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86)화 (87/186)

86화 배신자를 찾아라 (3)

베믈리오의 집합 명령에 교정관들이 하나둘 서기관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현재 교도소장은 출장을 나간 상태. 그와 견주는 봉인술사는 두문불출한 상태이니 사실상 지금 고독을 관장하는 사람은 베믈리오였다.

베믈리오는 먼저 도착한 소류아와 페이든을 바라보았다.

소류아는 수십 년을 함께 한 동료. 그와 다르게 페이든은 이제 막 합류한 애송이밖에 되지 않는다.

고독에서야 6개월 동안 일을 배웠다곤 하지만, 서기관인 베믈리오와 접점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은하 표준 시간으론 이제 1개월 차 신입에 지나지 않는다.

베믈리오가 아끼는 수하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성좌 교단의 개.’

놈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고독이 만만히 보여선 안 된다.

물론 그렇다고 페이든을 따돌릴 생각 따윈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 애송이가 이곳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도록 막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시기에 배신자를 찾아야 하는 게 한탄스러웠다.

‘도대체 누가……’

베믈리오가 수하들을 믿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계약’ 덕분이었다.

어떤 면에선 구속과 속박이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이들이 고독의 고위 간부 노릇을 할 수 있는 것도 전부 ‘계약’의 힘 덕분이었다.

계약이야말로 교정관들의 각성 등급이 7급인데도, 상급 죄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이유였다.

이들은 평범한 7급 각성자가 아니며, 특히 고독에 관한 일을 할 땐 그 능력이 더욱 강화된다.

‘그렇기에 누군가 배신하면 훨씬 힘들어지지…….’

평소 배신을 상정하지 않았기에 더욱 착잡한 감정이 들었다.

페이든은 베믈리오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자코 있었다.

차례대로 교정관들이 서기관실에 도착했다.

특수 감방의 쉬카.

셰프 오드리.

기관 담당 아마넬.

투기장 담당 톨먼.

순찰 담당 주암.

먼저 와 있던 소류아와 페이든까지 자리에 모두 도착했다.

교정관들은 소파가 없는 서기관실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베믈리오 앞에 섰다.

베믈리오가 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집에 응해 줘서 고맙다. 오늘은 일정 회의라기보단…… 공지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너희를 불렀다.”

“공지사항?”

교정관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베믈리오를 바라보았다.

“저, 서기관님?”

페이든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었다.

베믈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란 의미였다.

교정관들이 잠깐 그를 노려봤지만, 페이든은 아무렇지 않게 질문했다.

“사육사 선배께서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페이든의 질문에 아마넬이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누가 그걸 몰라? 서기관님께서 다 모였다면 다 모인 거야.”

“너무 쏘아붙이지 마라, 아마넬.”

“예, 서기관님.”

베믈리오의 제지에 아마넬이 고개를 숙였다.

“사육사는 내가 따로 지시한 사항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인원은 이걸로 충분하지. 그럼 계속해도 되나?”

교정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었던 페이든도 뻘쭘한 얼굴로 손을 내리고 다시 열중쉬어로 돌아갔다.

베믈리오는 잠시 심호흡하고 책상 위로 두 손을 깍지꼈다.

잠시 시선을 내리고 있던 그가 눈을 들며 말했다.

“우리 가운데 배신자가 있다.”

“……!”

베믈리오가 내뱉은 말은 교정관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누군가는 경악한 얼굴을 했고, 누군가는 입술을 씹었다.

공통된 뉘앙스는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물음이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너희들의 의문을 이해한다. ‘계약’은 절대로 깰 수 없는 것. 그러나 절대로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군.”

고독의 모든 기관(機關) 장치를 담당하는 쉬카가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계약’을 깨뜨릴 수 있는 존재가 이곳에 있을 리가…….”

달칵.

노크도 없이 서기관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베믈리오를 포함해 교정관 전원의 시선이 문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늙은 죄수가 서 있었다.

“그걸 가능케 할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 예를 들면, 어둠의 사도가 있지.”

아겔이 서기관실에 나타났다.

.

.

페이든은 갑자기 저 늙은 죄수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웃긴 건 교정관 중 누구도 이 상황에 의문이나 위화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럴 수도 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상식적으로 교도소 간부끼리 모이는 자리에 죄수가 함께한다는 건 이상했다.

‘뭐, 뭐야 이 늙은이.’

페이든은 너무 당황해서 질문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대화의 흐름에 딸려 갈 수밖에 없었다.

아겔이 말했다.

“베믈리오는 여태 배신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네만. 그것에 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나?”

“물론.”

베믈리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죄수와 접촉한 정황이 예전부터 있었다. 누군지는 나 또한 알 수 없지. 예를 들면, 이 물건이 있다.”

베믈리오는 아겔에게서 받은 구슬의 파편을 꺼냈다.

“이것을 외부인에게 받아서 고독의 죄수에게 전달한 자가 있다. 이것 말고도 죄수들이 고독에선 자체 생산할 수 없는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게 종종 발견되었지.”

베믈리오가 이 구슬과 비슷한 케이스의 물건을 고독에서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넓디넓은 교도소 전체를 한정된 인원으로 감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베믈리오는 이 구슬과 같이 외부에서 들여온 물건이 죽은 죄수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을 이전에 목격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베믈리오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순찰 담당인 주암이 사색이 된 얼굴로 반응했다.

자신이 발견했어야 할 일을 모르고 있었으니, 근무 태만이나 마찬가지였다.

베믈리오가 말했다.

“우선 주암은 3개월 월급을 삭감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주암은 묵묵하게 고개를 숙였다.

베믈리오의 시선이 톨먼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톨먼. 고독과 외부가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인 투기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 알고 있나?”

“무, 물론입니다. 제 책임입니다.”

톨먼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자네도 3개월 삭감이야.”

“알겠습니다.”

베믈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죄가 없진 않으나, 그렇다고 배신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 물론 두 사람이 책무를 다했다면, 미리 배신자를 발견할 수 있었겠지만, 나조차 정체를 알 수 없었으니…….”

고독에서의 교정관 업무란 것은 그랬다.

각 교정관에게 맡겨진 일은 어마어마했고, 타인이 손대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서기관인 베믈리오조차 보고는 받지만 모든 것을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정관이 작정하고 숨기면 숨길 수 있는 일이었다.

베믈리오가 슬쩍 아겔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배신자를 찾아야 한다. 시간은 닷새. 그 안에 해결한다.”

서기관의 말에 교정관 전원이 침묵했다.

배신자를 닷새 안에 찾으라니.

찾는 건 둘째로 쳐도 배신자의 처우가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소류아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어, 서기관님? 배신자 찾으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죽인다.”

“…….”

가차 없는 단호한 말에 교정관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 있는 교정관들은 최소 10년 이상 서로 합을 맞춰 온 사이였다.

고독에서의 시간으론 자그마치 60년.

그런 동료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소류아는 눈치 없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난 아니라서…….”

“뭐?”

교정관들의 시선이 소류아에게 꽂혔다. 소류아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난 아겔 영감에게 검사를 받았거든. 기분이 좀 그랬지만, 확실하게 난 아니니까 그렇게 알아.”

“그렇군.”

베믈리오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겔의 권능을 알고 있었다. 내면으로 침투할 수 있는 강력한 힘.

아겔의 관록이 더해진다면, 타인의 진의도 꿰뚫을 수 있는 권능이었다.

“그럼 아겔 영감. 여기에 있는 교정관을 모두 검사해 줄 수 있나?”

베믈리오의 요청에 아겔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불가하네. 우선 난 저번처럼 권능을 남발할 만한 체력이 없네.”

아겔은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교정관들은 전부 한가락하는 강자들. 내면에 침투하는 게 손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중요한 순간에 한두 번 정도는 억지로 가능할 것이나, 그 이상 사용하면 아겔의 건강에도 무리가 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겔은 거절한 것이었다.

“내가 자네들에게 닷새를 준 것도 그 이유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직접 배신자를 찾아내 죽였을 게야.”

“……아쉽군.”

베믈리오는 왠지 안도감이 조금 묻어나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교정관들은 아겔의 말을 듣고서야 베믈리오가 했던 말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닷새가 주어진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겔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베믈리오가 고개를 들었다.

“당장이라도 배신자를 찾고 싶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영감. 사육사가 죄수들을 심문하러 갔다.”

“사육사는 신뢰하는 겐가?”

“그런 셈이야. 만약 사육사가 배신자라면 내 손으로 처단하겠다.”

“뭐 알아서 하게. 나는 결과만 기다릴 뿐이네. 다시 말하지만, 닷새일세. 그 안에 찾아오게.”

아겔이 말을 마치고 서기관실을 나섰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아겔의 행동이나 말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페이든 또한 가만히 있었다. 다만, 마음속엔 거대한 의문을 품고서.

‘저 노인. 뭔가 있다.’

은하 정부와 성좌 교단이 지켜보는 고독.

이 끔찍한 교도소가 감추고 있는 비밀 중 하나인 게 틀림없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밝혀내느냐였다.

여기서 대놓고 묻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되려 추궁당할 수도 있는 분위기였기에.

페이든은 잠자코 때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베믈리오가 의자에 등을 푹 기대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내가 할 말은 이게 끝이다. 앞으로 행동을 조심하라.”

“예, 알겠습니다.”

교정관 전원이 허리를 숙였다. 그들은 베믈리오에게 인사를 마치고 하나씩 서기관실을 나섰다.

베믈리오는 그들이 모두 나가고 혼자가 되었을 때, 한숨을 내쉬었다.

‘닷새.’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이 시간이 아니면 도망갈 시간은 절대 없으리라.

닷새가 지나고 나서는 아겔이 직접 범인을 찾기 시작할 테니.

아니, 이미 소류아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으로 보아, 그는 베믈리오를 믿지 않고 있음이 분명했다.

말은 닷새라 하였지만, 아겔은 벌써 배신자를 찾아나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베믈리오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부디 잡히기 전에 도망쳐라……’

* * *

페이든은 소류아를 따라 서기관실 밖으로 나왔을 때,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밖에선 간 줄 알았던 아겔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아무런 위화감 없이 교정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범한 죄수가 절대 아니다. 급수도 알 수 없고. 저자는 누구지?’

아겔라스토스.

그의 이름이 페이든의 머릿속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소류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해, 안 가고.”

“갑니다, 선배. 근데 물어볼 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 가면서 말해.”

소류아는 걸음을 옮겼고, 페이든은 그를 뒤따라가며 멀어지는 아겔을 흘깃거렸다.

“저 노인은 도대체 뭡니까?”

“그냥 나이 많은 죄수야. 현명해서, 무슨 일이 있으면 도움을 받곤 해.”

“그냥 평범한 노인이라고요?”

“그래. 그렇게 궁금하면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면 되잖아? 그건 그때 가서 찾아보고, 지금은 일에 집중해.”

“예.”

페이든은 고개를 숙이며 소류아를 따랐다.

왠지 이번에 마주친 저 노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 같았다.

.

.

아겔은 서기관실을 나온 교정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암은 조금 시무룩한 상태였고, 톨먼은 길길이 날뛰었다.

“젠장, 영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나에게 먼저 말해 줘야지! 내 월급이…… 크흑……!”

“안다고 결과가 달랐겠는가. 어차피 지나간 일이라네.”

셰프 오드리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아겔의 뺨에 손등을 가져갔다.

“이거 배신자 있다는 것도 영감이 제기한 안건이지?”

“뭐 그런 셈이지.”

“그럴 줄 알았어. 피곤하게 되었네?”

“언젠 안 피곤했나.”

아겔은 그녀의 손길을 툭 쳐 냈다.

“어머, 쌀쌀맞아라. 그럼 난 먼저 가 볼게. 오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말이야.”

오드리가 먼저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 주암도 순찰을 돌러 갔고, 톨먼도 투기장으로 돌아갔다.

아마넬은 고독의 심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 동력실 담당이라 시간에 여유가 많지 않아서 일찍 돌아갔다.

남은 건 쉬카뿐이었다.

아겔이 말했다.

“쉬카,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나?”

고독의 특수 감방을 담당하는 쉬카는 매력적인 남자는 아니었다.

침침한 얼굴에 알 수 없는 기운을 흘리는 쉬카였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마치 흑마법사가 일으킨 스켈레톤에 살가죽만 붙여 놓은 모습 같았다.

그는 아겔과는 조금 결이 다른 특유의 감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부탁 정도는 어렵지 않지. 특수 감방에 볼일이 있나?”

쉬카가 관리하는 특수 감방은 독방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독방은 모든 감각을 차단하는 밀폐된 곳이라면, 특수 감방은 여유가 조금 있었다.

다만, 특수 감방은 독방형보다 길게 이어진다.

고독의 시간으로 최소 1년 넘게 죄수를 가둘 수 있고, 가장 오래된 죄수는 120년 동안 갇혀 있기도 했다.

“일단 가면서 얘기하세.”

“그러지.”

아겔은 쉬카와 함께 복도를 걸었다.

이곳에서 특수 감방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변환’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근처에 특수 감방이 있었다.

아겔은 쉬카와 걷는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쉬카도 그리 말재주가 있는 편은 아니라 조용히 복도를 걸었다.

다만, 그도 모르게 미세하게 손이 떨리는 건 감추지 못했다.

아겔은 그의 손 떨림을 감지했지만, 묵묵히 복도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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