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88)화 (89/186)

88화 합연기연 (1)

아겔은 한쪽으로 물러선 쉬카의 기척을 유심히 살폈다.

‘뭔가 이상한데.’

쉬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엔 조용하고 음침한 성격이긴 했지만,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가 모를 리가 없다.

‘아마넬이 꼬드겼을 때, 그냥 넘어갈 친구가 아니지.’

배신이라는 중대 사항에서 그가 이성적 판단을 저버렸다면, 반드시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이 혼자 궁리할 필요가 없었다. 당사자가 앞에 있으니 아겔은 그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쉬카. 내 말 들리는가.”

“……헉헉.”

쉬카는 고통을 견디려는 건지 대답하지 않았다.

아겔은 개의치 않고 다시 말을 걸었다.

“궁금하군. 왜 배신했나.”

아겔이 재차 물음에도 쉬카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뜯겨 나간 어깨를 움켜쥐고 한쪽 벽에 붙어 있었다.

쿵.

아피스토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아겔 곁으로 걸어왔다.

“아겔, 나 저거 먹어도 돼?”

그는 침을 줄줄 흘리며 공복을 호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피스토, 탐식의 권능을 받은 자.

백작 인듀라스도 탐식의 사제이지만, 아피스토만한 권능을 휘두르진 못한다.

우습게도 아피스토보다 약한 인듀라스는 탐식의 공좌를 따르지만, 아피스토는 공좌를 따르지 않았다.

먹고 허기를 채우는 욕망에만 미친 인간.

아피스토는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먹을 수 있는가, 아닌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특수 감방에 갇히기 전부터 아겔을 따르던 죄수 중 하나였다.

아피스토가 너무 배가 고파 교도관 하나를 잡아먹기 전까진 꽤 자주 동행했었다.

“응? 먹어도 돼?”

아피스토가 재촉했지만,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게.”

“당장 먹고 싶어. 나 오랫동안 기다렸단 말이야…….”

꾸득…… 꾸드드득……

마치 아이가 재촉하는 것처럼 허기를 강조하는 듯 온몸을 기괴하게 비트는 아피스토.

뼈와 연골이 심하게 비틀리는 소리가 났지만,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아겔은 단호했다.

“안 되네.”

“배고파, 아겔…… 못 참겠어…….”

아피스토가 출렁이는 살을 이끌고 아겔에게 시위하듯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아겔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날 먹을 텐가?”

“아겔을?”

아피스토의 눈이 커졌다.

그는 이내 끙끙대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뒤로 물러섰다.

“아, 안 돼…… 아겔은 못 먹어. 너무 짙어.”

아피스토의 형형한 눈빛이 아겔을 향했다. 그의 눈은 아겔에게서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도리어 내가 삼켜질 거야. 아겔은 못 먹어.”

아피스토가 두려운 듯이 몇 걸음 물러섰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내 말 듣게. 기다리면 맛있는 걸 줄 테니. 자네도 알다시피 이곳엔 먹을 것이 넘친다네.”

“맞아. 여긴 먹을 게 많아.”

“곧 식사할 수 있을 테니, 조금만 참게.”

“정말?”

“물론. 약속하지.”

“약속이야.”

아피스토가 아겔의 팔뚝만 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겔은 주먹으로 손가락을 툭 치고 다시 쉬카에게 돌아섰다.

“대답 안 할 텐가?”

“…….”

쉬카의 숨소리는 이전보다 고르게 들려왔다. 어깨가 뜯겨 나간 고통에 어느 정도 적응한 모양이었다.

다만, 그는 여전히 아겔의 말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겔은 어깨를 으쓱했다.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쉬카뿐만이 아니었으니.

“그럼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아겔의 말에 쉬카는 주먹을 쥐었다.

저벅.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아겔은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쉬카는 잠시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겔은 아마넬에게 가려 하고 있었다.

촤아아아악……!

그의 팔에서 쭉 뻗어 나온 가시 채찍이 아겔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녀를…… 보내 줘.”

“그럴 순 없겠군. 배신자를 그냥 놔둘 순 없어서 말이지.”

아겔의 말에 이를 빠득 문 쉬카가 달려들었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아마넬에겐 가지 못한다!”

촤르르륵!

쉬카는 전신에 날카로운 가시를 뽑아내며 아겔을 향해 달려들었다.

특수 감방의 복도를 아예 메워 버리려는 듯 가시 넝쿨이 사방을 채웠다.

먼저 나선 것은 아피스토였다.

그는 곧바로 무수히 자라나는 가시 넝쿨을 붙잡아 제 입에 마구 집어넣었다.

“머, 먹을 거! 먹을 거! 으적으적……!”

아피스토는 미친 듯이 넝쿨을 붙잡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고, 커다란 이빨은 넝쿨을 갈아 버렸다.

마치 분쇄기를 보는 듯했다.

아피스토가 아겔에게 향하는 가시 넝쿨을 차단했다.

아겔은 간간이 날아오는 가시 채찍을 피하며 쉬카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빠르게 접근한 아겔은 쉬카를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쉬카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

단숨에 시각을 빼앗긴 쉬카는 짧은 시간 당황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아겔을 압박했다.

아겔이 상대의 시야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것도 쉬카는 알고 있었다.

그의 정보는 교정관들에게 어느 정도 공유가 되었으니까.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잠시 당황하긴 했어도, 곧바로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눈이 없어도 넝쿨을 통해 상대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쉬카였다.

쉬카는 아피스토에게 먹히고 있는 넝쿨 부분을 절단하고 다시 새로 가시 채찍을 뽑아 아겔을 향해 날렸다.

“더 줘……!”

아피스토는 먹을 게 끊기자, 다시 날아오는 채찍들을 붙잡아 입에 가져갔다.

전세를 뒤집어 보려는 듯했지만, 오히려 상황은 쉬카에게 악화되었다.

그 잠깐의 틈으로 아겔이 접근해 왔다.

“흡……!”

그러나 쉬카도 아겔의 기척을 놓치지 않고 있었기에, 채찍을 휘둘러 그를 견제했다.

아겔도 알고 있었다는 듯 채찍을 피하며 단검을 휘둘렀다.

촤륵……!

순식간에 자라난 가시 넝쿨이 멀리서 휘둘러진 단검의 방향을 막아섰다.

단검에서 독이 방출되었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지만, 아겔은 독을 뿌리지 않고 오히려 접근하는 데 집중했다.

쉬카는 아겔이 자신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을 깨닫고, 그가 오지 못하도록 수백 가닥의 채찍으로 방해했다.

아겔은 채찍의 방해를 하나하나 뚫으며 쉬카에게 전진했다.

몸에 상처를 조금 입어도 개의치 않았기에 쉬카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촤륵……!

전진하던 아겔의 몸이 쉬카의 넝쿨 채찍에 속박되었다.

늙은 몸으로는 피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었고, 쉬카의 가시넝쿨은 끝을 모르고 자라나고 있었으니.

‘잡았다……’

쉬카는 속으로 안도했지만, 그 순간은 짧았다.

아겔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는 미끼를 잘 무는구먼.”

그의 속셈은 가까이 접근하는 게 아니었다.

훙.

바람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쉬카의 뒤를 점한 아피스토가 그를 향해 주먹을 내리찍었다.

“배고파……!”

콰아아아앙……!

아피스토의 주먹이 쉬카의 전신을 뭉개 버렸다.

“커헉……!”

쉬카가 적지 않은 피를 토했다.

그는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내리 찍히고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저 쓰러진 채로 신음을 낼 뿐이었다.

“끄으으으…….”

쉬카의 전신이 가시 넝쿨의 모습에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겔은 가시넝쿨을 단검으로 끊어 내고 쓰러진 쉬카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적은 쉬카의 이목을 끄는 것. 애초부터 메인은 아피스토였다.

아겔이 한 것이라곤 앞으로 전진하면서 쉬카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 끝이야?”

아피스토는 먹을 것이 끊기자 아쉽다는 표정으로 검지를 쭉쭉 빨았다. 가시 넝쿨을 붙잡고 먹었음에도 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교정관인 쉬카의 공격이 제대로 통하지 않을 정도.

아피스토는 7급 죄수 중 정상급에 달하는 괴물이었다.

고독의 ‘기관’을 통하지 않았더라면, 집행관이나 서기관 정도는 되어야 홀로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아겔이 쓰러진 쉬카의 앞에 섰다.

“대답은 나중에 듣도록 하지.”

퍽.

쉬카를 기절시킨 아겔은 아피스토로 하여금 쉬카를 업게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녀를 보내 달라고 했지. 아마넬이 탈출하려고 한다.’

고독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그 어떤 죄수도 탈옥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교정관인 아마넬은 다르다.

방법을 준비하기가 훨씬 용이하다.

아겔은 아피스토의 등에 올라탔다.

“아피스토. 어서 가세. 복도에는 먹을 게 아주 많다네.”

“헤헤, 맛있겠다…….”

“내가 가라는 데로만 가게.”

“알겠어.”

아겔을 태운 아피스토가 복도의 어둠을 향해 두 손을 뻗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 * *

“헉헉……!”

자줏빛 머리칼을 흩날리며 누군가 빠른 속도로 복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마넬.

고독의 기관을 담당하며, 심장이라고 불리는 ‘동력실’에서 근무하는 교정관.

7급 각성자인 그녀는 숨을 헐떡일 정도로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도망쳐야 해……!’

들켰다.

서기관 베믈리오는 교정관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고, 심지어 아겔은 적극적으로 배신자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당장 고독에서 나가야만 한다.

만약 사로잡힌다면 그 결말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죽을 것이다.

그녀의 원주인은 잔혹한 계산가. 배신자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마넬과 쉬카는 배신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절대로…… 포기 못 해.’

아마넬은 자신의 배를 살짝 쓰다듬으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만약 들켰을 땐, 어떻게 도망치려고!

그녀는 쉬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의 걱정은 당연했다. 원래라면 고독에서 나갈 방법은 없다.

교도소가 설립된 이후 탈옥한 죄수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고독의 자랑.

행성 대기권 밖에는 은하 정부의 요격 함대가 배치되어 있고, 침입자를 색출하는 광자 레이더망을 사용하고 있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불온한 움직임이 보이면, 그것이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포격이 가능했다.

그러나 딱 하나의 탈출구가 있었다.

‘시크릿 게이트.’

투기장 지하에 귀빈을 대접하기 위한 웜홀을 사용한다면, 밖으로 탈출하는 게 가능했다.

그곳에 도달하려면 오직 톨먼과 교도소장만이 풀 수 있는 보안 장치들을 수두룩하게 통과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도달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마넬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비밀 통로.’

시크릿 게이트에 도달하는 방법은 톨먼의 투기장 지하 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기관장인 아마넬만이 알고 있는 비밀 통로를 사용하면 도달할 수 있다.

쉬카와 미리 약속했으니, 아마넬은 먼저 가서 탈출선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슥.

아마넬은 비밀 통로를 타고 움직였다.

통로는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지만, 아마넬은 달리는 수준으로 움직였다.

한 시라도 늦어, 교정관들에게 붙잡힌다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아마넬은 입술을 씹고 통로를 나아갔다.

철컹. 드드드득……

통로의 입구를 열고 아마넬이 조심스럽게 기척을 살폈다.

평소엔 시크릿 게이트와 VIP룸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에 조용했다.

아마넬은 천천히 통로의 문을 닫고 시크릿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시크릿 게이트가 눈에 보였다. 황금색 금속 테두리에 전력 자기장이 꺼져 있는 모습.

그녀는 서둘러 게이트를 활성화하기 위해 걸음을 빠르게 내디뎠다.

휙!

그런 그녀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아마넬.”

“……!”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전혀 티 내지 않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톨먼…….”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어떻게 이곳에 온 거냐.”

아마넬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고독엔 네가 모르는 비밀 통로들이 많아. 점검하러 왔을 뿐이야.”

“그래? 내게 미리 언질을 주지 않다니, 무례한걸.”

“그 부분은 사과할게.”

“받아들이지.”

아마넬은 티 나지 않게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게이트 점검하러 왔어. 저번에도 잘 사용되었긴 했지만, 한 번 쓸 때마다 잘 확인해야 하니까.”

“그래. 게이트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지.”

톨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자, 아마넬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비켜 줘.”

그러나 톨먼은 비켜서지 않았다.

“아직 하나 더. 네가 나에게 사과해야 할 게 남아 있다.”

“뭐?”

아마넬이 얼굴을 찌푸렸다. 톨먼은 그녀의 표정에 개의치 않고 말했다.

“너 때문에 내 월급이 삭감되었다. 무려 3개월 동안.”

“…….”

톨먼의 말을 들은 아마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톨먼은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면서 말했다.

“내…… 내 피 같은 월급이…… 너 때문에 깎였다는 말이다.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 줘야 하는데…….”

아마넬은 팔짱을 꼈다. 아직 완벽하게 들킨 것은 아니니,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톨먼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배신자라는 거야?”

“그래. 이 시기에 네가 여기에 온 것만 해도 알 수 있지. 난 배신자 새끼를 꼭 잡고 싶었어. 그래서 여기서 기다렸던 거다.”

톨먼의 눈이 푸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영체화된 거대한 푸른 상어 두 마리가 톨먼의 등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상어는 아마넬을 보고 마치 먹잇감을 만난 것처럼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톨먼은 애완동물을 다루는 듯이 손을 들었고, 그가 손을 내리기까지 상어들은 달려들지 않았다.

아마넬은 입술을 씹었다.

톨먼은 배신자가 아니었기에, 만약 배신자가 있다면 반드시 시크릿 게이트로 오리란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게이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배신자가 나타날 때까지.

아마넬이 말했다.

“날 가로막은 걸 후회할 거야.”

톨먼은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너와 붙어 본 지도 꽤 되었군. 어디 실력이 늘었나 볼까.”

“병신…… 넌 옛날에도 나한테 줫 발렸어!”

아마넬이 소리 지르자, 보라색 정전기장이 스파크를 튀기며 사방을 타고 지나갔다.

근처에 있는 CCTV가 전부 먹통이 되었다.

아마넬은 자줏빛 스파크로 물든 주먹을 들고 톨먼을 향해 뛰었다.

파직, 파지지직!

톨먼이 손을 내렸다.

거대한 두 마리의 상어가 아마넬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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