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89)화 (90/186)

89화 합연기연 (2)

아마넬의 스파크 튀기는 주먹이 푸른 상어를 차례대로 직격했다.

콰지지지직!

상어들은 일격을 맞았음에도 쉽게 소멸하지 않았다.

놈들은 오히려 거세게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아마넬을 물어뜯으려 발악했다.

아마넬은 스파크를 뿜어내며 상어들의 접근을 방해했다.

쪽빛 상어, 톨먼 이가로프.

영체류 상어를 다루는 그의 이명이었다.

바다의 하이에나라 불리는 상어다. 상대를 추적하는 일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능력을 갖춘 톨먼이었다.

거기에 그의 전투 실력은 남들과 비교해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마넬은 여전히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전에 톨먼과 붙어서 한 번 이겨 본 적이 있었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어서 제압해야 해. 안 그럼 소란을 듣고 올 거야.’

교정관들이 CCTV가 나갔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은 투기장 지하로 몰려올 것이다.

‘쉬카…….’

그이를 위해서라도 빠르게 탈출할 준비를 마쳐 놓아야만 한다.

아마넬의 주먹에서 나오는 스파크가 더욱 거칠어졌다.

그녀는 두 팔을 넓게 펼쳤다.

파지지지지직……! 쿠웅!

자줏빛 정전기장이 그녀를 중심으로 박동하듯 퍼져 나갔고, 두 마리의 상어를 찢어발겼다.

그러나 톨먼의 상어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 상태였다.

꼬르르르륵……

푸른 상어 5마리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아마넬을 직시하고 있었다.

“난 그때보다 강해졌다. 이 정도로는 곤란해.”

“몸풀기였어, 멍청아.”

철컹! 철컹!

그녀가 등 뒤에 메고 있던 슈트 팩이 움직이더니, 나노 기계들이 나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순식간에 슈트를 착용한 아마넬의 몸에선 유려한 곡선을 따라 자주색 네온이 흘러나왔다.

아마넬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처럼 질질 짜게 해 줄게.”

“내가 언제 울었다고……!”

톨먼이 손을 들자 다섯 마리의 거대한 상어가 쇄도했고, 아마넬은 피하지 않고 맞섰다.

전신을 정전기 방어장으로 감싼 아마넬은 상어들과 육탄전을 벌였다.

쾅! 쾅! 쾅!

상어들이 아마넬의 주먹에 맞고 소멸했다.

그녀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자줏빛 광선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나씩 확실하게 상어를 처리하고 있음에도 아마넬은 손쉽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해.’

톨먼은 적의 발걸음을 붙잡기에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소환하는 상어들은 소멸하면서 주변에 ‘바다의 기운’을 널리 흩뿌린다. 퍼지는 기운은 주변을 마치 바다와 같은 상태로 만들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느리게 하고 한기를 느끼게 하는 바다의 기운이 중첩되면, 아무리 아마넬이라고 해도 맥주병처럼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저번 대결에서도 승리했던 건 속전속결로 끝냈던 덕분이었다.

‘저번보다 상어를 소환하는 속도가 빨라.’

상어의 숫자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어느새 아마넬을 노리고 있는 상어는 20마리가 넘어갔다.

한 마리만 해도 덩치가 어마어마해서, 시크릿 게이트로 향하는 통로를 전부 메울 지경이었다.

톨먼이 저 멀리서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에야말로 익사시켜 주마.”

전투 중에도 푸른 머리칼을 습관처럼 넘긴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가져갔다.

뭘 하는 건지 몰라도 아마넬은 저걸 막아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나노 슈트가 격렬하게 진동했고 슈트의 네온이 더욱 진한 색을 띠기 시작했다.

강렬한 자기장이 퍼져 나와 주변에 있는 상어들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바다의 기운이 더욱 강해졌지만, 상어들의 구속에선 풀려났다.

아마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톨먼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앙-!

발바닥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일었고, 마치 허공을 박차듯이 나아간 그녀는 순식간에 톨먼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은 톨먼의 미소였다.

“여전히 직진밖에 모르는구나, 넌.”

아마넬은 섬뜩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벽을 뚫고 나타난 거대한 메갈로돈이 그녀의 몸을 물었다.

쿠우우웅……! 콰직……!!

“커헉!”

이빨 하나가 사람 팔뚝만 한 길이의 짐승은 아마넬을 물고서 살을 뜯어내려는 것처럼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었다.

몸이 얼마나 거대한지 영체류의 전신이 통로에선 다 드러나지 않을 정도였다.

톨먼은 승리를 확신하고 씩 웃었다.

“발목을 잡혔을 때부터 끝난 거야. 저번이랑은 다르다.”

그는 넘실거리는 바다의 기운에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톨먼의 명령을 받은 메갈로돈은 이내 고개를 얌전히 하고 아마넬을 물고만 있었다.

“이제 서기관님께로 가지. 배신자는 처단이다.”

“……”

죽은 듯이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던 아마넬이 눈을 번쩍 떴다.

슈트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스파크가 물고 있던 메갈로돈의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직……!!

톨먼은 놀란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제길, 아직도……!”

아마넬이 팔을 휘두르자, 주변을 잠식할 만한 정전기장이 연속으로 두 번이나 사방에 퍼져 나갔다.

일렉트로스태틱 필드 릴리즈(Electrostatic Field Release).

콰아앙-! 콰아앙-!

마치 공기가 터져 나가는 듯한 압력이 통로 전체를 메웠고, 톨먼은 자신의 몸을 감전시킨 전류의 짜릿함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공간 전체가 아마넬의 스파크에 장악당한 느낌이었다.

그는 무릎을 꿇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크윽…… 어떻게…….”

이전과 다르게, 완벽하게 준비한 일격이었다.

저번엔 보여 줄 새도 없이 당했으니, 이번엔 제대로 한 방 먹이리라 다짐했다.

몸이 튼튼하고 내구성이 강한 슈트를 입고 있는 아마넬이라도, 이 일격은 견디지 못할 거라 생각한 톨먼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아마넬은 적잖이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부터 끝난 거야, 멍청아.”

“끄으으…….”

“좀 쳐 자라.”

아마넬이 톨먼의 복부에 주먹을 욱여넣었다.

컥 소리를 낸 톨먼은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마넬은 상처가 깊은 왼팔을 붙잡고 시크릿 게이트로 날아갔다.

시크릿 게이트에는 언제든 고독을 떠날 수 있는 수송기가 몇 대 준비되어 있었다.

소장의 승인과 아마넬의 ‘코드’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수송기.

아마넬은 소장의 허락이 없었지만, 코드를 사용할 생각으로 이곳까지 왔다.

.

.

쿠릉.

아마넬은 게이트를 가동시키고, 언제든 수송기를 출발할 수 있도록 시동을 걸어 놓았다.

‘준비는 됐어.’

시크릿 게이트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제 쉬카만 기다리면 되었다.

그녀는 수송기 한쪽에 기대 쉬카를 기다렸다.

‘상처가…….’

톨먼의 메갈로돈에게 물린 상처가 컸다. 나노 슈트로 자가 수복 중이지만, 쉽게 낫지 않았다.

‘쉬카는 무사하겠지?’

평소에 음침하고 말이 많지 않은 쉬카였다.

그가 의심받을 이유는 거의 없을뿐더러, 그에게 신경 쓰는 교정관들도 많이 없다.

아마넬이 쉬카와 사랑에 빠진 이유는 단순했다.

잘 생기지도 않은 얼굴에 음침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는 언제나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었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었다.

자기 일도 만만치 않은데 거뜬히 해치우고, 아마넬을 보기 위해 교정관들의 눈을 피해 만남을 이어 왔다.

CCTV 관리는 간수들이 하는 업무이긴 했어도, 교정관들도 가끔 CCTV를 보곤 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교정관들의 시야에 걸릴 만한 위험 요소는 다분했다.

쉬카는 그 어려운 걸 모두 뚫어 내었다.

‘많이 힘들었지…….’

‘고독’은 이 교도소에 있는 자,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것이 7급 각성자인 교정관이라도 예외는 없다. 쉬카는 점점 마음이 메말라가는 아마넬에게 다시 사람의 마음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저벅.

그때, 상념에 빠진 아마넬에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소리를 듣고 몇 걸음 걸어 나갔다.

“쉬카?”

그러나 아마넬이 마주한 건 쉬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저벅. 저벅.

시크릿 게이트로 걸어온 자는 쉬카와 다르게 제복을 말끔히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서기관, 베믈리오.

아마넬은 그를 보고 침을 삼켰다.

‘젠장…….’

다행이라고 봐야 할지 다른 교정관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혼자 왔다고 안심해도 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베믈리오는 9급 각성자. 아마넬보다 2단계는 높은 강자인 만큼, 그가 손가락만 움직여도 아마넬은 제압당할 것이다.

아마넬이 입술을 씹고 그를 바라보았다.

“서기관님…….”

“아마넬.”

베믈리오는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 무덤덤한 그였지만, 지금은 감정이 얼굴 밖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아마넬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많이 다쳤군.”

“예…….”

“톨먼을 살려 뒀더군.”

아마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고독에서 일하게 된 지 10여 년. 고독 시간으로 따지면 어언 60년이 넘는 세월을 같이한 동료였다.

아무리 미워도 같이한 정이 있는데, 죽이고 갈 만큼 심성이 뒤틀리진 않았다.

한숨을 내쉰 베믈리오가 말했다.

“고맙다.”

“…….”

아마넬은 상사의 감사 인사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베믈리오도 아마넬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안다. 모르는 게 이상한 거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고맙다는 말은 아마넬로선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왠지 가슴이 아리는 듯하기도 했다.

평소 부하 직원을 아끼는 베믈리오.

그것은 아마넬이 배신했다 하더라도, 여전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곧 베믈리오의 표정은 차갑게 굳었다. 마치 자신의 아이를 혼낼 때 그러하듯이.

“왜 배신한 거지, 아마넬.”

“……”

“왜 아겔의 적을 도운 거냐. 왜 주인님의 이익에 배반하는 일을 한 거냐. 너라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터. 말해 다오.”

베믈리오는 어떻게 ‘계약’을 위반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우선은 ‘왜’였다.

아마넬의 행위는 명확했다.

외부인에게서 받은 물건으로 아겔의 적인 ‘주술사’를 도왔다.

그 외부인이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짐작할 따름이다.

아겔이 고독에 있는 걸 알고, 그를 죽이려 하는 세력. 만만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고개를 떨군 아마넬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 할 수 없잖아요. 이곳에선…….”

베믈리오는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사랑의 성좌를 믿고 있었나?”

“이 끔찍한 교도소에선 없는 신도 믿어야 할 판이에요.”

“훗, 하긴.”

아마넬의 말에 베믈리오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아마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베믈리오도 오랜 시간 고독에서 일하면서, ‘자유’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사랑할 자유, 선택할 자유, 죽을 자유.

종이 되면서 감수했던 부분이지만, 때론 사지를 잃은 것처럼 그 고통과 허무가 엄습하곤 했다.

아마넬은 고개를 들었고 흔들렸던 눈이 다시금 냉철함을 되찾았다.

“전 쉬카와 이곳을 나갈 겁니다. 제 마음을 이해하신다면, 부디 막지 말아 주세요.”

“……”

베믈리오야말로 소리치고 싶었다.

당장 이곳에서 떠나지 않고 뭐 하냐고. 어서 괴물 같은 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멀리멀리 도망치라고.

그러나 그는 잠깐 망설이고 말았다.

주인님의 종으로서 아마넬을 붙잡아야 할지, 아니면 탈출을 묵인하고 대신 죗값을 받을지.

그의 망설임은 결국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

“끌끌, 이것 참 다행이구먼.”

“……!”

“……!”

두 사람 모두 놀란 얼굴로 통로 뒤쪽을 바라보았다.

기척도 없이 누군가 접근한 것이었다.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거대한 죄수가 모습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등에 태우고 있는 아겔의 모습도.

아겔은 아피스토의 등에서 내려와 천천히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베믈리오, 하루 만에 배신자를 찾아내다니, 훌륭하네.”

“……”

베믈리오는 아겔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씹었다.

닷새도 아니고 하루 만에 배신자가 아겔에게 들통났다.

이제 일은 돌이킬 수 없었다.

아겔의 고개가 아마넬에게 향했다.

“아무리 바빠도 챙길 건 챙겨야지.”

아피스토가 등에 업고 있던 누군가를 붙잡아 땅에 툭 던졌다.

쿵.

한쪽 어깨가 뜯겨 나간 그는 미동도 없이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아마넬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쉬카……? 쉬카……!”

그녀의 붉어진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설명이 필요한가. 배신자를 붙잡았지.”

아마넬은 아겔을 보고 절규를 내질렀다.

“아겔라스토스으으---!!!”

“그리 크게 말해 주지 않아도 내 이름은 잘 알고 있다네.”

노인은 뒷짐을 진 채로 누런 이를 드러냈다.

* * *

짧은 순간, 아마넬을 제압한 건 베믈리오였다.

자줏빛 네온을 폭주시킨 아마넬이 아겔에게 달려들기 전, 베믈리오는 착잡한 심정으로 손을 휘둘렀다.

허공에서 나타난 종이들. 빛나는 문자가 새겨진 종이들이 아마넬의 전신에 달라붙었고, 아마넬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구속의 베믈리오’라는 이명에 걸맞은 실력이었다.

그러나 아마넬은 구속되었음에도 발악하며 아겔을 노려보았다.

“쉬카를 어떻게 한 거야-!”

“죽진 않았다네. 오히려 죽을 뻔한 걸 살려 주었지.”

아겔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가 제지하지 않았다면, 아피스토가 쉬카를 씹어 먹었을 테니.

타닥! 타다닥!

통로에서 교정관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까 톨먼과 아마넬이 싸운 소란을 감지하고 온 것이었다.

"……”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은 상황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미 배신자는 누군지 드러났고, 아겔과 베믈리오가 상황을 정리하는 듯 보였기에 설명을 요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육사만이 익살스러운 혼잣말을 했다.

“하핫, 이거 심문 결과가 필요도 없게 되었군요! 괜히 고생했습니다!”

페이든도 한쪽에 서서 조용히 속으로 읊조렸다. 이제 1달 차인 그에게 배신자의 존재는 우습게만 느껴졌다.

‘개판이군.’

아겔은 구속되어 있는 아마넬에게 걸어갔다.

그는 ‘왜’가 아닌 ‘누구’에 관한 것을 듣고 싶었다.

‘계약’을 지우고 아마넬이 배신하게 만든 장본인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두근. 두근.

박동하는 두 개의 소리. 하나는 아마넬의 것이었고, 하나는…….

‘이런……’

아겔은 곧 그게 누구의 심장 소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쓰러져 있던 쉬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묻지 않았지만, 이미 ‘왜’에 대한 답은 얻은 것 같았다.

아겔은 아마넬의 배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아마넬이 소스라치게 놀라 그의 손길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다.

“건드리지 마!!”

아겔은 잠시 그녀의 배에 손을 얹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몇 주차인가.”

아겔의 목소리에 아마넬은 입을 다물었다.

그와 반대로 아겔의 말을 들은 교정관들은 입을 쩍 벌렸다. 베믈리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겔이 한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심장이 뛰는 걸 보면 최소 2달은 넘었겠구먼.”

아마넬은 아이를 배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들키고 나서도 오히려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베믈리오에게 향했다.

“이게 이유예요.”

“……”

베믈리오는 침묵했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감정이 뭔지 그도 제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에 대한 거부감이 베믈리오의 가슴을 짓눌렀다.

‘이건 아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각오하고 주먹을 쥐었다.

그가 아겔을 향해 입을 열려는 순간.

침묵을 깨는 신음이 들렸다.

“아마넬…….”

목소리를 듣고 아마넬이 격하게 반응했다.

“쉬, 쉬카? 나 여기 있어!”

“끄으……”

기절했던 쉬카가 한쪽 팔로 바닥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구속된 아마넬과 그 앞에 선 아겔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상황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쉬카는 남은 한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내, 내가 시간을 벌게. 넌…… 도망쳐…….”

쉬카의 상태는 여기에 있는 사람을 한 명도 이기지 못할 것처럼 위태로웠다.

아겔과 맞붙어도 질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도, 그는 아마넬을 위해 시간을 벌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넬이 울먹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지금 뭘 하려는…….”

그녀가 다 말하기도 전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쉬카의 눈이 순식간에 먹물처럼 물들었고, 곧 사이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목에는 불길한 기운이 담긴 ‘인장’이 검은빛을 발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쉬카에게서 물러났다.

“이건……!”

“마기다!”

교정관들은 물러섰지만, 베믈리오와 아겔은 물러서지 않았다.

베믈리오는 저 인장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사도의 인장……!”

검은빛을 발하는 인장은 어둠의 사도가 직접 새긴 인장이다. 어둠의 사도가 쉬카에게 걸려 있던 ‘계약’을 지우고 자신의 인장을 새겨 넣은 것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쉬카의 몸이 가시넝쿨로 변화하며 순식간에 괴물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베믈리오는 당장 그를 멈추기 위해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외쳤다.

“아겔라스토스! 피해라!”

아겔 또한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쉬카 쪽으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호오.”

이 자리 모두가 느끼고 있을 테지만, 그에겐 더욱 깊이 느껴졌다.

어둠의 사도가 심어 놓은 인장의 기운이.

친숙했다. 마치 어릴 적의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리고 처음 보는 ‘사도의 인장’인데도 불구하고, 아겔의 마음엔 확신이 들었다.

‘지울 수도 있겠구먼.’

확신이 든 순간, 아겔이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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