 시행하지 못한 지 나흘이나 지났다.

뿌드드득…….

“빌어먹을…….”

그가 앉아 있는 뼈 의자의 손잡이가 부러졌다. 주먹을 펴서 손에 묻은 잔해를 털어 버린 다르키스는 수하를 불렀다.

“누구 없느냐.”

“예, 주인님.”

흑마법사 한 명이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괴륙은 어찌 되어 가고 있나.”

“70% 완성되었습니다. 급하게 만드느라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의식을 시행하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까지 완성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목숨 바쳐 수행하겠습니다.”

수하가 물러갔다.

다르키스는 거뭇한 자신의 턱을 쓸었다.

괴륙이야말로 악마의 힘을 견뎌 낼 완충재 역할을 하는 장치. 이게 없다면 다르키스라도 백만 번제를 시행하기가 어려웠다.

‘반드시 이번 개방이 끝나기 전에 번제를 성공해야만 한다.’

고독의 그 어두운 감옥으로 돌아간다면, 아겔에게 붙잡힐 수도 있다.

기실 거점 2개를 파괴한 것도 아겔이 한 짓이리라. 번제가 없이는 그를 이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드시. 반드시 번제를 성공해야 놈을 죽일 수 있을 것이야.’

다르키스도 아겔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고독에 그처럼 특이한 죄수도 많았지만, 아겔의 이야기가 더욱 특별하다.

평범한 인간이 수십 년간 고독에서 버텼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만 실존하는 일이었다.

다르키스는 목이 탔는지, 손가락을 목을 긁었다.

그러자 곁에서 있던 헐벗은 여인이 물잔을 하나 들고 와 다르키스 앞에 진상했다.

다르키스는 나무 컵에 담긴 물을 취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변 경계를 강화해라. 아겔이 올 수도 있으니.”

“예……!”

근처에 서 있는 흑마법사들이 사방으로 뛰어갔다.

다르키스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거대 피라미드를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밤, 나는 6급을 넘어선다.’

어두운 기운이 다르키스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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