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배신자를 찾아라 (2)
아겔의 말에 소류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태껏 대화할 때 시선은 모니터에 박혀 움직일 줄 올랐고 손에는 게임기를 꽉 붙잡고 있었던 소류아였지만, 아겔의 한 마디에 몸이 반응했다.
“가, 갑자기? 내면을 보여 달라고?”
“무리한 부탁인가?”
소류아는 아겔이 말하는 내면을 보여 달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실제로 경험해 보기도 했고.
교정관 중에 아겔의 능력을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다.
아겔은 과거에 과연 교정관들이 자신의 편에 섰는지 시험해 보았고, 교정관들은 하나씩 아겔의 시험을 통과했었다.
소류아는 그때의 기억이 별로 좋지 않았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교정관들도 그리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내면으로 들어가면 모든 감정과 과거가 들키고, 또 밑바닥까지 이어진 어둠의 공포를 느껴야 했으니.
소류아가 거부하는 것도 당연했다.
“자, 잠깐만. 도대체 뭔 일이길래 그러는 거야? 그건 저번에 한 번 했잖아.”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거라네.”
“확인하고 싶은 거?”
소류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애초에 아겔은 자신의 방에 찾아와 이것저것 물을 사람이 아니었다.
혼자 있는 걸 즐겼으면 즐겼지, 소류아가 찾아가지 않는 이상 고독에서 모습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란 말이다.
소류아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아겔에게 말했다.
“뭐가 궁금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면 보여 주는 거 말고 진짜 다 해 줄게. 뭐든지 물어보라고.”
“굳이 입씨름할 필요 없지.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것뿐이니 협조해 주게.”
“그, 그만둬. 그냥 말로 해. 나 거짓말 안 하는 거 알잖아? 난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그거야 모를 일이지. 고독은 사람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니 말일세.”
아겔의 손이 가까이 다가왔다.
소류아는 기겁을 하고 앉아 있던 소파에서 펄쩍 뛰어 아겔에게서 도망쳤다.
그가 작정하고 아겔의 손길을 거부하는 이유는 생각 외로 간단했다.
‘아, 안 돼……! 저번에 본 야동을 들킬 순 없어……!’
나이는 할아버지에 가까운 소류아였지만, 행동이나 생각하는 것은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었다. 겉모습뿐만이 아닌, 정신 연령까지 아이로 머무는 소인족의 특성.
소류아는 한창 야한 것에 관심이 많을 때였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이건 교정관으로서의 명령이야……!”
“자네가 내게 명령을 내릴 위치는 아니지.”
“제길……!”
소류아는 결국 귀신을 불러냈다.
그의 아기자기한 방 한쪽 통로에서 각종 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아이의 방처럼 꾸며진 소류아의 사무실과 달리 그들은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와 덜렁거리는 것부터 뼈가 기괴하게 뒤틀린 것까지.
귀신들은 소류아의 앞을 가로막고 아겔에게서 보호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아겔 영감?!”
“쯧.”
소류아가 결사적으로 아겔의 손길을 거부했다.
이렇게 나오면 아겔도 힘으로 할 수 없었다. 소류아같은 강자의 내면에 강제로 침투하려면, 아겔도 만만치 않은 힘을 사용해야 할 테니까.
아겔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럼 자네의 근무 태만에 대해 서기관에게 알리도록 하지. 혹시 망가진 귀신이 그거 하나만 있던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나?”
복도엔 소류아가 만들어 낸 수많은 귀신이 있었고, 아겔이 귀신들과 마주치는 건 볼일 보는 것처럼 빈번했다.
그런 아겔에게 망가진 귀신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귀신이 망가졌는데도 처리하지 않은 건 소류아의 근무 태만이었다.
“뭐……?”
“저번엔 자네 귀신이 고작 5급 흑마법사에게 주도권이 빼앗기는 일까지 있었지. 이미 망가져서 자넨 몰랐겠지만, CCTV엔 잘 녹화되어 있을 것 같은데.”
“아앗……!”
귀신들 사이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소류아가 재빨리 튀어나와 아겔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자, 잘못했어! 제발 그러지 마……! 나 월급 못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월급 대부분을 게임에 처박는 습관이 고쳐질 테지. 몇 달 월급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태도를 배우게.”
“으아아악……! 안 돼! 항복! 항복!”
소류아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엎드렸다.
마치 양이 공포에 몸이 경직된 것처럼 소년은 땅바닥에서 몸이 굳었다. 그리고 흐느꼈다.
“크흐흑…… 다 늙은 할아버지한테 야동 취향이나 들키는 내 꼴이라니…….”
“…….”
아겔은 머리를 긁적였다.
게임 중독에 음란물까지.
고독의 교정관이라는 놈이 참 가지가지 했다.
그래도 소류아의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아무 이유 없이 고독의 교정관 노릇을 하는 게 아니었다.
행동하는 건 어이가 없어도, 그가 작정한다면 배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아겔은 소류아의 내면으로 침투했다.
그리고.
…….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아겔은 소류아의 내면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왔다.
“흑흑…… 다 됐어……?”
“별거 없군.”
빠르게 소류아의 내면을 확인한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류아는 배신자가 아니었다. 그의 최근 기억을 가득 채운 건 아겔이 관심 없는 야릇한 것들과 게임뿐이었다.
잠시 훌쩍이던 소류아에게 어디선가 나타난 귀신이 휴지를 내밀었다. 그는 휴지를 낚아채 눈물범벅인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살짝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나 화났어. 이유를 말해. 내 내면을 들여다본 이유가 뭐야.”
“신경 쓰이는 일이 일어나서 말일세.”
“별일 아니면…… 씨바, 가만 안 둬.”
소류아의 말투는 거칠었으나, 어린 모습으로 하니 그리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아겔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교정관 중에 배신자가 있다네.”
소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까지 화나 있던 표정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배신자……? 그게 무슨 말이야.”
“자네는 확실히 배신자가 아니니 말해 줌세. 교정관 중 누군가가 외부인과 결탁하고 몰래 죄수를 도운 일이 있네.”
“뭐라고?”
소류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간수와 교도관은 평범하게 고용되어 고독에서 일하는 처지에 불과했지만, 교정관 이상부턴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고독의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몸. 사실 고독의 거의 갇혀 사는 건 죄수들과 비슷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자원하여 충성한 일이다. 누가 억지로 탄압한 것이 아닌 스스로 결정한 일.
누군가 충성을 저버리고 배신했다는 건, 주인님의 이익에 위배되는 일. 그런 일은 애초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우리 모두 주인님께 충성한 몸인데…….”
“아마도 ‘계약’에 손댈 수 있는 누군가와 결탁한 것이겠지.”
“…….”
고독의 주인이 가진 능력 중 하나인 ‘계약’.
누구도 계약의 내용을 손상할 수 없다. 스스로 충성을 맹세한 교정관들은 주인과 계약으로 묶여 있는 몸이었다.
주인이 해지하지 않는 이상, 원한다고 파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소류아의 눈이 흔들렸다.
“그, 그럼…….”
‘고독의 주인’이 갖춘 능력을 파훼하려면 그만한 힘과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우주를 통틀어 수십 명도 되지 않는다.
“어둠의 사도들. 그들이 고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지. 아니, 그들뿐만이 아닌가. 최근엔 성좌 교단 측에서도 새 교정관을 부임하게 했지.”
“…….”
“내 생각엔 갈수록 위험해지는군. 자넨 어찌 생각하나.”
아겔의 질문에 소류아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조용히 아겔을 숨겨 왔지만, 앞으론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장난칠 시간은 끝이었다.
소류아가 고개를 들었다.
“주인님은 놈들이 영감에게 손을 뻗치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정말 들켰다면, 수를 쓰시겠지. 주인님은 절대로 당하고만 살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야 할 걸세. 그게 애초에 나와 그가 맺은 ‘계약’이었으니.”
아겔의 말에 소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 갈 무렵.
방문을 누군가 노크했다.
똑똑.
소류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야?”
-접니다, 선배님.
목소리를 들은 소류아가 침을 삼켰다.
아겔은 처음 듣는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지?”
“……이번에 새로 부임한 교정관.”
소류아는 그렇게 대답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새로 부임한 교정관의 모습이 보였다.
* * *
고독에 새로 부임한 교정관, 페이든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그는 고독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답답할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항상 쓰레기 같은 냄새가 나는 복도와 감방. 그리고 복도 어느 곳에서나 들려오는 귀신의 흐느끼는 소리.
교단이 내려준 성스러운 임무를 받고 이곳에 부임하게 된 페이든은 처음엔 열정이 넘쳤지만, 6개월 가까이 이 고독을 지켜보며 느낀 감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참 악명답게 쓰레기 같은 곳이군.’
우주에서도 제일 흉악한 범죄자들이 모인 소굴은 과연 위험한 곳이었다.
물론 7급 각성자인 페이든에게까지 위험한 곳은 아니었지만,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죄수나 귀신들이 우글거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실한 페이든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죄수들의 처우였다.
“낮은 급수의 죄수들에게나 지옥 같은 곳이지. 힘 있는 놈들은 역시 이곳에서도 한자리하고 있군.”
페이든이 고독의 죄수들을 지켜보며 느낀 점은 죄수들이 제대로 된 형벌을 받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최악의 교도소답게 죄수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상급 죄수들은 그러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고독에서 세력을 일구고 사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흉악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교화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면, 차라리 확실히 하던가.’
여느 교도소와 다르게 고독은 죄수들의 심성을 바꾸고 다시 착실한 사회인으로 바꾸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오직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지옥과도 같은 곳.
도저히 교정이 불가능한 죄수들이 종착지로 고독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고독에 보내진 죄수들도 있긴 했다.
페이든은 자신의 가슴에 달린 교정관 배지를 만지작거렸다.
“말만 교정관이지, 흥.”
페이든은 자신이 고독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반드시 상급 죄수들을 전부 독방에 처넣으리라 다짐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형벌이 될 것이다.
페이든은 복도를 걸어 소류아의 방이 있는 문 앞에 섰다.
이 빌어먹게 넓은 행성 교도소는 본관만 해도 어마어마한 크기였기에 CCTV 근무자의 도움을 받아 겨우 도착했다.
페이든은 불편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불만이 생긴 건 고독의 죄수들의 처우뿐만이 아니었다.
‘교정관의 모든 업무를 하나씩 다 배워야 한다니.’
소장의 지시에 따라 고독의 존재하는 각 교정관의 업무를 전부 일일이 배워야 했다.
고독의 교정관은 7명.
지난 6개월 동안은 두 달씩 세 명의 교정관에게 업무를 배웠다.
셰프 오드리에게 끔찍한 고독의 식사를 만드는 법을.
기관 담당 아마넬에겐 고독의 심장과도 같은 동력실을.
쉬카에겐 특수 감방의 업무를 배웠다.
하나만 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업무량이었다.
다른 것에 신경 쓸 수 없게 만들려는 속셈 같았지만, 일단 페이든은 소장의 지시를 따랐다.
교정관으로 부임한 그가 소장의 지시에 불복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후, 나중을 위해 참자, 페이든 로자리오. 교단이 날 이곳으로 보낸 목적을 잊어선 안 된다.”
페이든은 노크하기 전, 눈을 감고 목걸이를 쥐었다.
잠시 자신의 성좌인 ‘인내’에게 짧게 기도를 올린 그는 문을 두드렸다.
“접니다, 선배님.”
“어서 와.”
달칵.
문이 열렸다.
소류아가 굳은 얼굴로 페이든을 맞이했다.
평소 밝은 인상이었던 그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위화감을 느낀 페이든이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의 정체는 그의 방에 들어서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누굽니까.”
웬 눈에 붕대를 감은 늙은 죄수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목에는 숫자가 2개밖에 없었고, 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이쪽은 아겔라스토스.”
소류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아겔을 소개했다.
페이든이 부임하기 전, 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이었다. 만약 아겔과 페이든이 만날 상황이 생긴다면, 억지로 숨기려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에 따라 소류아는 아겔의 이름을 숨기지 않고 말해 주었다.
“이쪽은 새로 부임한 교정관, 페이든 로자리오. 오늘부터는 내가 일하는 거 보러 온 것 같네.”
아겔이 말했다.
“호오, 새로 부임한 교정관이셨군.”
“날 아나?”
“그럴 리가. 그저 소문만 조금 들었을 뿐일세.”
아겔은 문득 주변이 밝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밝아진 건 아니고, 성좌를 믿는 자들을 만나면 대개 이런 느낌을 받았다.
죄를 지은 성자, 바를라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마, 믿고 있는 성좌는 다른 것 같지만.’
아겔이 의자에서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군.”
페이든은 그의 꺼림칙한 주름진 손을 보고 살짝 눈살이 찌푸리고 악수를 받지 않았다.
“넌 뭐길래 이곳에 있는 거냐.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처벌하겠다.”
페이든의 말에 소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 방에 누가 있든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닌데?”
소류아의 말에 잠시 아겔을 노려보던 페이든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제넘게 행동했군요.”
“그래. 입조심해. 내가 어려 보인다고 얕보면 진짜 죽여 버릴 거니까.”
“예.”
소류아는 TV 모니터를 끄고 돌아왔다.
“벌써 내 업무를 배울 차례야?”
“그렇습니다. 오드리 선배와 아마넬 선배, 쉬카 선배에겐 다 배웠습니다.”
“그럼 이제 반 정도 왔네. 좀만 더 고생해. 복도로 나가자.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복도에서 하는 일이니까.”
페이든이 아겔을 돌아보았다.
“저자는 이곳에 그냥 두고 가셔도 됩니까?”
“어. 상관없어.”
소류아는 대충 대답하고 문밖으로 나갔다.
방의 주인이 나갔는데, 안 나설 수도 없는 페이든은 서둘러 그를 따라나섰다.
방에 남겨진 아겔을 흘겨보면서.
‘저 노인은 뭐지.’
뭐길래 소류아가 방에 두고 갈 정도로 신뢰할까 하는 의문이 페이든의 머릿속을 감돌았다.
삐빅.
그 순간, 교정관들에게 지급된 단말기가 울렸다.
서기관 베믈리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정관 전원, 지금 서기관실로 집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