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합연기연 (3)
쿠화아아아악-!
쉬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이 시크릿 게이트의 통로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교정관들은 각자 힘을 뿜어내며 마기(魔氣)에 대항했다.
강렬한 에너지의 충돌에 신음하며 천천히 물러서는 교정관도 있었다.
“아겔라스토스!”
베믈리오는 자신이 물러서라 소리쳤는데도 오히려 쉬카에게 다가가는 아겔을 보고 다시 큰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의 요구에도 아겔은 묵묵히 걸어 나갈 뿐이었다.
베믈리오는 휘몰아치는 마기의 소용돌이 속에도 멀쩡히 걸어가는 아겔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이런 마기도 저 노인에겐 소용이 없단 말인가.’
자신마저 전신을 ‘종이 마법’으로 둘러싸고 몸을 보호해야 할 지경이었다.
느껴지는 마기의 위력을 보아, 여기에 있는 교정관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준은 아니었지만, 방심한다면 살이 썩어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닐 힘이었다.
아겔은 그런 마기를 뚫고 그저 쉬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서기관님!”
휘몰아치는 마기 속에서 교정관들이 서기관 쪽으로 합류했다.
주암이 소리쳤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베믈리오는 이를 악다물고 사건의 중심지를 바라보았다.
그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투에 돌입하면 마기에 당할 위험이 커졌다. 지금 제대로 힘을 낼 수 있을 만한 건 오직 베믈리오뿐.
교정관들은 그의 명령이라면 제압하기 위해서 나서겠지만, 마기에 중독되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부하를 아끼는 그는 그런 명령은 절대로 내릴 수 없었다.
‘아겔.’
자신이라도 나서고 싶었지만, 베믈리오는 망설임 없는 아겔의 모습에 뭔가 있음을 눈치챘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겔라스토스라는 죄수는.
그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뭔가 틀어지면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으리라.
베믈리오는 자신의 실력과 감을 믿었다.
“대기한다.”
베믈리오의 명령에 교정관들이 입을 다물고 회오리의 중심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아겔이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
아겔은 일정 거리를 두고 가시넝쿨에게 말을 걸었다.
“쉬카, 내 말 들리는가.”
“……”
괴물로 변해 버린 쉬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몸을 집어삼킨 가시넝쿨은 본래의 천연한 녹색을 잃어버리고, 칙칙한 회색으로 물든 상태였다.
그저 꿈틀거리는 넝쿨로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내 말 들리면 대답하게.”
재차 말을 걸자, 대답이 돌아왔다.
쉬릭! 쾅!
통나무보다 두꺼운 가시 채찍이 아겔에게 떨어졌다.
아겔은 채찍을 피해 내고 난동을 피우기 시작한 쉬카의 가시넝쿨을 바라보았다.
쿠오오오오……!
마치 마물이 강림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베믈리오에게 붙잡혀 강제로 물러난 아마넬이 미친 듯이 그의 이름을 부르게 들려왔다.
-쉬카……! 쉬카!! 돌아와……!! 안 돼애애애--!!
아겔은 그 목소리를 듣고 입술을 비틀었다.
유쾌하지 않았다.
배신자를 처단하는 일에 기쁨이 있을 리도 없거니와, 이건 더욱 불쾌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발단과 과정을 알고 있는 아겔에게는 그랬다.
사랑으로 생겨난 아이. 배신할 이유는 충분했다.
이들의 잔혹한 주인은 그걸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으니. 종들의 자유는 모두 빼앗긴 바였다.
뿌득.
주먹을 쥔 아겔이 아피스토를 불렀다.
“공격하세.”
“머, 먹을 거야…… 흐흐흐.”
아겔이 지시하기도 전에 아피스토가 달려들었다.
안톤과 비슷한 몸집의 아피스토였음에도, 가시넝쿨의 크기에 비하면 쥐새끼나 다름없었다.
아피스토는 채찍에 수없이 후려 맞아도 멀쩡하게 넝쿨에 매달려 이빨로 넝쿨을 큼직하게 뜯어먹었다.
콰직! 콰직!
쿠오오오오오오-!
마기의 기운이 강해졌지만, 아피스토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애초에 아피스토는 공좌의 권능을 받은 자였으니, 마기에 친숙했다.
쾅!
굵직한 가시 줄기에 얻어맞은 아피스토가 아겔 곁으로 튕겨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어마어마한 양을 뜯어먹었는데도 아직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마, 맛있다.”
“아피스토. 길을 열어 주게.”
아겔은 인장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들었다.
멀었다.
거대한 가시넝쿨을 타고 혼자 올라가기는 불가능했다.
수백의 가시 채찍이 주변을 박살 내고 있었고, 넝쿨 전체에서 가시가 솟았다 줄어들었다 하는 판에 어딜 밟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피스토가 아겔을 어깨에 올렸다.
“제일 맛있는 부위로 가는 거야?”
“물론.”
“알겠어.”
쿠지지지직…….
발가락에 힘을 모으는 것만으로 바닥에 금이 가게 한 아피스토는 허벅지를 펴며 위로 도약했다.
콰앙-!
가시넝쿨의 중간 부분에 달라붙는 데 성공한 아피스토는 그대로 넝쿨을 타고 올라갔다.
넝쿨 줄기에서 나오는 가시가 수도 없이 아피스토를 찔렀지만, 출렁이는 살갗에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죄수복만 넝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겔은 솟아오르는 가시에 맞지 않기 위해 아피스토의 등 뒤로 바짝 붙었다.
뒤에서 채찍이 날아와 아겔을 노릴 때면, 단검을 휘둘러 채찍을 잘라 버렸다.
벌레 단검은 쉬카가 만들어 낸 가시 채찍도 손쉽게 자를 정도로 예리했다.
쉬익……!
가시 채찍 하나가 아겔의 방어를 뚫고 쇄도했다.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채, 아겔은 어깨가 조금 베였다.
피가 묻어 나왔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기에 아겔은 상처를 지혈하지 않았다.
‘그냥 오르기만 해선 안 되겠군.’
계속해서 날아오는 가시 채찍을 전부 막을 순 없었다.
아겔이 소리쳤다.
“줄기 안으로 파고 들어가게!”
“알겠어.”
아피스토가 입을 쩍 벌리고 거대한 가시 줄기를 파먹기 시작했다.
마치 두더지처럼 줄기 안으로 파고든 아피스토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줄기 안에는 ‘길’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마치 혈관과 같았는데, 응축된 마기가 흐르는 통로같이 보였다.
아겔은 그 통로에서 뭉쳐 있는 마기 덩어리들을 바라보았다.
덩어리들이 곧 침입자인 아피스토와 아겔을 향해 쏟아졌다.
쾅! 쾅! 쾅!
“아, 아파!”
아피스토는 맨몸으로 부딪치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아겔은 덩어리를 피해 내며 앞으로 달려갔다.
‘거의 다 왔군.’
마기가 응집된 구역이 느껴졌다. 이곳이 쉬카의 마물화(魔物化)의 동력이 된 심장 부근일 것이었다.
촤악!
안쪽을 가리고 있던 가시넝쿨을 잘라 버리자, 아니나 다를까.
둥그런 방 안에 쓰러져 있는 쉬카의 모습이 보였다.
아피스토는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아겔에게 다가오는 가시들을 씹어 먹으며 그를 보호했다.
아겔은 서둘러 쉬카에게 다가갔다.
쉬카는 숨을 쉬고 있었고, 여전히 인장은 그의 목에서 검은빛을 내고 있었다.
‘이것이 사도의 인장인가.’
아겔조차 처음 느껴 보는 사도의 기운.
어둠의 사도가 직접 새긴 인장은 강렬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가까이 있기만 해도 주변에 있는 것들을 타락하게 하고 검게 물드는 그런 종류의 힘이었다.
그들이 이끄는 마물(魔物)이 발하는 힘과 똑같은 기운. 마기였다.
마기를 내뿜는 마물은 고독에서도 사육하고 있긴 했지만, 사도가 직접 인장을 새긴 건 차원이 달랐다.
인장이 새겨진 마물은 행성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하는 괴물들이니.
그중에서도 악명 높은 마물들은 세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아겔은 지체없이 기절한 쉬카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며 마치 아겔을 침범할 듯 그의 목에서 마기가 범람했다.
“…….”
그러나 아겔은 마기의 공세에도 멀쩡했다.
오히려 그가 손을 가져가자, 인장이 일렁거리기 시작했고,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마물화된 가시넝쿨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렸다.
쿠오오오오오-!
아겔은 마구 흔들리는 와중에도 중심을 잡고 쉬카의 목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얼마간 쉬카의 목을 붙잡고 있던 아겔은 곧 손을 거두었다.
‘이렇게 사용하는 거였구먼.’
깨끗해진 쉬카의 목이 드러났다.
인장이 지워졌다.
아겔은 자리에서 일어서 아피스토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착지할 준비를 하세, 아피스토.”
.
.
.
쿠구구구구……!
아겔이 가시넝쿨의 거대한 줄기 안으로 들어가고 몇 분 후, 마물이 된 가시넝쿨이 요동쳤다.
쿠오오오……!
교정관들과 베믈리오는 한쪽으로 물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마넬은 더 이상 울 기력도 없는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주암이 우려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서기관님.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조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다려라.”
베믈리오는 아겔을 기다렸다. 저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을 그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값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쿠궁……!
가시넝쿨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그 잔해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교정관들은 마기가 옅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각자 힘을 발휘해 통로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했다.
쿵!
베믈리오는 가시넝쿨의 잔해 속에서 바닥에 착지하는 아겔과 아피스토를 볼 수 있었다.
“결국 해냈군…….”
설마 이 마기를 뚫고 마물화가 된 쉬카마저 제압할 줄이야.
마물화는 어둠의 사도가 내리는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다. 멀쩡한 생명체를 타락시키고 오직 파괴와 살육만을 위하는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저주.
아겔은 그 저주를 혼자서 풀어 버린 것이었다.
그는 쉬카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아마넬이 그 모습을 보고 희색을 띠었다.
“쉬카! 쉬카……! 쉬카는 무사한 거야?”
“목숨을 잃진 않았지.”
아겔은 쉬카의 발목을 놓고 아마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아마넬은 움찔했지만, 손을 올려 목을 더듬는 아겔의 손길을 피하진 않았다.
“끄윽…….”
“좀 참게. 자네마저 폭주하면 귀찮아지니.”
“……”
아마넬과 쉬카에게 인장을 새긴 어둠의 사도는 그 둘이 폭주하길 원한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아겔에게 어떠한 피해라도 입힐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그러나 아겔은 피해를 입기는커녕 손쉽게 인장을 제거하기까지 했다.
아마넬의 목에 새겨진 인장의 빛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아…….”
아겔은 고개를 돌려 베믈리오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말했던 배신자의 처우.”
“…….”
“바뀌지 않았길 기대하지. 그럼.”
아겔은 그대로 아피스토와 함께 자리를 떴다.
베믈리오는 아겔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박힌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 죽여야 하는가.’
본인이 했던 말이니 어길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아겔의 앞에서 확언했다.
어긴다면 그 또한 죄과를 피할 수 없으리라.
교정관들은 알아서 아마넬과 쉬카를 수습했고, 베믈리오만이 남았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베믈리오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 * *
서기관실.
베믈리오는 단출한 그의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의 입에선 술 냄새가 났다.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있던 술을 오랜만에 꺼내야 할 정도로 그의 심경은 복잡했다.
띠릭.
그의 단말기에 사육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집행관은 오늘 근무 시간이 끝났으니, 내일 온다고 합니다.]
내일이면 아마넬과 쉬카는 처형이다.
주인의 계약을 저버리고 자산에 피해를 주려 했던 두 사람의 운명이다.
답답한 마음에 베믈리오는 다시 술을 들이켰다.
“후우…….”
한동안 한숨만 늘어놓았던 베믈리오는 이내 겉옷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도 오늘의 지난한 업무를 끝냈으니, 잠시라도 쉬고 싶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베믈리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누군가 문을 열고 서기관실로 들어왔다. 베믈리오의 눈이 커졌다.
“아겔?”
아겔이 그의 집무실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