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배신자를 찾아라 (1)
배신자.
단어 하나에 사육사실에 있는 두 사람은 침묵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걸 입에 올린 사람이 바로 아겔이었으니까.
그는 절대 허튼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베믈리오가 차분하게 질문했다.
“배신자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이유는?”
“구슬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
다르키스가 ‘괴륙’을 만들 때 썼던 이 구슬은 주술사가 건네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겔에게 대적하는 자.
밖에서 그를 지원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
고독의 모든 부분을 관할하는 교정관들의 눈을 피해 저 물건을 들여왔다는 건, 어느 한 교정관이 그 일을 숨겨 주었다고 볼 수 있었다.
베믈리오가 말했다.
“이곳이 교도소이긴 하나, 우리도 파악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다수 있다. 즉, 감옥 내부에서도 아티펙트나 신기한 물건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뜻이지.”
베믈리오의 말에 타이룽이 반대 의견을 내었다.
“그건 사실이지만, 이 구슬에 한에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서기관님!”
타이룽이 가지고 있는 테블릿으로 홀로그램을 띄웠다.
“제 완벽한 플라스마 연대 측정에 의하면 이건 자그마치 200년은 된 물건입니다! 반중력 시간 가속화 장치를 사용하면 순식간에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고독엔 사육시설 말고 그럴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타이룽의 말에 베믈리오가 헛웃음을 흘렸다.
“스스로 용의자임을 밝히는 건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이런 사안은 최소 교정관급 이상이 전부 용의자입니다. 서기관님께서도 용의자에 속하시지요!”
“상사에게 못 하는 말이 없군.”
베믈리오는 고개를 돌려 아겔을 바라보았다.
“우선 배신자가 있다는 영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겔이 그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군.”
“단지 아직 잡을 수 없었을 뿐.”
“왜지?”
베믈리오는 아겔의 질문에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모두 내 소중한 부하이니까.”
베믈리오는 수하를 아끼는 자로 평판이 자자했다. 아무리 배신했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수하를 의심하는 일은 결단코 하고 싶지 않았다.
“무르구먼, 베믈리오. 자네가 처단하지 않는다면, 내가 찾아내서 죽이겠네. 소장에게 말이나 해 놓게.”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몸을 움직이기 전에 베믈리오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처리는…… 우리가 하지. 영감이 구태여 이런 일까지 신경 쓸 필요 없다.”
“내가 신경 쓰지 않을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런 소릴 하게. 이제부턴 잠잘 때도 뒤통수를 조심해야겠구먼.”
아겔이 베믈리오의 손을 쳐 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사육사실의 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닷새 주겠네. 그때까지 배신자를 찾지 못한다면 내가 직접 찾아서 죽이겠네.”
위잉.
아겔이 사육사실을 나섰다.
베믈리오는 소파에 등을 푹 기대며 팔로 눈을 가렸다.
사육사 타이룽은 잠시간 그를 지켜보았다.
“타이룽.”
“말씀하시죠!”
“지금 당장 움직인다. 배신자를 찾자.”
“하핫, 이젠 동료끼리 서로 의심해야 하는 겁니까? 추리 소설 많이 읽어 두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비꼬지 말고 집행관에게 연락이나 해라.”
베믈리오의 눈이 씁쓸함으로 물들었다.
“곧 배신자를 처단해야 할 테니…….”
.
.
아겔은 사육시설에서 나왔다.
이제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 투기장 지하는 찾을 일이 없을 것이다.
‘보관’하는 일은 이번으로 마지막이었으니. 그가 품속에 넣어 놓은 케이스는 이번 일의 잔금까지 합해서 알약이 4개 들어 있었다.
앞으로도 고독은 그에게 알약을 무상으로 지급할 테지만, 아겔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래’로 얻는 알약은 이 4개가 마지막일 테니까.
‘최대한 아껴서 사용해야겠구먼.’
아겔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투기장에서 나가는 길은 교정관 톨먼이 배웅해 주었다.
“몸조심하라고, 영감.”
톨먼의 말에 아겔은 실소를 흘렸다.
“자네나 조심하게, 톨먼. 잘못하면 자네 목이 날아갈 수도 있게 생겼으니.”
“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영감.”
톨먼이 질문했지만, 아겔은 답하지 않고 투기장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만 기다려, 영감!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자네 상사가 알려 줄 테니 그에게 듣게.”
다 말해 줄 수도 있었지만, 또 굳이 입을 나불거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외부와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투기장의 주인. 유력한 용의자 중 하나이다.
‘여섯.’
사육사 타이룽을 제외하면 교정관은 6명이다.
“아, 새로운 교정관이 부임했다 했던가.”
그러나 새로 부임한 교정관은 이제 막 고독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기에 그런 짓을 벌일 확률이 낮다.
‘고독’에 적응하는 것에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테니.
쿠구구구구……
아겔이 출구를 지나자 투기장의 문이 닫혔다. 그는 어두운 복도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아겔은 오랜만에 고독을 느꼈다.
안톤도, 세로도, 그리고 여태껏 함께했던 죄수들과도 떨어진 혼자만의 시간. 혼자 남은 그는 퍽 기분 좋은 잔잔함을 느꼈다.
아겔은 복도에 있었다. 굳이 감방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투기장에서 아겔이 배정된 3-448 감방은 너무 멀었고 차라리 복도에서 쉬는 게 낫다고 판단이 되었다.
“편하구먼.”
그것이 아겔이 여태껏 누려 왔던 느낌이었다.
굳이 나서지 않고, 고독의 어둠 속에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는 것. 그러나 이젠 바뀌었다.
정글을 손에 넣었고, 이것을 발판으로 ‘산 너머’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곳엔 아겔을 노리는 수많은 상급 죄수가 득실거린다.
하나하나 지금의 몸으론 상대하기 벅찬 놈들이었지만, 다행히 아겔은 혼자가 아니었다.
몇 가지 제약이 있긴 했어도, 무엇보다 고독 전체가 아겔의 편이나 다름없었다.
서기관이나 교정관의 무력은 생각만 해도 든든한 힘이라고 볼 수 있다. 배신자의 존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주술사에게 구슬을 준 건 아마 어둠의 사도겠지.’
어둠의 사도.
성좌를 따르는 빛의 사도와 달리, 악마 혹은 공좌라 불리는 악신의 대리자.
그들은 표면적으론 전쟁에서 패배하고 외계(外界)로 쫓겨나 그곳에서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은하 정부와 성좌 교단이 널리 공언한 것과 달리 그들은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다.
‘빛의 사도가 3명이 죽고, 어둠의 사도는 1명밖에 죽지 않았는데, 어디가 패배란 말인가.’
어둠의 사도들은 그저 잠깐 겁먹은 것뿐이다.
지금껏 어둠 속에서 어마어마한 힘과 권력을 누려 왔었는데, 그들 중 누군가 죽을 수 있다는 것에 말이다.
그리고 잠깐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어둠의 사도들은 빛의 사도와 달리 서로를 믿지 않는 자들.
누군가의 빈 자리만큼이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아겔은 어둠의 사도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너무 먼 것보단 가까이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게 낫다.
‘누가 배신했으려나.’
기실 누가 배신했어도 그럴 만했고, 아겔에게 그리 큰 염려가 되진 않았다.
누가 배신했든 죽이면 그만이니까. 고독의 주인도 이해해 주리라.
“나도 좀 움직여 봐야겠구먼.”
가만히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는 건 그리 탐탁지 않다.
아겔은 복도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 * *
교정관 주암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독 내부를 순찰하고 있었다.
순찰 담당인 주암의 일은 고독 내부를 다니면서 죄수들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는 업무에 충실했고, 문제를 일으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도 난 내 업무에 충실하다.’
그는 언제나 말끔하게 정복을 차려입고 머리를 넘기고 다녔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못생긴 얼굴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주암은 가끔 혼자 있을 때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음…… 오늘은 좀 괜찮군.”
그는 자신의 얼굴을 살피며 느낌을 말하고, 손거울을 품에 넣고 앞을 바라보았다.
복도의 어둠 속에 아겔이 서 있었다.
“헉……!”
“주암, 잘 지냈는가.”
아겔이 나타날지는 상상도 못 했는지, 주암은 꽤 놀랐지만, 프로답게 표정을 재빨리 숨겼다.
“보고 계셨습니까……?”
“뭘 말인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겔이 고개를 갸웃하자, 주암이 화제를 돌리려 말을 이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십니까?”
“몇 가지 좀 물어보고 싶어서 말일세.”
본인이 아겔을 찾아가 경고하는 일은 있어도 그가 직접 자신을 찾아오는 일은 드문지라, 주암은 흔치 않게 긴장했다.
“말씀하시죠, 영감님.”
“자네 최근 외부에 다녀온 적이 있나?”
교정관이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휴가밖에 없기에 주암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사생활을 캐묻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없었습니다. 전 휴가를 쓰지 않은 지 고독 시간으로 6년이 지났습니다. 밖에서 만날 사람도 없고요.”
배신자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왜인지 자랑스럽게 말하는 주암이었다.
아겔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랬군. 만날 친구가 없나?”
“음…… 없습니다.”
“하긴. 자네가 좀 외톨이 기질이 있지.”
“…….”
아겔은 턱수염을 만지며 생각에 빠졌다.
고독의 시간은 6배 빠르다. 마지막 휴가가 은하 표준으로 1년 전이었다면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대상이었다.
“이전에 다르키스와 접촉한 일이 있나?”
“다르키스? 아하, 5개월 전에 죽은 악마숭배자의 리더 말이군요.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으나, 별일 없었습니다만.”
“그랬군.”
이로써 주암은 아겔의 용의자 후보에 제대로 등극했다.
다르키스와 접촉한 일도 있었고, 마지막 휴가도 왠지 거슬렸다.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냥 궁금해서 그렇네.”
“아…….”
주암은 할 말을 잃고 잠시 침묵했다.
아겔이 말했다.
“질문에 답해 주어서 고맙네. 그럼 욕보게.”
“아, 예.”
주암은 고개를 숙여 사라지는 아겔에게 인사했다.
아겔이 사라지자마자, 주암은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내가 손거울을 보고 다니는 걸 들키진 않았겠지…… 들켰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아, 영감님은 맹인이었지, 참.”
아겔은 마치 눈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니, 가끔 그가 맹인이란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주암은 다시 한숨을 내쉬고 손거울을 꺼내 보았다.
그의 손거울은 핑크색에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이번에 구한 최신 한정판 거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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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겔은 다음 심문 대상을 찾았다.
평소 교류가 잦았던 소류아가 그 대상이었다.
소류아는 아겔이 자신의 방으로 찾아오자, 기쁜 얼굴로 맞이했다.
“영감! 오랜만이야!”
키가 작고 어린아이 같은 외형이었지만, 소류아는 소인족 중에서도 나이가 꽤 많았다.
행동은 나이 먹은 대로는 아니었지만.
“저번에 말해 준 거! 귀신 처리했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
“뭐 서로 돕고 사는 거지.”
고독에 있는 ‘귀신’은 소류아가 만드는 생체 인형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오로지 죄수들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것. 귀신이 교도관을 살해할 뻔했으니, 아겔이 도와준 셈이 되었다.
“그보다 여긴 무슨 일이야? 도울 수 있는 건 무조건 도와줄게!”
“몇 가지 질문할 게 있어서 말일세.”
“그거야 어렵지 않지. 뭐든 물어봐!”
소류아는 소파에 앉아서 열심히 게임을 했다. 커다란 모니터에서 최신 게임을 즐기는 소류아였다.
아겔은 주암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역시 밖에 나갔다 온 일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최근 외부로 나간 적이 있는가?”
“어, 이 게임 사려고. 붕망겜 18이긴 한데 쓰레기 같아도 끊질 못해.”
“자네 말고 다른 교정관에 대해선 아나?”
“최근? 1년 사이라고 하면 교정관은 전부 밖에 나갔다 왔을걸? 휴가 잘 안 나가는 주암도 오랜만에 갔다 왔을 텐데. 뭐시기 이상한 고양이 거울을 산다고 했나?”
“오호라.”
아겔은 턱수염을 매만졌다.
소류아의 말은 사실임에 틀림이 없었다. 주암이 오랜만에 나갔다 왔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이렇게 되면 단순히 밖에 나갔다 왔다는 것으론 진짜 배신자를 가릴 순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아겔이 말했다.
“잠깐 자네의 내면을 보여 줄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