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합연기연 (4)
아겔이 찾아가자, 역시 베믈리오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짧은 순간뿐이었다.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지.”
“말동무 찾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
베믈리오는 저도 모르게 검은 수염을 만지며 아겔을 바라보았다.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올 사람이 아니다. 수다나 떨 성격이라면 자주 왔겠지만, 아겔은 서기관실을 자주 찾지도 않는다.
그가 알아서 주제를 꺼내겠거니 생각하며 베믈리오는 한동안 침묵으로 그를 대했다.
이윽고 아겔이 입을 열었다.
“참 우스운 상황이 아닌가. 사랑 때문에 주인을 배반했는데, 도망쳐 온 곳의 새 주인이 지옥을 다스리는 자라면.”
“…….”
아마넬과 쉬카는 사랑을 했다.
베믈리오도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 자책감이 들었다.
“이해할 만하지. 애까지 뱄으니.”
“…….”
아겔의 말에 베믈리오는 또다시 자신을 자책했다.
‘빌어먹을…… 어째서 이리 관심이 없었는가.’
‘일이 바빴다’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는 부하들을 세심히 돌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끔찍한 교도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온 부하 직원들을 아끼는 마음은 진짜였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
쉬카와 아마넬의 상황이 베믈리오에겐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그도 아내와 아이가 있는 몸. 가족이 있었기에 이 지옥 같은 곳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가족이 아니라면, 여기서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 있을까.
돈? 명예?
살의에 가득 찬 죄수들의 눈빛과 부당한 살인이 밥 먹듯이 일어나는 이곳의 실태를 본다면, 돈이나 명예 따윈 아무 짝에 쓸모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배신자를 죽이겠다고 공언한 건, 베믈리오의 의지가 아니었다.
주인님께 여쭈어도 답은 똑같았을 것이고, 아겔도 아무런 반대가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베믈리오는 자신의 의지로 한 말도 아니었지만, 공언한 것이 후회되었다.
아겔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가 수하들을 아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네. 하나 일이 이렇게 된 걸 어쩌겠나. 죽여야지.”
베믈리오가 피하고 있던 시선을 돌려, 아겔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퇴근 시간이다. 빙빙 돌리지 마라.”
“이제는 우리가 봐야 할 눈치가 하나 더 늘었다는 걸 말하려 했지.”
눈치라는 말에 베믈리오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자신이 봐야 할 눈치.
‘주인님. 그리고…….’
뭔가를 떠올린 베믈리오가 다시 눈을 뜨고 아겔을 바라보았다.
아겔은 서기관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베믈리오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이젠 성좌 교단까지 내부에 있지. 일이 꼬이면 더 심하게 꼬일 가능성이 있으나.”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겔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예 들키지 않으면, 상관없지 않겠는가.”
달칵.
문을 열고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헤헤, 서기관님 아직 퇴근 안 하셨네요.”
“네가 왜…….”
“아겔 영감이 불러서요.”
귀신 담당 소류아였다. 혀를 빼물은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 * *
페이든은 간수 휴게실에 있었다.
그 말고도 수많은 고독의 직원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교정관들도 전부 자리에 참여한 상태였다.
지금 간수 휴게실은 이전과 같은 활기가 넘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적막함만이 수천이 넘는 간수와 교도관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다.
페이든은 이 적막함이 답답했다.
‘진짜 처형하려는 건가?’
교정관이, 그것도 두 명이나 동시에 처형되는 건 고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고독의 간수와 교도관과 달리 교정관부터는 고위 간부로 취급되었으니.
어찌 되었든 페이든은 오늘의 일을 기록해 성좌 교단 측에 알릴 생각이었다.
그가 성좌 교단 사람이란 걸 고독의 관계자들도 알고 있을 테니, 페이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곧 베믈리오가 휴게실 중앙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덤덤한 얼굴로 직원들이 모인 이유를 결행했다.
“이제부터 처형식을 진행하겠다.”
베믈리오가 입을 열자, 한쪽에서 죄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암은 쉬카를 붙잡고 나아 왔고, 오드리가 아마넬을 붙잡고 나왔다.
간수와 교도관들은 두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조금 술렁였지만, 이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철컹!
두 사람의 팔과 목이 결박되었다. 목을 자르기 좋게.
베믈리오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말했다.
“위 두 죄인은 고위 간부로서 지켜야 할 ‘계약’ 사항을 어겼다. 외부인을 도와 고독의 재산에 해를 끼치는 죄악을 저질렀으며, 이는 주인님께서 가장 혐오스럽게 여기는바. 그리고…….”
말문이 턱 막혔다. 베믈리오는 그다음에 쓰여 있는 글귀를 읊지 못했다.
자신이 쓰긴 했어도 이것만큼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죄란 말인가.’
종이를 꾸깃 접어 버린 베믈리오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처형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죄인들이 입장한 길을 보고 말했다.
“집행관, 입장.”
쿵.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마치 바위가 떨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 휴게실을 엄습했다.
공기가 점점 무거워졌다.
답답해지는 느낌에 간수와 교도관들은 숨을 헐떡였고, 페이든도 가슴이 텁텁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뭐…… 지?’
누군가 죄인들을 향해 걷고 있었다.
검은 제복과 기다란 망토를 입은 남자.
얼굴은 창백했고, 눈가엔 자비심이란 감정 따위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입술을 가로지르는 흉터와 마른 체형의 커다란 키.
간수들조차 입을 다물게 만드는 집행관의 등장이었다.
집행관은 간수와 교도관을 죽이기도 했다.
고독의 재산에 해를 끼친다면, 누구든지 그의 처형 대상이었다. 그는 죄수들보다 간수들에게 악명이 높은 자.
항상 피가 튀는 일을 하면서도 입고 있는 검은 제복과 망토는 깔끔하기 그지없는 이 남자. ‘집행관’이란 직급만으로도 이명으로 쓰기엔 충분했다.
이 답답한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은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지만.
“집행관 멜커. 부름을 받았습니다.”
목소리조차 소름이 끼치게 하는 남자였다.
쇠가 갈리는 듯한 거친 목소리는 주변에서 지켜보는 간수들 본인이 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베믈리오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형을 집행하라.”
“명령대로.”
그는 망토 안에서 기다란 장검을 꺼내 들었다.
길이가 2미터는 될 법한 장검이었는데, 망토 안에서 어떻게 꺼냈는지 알 수 없을 길이였다.
그러나 장검은 분명 멜커의 손에 들려 있었다.
멜커는 죄인들에게 다가가 비아냥거렸다.
“주인님의 재산에 피해를 끼쳤다지.”
“…….”
목과 손이 묶여 있는 아마넬과 쉬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감히 계약을 거스른 자는 죽음으로 다스린다.”
멜커의 목소리가 지켜보는 자 모두의 심령을 뒤흔들었다.
여기에 있는 자 중, 기업가와 ‘계약’을 맺지 않은 자는 없었다.
고위 간부만큼 강력한 계약은 아닐지라도, 멜커가 저렇게 말하는 데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아니, 딱 한 사람 있긴 했다.
새로 부임한 교정관 페이든. 그는 고독의 주인과 계약을 맺지 않았다.
형이 집행되었다.
멜커는 나란히 붙잡혀 있는 죄인들 앞에서 장검을 높이 들었다.
두 손으로 꽉 잡은 장검.
집행관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죄인들의 마지막 표정을 보고 희열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서늘하게 선 장검을 아래로 내려왔다.
서걱……! 푸슛……!
아마넬과 쉬카의 목이 동시에 잘려 나가고, 목의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흠잡을 데 없는 깔끔한 일격.
베믈리오는 종이 마법으로 튀는 피를 막아 내고 말했다.
“주인님의 계약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다. 똑똑히 눈에 담아 두어라. 이것으로 처형식을 마치겠다.”
간수와 교도관들이 두려운 듯, 서둘러 물러갔다.
교정관들만이 휴게실에 남았다.
페이든은 착잡한 마음을 가다듬었다.
‘진짜로 죽였군.’
복잡한 심경을 잠재우던 그는 문득 베믈리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막 사형을 집행한 멜커와도 눈이 마주쳤다.
‘제기랄. 날 왜 쳐다봐.’
아무리 성좌 교단 소속이지만, 고독의 방침을 어기면 이렇게 될 거라는 경고.
그게 분명했다.
페이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이를 갈았다.
“처음 보는구나, 햇병아리.”
어느새 멜커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멜커의 키는 2미터가 넘었기에 페이든은 그를 올려다봐야 했다.
“위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신입 교정관 페이든 로자리오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큭큭, 악명이겠지. 잘 부탁한다고? 내가 하는 일을 봤으면, 그 말은 곧 죽고 싶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는 걸 알 텐데.”
“……죽고 싶어서 꺼낸 말은 아니었습니다.”
페이든의 반응에 멜커는 씩 웃었다.
신입 주제에 강단이 아예 없진 않았다.
“조만간 술이나 한잔하자고. 고독에 대해 알려 주지. 바쁘긴 해도, 햇병아리를 위해서라면 시간 좀 내고 싶군.”
“……영광입니다.”
멜커가 휴게실에서 나갔다. 주암과 오드리가 움직여 사체를 치웠다.
잠시 페이든을 지켜보던 베믈리오도 휴게실에서 나갔다.
.
.
.
어느 우주의 공간.
아마넬과 쉬카는 수송선을 타고 고독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수송선을 자동 항해로 설정해 놓은 쉬카는 뒷좌석에 있는 아마넬에게 다가갔다.
“몸은 어때.”
“더 좋을 수가 없어.”
쉬카는 조심스럽게 아마넬의 배로 귀를 가져갔다.
심장이 형성될 시기인지라, 왠지 박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실제로도 뭔가 두근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아마넬은 자신의 배에 귀를 대고 있는 쉬카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리 잘생기지 않았고, 최고의 남자라고도 말하기 뭐했다.
그러나 자신이 왜 이 남자와 사랑에 빠졌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넬은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떠올렸다.
‘아겔 영감…….’
처형식이 진행되기 전날, 아겔이 찾아왔다. 그의 곁에는 서기관과 페이든을 제외한 교정관들도 함께였다.
아겔은 손수 묶여 있던 두 사람을 풀어 주며 말했다.
-자네 둘은 서둘러 여기서 나가게.
메마른 목소리는 서기관실에서 배신자를 찾으면 직접 죽이겠다고 말하던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그는 두 사람을 정죄하고 있지 않았다.
태도가 뒤바뀐 그의 모습에 아마넬은 의문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갑자기 대체 왜…….
-늙은이의 변덕이라고 생각하게.
-…….
아마넬과 쉬카는 구속에서 풀려났음에도 쉽사리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걸 주인님께서 아시면…….
-그는 이제 자네들의 주인이 아닐세. 새겨진 인장의 족쇄도 없으니, 자네들은 자유인이지. 고독은 자유인을 구속할 수 없다네.
아겔은 아마넬을 먼저 일으켜 세웠다.
-아이도 조심하고.
-…….
그때부터 아마넬은 흔들리는 시야로 아겔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연이라고 생각하게. 두 사람이 이루어진 것도, 내가 자네들을 살려 주는 것도.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영감.
아마넬의 물음에 아겔은 잠시 침묵했다.
-때로 사람은 본인이 이루지 못한걸, 질투하기도 하지만,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어지기도 하지.
-…….
아겔의 대답에 아마넬은 말문이 턱 막혀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없네. 수송기를 준비했으니, 움직이게.
-자, 잠깐만요, 아겔 영감……!
-더 이상 나와 만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구먼.
아마넬과 쉬카는 교정관들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시크릿 게이트의 수송기에 올라탔다.
아겔 영감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때는 목이 막혀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독을 나온 지금 아마넬은 조그맣게라도 읊조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송기에서 쉬카가 식사를 준비하러 간 사이, 그녀는 혼자 남게 되었다.
아니, 둘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수송기의 창밖으로는 광활한 우주의 어둠과 그 사이에서 오롯이 빛을 내는 별들이 보였다.
고독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넬은 왠지 고독이 보이는 듯했다.
저도 모르게 울먹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 감사…… 감사합니다…… 흑흑…….”