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79)화 (80/186)

79화 악마숭배자 (3)

악마의 기운이 가득 차오른 악마숭배자의 평원.

안톤 일행은 아직 본거지에 남아 있는 흑마법사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젠장, 저게 뭐야……!”

쿠라스크의 외침에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줏빛 번개 사이로 거대한 얼굴의 형상이 보였다. 먹구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악마의 얼굴이 정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쿠오오오오오오……!

쩍 벌어진 입을 통해 진득한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것에 영향을 받은 주변 흑마법사들이 발작을 일으켰다.

-소망의 성좌시여. 악의 기운으로부터 우릴 보호하소서.

바를라가 펼친 신성 보호막이 그 자리에 있던 수인 개개인에게 적용되었다.

“흡…….”

신성력이 거의 바닥을 칠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바를라는 이를 악물고 보호막을 전개했다.

원래라면 비스트 서클 전원에게 보호막을 적용할 수 없었겠지만, 평원에 난입한 후 수인의 숫자가 조금 줄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성자의 보호막은 수백 명의 수인을 악마의 기운으로부터 보호했다.

파직……! 파지직!

몸을 둘러싼 보호막과 악의 기운이 맞닿아 스파크를 냈다.

바를라는 고개를 돌려 안톤과 쿠라스크를 향해 외쳤다.

“보호막은 오래 가지 않아요! 성역을 선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안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투 망치를 들고 쿠라스크에게 다가갔다.

“시간을 벌도록 하지. 우리와 적을 나눈다.”

“뭐? 어떻게?”

“땅을 가른다.”

안톤은 전투 망치를 고쳐 들었다.

그의 말은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땅을 부수자는 이야기.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쿠라스크는 자잘한 것을 따질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흑마법사들이 포진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씨부럴, 해보자고.”

안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 보조해라.”

흑마법사들을 향해 선 두 수인의 근육이 부풀었다. 두 사람은 힘을 잔뜩 응축한 팔근육으로 땅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근처에 땅이 박살 나며 지반이 흔들렸다. 6급 죄수 두 사람이 일으킨 진동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고, 말 그대로 정말 땅이 갈라졌다.

진창이 된 땅이 갈라지며 흙탕물이 사방으로 퍼졌고, 흑마법사와 안톤 일행 사이를 갈라 버렸다.

한 차례 힘을 발산한 쿠라스크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캬앗……! 이제부터 지키는 싸움이다! 가까이 오는 놈들은 전부 찢어 버려!!”

““예, 대장!””

수인들의 도움으로 말미를 얻은 바를라가 진흙탕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두 손을 모아 기도문을 올렸다.

-소망의 성좌시여, 악마의 손길이 땅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소서.

그는 눈을 감고 기도하는 동안, 한 사람을 떠올렸다.

피라미드 위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아겔. 이젠 오직 그를 믿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가 다르키스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여기에 있는 자들은 그를 포함해 반드시 전멸할 것이다.

‘어르신 부디…….’

바를라의 몸에서 신성한 기운이 조금씩 흘러나와 땅에 스며들었다.

* * *

쾅! 쾅! 쾅!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다르키스는 초월적인 힘으로 아겔을 압박했다. 목의 낙인이 7로 변한 이후, 힘과 속도, 그리고 판단의 과감함까지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크하하하하! 아겔라스토스! 왜 그러는 거냐, 이젠 내가 버겁나?”

“…….”

아겔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방어밖에 없었다.

다르키스는 독이 통하지 않는 데다가 악마에게 힘을 받고 나서는 속도마저 아겔을 뛰어넘었다.

상대방의 기척을 읽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겔이라도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다행히 다르키스가 공격해 올 방향은 아겔에게 전부 읽히고 있었다.

‘허나 언제까지고 이렇게 견딜 수는 없겠지.’

상대방의 공격 경로를 읽고 있었지만, 몸이 따라와 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었다. 아직은 약 기운으로 버틸 만했지만, 곧 기운이 가라앉으면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약을 복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자충수.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고, 오히려 아겔의 몸이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질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아겔의 페널티는 하나가 더 있었다.

쉬익……!

다르키스의 사각을 잡은 아겔은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뼈로 된 팔에 잡힌 루카스가 아겔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

그는 인질을 잡고 있었다.

다르키스는 여유롭게 루카스를 흔들며 말했다.

“크흐흐, 아끼는 꼬마의 형을 죽일 셈인가, 아겔라스토스?”

아겔은 뒤로 물러서서 단검을 꾹 잡았다.

사실 루카스가 죽든 말든 아겔에겐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돌보고 있는 세로에겐 끔찍한 일일 것이다.

‘내 패가 흔들리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지.’

세로 또한 아겔의 ‘패’.

꼬마가 제 형의 죽음 때문에 흔들린다면, 패로서의 이용 가치도 손실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껏 어둠을 걷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활용해 보지도 못하는 건 아쉬웠다.

콰릉……!

순간, 번개가 피라미드 위를 직격했다. 뜨거운 열이 팍 튀었고, 피라미드의 썩은 살점이 타올랐다.

그러나 두 사람 중 누구도 몸을 움찔하는 이가 없었다.

촤아아악……!

먼저 움직인 건 다르키스였다. 날카로운 발톱이 피라미드의 살점을 찢어발기며, 아겔에게 쇄도했다.

대응하기도 어려운 속도였지만, 아겔은 간신히 팔을 들어 다르키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콰직……!

아겔의 왼팔이 박살 났다. 노인은 주저 없이 오른팔을 들어 또 들어오는 주먹을 막아 냈다.

쁘각……!

오른팔에도 금이 갔지만, 다행히 놈의 왼손 주먹을 중독시킬 수 있었다.

다르키스는 중독된 자신의 왼손을 잘라 내고 오른팔로 아겔을 압박했다.

쾅! 쾅! 쾅! 쾅!

노인은 피라미드 살점 위를 구르며 다르키스의 주먹을 피해 냈다. 그러나 물러선 곳에서도 주먹은 날아오고 있었다.

뻐억……!

“큭…….”

그동안 신음조차 내지 않았던 아겔의 입에서 처음 나온 침음.

등의 날개뼈를 얻어맞은 아겔이 땅을 뒹굴었다. 뼈가 박살 나고 입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우득……! 우드드득……!

부러진 뼈가 맞춰지고, 박살 났던 팔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알약’의 효과.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기는 해도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크르르르. 네 꼴을 봐라, 아겔라스토스. 네가 어떻게 평범한 사람인가. 내게 대항할수록 너의 정체만 궁금해지는구나.”

쾅!

다르키스는 봐 주지 않고 아겔을 때려눕혔다. 늙은 죄수는 맞는 와중에도 종종 반격을 시도했고, 때때로 성공적이었다.

다만, 반격이 성공할 때마다 다르키스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은 5초 이상이 되지 않았다.

“쿨럭……!”

아겔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두 손을 대었다.

넘어설 수 없는 압도적인 완력의 차이. 다르키스의 장점인 저주 흑마법엔 당하지 않았지만, 육체의 차이가 심각했기에 밀리고 있었다.

다르키스가 주먹을 쥐었다.

“이 힘…… 넘쳐흐르는 이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넌 날 이기지 못해. 그러니 말해라. 네가 고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아겔은 비척거리며 일어서다가 빗물에 미끄러져 땅을 뒹굴었다. 문득 피라미드의 살점 위가 포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늙었군.’

젊었을 적엔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을 유혹하는 건 편해지고자 하는 마음.

그가 고독에서 살아남은 목적. 그가 짊어지고 있는 대의의 무게.

포기하면 편하지 않으냐는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포기해라. 그럼 편하다. 어둠 속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 나날들이 증오스럽지 않은가.

모두 내려놓고 쉬자고 말하는 듯한 속삭임은 상상만으로도 달콤했다.

뿌득…….

주먹을 쥔 손에서 피가 흘렀다. 아겔은 편안함을 포기하고 다시 일어섰다. 익숙한 고통에 온몸을 맡겼다.

그는 한 몸 편하자고 여태껏 고독에서 살아남은 게 아니었다. 그에겐 짊어진 것이 있었다.

다르키스는 천천히 일어선 아겔을 보고 은근히 회유하려 했다.

“얌전히 내게 굴복해라. 너의 비밀들을 말해 준다면 살려 주겠다. 목숨에 비하면 그리 큰 손해는 아니잖은가? 오히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이가 될지도 모르지.”

“난 널 존중한다, 아겔라스토스. 비록 내게 큰 손해를 안겨 줬지만, 그것보다 너의 가치는 대단하지. 너도 흑마법사가 아닌가. 우리 악마숭배자의 일원으로 받아 주겠다. 악마와 거래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지.”

다르키스가 평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쿠구구구구구……!

대지가 진동하는 듯했다. 그의 손길에 저주받은 땅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나를 봐라! 난 악마와 거래에 성공했고, 결국 상급 죄수로 거듭났다. 너도 나처럼 될 수 있겠지. 나와 함께하면 앞으로 고독 전체가 우리 손안에 들어올 것이다!”

피라미드가 꿈틀거릴 정도로 다르키스의 감정이 드러나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노인은 허리를 똑바로 펴고 다르키스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우선 그것부터 정정하도록 하지.”

“뭐……?”

“우선 난 흑마법사가 아닐세.”

아겔은 흑마법사 따위가 아니었다. ‘기’라는 세상에 만연한 총체적인 신비를 다룰 줄 알았지만, 그는 마력을 다루거나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겔은 단 한 번도 흑마법사였던 적이 없었다.

“둘째로 자네는 악마와 거래한 게 아닐세.”

“뭐라?”

다르키스의 눈이 커졌다. 지금 이 노인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악마와 거래하지 않았다고?”

“그래. 자네는 착각하고 있지. 확실히 백만 번제는 성공적이었다네. 그러나 자네에게 힘을 준 건 공좌가 아니야.”

아겔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다르키스의 힘을 북돋아 준 건 어둠이 맞다.

그러나 악마가 직접 전한 어둠이라기엔 너무 옅었다.

“아마 자네에게 힘을 준 건 ‘주술사’이겠지. 이 모든 게 주술사의 농간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네. 자넨 주술사가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네.”

주술사.

고독의 7급 죄수이며, 상급 죄수 중에서도 이름난 흑마법사.

아겔은 수십 년의 세월 주술사와 대치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그는 악질이지. 자네 같은 흑마법사를 꼬드겨 세력을 일구게 하고, 그 열매를 따 먹는 악귀와 같은 인물일세. 백만 번제를 지시한 것도 사실 그 남자가 아닌가?”

어느새 아겔은 다르키스의 과거를 보고 있었다. 그의 내면으로 들어갈 틈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었다.

그의 감정이 점점 격동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르키스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에게 백만 번제를 지시한 건 분명히 주술사였기에.

“어떻게…… 네가 그걸 알고 있는 거지……?”

“난 긴 세월 주술사와 대치했다네. 몇 번이나 일어났던 일을 모르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아겔은 알고 있었다.

고독에서 흑마법사 집단이 발생하는 건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었다. 교도소의 어둠 속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인물이 바로 주술사였다.

아겔은 이때까지 결성되었던 흑마법사 집단을 와해하면서 주술사를 방해하고 있었다.

“이 의식을 치르면서 이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나? 혹시 내가 제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 말일세.”

“…….”

다르키스는 혼란스러웠다.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자신이 제물이 되는 일에 대하여.

‘가, 감히 누가 날 제물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 보아도 아겔의 말이 잔상처럼 그의 가슴에 남았다.

주술사는 잔혹하다. 그것 하나만큼은 다르키스도 알고 있었다.

그 칼날이 자신을 향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자네 또한 그의 제물일세.”

아겔이 품을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구슬 파편. 괴륙의 몸속에 박혀 있던 것이다.

악마숭배자들은 다르키스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괴륙은 주술사에게 받은 이 구슬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구슬 파편을 보자, 다르키스가 주먹을 쥐었다.

“아, 아니야…… 그분은 내게 보여 주시겠다고 했다. 상급 죄수들이 어떤 삶을 누리는지. 이 고독을 정복하고, 마침내 이곳에서 나갈 희망을 말씀해 주셨다……!”

“고독에서 나갈 수 있다면 본인이 먼저 나갔겠지. 물론 주술사라면 그만한 능력이 있겠지만, 그는 나가지 않고 고독에 남아 있다네. 왜인 줄 아는가?”

아겔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를 처음 본 다르키스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고독 안에서 자네와 같은 희생양을 찾는 게 바깥보다 쉽기 때문일세.”

“크르르르…… 나는 희생양 따위가 아니야……!”

다르키스가 아겔을 향해 주먹을 내리찍었다.

커다란 주먹이 늙은 죄수의 머리를 박살 내기 직전, 어디선가 날아온 피 구슬이 그의 얼굴에 맞았다.

촤악……! 퓨뷰뷰뷰뷰뷰븃……!

진득하게 달라붙은 피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다르키스의 얼굴을 찔렀다.

휘릭!

피라미드의 살점 위에서 누군가 솟구쳤다.

백작 인듀라스.

그의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박쥐 날개를 크게 펼치고 하늘로 날았다. 다르키스의 정신이 아겔에게 팔려 있는 사이 뼈손가락의 구속을 풀어 버린 것이다.

인듀라스는 하늘에 체공하며 루카스를 붙잡고 있었다.

“방심했군, 다르키스.”

다르키스는 피를 훑어 내고 인듀라스를 노려보았다.

“네놈…… 당한 척한 거냐?”

인듀라스는 고고한 태도로 마치 먼지가 묻었다는 듯 어깨를 털었다.

“물론이다. 내가 네게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무지몽매한 인간이여. 이제 너의 패 중 하나가 사라졌다. 기분이 어떠한가?”

“크르르르…….”

백작은 그렇게 말하고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아겔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내 역할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영감.”

“충분하군.”

다르키스가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흉측한 그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몸에서 솟아오른 검은 가시가 촤르륵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좋다. 여기서 너희 둘 다 죽여 버리겠다--!!”

푸확……!

다르키스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이 피라미드 위에서 살점과 뼈가 격렬하게 사방으로 솟구쳤다.

인듀라스는 더 높게 날아올랐고, 아겔은 요동치는 살점들을 피해 움직였다.

다르키스가 아겔을 향해 발을 박찼다. 그는 노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머리를 박살 내 즉사시키려는 것이었다.

노인은 피할 생각도 없는지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달려왔다.

‘정면 승부인가. 좋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숴 주마, 아겔라스토스……!’

다르키스는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이 닿기 전.

어둠이 찾아왔다.

.

.

.

.

.

다르키스는 어둠 속에 있었다.

“……!”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 그 속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자신밖에 없었다.

다르키스는 인간의 몸으로 다시 돌아온 자신을 살폈다.

“이게 어찌 된…….”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에게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틈이 벌어졌구먼. 들어오는 데 꽤 애를 먹었다네.”

눈에 붕대를 감은 노인이 한쪽에 서 있었다. 그는 방금까지 이어졌던 싸움에서 분명 힘겨워하는 모습이었건만, 여기선 그렇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늙은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다르키스가 아겔을 노려보았다.

“여긴 어디지?”

“자네의 내면이지. 자네가 악마와 거래했는지 그 여부도 알 수가 있는 곳이라네.”

“내가 악마와 거래했는지 알 수 있다고?”

“참고로 바키아라는 친구는 확실히 악마와 거래했더군.”

“바키아…….”

다르키스는 주먹을 쥐었다. 바키아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흑마법사.

악마와 거래를 했지만, 자신보다는 기량이 떨어지는 여자였다. 다르키스가 바키아를 자신의 밑에 둔 것도 그녀가 악마와의 거래에서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아겔이 다르키스에게 다가왔다.

다르키스는 발밑의 어둠에 대한 공포로 한 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었지만, 아겔은 그 어둠을 태연하게 걷고 있었다.

노인이 중년의 다르키스 앞에 서서 말했다.

“자네가 정말 악마와 거래했는지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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